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사능 오염과 헌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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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홍철 칼럼] 국민들의 불안 ‘괴담’으로 치부하는 정부, 헌법 유린에 다름 아니다


짓밟힌 헌법

국정원 선거개입을 규탄하는 시민들의 목소리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국가 정보기관의 정치개입은 어떠한 이유로도 용납될 수 없는 폭거이다. 그것은 민주주의를 파괴할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 헌정(헌법에 따라 행하는 정치) 질서를 짓밟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국민들의 규탄의 소리는 주권자로서 너무나도 정당한 목소리이다. 어떠한 이유로도 헌법과 그에 바탕을 둔 정치질서가 유린되어서는 안 된다.

그런데 헌법과 헌정질서에 대한 유린은 비단 국정원 선거개입 문제에서만 일어난 것이 아니다. 대한민국 헌법에 비추어 볼 때, 지금 온 나라 구석구석에서 국가권력과 자본이 저지르는 헌법 유린은 그 도를 지나치고 있다.

우리 헌법의 전문에는 “정치·경제·사회·문화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각인의 기회를 균등히” 할 것을 밝히고 있다. 또 “국민생활의 균등한 향상을” 기하도록 하고 있다. 단 한 문장으로 된 헌법 전문에 ‘균등’이라는 말이 두 번씩이나 등장할 만큼, 이 가치는 우리 헌법이 처음 제정될 때부터 강조해온 가치이다.

또 우리 헌법은 전문에서 “우리들과 우리들의 자손의 안전과 자유와 행복을 영원히 확보할 것을 다짐”하고, 제10조에서는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고 밝히고 있다. 그런데 현실은 어떠한가.

핵발전소와 송전탑, 댐 공사에 맞서 싸우는 농민들, 불안정한 노동의 현장에서 하루하루 생존의 낭떠러지를 경험해야만 하는 노동자들, 경쟁과 폭력이 지배하는 학교에서 ‘1등’의 들러리 서기에 지쳐버린 청소년들, 세계 최장시간 노동, 자살률 1위, 저출산율 1위의 사회에서 희망의 근거를 상실해 버린 모든 사람들이 지금 외치고 있다. “이 나라는 도대체 누구를 위한 나라인가!” 헌법이 잘 지켜지고, 그에 따른 헌정질서가 바로 서 있다면 어떻게 이런 분노에 찬 질문이 나올 수 있겠나.

방사능 오염, 남의 일 아니다

앞에서도 인용했지만 대한민국 헌법은 “우리들과 우리들의 자손의 안전과 자유와 행복을 영원히 확보할 것을 다짐”하고 있다. 이 ‘다짐’의 주체는 당연히 온 국민(즉 ‘공화적 시민공동체’)이다. 그리고 온 국민은 이러한 ‘다짐’의 실현을 국가권력(정부)에 위임해 놓았다.   

그런데 최근,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갈수록 확산되고 있는 방사능 오염에 대한 국민들의 불안, 즉 “우리들과 우리들의 자손의 안전과 자유와 행복”과 관련된 국민들의 심각한 우려에 대해 정부는 참으로 안이하고 무책임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특히 정홍원 국무총리는 지난 2일 “악의적으로 괴담을 조작, 유포하는 행위를 추적해 처벌함으로써 (괴담이) 근절되도록 해달라”고 요구했다. 이것은 국정을 책임지고 있는 국무총리로서 자신의 무지를 드러낸 것일 뿐만 아니라, 헌법의 ‘다짐’을 철저히 짓밟고 있는 것에 다름 아니다.

정 총리의 말과는 달리, 일본의 방사능 오염 사태와 그것이 우리 국민들에게 미치고 있는 영향은 결코 ‘괴담’이 아니다. 후쿠시마 원전 사태가 발생한 지 2년 4개월이 지났지만, 사태는 조금도 수습되지 않고 있다. 특히 며칠 전, 후쿠시마 원전 3호기에서 일반인 연간 피폭 허용량의 2천배가 되는 초고농도 방사능 수증기가 분출되고 방사능 오염 폐수가 지하수를 통해 바다로 흘러들어간 것이 확인되었다.

<한겨레> 2013년 8월 2일자 2면(종합)
<한겨레> 2013년 8월 2일자 2면(종합)

지난 7월 23일과 24일, 도쿄전력은 지하수를 통해 방사능 오염수가 바다로 유출되었으며 3호기 원전에서 시간당 2,170밀리시버트의 방사능 수증기가 분출되었다고 인정했다. 다나카 슌이치 원자력규제위원회 위원장까지도 방사능 오염수 배출을 인정함으로써, 후쿠시마 해역의 방사능 오염 사태는 갈수록 심각해질 수밖에 없는 상황임이 확인되고 있다. 

일본정부가 이렇게 방사능 오염사태를 방치하는 가운데 그동안 후쿠시마 앞바다는 물론 일본 근해에서 방사능 덩어리 물고기들이 잡혔다. 플루토늄에 오염된 생선이 잡히기도 했다. 우리나라에 수입된 수산물에서도 2011년에 비해 2012년도에 방사성 물질의 검출 빈도와 농도가 급격하게 높아졌다. 특히 우리 국민이 즐겨먹는 대구, 명태, 고등어 등에서 지속적으로 방사능 물질이 검출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정부는 정보공개조차 제대로 하지 않는 일본정부의 판단에 의존하여 후쿠시마 사고 이전과 똑같이 수산물을 수입하고 있다.

7월 31일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일본 방사능 오염 수산물’ 관련 루머에 대한 설명>이란 제목의 보도자료를 발표했다. 식약처는 발표를 통해 후쿠시마현 등 8개현의 49개 품목에 대해 수입금지 조치를 취하고 있다고 밝혔지만, 이는 일본정부가 자체적으로 출하 금지한 것이지 우리 정부가 먼저 수입금지한 것이 아니다. 일본 13개현에서 들여오는 식품에 대해 검사성적서 제출을 의무화하고 있다고 하지만, 이것 역시 일본 검사기관의 판단을 따르는 것이다.

<조선일보> 2013년 7월 31일자 3면(종합)
<조선일보> 2013년 7월 31일자 3면(종합)

도쿄전력이 그동안 방출한 방사능 오염수에는 스트론튬이 대량으로 포함되었고, 후쿠시마 인근 바다에서 잡힌 생선에서 플루토늄이 검출되기도 했지만, 우리나라는 세슘과 요오드만 검사하고 있다. 그런데, 식약처는 플루토늄과 스트론튬을 검사 항목에 넣어서 검역할 조치는 취하지 않고, 오히려 일본에 ‘비오염 증명서’를 요구해서 원천적인 방사능 오염을 막겠다는 어처구니없는 대책을 내놓았다. 방사능 오염상황과 관련하여 일본정부와 산하기관들이 밝히는 정보는 일본 국민들도 불신하고 있는 마당에, 수입국인 한국정부가 일본기관이 첨부한 증명서를 전적으로 신뢰하겠다는 것이다.

식약처는 기준치 이하의 미량이라도 방사능이 검출된 수산물에 대해서는 홈페이지를 통해서 공개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주간 단위로 공개하는 일본산 수산물과 수입식품에 대한 방사능 검사 현황에서는 ‘적합’ 여부만 공개하고 있으며 구체적인 수치는 밝히고 있지 않다. 그러면서 식약처는 일본산 식품이 기준치 이내로 안전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정부 발표에 따르더라도 2011년 6월과 7월 사이에 냉장대구에서 40~98베크렐에 이르는 세슘이 검출되었지만 ‘기준치 이하’라고 하여 그대로 시판되었다. 지난해에도 대구에서 20베크렐이 넘는 세슘이 검출되었지만 ‘적합’ 판정을 받아 그대로 우리 밥상에 올라왔다.

정부는 일본산 수산물 수입을 중단해야 한다

쏟아지는 일본산 수산물 속에서 우리는 거의 매일 생선을 섭취하고 있다. 수산물에 농축된 방사능 물질은 미량이라 할지라도 지속적으로 섭취하게 되면 인체에 악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똑같은 양의 방사능 물질을 섭취할 때, 단 한 번에 먹는 것보다 매일 미량으로 나눠서 지속적으로 섭취하는 것이 더 위험하다는 연구결과도 나와 있다. 특히 성장기의 아이들에게 음식을 통한 방사능 피폭은 더 치명적이다.

방사능 기준치는 상업적 관리 기준이지 의학적으로 안전한 기준이 아니다. 적은 양이면 적은 확률로, 많은 양이면 많은 확률로 암 발생을 일으키는 것이 방사능 물질이다. 방사능의 위험성을 알고 있는 시민들이 일본 방사능 오염수 누출 사태를 보면서 불안감을 갖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정부는 국민들의 걱정을 ‘괴담’으로 치부하며 ‘안전하니 안심하라’고 주장하고 있다. 방사능으로부터 건강을 지키기 위한 국민들의 걱정을 ‘괴담’과 ‘루머’로 취급하는 정부의 자세야말로 불신과 혼란을 부추기는 원인이다.

정부가 할 일은 일본산 수산물이 안전하다며 일본을 대신해 홍보할 일이 아니라, 국민건강을 최우선에 두는 정책을 실행하는 일이다. 후쿠시마 원전 방사능 오염수 유출 사태가 통제 불능 상태인 것이 확인된 이상, 정부는 지금이라도 일본산 수산물의 수입을 중단해야 한다.

이러한 책임과 의무를 성실히 이행하지 않는 것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해야 할 국가(정부)의 역할을 포기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정보기관이 대통령 선거에 개입하는 것만큼이나, 아니 근본적으로는 그러한 범죄행위보다도 더욱 심각하게 헌법을 무시하고 국민의 권리를 짓밟는 것이다. 스스로 헌법을 유린하고 국민을 무시하는 정부를 국민들이 용납해서는 안 된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우리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우리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변홍철 칼럼 23]
변홍철 / <하이하버연구소> 소장,  전 《녹색평론》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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