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파업을 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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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MBC 파업> 도건협 / "자리 보전에 급급한 낙하산 사장의 폐해"


대구MBC 사옥 외벽에 “언론장악 저지”와 “낙하산 사장 반대”를 외치는 대형 현수막이 걸렸습니다. 로비와 복도에는 층층마다 김재철 사장의 퇴진과 차경호 대구MBC 사장 내정자의 사퇴를 요구하는 포스터와 전단지가 붙었습니다. 뉴스를 비롯한 대부분의 정규 프로그램이 중단됐고, 15명의 국·부장 간부사원들이 보직을 총사퇴하고 낙하산 사장 반대와 출근 저지 투쟁에 나섰습니다. 내년으로 창사 50주년을 맞는 대구MBC 역사상 초유의 일입니다. 공정방송 회복과 김재철 사장 퇴진을 내걸고 지난 3월 12일부터 50여 일 파업이 진행됐지만 시민들은 이제야 파업을 하고 있는 것을 알기 시작했습니다. 지금 대구MBC에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요?

대구MBC 사옥에 걸려있는 "낙하산 사장 반대, 언론장악 저지" 현수막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대구MBC 사옥에 걸려있는 "낙하산 사장 반대, 언론장악 저지" 현수막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4·19혁명 기념일인 지난 19일 MBC 김재철 사장이 차경호 전 기획조정본부장을 대구MBC 사장으로 내정하는 것을 포함해 6개 지역MBC 사장 선임안을 기습적으로 발표했습니다. 임기가 채 끝나지 않은 대구MBC 사장을 자신의 심복으로 교체하겠다는 것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50여 년 전 독재 타도를 외치며 시민들이 거리로 나섰던 바로 그 날에 이명박 대통령이 내려보낸 청와대 낙하산 김재철 사장이 또 다른 낙하산을 대구로 보내겠다고 도발하고 나선 겁니다.

우리는 김재철 사장이 지난 2년간의 재임 기간 동안 어떤 일을 저질러 왔는지 너무도 잘 알고 있습니다. 권력을 비판하는 기사는 뉴스에서 찾아볼 수 없게 됐고, 간판 시사 프로그램은 줄줄이 폐지됐습니다. 기개 있는 기자와 PD는 제작 현장에서 배제됐습니다. 노동조합을 중심으로 저항하는 내부 구성원들에게는 중징계로 답했습니다. 6명의 기자와 PD, 엔지니어 조합원들이 해고됐고 정직과 감봉 등 중징계를 받았거나 예정된 사람이 MBC 본사와 18개 계열사에서 100여 명에 이릅니다. 3개 지상파 방송사 중에 그나마 공정하다고 평가를 받던 MBC의 이미지는 땅에 떨어졌고, 조직은 풍비박산이 났습니다.

차경호 내정자는 바로 그 김재철 사장 밑에서 부사장에 이어 '넘버3'인 기획조정본부장을 맡고 있던 인물입니다. 우리는 그가 뉴스 파행을 막기 위해 앞장섰다거나 기자, PD의 징계에 항의했다는 이야기를 듣지 못했습니다. 불의 앞에서 침묵은 곧 묵인이요, 동조하는 것입니다. 그가 MBC뉴스의 연성화와 친정부 기사 양산의 주범이라는 얘기도 들립니다. 연말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김재철 사장이 심복을 대구로 보내 지역MBC까지 장악하려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여권에 도움이 될 인사를 사장으로 보내 정권을 재창출하는 데 앞장서겠다는 속셈일까요?

대구MBC 노조와 대구지역 시민단체가 집회를 열고 "차경호 사퇴", "김재철 퇴진"을 요구하고 있다(2012.4.26.대구MBC 시네마M 광장)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대구MBC 노조와 대구지역 시민단체가 집회를 열고 "차경호 사퇴", "김재철 퇴진"을 요구하고 있다(2012.4.26.대구MBC 시네마M 광장)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우리는 서울에서 내려보낸 낙하산 사장의 폐해를 숱하게 지켜봤습니다. 지역의 미래에 무관심하고, 오직 인사권자와 정권의 눈치만 보면서 자리 보전에 급급했던 낙하산 사장이 창사 50주년을 앞둔 지역 공영방송 대구MBC의 미래를 책임질 수 없다는 것을 몸으로 체험해 왔습니다. 90년 대 중반부터 계속된 낙하산 사장 반대 투쟁의 결과물로 대구MBC는 지난 2008년부터 두 차례 자체 사장을 배출했습니다. 이제 겨우 싹을 틔우기 시작한 자율 경영의 전통을 무참히 짓밟으려는 횡포를 지켜보고 있을 수는 없습니다. 지역 공영방송의 또 다른 존재가치인 지역성을 지키기 위해서도 지역 사정을 잘 알고 지역에 애정을 가진 사장을 배출하는 것은 시대적 요구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차경호 내정자를 우리의 사장으로 인정할 수 없는 이유입니다.

정치권에도 하고 싶은 말이 참 많습니다. 지금 MBC와 KBS, YTN 등 3개 방송사와 연합뉴스, 국민일보 등 5개 언론사가 이명박 대통령의 언론 장악에 맞서 사상 초유의 동시 파업을 벌이고 있습니다. 책임 당사자인 대통령이 방관하고 있고, 여당인 새누리당이 국회에서 제1당의 지위를 차지한 상황에서 사태 해결의 열쇠는 여권의 차기 대통령 선거 유력 후보인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이 쥐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석 달째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강변하고 있는 것처럼 회사 내부 문제일 뿐이라고 생각하는 것일까요? 아니면 그 자신이 입버릇처럼 말하는 민생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일까요? 주요 언론이 정권에 장악된 이 상황이 자신에게 불리할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일까요? 만약에 그렇다면 그는 지도자로서 자격이 없습니다. 보수와 진보를 떠나 공정한 언론, 권력과 자본에서 독립된 언론은 그 자체로서 민주주의의 기본 가치이자 전제조건이기 때문입니다.






[기고]
도건협 / 대구MBC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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