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시대의 '진보'는 과연 온전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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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성 칼럼] "공공의 삶의 질을 개선하는 담론으로"


국정원이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과 그 주변 세력을 ‘내란예비음모죄’로 몰아 공안정국을 형성하였다. 진보 세력에 대한 마녀 사냥이 시작된 셈이다. 언론과 종편의 몰이식 홍보전은 국민들의 눈과 귀를 꽁꽁 묶는데 동원되었다. 이건 마치 방귀 뀐 놈이 화내는 격이다. 적반하장이다. 촛불이 흔들린다. 들불처럼 타오르던 촛불이 주춤거린다. 국정원 부정선거를 규탄하는 촛불정국에서 진보 세력 탄압을 위한 공안정국으로 국면이 전환되면서 촛불 내부에서는 내부적 분열 조짐까지 보인다. 한 쪽에서는 서로 설전이 오가고, 다른 쪽에서는 음흉한 미소를 짓는다.

우리사회에서 진보라고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단어는 ‘빨갱이’이다. 오랜 역사를 가진 말이다. 일제강점기 일본이 항일 독립군에게 주홍글씨처럼 못 박았던 말이었고, 일제 강점기를 거쳐 살아남은 친일 부역세력이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전가의 보도처럼 그때그때 끄집어든 카드가 빨갱이였다. 직접 경험하지 않은 사람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무시무시한 폭력을 내재한 단어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특정 개인이나 조직에게는 가장 큰 두려움과 공포의 대상이다. 빨갱이는 언제부턴가 ‘종북’으로 그 개념의 외연이 크게 확대되어 사용되고 있다. 그렇다면 ‘진보=빨갱이=종북’이라는 이 비정상적 정상성의 도식은 어떻게 가능한 것일까.

해서 필자는 ‘진보’에 대해서 가끔 이런 생각을 해본다. 현재 우리사회에서 통용되고 있는 진보라는 용어는 과연 온전한 것인지. 진보는 우리의 희망 따위는 전혀 중요하게 여기지 않은 것은 아닌지. 우리의 감정과는 무관하게 일어나는 멈출 수 없는 과정, ‘무찌를 수 없다면 같은 편이 되라’는 원리에 따라 그 멈출 수 없는 압도적인 힘에 우리가 무력하게 굴복하도록 요구하는 과정을 의미하는 것은 아닌지.

필자가 이런 의구심을 갖게 된 것은 기존에 ‘공공의 삶의 질을 개선하는 담론’을 기반으로 했던 진보가 요즘 우리사회에서는 ‘개인적 생존의 담론’으로 바뀌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말하자면 이제는 진보를 더 이상 속도에 대한 갈망이라는 문맥에서 보지 않고 노선에서 이탈하지 않고 경쟁에서 배제되거나 자격을 박탈당하지 않기 위한 처절한 노력의 문맥에서 이해한다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진보는 현재 상태나 상황을 끌어올리는 맥락에서 생각되기보다는 실패를 피하는 맥락으로 이해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든다.

그럴 경우 우리의 개인적인 관심과 노력은 주로 실패를 피하는 것으로 압축된다. 생존을 위한 투쟁에서 살아남으려면 단 하루도 쉬지 않고 철저하게 분산되지 않은 집중력을 발휘해야 하며, 계속 주변을 경계해야 하고, 무엇보다도 가능한 한 빨리, 끊임없이 움직여야만 한다. 더 나은 삶을 향한 우리의 꿈과 희망이 전적으로 우리 자신의 자아에만 집중되고, 우리 육체나 영혼에만 관심을 갖는 것으로 한정되면 자아가 성장하는 만큼 제약도 커질 것이기 때문에 실질적으로는 아무것도 개선되지 않는다. 오직 자기 자신만의 개인적 삶에의 매몰이다. 도대체 이러한 삶이 방식이 어떻게 진보인가.

지난 수 십 년간 권력자들이 사용해 온 ‘진보=빨갱이=종북’ 프레임에 포획되면서 우리는 그동안 진보가 가진 진정한 뜻이 어떻게 왜곡되어 왔는지를 돌볼 틈이 없었을지도 모른다. 개인적 생존의 담론에 빠져 허우적거리고만 있었기 때문이다. 마치 그것이 진보인 줄 착각하면서. 이제 나 자신을 제외한 사회의 나머지 부문을 그저 개인의 집합, 즉 개체화된 개별적 존재로 보는 경향에서 벗어나 집단화된 행위자들로 바라보는 연습을 해야 한다. 그래야 개인적 생존의 담론을 극복하고 ‘공공의 삶의 질을 개선하는 담론’으로 이행할 수 있을 것이다. 진보는 바로 거기서부터 시작한다.






[이재성 칼럼 45]
이재성 / 계명대 교양교육대학 교수. 평화뉴스 칼럼니스트. ssyi@km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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