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의 불법부당과 주권자의 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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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택진 칼럼] 권력보다 건강한 시민적 상식의 복원이 더 중요한 이유


국정원 댓글사건, 채동욱 검찰총장 혼외자 의혹, 진영 복지부장관의 사퇴파문 등 연일 뉴스가 이어진다.대한민국 정부수립 이후 60년이 지났지만 권력의 오남용과 권력투쟁은 더욱 치열하고 부정부패와 각종 비리는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다수 국민들은 이를 비판하고 조롱하다 못해 무관심의 경지에 빠진지도 오래 되었다. 아이러니한 것은 국민들이 정치인과 재벌들을 그렇게 혐오하지만 지금도 여전히 권력집단이 세상을 움직이고 있다는 것이다.

어느 시대 어떤 권력이 스스로의 잘못을 인정하고 반성하면서 권력을 내주거나 양보한 적이 있는가? 행정부, 재벌, 언론, 사법부, 입법부 등의 모든 권력기관이 자신의 힘을 사용할 때는 관대하지만 그로 인한 잘못을 인정할 때는 거북이처럼 느리다. 스스로의 잘못이 명백하고 국민적 관심사가 집중된 사안에 ‘유감’과 ‘죄송’이란 말을 써가며 일회적으로 사과한 적은 있지만, 그들이 가진 기득권을 절대로 먼저 내려놓는 것을 본 적이 없다. 권력의 자성을 통한 발전보다 부당한 권력을 향한 시민의 저항이 민주주의를 발전시켜왔음을 우리는 익히 알고 있다. 4.19혁명, 5.18민주화운동, 6.10민주항쟁, 수많은 촛불이 그에 다름 아니다. 그리고 묵묵히 자신의 일상에서 정직하게 성실하게 자신이 맡은 사회적 역할을 해온 건강한 시민들이 현재의 대한민국을 떠받치는 보이지 않는 기둥인 것이다.

조선일보가 채동욱 전 검찰총장의 혼외자 문제를 폭로하고 의혹화하는 과정에서 ‘혼외자의 사실여부’를 떠나 실정법 위반 의혹이 여러가지가 있다. 임모 여인의 가족관계를 어떻게 알았는가? 학생기록부의 정보를 어떻게 확인했는가? 등이다. 출국일, 혈액형, 학적부상 아버지 이름등을 도대체 어떻게 알았는가 하는 것이다. 조선일보가 이 자료들을 훔친 것이 아니라면 이 자료의 관리자가 개인정보를 외부로 유출했다는 합리적 추정이 가능한데 이는 명백한 실정법 위반인 것이다. 정보관리책임자가 스스로 아무 이유없이 불법을 저지를 이유는 없을 것이고, 보다 높은 지위에 있는 자로부터 직간접적 압박을 당했을 가능성이 높은데 이 과정에서 단호히 거부하지 못한 ‘개인’의 한계는 누구에게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인가? 개인정보를 부당하게 취득하려고 하는 사람이 그 누구이든 간에 정보관리책임자는 자신의 직무에 충실하면서 ‘NO’라고 했어야 했다.

국정원 댓글 사건과 관련한 서울지방경찰청의 수사 축소 은폐 의혹을 보면서도 이런 생각은 이어진다. 27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1부 심리로 열린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에 대한 공판에서 재판부는 디지털증거분석팀의 분석상황이 녹화된 CCTV동영상 검증을 실시했다. 언론에 따르면 이 CCTV에는 디지털증거분석팀이 시간접속기록이 없는 20만건의 조사에 대해 인지하고도 조사하지 않은 것과, 압수수색영장 신청에 대한 의견이 존재했고, CCTV 녹음소리를 줄인 것 등이 확인된다. 즉 대선 전 중간수사결과발표 내용과 디지털증거분석팀이 분석한 것과는 크게 차이가 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청문회에 나와 ‘한 치의 부끄럼이 없다’거나 ‘최선을 다했다’고 말했다. 고위권력자 또는 인사권을 쥐고 있는 상관들의 압력이 있었다 하더라도 자기 직무에 대한 변할 수 없는 ‘원칙’하나로 ‘NO’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단 말인가? ‘원칙’과 ‘소신’을 지키기 위해서는 ‘승진’에 대한 불이익 또는 실직에 대한 위험도 감수해야 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복잡한 인간관계속에 쉽지 않은 선택이었겠지만 그것이 ‘저항’이라는 이름이 아니어도 그렇다고 ‘침묵’과 ‘자기변명’은 더욱 아니어야 할 것이다. 이 모든 과정이 다 이해되고 용서된다면 우리는 앞으로 그것이 어떤 권력이든 ‘권력의 해바라기’ 내지 ‘권력의 그늘에 숨은 힘없는 개인’으로 밖에 더 되겠는가?’ 한 치의 부끄럼없다’는 말이 어찌 이렇게 가볍게 느껴진단 말인가? 윤동주 선생은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하였는데 디지털분석을 맡은 수사팀은 무엇에 괴로워했을까 의문이다.

‘권력의 불법부당한 실행과정에는 이에 적극적으로 기생하거나 공생하는 사람이 있고 힘에 눌려 소극적으로 동조하거나 묵인하는 사람이 있다. 전자와 후자가 잘못의 경중이 차이날 수는 있어도 그로 인해 발생한 결과는 달라지지 않는다. 선거를 통해 보다 나은 권력으로 교체하는 일과 함께 보다 건강한 시민적 상식으로 자신이 맡은 공직업무를 신성하게 지켜나가는것이 더욱 중요한 것은 이 때문이다. 우리 사회의 많은 큰 문제들이 권력의 결정에 의해 좌지우지되지만 논의와 집행의 과정에 있는 수많은 개인들의 정직함과 올바름이 큰 역할을 할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머리와 몸통을 두고 꼬리를 비판하자는 것이 아니다. ‘우이독경’인 권력의 변화보다 건강한 시민적 상식의 복원이 더욱 중요하기 때문이다.

자기가 맡고 있는 직업과 직위에서 법을 지키겠다는 사명으로 임모 여인의 가족관계 정보와 학생기록부 정보가 유출되지 않았다면 현재 이 사건은 어떻게 되었겠는가? 디지털분석팀이 본인들의 소신대로 수사하고 어떤 외압과 상부의 부당한 지시에 굴복하지 않고 스스로가 이 결과에 책임지겠다는 자세로 임했다면 어땠을까?역사는 다시 써졌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누가 대통령이 되는 것이 중요했던가보다 스스로의 원칙과 소신을 지킬 수 있는 사회에 대한 갈망이 큰 것이다. 만약에 권은희 전 수서경찰서 수사과장이 침묵하였다면 국정원 댓글사건은 어떻게 흘러갔을지 모를 일이다. 경찰청으로부터 서면 경고를 받은 권은희 수사과장의 소신은 적어도 그가 자신의 신념을 가진 경찰이자 인격이 있는 인간임을 보여준 것이다. 주권자의 자세는 무릇 이러해야 한다.





[오택진 칼럼] 16
오택진 / 평화뉴스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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