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 살아가는 현장에서 시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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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종화 칼럼] "나의 이야기, 나의 동네에서 대안을 찾아야 한다"


 생각이 많은 시기이다. 이긴 자도 잘 하기 위해서 생각이 많을 것이고 진 자들은 왜 졌는가를 두고, 어떻게 타계할 것인가를 두고 생각이 많을 것이다. 이 글 또한 그 많은 생각들 중 하나의 생각이다. 그렇지만 여러번 선거를 전후하여 주체적 입장에서의 성찰이든 남의 일 다루듯 한 관전평이든 어떤 형태로든 생각을 정리해왔지만 이번만큼은 그저 조용히 지나가고 싶었다. 딱히 할 말이 없는 것도 이유이겠지만 한번 말을 시작하면 내가 책임지지 못할 말들 혹은 나를 제외한 남들에 대한 비판이 주를 이룰 것 같아서였다. 가장 나쁜 모습을 내가 보일 수 있기 때문에.

 또 하나, 모두가 알고 있듯이 몇 십년간 특별히 다른 결과를 보여준 적이 없는 대구에서 항상 괴로운 듯, 절망하는 듯, 그래도 희망이 있다는 자조적인 생각들을 또다시 한다는 것 자체가 괴로운 일이기에 하기 싫었다. 그렇지만 피한다고 될 일이 아니지 않은가. 많은 말들 속에 몇마디 보태어 본다.

 생활과 정치의 분리에서 오는 현실 설득력의 한계를 지적해야하지 않겠는가. 욕망을 선택했다는 분석이 있던데 언뜻 보아도 설득력이 약하다. 오히려 욕망이라는 표현보다는 살아가는 것 자체를 선택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본다. 즉 살아가는 현장에서 정치를 바라보고 정치를 선택하였는데, 그와 반대로 우리는 정치의 영역에서 생활(살아가는 현장)을 바라보고 주장했다는 것이다.

 이는 우선 어렵다. 항상 가치를 먼저 보고 미래를 선택해야하기 때문에 규범적이고 규율적이다. 이러한 규범적 상황을 이미 받아들인 사람들, 동의하는 사람들에게는 매우 절대적인 가치가 부여되고 이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하게 된다. 이 규범적 상황으로 정치를 바라보지 않은 사람들은 조용하다. 조용히 단결하고 결의하게 되는데, 이들이 실천하는 공간이 생활의 영역이다. 결국 누군가는 생활의 세계에서 나아가서 아렌트나 하버마스의 공론의 장에서 정치를 조직하고 동의자를 확보하고 있었다면 누군가는 정치의 영역에서 이미 동의하는 자들을 끊임없이 모으고 결속하므로써 자기 만족적 승리에 도취되는 것이다. 끓어오르는 분출의 시기가 아닌 룰로서 미래를 결정하는 시기에 어느 방향이 우세할까.

 남의 이야기는 한 것 같은데 나의 이야기를 했던가 생각해보자. 진보진영으로서의 필요는 얘기했지만 현시대를 살아가는 시장에 종속되어있고 국가로부터 대우받지 못하는 한 시민의 입장에서 나의 이야기, 나의 필요를 주장했던가가 대안을 찾아가는 출발점이라고 본다. 성찰의 출발점이기도 하고.

 매우 구체적이고 사람들이 힘들어하는 그 지점에서 대안을 찾아야하고 노력해야 한다. 그렇지만 힘들어하는 당사자는 남이라며 거리를 두면 안된다. 힘들어하는 당사자는 바로 나이기에 ‘나’에서부터 대안을 찾아야 한다. 무엇을 힘들어하고 있는가? 무엇이 필요한가? 육아? 고용? 주택? 의료? 부양? 노후? 외로움? 안전? 급여? 그것이 무엇이든 여기서 출발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 측면에서 협동조합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협동조합의 선진국이나 성공한 사례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지금 이 시점에서 협동조합을 거론하는 것은 비단 협동조합 기본법이 시행되는 것도 있지만 앞에서 주장한 것처럼 생활의 영역에서 생활속에서 ‘하고싶은 것’과 ‘필요로하는 것’을 만들고 해결하는 ‘생활’이 거의 유일한 대안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노동운동, 시민운동, 주민운동 등 지역의 많은 운동들이, 운동가들의 피땀의 노력이 있다. 그 노력이 결실을 보려면 생활세계와 결합해야 한다. 칼 폴라니의 ‘경제가 사회에 다시 묻어들어가는 것’이기도 하다. 이를 표현해주는 방식으로서의 협동조합이 있다. 동네에서, 마을에서, 삶의 현장에서, 살아가면서 내가 필요로 하는 것을 시장에 종속되지 않고 ‘발언’할 수 있는 힘이 나온다. 정치를 변화시킬 힘이 나온다고 본다. 생활의 탈환! 말이 되는지?

 옥상옥을 나쁘다고 하는데, 지금 우리에게 필요로 하는 것은 옥상옥이다. 노동조합운동, 노동단체운동, 시민운동, 주민운동 그리고 다양한 공익활동들이 지나치리만큼 자주 만나곤 한다. 그러나 그 만남이 동네에서 이루어지지 않는다. 동네에서의 교류, 몇 년전 이러한 주장을 한 분들이 있었다. 모든 단체의 회원을 ‘동네’에서 오픈하자고. 잘 되지 않았는데, 지금 필요하다. 낮에는 노동운동, 시민운동, 주민운동을 하고 저녁에서 동네에서 생활운동 즉 협동조합 운동을 하면 어떻까. 이 협동조합의 연대조직을 만들어서 개별 협동조합의 공간을 넓혀주고. 그야말로 날줄과 씨줄로 지역을 엮어보는 상상. 불가능할 수도 있는 기획이 지금 필요하다고 본다. 로컬푸드협동조합을 통해서 육아협동조합에 출연하고, 옆에서는 방과후협동조합이 만들어지고, 동네 청년들이 협동조합으로 창업하고 이를 동네협동조합연합회가 그 상품을 구매해서 시장진입을 원활하게 하고... 동네 점포사장님들이 협동조합을 만들고 마을도서관을 후원하고...

 종합적이고 중층적이며 유동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본다. 산개하는 개별적 존재들의 목소리가 아니라 지역사회 변화를 추구하는 다양한 집단들이 참여할 수 있는 구조라는 측면에서 종합적이고 하나의 개념만으로 해석되는 것이 아니라 정치적 층위와 생활의 층위를 동시에 바라본다는 의미에서 중층적이고, 필요에 따른 선택을 할 수 있다는 의미에서 유동적이어야 한다고 본다. 생활에서 변화가 시작된다. 2013년, 나의 다짐이기도 하다.






[윤종화 칼럼 14]
윤종화 / 대구시민센터 상임이사.  yoonjj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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