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정보원의 '대선 개입'과 관련해 천주교 대구대교구와 안동교구 사제와 수도자 506명이 시국선언을 발표했다. 대구경북지역 천주교 성직자와 수도자들이 국정원 사태에 입장을 발표하기는 이번이 처음일 뿐 아니라, 천주교 대구대교구 사제들이 '시국선언' 이름으로 사회문제에 입장을 발표하기는 대구대교구가 생긴 1911년 이후 처음이다.
사제 169명 수도자 337명..."국정원, 정권 하수인으로 전락"
천주교 대구대교구 정의평화위원회(위원장 김영호 신부)와 안동교구 정의평화위원회(위원장 권중희 신부)는 14일 오후 새누리당 대구경북 시.도당 앞에서 "국정원 대선개입 규탄 민주주의 수호" 시국선언문을 발표했다. 이번 시국선언은 두 교구 정의평화위원회의 제안으로 이뤄졌으며, 시국선언문에는 대구대교구 사제 103명과 안동교구 사제 66명을 비롯한 사제 169명과 수도자 337명을 포함해 모두 506명이 이름을 올렸다. 현재 대구대교구 전체 사제는 460여명, 안동교구는 81명으로, 이 가운데 은퇴자와 해외 거주자를 빼면 대구는 370여명, 안동교구는 80명의 사제가 지역에서 사목활동을 하고 있다.
수도자 가운데는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70명과 '꼰벤뚜알 성 프란치스코 수도회 대구분원' 2명, '샬트르 성바오로 수녀회 대구관구' 48명, '예수성심시녀회 대구관구' 95명, '툿찡 포교 베네딕도수녀회 대구수녀원' 46명, '대구가르멜수녀원' 15명, '그리스도의 교육수녀회' 48명, '예수의 작은자매들의 우애회' 3명, '성 바오로딸수도회 대구분원' 7명, '전교 가르멜수녀회' 3명이 참여했다.
사제와 수도자들은 시국선언문을 통해 "작금의 대한민국 현실은 분노를 넘어 우리를 경악하게 한다"면서 "국정원이 특정 정당의 대통령 후보를 위해 수준 이하의 댓글 공작을 자행하면서 국가를 저버리고 정권의 하수인으로 전락했고, 자신들의 불법적 선거개입을 은폐하기 위해 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을 공개하는 또 다른 불법을 저지르고 말았다"고 비판했다.
때문에 ▶"국정원 대선 개입과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불법공개, 새누리당과 박근혜 후보측이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을 불법적으로 입수한 경위에 대한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과 함께 ▶"박근혜 대통령은 이와 같은 국기문란 행위에 대해 국민 앞에 사죄하라"고 촉구했다.
"박근혜 정부, 진리의 엄중함 잊지 마십시오"
특히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이 왜곡된 언론 보도에 기대어 국정원의 범죄 행위를 덮으려 한다면 이는 한국 현대사에서 부당한 권력 장악의 역사를 또 한 번 반복하는 것"이라며 "과거를 돌이켜볼 때 이러한 정권은 결코 국민들로부터 환영받지 못했고 결국 국민에 의해 심판 받았음을 현 정부는 꼭 기억하기 바란다"고 지적했다.
또, 박근혜 정부에 대해 "진리의 엄중함과 고귀함을 잊지 마십시오", "눈과 귀를 열고 국민의 소리를 들으십시오", "법과 원칙을 외면한 교묘한 말 바꾸기로 국민들을 혼란에 빠뜨리지 마십시오"라고 비판하며, "그런 일이 계속된다면 대구경북지역의 사제들과 수도자들은 대한민국 국민과 더불어 조금도 망설임 없이 진리를 증거하기 위해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예언자적 사명으로 신앙의 가르침...상식적으로 함께 해야 할 일"
사제와 수도자들은 "교회는 정의롭지 못한 현실 앞에서 침묵하는 것을 죄악으로 규정하고, 우리에게 불의에 저항할 권리와 의무가 있음을 가르치고 있다"면서 "대구대교구와 안동교구 사제와 수도자 506명은 예언자적 사명으로 신앙의 가르침과 국민적 경고를 담아 박근혜 정부에 촉구한다"고 밝혔다.
이날 시국선언문 발표 현장에는 사제와 수도자 40여명과 정의평화위원회 회원, 지역 시민사회단체 대표를 포함한 100명가량이 참석했다. 대구대교구 권혁시 신부는 "우리 교구 사제들이 시국선언을 한 것은 1911년 교구 설정이후 처음"이라면서 "그만큼 국정원의 국정유린 사태가 심각하기 때문"이라고 취지를 말했다. 안동교구 정진훈 신부도 "행복은 꿈을 꿀 수 있다는 희망이 있어야 하는데 지금은 그 작은 꿈조차 꿀 수 없는 현실"이라며 "조직적 폭력 앞에 희망이 다시 뿌리내리기 위해 상식적으로 함께 해야할 일이고, 앞으로 많은 분들이 이 대열에 함께 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대구대교구 정의평화위원회는 이날 시국선언의 취지와 과정을 담은 소식지 '함께꿈'을 제작해 교구내 각 성당에 배포하는 한편, 오는 17일 대구 동성로에서 열리는 8차 시국대회에도 참여하기로 했다. 또, 지금까지 시국선언을 한 전국의 모든 사제와 수도자 명의로 8월 말쯤 일간지 광고도 내기로 했다.
한편, 천주교에서는 '국정원 대선개입'과 관련해 지난 6월 21일 천주교정의구현전국연합을 비롯한 평신도ㆍ수도자 단체 시국선언을 시작으로 각 교구 사제들의 시국선언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 7월 25일에는 부산교구 사제 121명이, 29일에는 마산교구 사제 77명이, 31일에는 광주대교구 사제 246명과 남녀 수도자 259명을 포함한 505명이 국정원 사태를 비판하며 박 대통령의 사과를 요구하는 시국선언을 발표했다. 이어, 대구대교구와 안동교구, 대전교구, 원주교구가 14일 시국선언을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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