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구에 안심이라는 동네가 있다. 安心, 뜻이 참 좋다. 굳이 이름의 유래를 찾지 않더라도 사람들이 마음을 놓고 편안해 한다면 그 보다 좋을 게 있겠나. 이 곳에서 새로운 실험이 진행되고 있다. 몇 년전에 장애아동과 비장애아동을 통합적으로 보육하는 어린이집이 들어섰다. 대구지역에서 오랜기간 장애운동을 한 흐름이 통합어린이집으로 구체화된 것이다. 그 가까운 곳에서 한 시민단체가 주민운동조직을 만들었다. 이들은 밤마다 모여서 동네 이야기, 아이들 키우는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주민들의 힘으로 마을도서관을 만들었다. 마을기업을 만들었다. 발달장애 청년 20여명이 함께하는 까페를 만들었다. 로컬푸드를 실천하고 안전한 먹거리를 제공하는 마을협동조합을 만들었다. 지금도 그들은 뭔가를 만들고 있다. 방과후마을학교를 협동조합 방식으로 만드는 이야기로 더위를 이기도 있다고 한다.
그들은 무엇을 꿈꾸고 있는가? 꿈을 꾸는 것이 아니라면 무엇을 하고 있는가? 한마디로 ‘필요’를 스스로 공급하는 활동을 하고 있는 것이다. 아이들을 위해 도서관이 필요하기에 엄마, 아빠들이 힘을 합치고 십시일반하여 도서관을 만든다. 누구든지 안전하고 좋은 먹거리를 먹을 권리가 있다. 이를 위해 소비자협동조합을 만든다. 방과후 아이들이 놀 곳이 없고 갈 곳이 없다. 그래? 그렇다면 방과후마을학교를 엄마들이 만든다. 이것이다. ‘필요’를 ‘함께’ 공급하고 사용하는 것, 바로 협동조합이다.
협동조합이 대유행하고 있다. 올해가 유엔이 정한 협동조합의 해라는 것 쯤은 누구나 들었을 것. 올해 12월부터 협동조합기본법이 시행된다는 것도 들었을 것. 이제 누구든지 5명만 모이면 우리가 살아가면서 필요한 것의 많은 부분을 협동조합을 통해서 해결할 수 있게 되었다. 공동주택, 먹거리, 보육, 육아, 에너지, 통신, 일자리, 노인, 사회복지 등 분야에서 협동조합을 만들어서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을 해결할 수 있다. 대리운전 노동자들이 협동조합을 만들어서 수수료를 떼이지 않고 노력한 만큼 벌 수 있다. 택배노동자도. 동네 자영업자들이 협동조합을 만들어서 공동의 시장을 확보하고 서로 협력하여 공생할 수 있다. 디자인에 재능이 있는 미취업 청년들이 모여서 디자인회사를 협동조합으로 만들어서 스스로 고용하여 기업을 운영할 수 있다. 대안적 교육을 고민하는 엄마들이 모여서 대안학교협동조합을 만들 수 있다. 이제 시장과 국가만이 주민들의 ‘필요’를 공급하거나 매개하는 주체가 아니라 주민 스스로 그들의 필요를 제공하고 공급하는 주체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협동조합은 우리에게 두가지 차원에서 왜곡되어 있다. 압축적 근대화, 산업화, 도시화의 결과로 파괴된 것들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바로 근린(이웃, 관계, 공동체, 마을)의 파괴이다. 공동의 노력으로 해결해 왔던 필요들을 더 이상 공동체가 담당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른 것이다. 개별화, 분절화된 상태로 우리는 수십년을 살아왔다. 그렇기 때문에 협동조합을 이야기 한다는 것은, 협동조합을 만든다는 것은 근린 혹은 관계에 대한 복원을 의미한다. 동네다음으로, 유사협동조합 혹은 변형된 협동조합에 대한 경험이 전부는 아니다는 깨달음이 있어야 한다.
우리에게 협동조합은 사실 새로운 것이 아니다. 일제시대, 해방 전후, 6,70년대와 그 이후 역사적으로 보면 협동조합을 설립하고 협동조합을 통해서 새로운 사회를 꿈꾸는 운동은 계속해서 있어왔다. 수십년동안 활동하고 있는 협동조합도 있다. 한 도시 인구의 10%가 여러 협동조합에 가입할 만큼 협동조합이 활발한 도시도 있다. 또 우리에게는 공동경제의 오래된 경험도 있다. 契가 그것이다. 계는 전 세계 어디에도 없는 특수한 공동경제시스템으로 협동조합의 또다른 모습이다.
그렇지만 두가지 관점은 경계해야 한다. 협동조합에 대한 지나친 기대는 버려야 한다. 협동조합을 만든다고 해서 하루아침에 추구하는 과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수십년간 ‘돈’으로 모든 필요와 요구를 해결해 온 경험은 우리가 협동적으로 사는 것을 매우 어렵게 할 것이다. 협동하지 않고 돈으로 개인적으로 해결하는 것이 얼마나 편한가! 협동적으로 살기 위한 끊임없는 교육과 훈련이 필요하다. 또하나, 협동조합에 대한 지나친 두려움도 경계해야 한다. 한국의 원주, 홍성, 스페인의 몬드라곤, 이탈리아야 볼로냐의 협동조합은 누군가 시작하고 시도했기 때문에 오늘이 있는 것이다. 정말로 협동조합은 시작이 반이다.
며칠전에 김범일 시장과 시민단체 책임자들간의 간담회가 있었다. 그 자리에서 협동조합에 대해 대구시의 역할에 대해 제안을 했다. 대구시가 나서서 주민들이 협동조합을 많이 만들도록 노력해달라? 아니다. 협동조합은 정부에서 가만히 놓아두어야 잘 되는 영역이다. 지방정부에서는 협동조합이 활성화되도록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또 끊임없이 ‘큰 것 한방’으로 지역경제를 활성화시키겠다는 정책에서 공동체에 기반한 경제를 활성화시키는 정책을 수립하는 방향으로 접근해야 한다.
올해 상반기에 협동조합학교를 개설하여 두달간 수십명이 각자의 협동조합을 만드는 꿈을 꾸었다. 행복한 상상을 했다. 협동조합을 만들고자 하는 사람, 협동조합을 알고자 하는 사람들과 만나고 싶다. 그들과 행복한 상상을 하고 싶다.
[윤종화 칼럼 12]
윤종화 / 대구시민센터 상임이사. yoonjj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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