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를 꿈꾸는 당신의 '희망'은 안녕하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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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택진 칼럼] "묵은 때를 먼저 닦는 성찰의 용기, 더 나은 내가 되어야 한다"


 2012년 12월 19일 밤......그날 그 밤은 누군가에게는 차디 찬 소주보다 쓰리고 쓰렸다. 5년 동안 각종 신조어를 만들고 국정과 자연환경에 삽질을 거듭해온 이명박 정부를 비판적으로 봐온 사람들은 새누리당 정권의 연장이 너무너무 싫었던 것이다. 농부는 밭을 탓하지 않는다지만 이번만은 밭을 탓하고 싶기도 했을 것이다. SNS상에는 ‘절망’과 ‘멘붕’이라는 단어들이 자주 보였고 어떻게 할 수 없을 정도의 절망감에 몇 분은 삶의 끈을 놓아버렸다. 그날로부터 어느덧 한 달이 흘렀고 또 한 달이 있으면 새로운 정부가 출범한다. ‘절망’이 지나간 자리에 자연스럽게 ‘희망’이 찾아와 치유해주면 좋으련만 안타깝게도 ‘절망’을 밀어낸 것은 ‘시간’이고 생존을 위한 ‘일상’이다. 범야권단일후보 민주당 대통령 후보 ‘문재인’의 패배가 우리 사회의 진보와 개혁을 원하는 모든 이들의 패배는 아니지만, 다시 새로운 ‘희망’을 꿈꾼다면 성찰의 시간을 게을리 할 일도 아니다.

 지난 대통령선거에서 내가 생각했던 최대목표치는 범야권연대를 통한 정권교체와 연립정부구성이었다. 첫 번째 이유는 이겨야 했기 때문이다. 다자대결에서 1위 지지율을 놓친 적 없는 박근혜 후보를 이기기 위해서 범야권의 연대는 필수적이었다. 두 번째 목표는 민주당 단독집권의 한계를 극복하고 보다 더 실천적 진보정치세력의 성장을 위한 고민이었다. 민주당을 제외한 진보정당들과 시민사회단체 출신들이 소수이더라도 함께 내각을 구성하고 국정을 운영하면서 행정경험을 쌓고 배우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2011년에서 2012년으로 넘어오면서 이런 꿈을 가능하게 만든 것은 통합진보당의 출범이었다. 흩어져있던 진보정치세력이 함께 모여 통합진보당을 만들고 4.11총선에서 13명의 국회의원을 당선시킨 것이 근거가 되었다. 더 힘을 모으고 정치활동을 잘 벌인다면 10%내외의 국민적 지지를 받고 이에 기반해 시민사회와 민주당과 함께 정권교체를 위한 대선연대를 구성하면 잘 될 것이라 기대했다. 기대는 기대일 뿐 4.11 총선이후 나의 기대는 기대를 가능케 한 근거였던 통합진보당 스스로에게서부터 무너져버렸다.

 이번 대선에서 진보정당과 시민사회세력의 역할은 미미했다. 진보정의당은 고심 끝에 후보 등록을 하지 않고 문재인 후보를 도와주었고, 통합진보당은 이정희 후보가 눈에 띄는 TV토론을 보여주었으나 중도에 사퇴했고, 노동자 후보가 출마했으나 의미있는 득표를 하는데는 부족했다. 시민사회는 대체적으로 투표참여 촉구와 자기분야의 후보정책검증을 통해 정보공개 그리고 범야권연대 추진기구를 통한 간접적 지원활동을 벌였다. 일부 인사들은 안철수 후보 캠프와 문재인 캠프에 직접 관여하기도 했다.

 대선이 끝나고 민주당에 대한 비판과 비난이 쏟아졌다. 인적쇄신, 계파정치의 폐해, 말로만 하는 반성과 혁신, 쟁점이 없는 선거 등에 혹자는 더 이상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까지 내놓기도 한다. 오죽하면 문희상 비대위원장이 “60년 정통야당의 역사만 빼고 다 바꾼다”고 까지 했겠는가? 자당의 후보로 그것도 범야권단일후보로 치른 선거패배의 조직적 책임은 일차적으로 민주당에게 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향후 민주당의 혁신여부는 차기 대선에서의 디딤돌 역할을 성실하게 수행할 수 있을지를 가늠하는 근거가 될 것이다. 그런데 민주당에 쏟아지는 비판의 내용은 통칭 진보세력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것일까?

 민주당의 혁신여부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진보정치세력과 시민사회의 성찰이다. 민주당은 혁신을 전제한다고 해도 민주당 자체가 갖고 있는 한계가 크다. 앞으로 한국정치의 구도가 보다 더 상식적이고 합리적으로 개편되기 위해서는 여전히 진보정치세력과 시민사회가 더 많이 성장해야 하는 당위가 있다. 대통령 선거의 과정과 결과를 근거로 지난 5년 동안을 진지하고 겸허하게 돌아보는 일은 많은 아픔을 겪고 이합집산하고 있는 진보정치세력과 무기력함에 빠져있는 시민사회세력이 의무감을 가지고 해야 할 일이다.

 당장 2014년 지방선거가 내년으로 다가왔고 2016년 국회의원총선거, 2017년 대통령선거가 치러진다. 냉철하게 보건데 이들 선거에 범야권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할 집단은 민주당이다. 지방단체장들이 2014년까지, 126명의 국회의원이 2016년까지의 임기를 보장받고 있다. 진보정치세력과 시민사회가 지금부터 어떻게 활동하며 민심을 얻느냐에 따라 의미 있는 대안세력으로 거듭날 것인지 아니면 기존정당들과 같은 취급을 받는 세력으로 전락할 것인지가 판가름 난다. 선거에서 성과를 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민심을 얻기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를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새로운 아이디어도 좋지만 지나온 과정에 성과를 잘 챙기고 부족점과 문제점을 잘 고쳐도 큰 힘이 될 것이라 믿는다.

 한 가지 좋은 예로 지난 2010년 지방선거 때 대구에서 한 기초의원의 당선을 예로 들 수 있다. 민주노동당 소속이었던 후보는 약 9,000표를 넘게 득표하여 2위 후보와 3,000표 정도의 차이를 내고 1위로 당선되었다. 지역에서 주민들과 함께하는 공동체를 꿈꾸며 들어가서 활동한지 10년 남짓 되는 시간의 성과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지역단체 대표, 풋살클럽 회원, 등산모임, 아파트 동대표부터 입주자대표, 학교 운영위원 등 웬만한 지역 모임에 빠짐없이 참가하고 열심히 활동한 결과인 것이다. 온전히 자신의 활동으로 만들어놓은 결과인 것이다.

 범야권연립정부라는 나의 꿈을 날려버린 것이 어찌 비단 통합진보당의 사태만이었겠는가? 돌아보면 내 손에 쥔 것 없이 꿈만 꾸었던 내 잘못이 더 큰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희망’은 생각으로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고 새로운 시대의 ‘중심’도 자임한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다. ‘희망’은 너와 내가 하나둘 쌓아나가는 것이고 ‘중심’도 노력으로 모범으로 모여지는 것이다. ‘희망’과 ‘중심’이 되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묵은 때를 먼저 닦는 ‘성찰’의 용기를 가지자. 민중의 절박한 요구를 가지고 거리에서 싸우는 것이 중요한 만큼 그런 노력이 쌓여 실질적인 힘으로 변화를 이루기 위해서 ‘성찰의 광장’에 나서야 한다.

‘절망은 나를 단련시키고 희망은 나를 움직인다’
박근혜 당선자의 자서전 제목이다. 노동, 인권, 진보, 개혁, 평화, 통일을 바라는 진보세력이여 절망에 단련되었으니 와신상담[臥薪嘗膽] ‘희망’으로 나를 움직여보자. 힘없는 정의는 무기력하고 정의 없는 힘은 폭력이라고 했던가? 새로운 정부가 국민들을 받드는 정부가 되기 위해서도 더 나은 권력을 5년 뒤에 만들기 위해서라도 무기력함에서 벗어나자. 유통기한 5년의 대통령이 내 삶의 메시아도 아니고 악마도 아니다. 권력을 교체하는 것은 공동체로 가는 첫걸음이지 마지막 종착점이 아닌 것이다. 더 나은 권력을 바라며 5년 뒤를 기다리지 말고, 일상에서 늘 마주하는 사람들과의 소통과 연대를 위해 더 나은 내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결국 가장 본질적인 것은 새 시대를 설계하고 준비하며 자신과 외부세계의 낡음을 끊임없이 닦아내는 시민 하나하나의 노력이 '이소성대(以小成大)'의 원리를 따라 큰 희망을 일궈내는 일이며, 그것은 미래의 어느 시기가 아니라 당장에 수행되어야 할 과제다.’는 백낙청 교수의 말씀을 깊이 새겨본다.

 희망은 그렇게 시나브로 오는 것이다. 가만히 물어보고 답해보시라. 오늘 당신의 ‘희망’은 안녕하신가?





[오택진 칼럼] 11
오택진 / 평화뉴스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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