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한 뉴스, 올림픽에 편승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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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사 해고, 공장 용역투입...언론의 '여론몰이' 함정


<한겨레> 2008년 8월 9일자 1면... 베이징올림픽 개막일, KBS이사회는 정연주 사장의 해임제청안을 통과시켰다.
<한겨레> 2008년 8월 9일자 1면... 베이징올림픽 개막일, KBS이사회는 정연주 사장의 해임제청안을 통과시켰다.

▶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개막일, KBS 정연주 사장 해임
2010년 벤쿠버 올림픽에서 김연아 선수가 금메달을 따던 날, 김재철 MBC사장 임명
2010년 남아공 월드컵 개막일에 MBC 이근행 PD(노조위원장)이 해고
2012년 런던 올림픽 개막일에 KBS 새노조 위원장 (김현석 기자) 및 무더기 징계 등등.

국제스포츠와 언론현안간의 관계만 정리해봤습니다.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절묘한 상황입니다.

언론이 과도한 지면과 방송시간을 할애해 시민들의 눈과 귀를 이들 국제경기로 ‘유혹’하는 동안, 권력층은 시민사회가 불편해 하는 정치이슈들을 ‘조용히’ 처리합니다. ‘대~한민국’을 외치는 국민들의 열기에 모든 현안이 묻힐 것이라는 판단 하에 은근슬쩍 ‘신속하게’ 처리한 각종 쟁점들.
언론분야로 압축해보면 2012년 방송사 3사(KBS, MBC, YTN)파업이라는 사태를 낳았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시민들이 안아야했습니다.      

정치권의 이런 ‘몰염치한 문화’를 기업도 배우고 있습니다.

런던올림픽 하루 전인 27일 새벽, 노사갈등을 빚고 있던 자동차부품업체 사측이 기습적으로 직장폐쇄를 단행하고, 경비용역 1500여명을 투입, 농성중이던 노조원을 폭력적으로 해산했었습니다.

SJM안산공장, 만도의 평택·문산·익산 공장의 경우 각각 부분파업 중이거나, 전면 파업에 돌입한지 단 하루밖에 되지 않았던, 더군다나 휴가가 끝나면 정상업무 복귀를 약속한 사업장에 사측이 직장폐쇄 조치를 내리는 일은 흔하지 않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인데요.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전국에서 모인 1500여명의 용역업체들이 두 업체 파업현장서 보인 폭력행태였습니다. 용역업체 직원들은 노조원을 해산하는 과정에서 자동차 부품을 던지고 곤봉을 휘둘렀습니다. 이로 인해 조합원 30여명의 머리가 찢어지고 골절상을 입는 등 부상으로 인해 치료를 받고 있는 상황입니다.

사측에서 하필이면 올림픽을 앞두고 무리수를 둬서 ‘직장폐쇄’, ‘경비용역투입’을 요청한 이유가 뭘까요?

<경향신문> 2012년 7월 27일자 8면(종합)
<경향신문> 2012년 7월 27일자 8면(종합)

해당 용역업체도 이런 분위기에 편승(?)

용역업체가 현행 법제도를 어기고, 경찰과 약속도 지키지 않았습니다.
지난 29일 경기 안산단원경찰서는 SJM공장파업 현장에 들이닥쳐 직원과 노조원을 폭행한 혐의로 용역업체 컨택스터의 회장 정모씨와 대표 구모씨 등을 소환조사했습니다.

쟁점은 두가지입니다. 첫 번째는 용역업체 직원들의 ‘폭력 진압’이 정당했는가?, 두 번째는 ‘경찰에 신고한 인력배치시간 보다 2시간 앞서 공장을 급습한 이유?’입니다.

현행 경비업법 15조 2항(경비원 등의 업무)조항에 따르면 “경비원은 직무를 수행함에 있어 타인에게 위력을 과시하거나 물리력을 행사하는 등 경비업무의 범위를 벗어난 행위를 하면 안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경찰의 수사방향은 “경비용역업체 직원들에게 폭행을 사주한 인사가 누구인가?”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또한 경찰이 제시한 자료에 따르면 “이 용역업체는 당초 경찰이 신고한 인력 배치시간 보다 2시간 앞서 공장을 덮쳤다”고 합니다. 용역업체 측은 27일 오전 6시에 경비용역을 공장에 배치하겠다고 경찰에 신고했으나 실제로는 새벽 4시에 공장을 급습했다는 것입니다. 경찰 측 주장에 따르면 “신고 시간 보다 훨씬 빨리 공장에 들이닥친 것은 경찰을 속이려는 의도가 있었던 것 아닌가”라는 점입니다.

몇몇 인터넷 언론과 진보매체 등에서 취재한 내용을 요약해봤습니다.

2002년 한일월드컵부터 국제스포츠에 대한 언론의 과도한 집착, 시민들의 편승, 정치 주요 현안 ‘구렁이 담넘어 가듯 은근 슬쩍 처리’라는 문화가 2006년 월드컵, 2008년 올림픽을 거치면서 더욱더 기승을 부리고 있습니다. 급기야 국제스포츠 시기를 ‘불편한 정치현안을 손쉽게 해결하는 지름길’로 삼겠다는 정치권의 ‘꼼수 문화’가 사측, 경비업체 등 힘 좀 써야 하는 영역으로 꾸준히 확산되고 있는 형국입니다.

'정희준 칼럼'ㆍ'정연주 칼럼', 꼭 권합니다.


지난 17일 정희준 동아대 교수의 <올림픽과 닭, 그리고 ‘멘붕’ 언론>과 , 30일 정연주 칼럼 <올림픽 열기와 방송장악>을 꼭 읽어보셨으면 합니다.

정희준 교수는 “한국인들이 올림픽이나 월드컵 때만 되면 평소에 안하던 (TV판매 10% 증가, 폭음과 폭식하는 나라) 행동을 하도록 유도한 배후에는 ‘올림픽과 월드컵 때가 되면 이성이 집을 나가버리는 언론’에 있다”며 지난 몇 년간 국제스포츠와 관련된 언론의 보도행태를 꼼꼼하게 분석하고 있습니다.

<경향신문> 2012년 7월 17일자 30면(오피니언)
<경향신문> 2012년 7월 17일자 30면(오피니언)

“2002년부터 중복편성, 동시중계가 고착화되더니 2006 월드컵 때 지상파 방송사들은 하루 최고 21시간의 축구 싹쓸이 편성을 감행했고 2008 올림픽 때도 (청와대의 ‘분위기 띄우라’는 명령 때문인지) 메인뉴스의 반 이상을 올림픽으로 채워버렸다. 2009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야구 때는 주최국인 미국도 관심이 없는 대회를 가지고 연일 ‘세계가 경악했다’는 기사를 ‘써 대더니’ 2010년 지상파 3사는 아예 김연아 헌정방송이 돼버렸고, 몇 달 후엔 아시안게임 소식까지 연일 메인뉴스 헤드라인에 편성했다. 그래도 신문은 조금 낫다고? 천만에. 올림픽 때면 각 신문사 홈페이지는 ‘올림픽 특별판’으로 바뀌고 우리는 그 수많은 올림픽 기사와 그 밑에 굴비처럼 엮여 내려가는 딸림 기사들을 피해갈 수 없다.”

한편 30일 정연주 전 KBS사장은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당시 KBS사장 해임당했던 자신의 경험을 통해 “정치권의 야만적 형태”를 상세하게 쓰고 있는데요.

<한겨레> 2012년 7월 30일자 26면(오피니언)
<한겨레> 2012년 7월 30일자 26면(오피니언)

"베이징올림픽 개막 열기로 들떠 있던 그날 ‘거대한 작전’은 마지막 단계에 접어들고 있었다. 이날 아침 <한국방송>은 수천명의 경찰과 100여대에 이르는 경찰버스에 완전 포위됐다. 오전 10시를 조금 넘어 본관 건물로 난입한 무술경찰 300여명의 폭력적 비호 아래 열린 한국방송 이사회에서 한나라당 추천 이사 6명(유재천·권혁부·박만·방석호·이춘호·강성철)은 나의 해임 제청을 결의했다”며 “사흘 뒤인 8월11일, 베이징올림픽 개막식에 참석하고 돌아온 이명박 대통령이 ‘해임 제청’에 서명함으로써 나는 한국방송에서 축출되었다"고 제시하고 있습니다.

또한 "한국방송 사장직에서 해임된 뒤 집으로 돌아가자, 검찰은 바로 나를 체포하러 왔다. 나의 해임에 핵심 요인이 된 ‘배임 혐의’를 뒤집어씌우기 위해서였다. 2박3일 동안 검찰청에 갇혀 조사를 받았다. 그리고 기소되어 3년 반 동안 재판을 받았으며, 지난 1월 대법원에서 최종으로 무죄 확정판결을 받았다"고 밝히고, 그런데 당시 정 전 사장을 기소한 기소한 정치검찰들은 지금도 핵심 요직에 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4년이 지난 지금에도 런던올림픽 열기가 달아오르는 시점에 방송장악과 관련된 사건(KBS대량 해고, 김재철 MBC사장은 신임한 방문진 이사진 일부가 재신임, PD수첩 작가들 한꺼번에 해고 등)들이 줄줄이 터져나오지만, 대부분 올림픽 뉴스에 묻히고 있는 시점입니다.

언론이 만든 '여론몰이' 함정, 조금은 냉철하게 대응하자!


도덕교과서 같은 이야기지만, 어쨌든 문제 해결의 키는 ‘깨어있는 개념시민’들의 몫입니다. 지난 10여년 동안 정치권에서 국제스포츠경기를 자신의 잇속을 챙기는데 적절하게 활용해왔고, 시민들의 경우 ‘애국주의와 민족주의’라는 화두로 그 흐름에 편승해온 것은 사실입니다. 또한 정치권이 만들었던 ‘파렴치한 문화’가 확산되는 것이 현실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그대로 방관하시겠습니까?, ‘나 하나쯤’이라는 생각보다는 ‘나라도 먼저’라는 마음으로, 우리 사회 주요한, 신문과 방송 1면을 장식했던 각종 정치 현안의 흐름이 어떻게 되고 있는지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았으면 합니다.

언론뿐만 아니라 정치권이 가장 무서워하는 것은 ‘깨어있는 시민들의 민심’이기 때문입니다.






[평화뉴스 미디어창 194]
허미옥 / 참언론대구시민연대 사무국장 pressange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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