"괴물이 뉴스를 납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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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창원 / 뉴스 없는 대구MBC를 보며


미국 뉴욕에 거대 괴수가 출현해 민간인 여성 1명을 납치한다.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으로 도주한 괴물은 공군 전투기와 격투 끝에 사살되고 여성은 구출된다. 생방송은 여기서 끝나지만 관련 뉴스가 뒤따른다. 백악관이 알카에다 테러 가능성을 부인하지 않는가 하면, 한국에서는 여성 구출 작전에 참여했던 전투기 구입을 검토한다. 

뿐만이 아니다. 괴수를 유인한 금발의 매혹녀에 대한 관심이 폭발하고, 그녀에 대한 자서전 출간이 준비된다. 한때 인기가 많았던 EBS 지식채널e ‘무엇이 뉴스가 되는가?’에 나오는 내용이다. 길어봐야 4분도 되지 않는 짧은 영상이지만 뉴스가 취사선택되는 뉴스 결정권자의 게이트키핑(gate keeping) 의미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이 영상은 뉴스의 힘, 더 좁히면 뉴스를 주무르는 이들의 영향력을 확인 시킨다. 또 뉴스의 파급효과는 일방적으로 통제 될 수 있음을 비춰준다. 정권을 거머쥔 쪽에서 보면 그만큼 뉴스를 자기 입맛에 맞추고 싶은 유혹이 클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언론도 권력이라는 말은 당연히 뉴스가 있기에 수긍이 가는 말이다. 뉴스가 없다면 언론의 주요 역할 중의 하나인 환경감시 기능은 맥을 못 출 것이다. 뉴스 없는 방송이나 신문을 생각하면 말이다.

하지만 지금 대구에서는 뉴스 없는 방송이 이어지고 있다. 공정방송을 쟁취하겠다고 본사 노조와 호흡을 맞춰 50일이 되도록 파업을 이어가고 있는 대구MBC 이야기다. 지난 23일부터는 텔레비전과 라디오에서 뉴스가 사라졌다. 서울MBC 사장이 일방적으로 대구MBC 사장을 해임하고 낙하산 사장을 임명하자 구성원들의 분노가 폭발한 것이다.

대구MBC 노조와 대구지역 시민단체가 집회를 열고 "차경호 사퇴", "김재철 퇴진"을 요구하고 있다(2012.4.26.대구MBC 시네마M 광장)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대구MBC 노조와 대구지역 시민단체가 집회를 열고 "차경호 사퇴", "김재철 퇴진"을 요구하고 있다(2012.4.26.대구MBC 시네마M 광장)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MBC의 소유구조를 보면 이렇듯 노골적으로 지역 방송 장악을 시도하는 것이 이상하지 않다. 지금의 MBC 대주주는 방송문화진흥회다. 방송문화진흥회는 신군부세력의 언론 통폐합 이후 KBS가 갖고 있던 주식의 70%를 1988년 넘겨받았다. 나머지 30%는 정수재단이 가지고 있다. 정수재단은 1962년 만들어진 박정희의 5.16 장학회가 전신이다. 최근 편집권 독립을 둘러싸고 갈등을 겪은 부산일보나 소유권 논란이 제기된 영남대도 모두 정수장학회 문제다.

방송문화진흥회는 MBC의 대주주로서 경영진 선임권을 갖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 부터다. 경영진 선임의 힘을 가진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진의 임명권은 방송통신위원회에 있다. 방송통신위원회는 5명의 상임위원 중 위원장을 포함해 2명을 대통령이 임명한다. 여기에다 1명은 사실상 집권당이 추천함으로써 3명의 상임위원을 갖는 구조다. 결국 정권의 입김에 취약한 소유구조를 가지고 있는 셈이다.
낙하산 사장을 거부하고 있는 대구MBC는 전국에 있는 MBC의 18개 계열사 가운데 하나이다. 그런 대구MBC 지분의 51%는 서울MBC가 소유하고 있다. 이러니 낙하산 사장으로 온 서울MBC의 사장이 대구MBC에 낙하산 사장을 내려 앉히는 것이 어찌 보면 하등 이상할 게 없다. 물론 그들의 시각으로 보면 말이다. 대구MBC가 1963년 개국 이래 처음으로 뉴스 없는 방송을 하고 있는 것은 이를 반증한다.

방송민주화를 위한 현업 종사자들이 벌인 투쟁의 역사는 결코 짧지 않다. 더구나 연대의 모습도 곧잘 보여줬다. 1990년 KBS 노조가 공정방송 쟁취를 내세우며 사장 취임을 거부하자 공권력이 투입되었고 MBC, CBS가 공동투쟁으로 화답했다. 이처럼 방송의 공정성을 찾기 위한 구성원들의 투쟁이나 연대 노력은 쉼 없이 이어졌고 권력 감시자로서의 역할도 비켜가지 않았다. 

하지만 MB정권이 들어서면서 공정방송의 균형추는 급격히 무너졌고 MBC의 경우 2010년 김재철 사장이 취임한 이후 방송의 공정성과 관련해 비판이 더 거세졌다. MBC가 MB씨로 불린 것만 봐도 이를 짐작할 수 있다. 대표적인 비판 감시 프로그램이었던 PD수첩이나 시사매거진 2580 등의 존재가치를 생각해보면 확인되고도 남는다. 한편으로는 정권 초기부터 시작된 방송장악 시도에 뒤늦게 대응한데 따른 비판의 소리도 있다.

뉴스의 가치 중에는 근접성이라는 게 있다. 멀리 있는 이야기 보다는 내 가족, 내 이웃이 어떻게 하는지를 더 알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대구 뉴스가 여기에 해당한다. 이 같은 뉴스의 속성을 이야깃거리로 보면 선택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 뉴스 없는 방송뉴스를 만들어 알려야 하는 이유다. 여전히 파업 중인 KBS와 힘을 합쳐서라도 ‘대구 리셋뉴스’나 ‘대구 제대로 뉴스데스크’를 하라는 주문이 그래서 나온다.

‘한국 대구에 괴물이 출현해 대구MBC 뉴스를 납치한다. 포항을 거쳐 서울로 도주하던 괴물은 시민들과의 격투 끝에 물러나고 뉴스는 구출된다. 뉴스를 구출한 시민들이 뉴스를 돌려준다. 돌아온 뉴스는 대구를 구출하겠다고 나선다.’




[평화뉴스 미디어창 183]
박창원 / 언론학 박사, 계명대 강사 wonp2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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