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학생 주민번호로 '학교폭력조사' 참여 확인 논란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 입력 2013.10.17 10:2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현장 교사들 "100% 응답률 위해 조회 지시받았다" / 해당 학교ㆍ교육청 "참여 독려만, 사실무근"


대구 북구 침산동 A초등학교 5학년 담임교사 이모(34)씨는 지난 15일 교감으로부터 "선생님 반 학생들의 학교폭력실태조사 참여율이 저조하다"는 말을 들었다. 대수롭지 않게 넘겼지만 교감은 "빨리 참여안한 학생들이 누구인지 알아내 참여하게 하라"는 말을 반복했다. 그러나, "비밀보장원칙 때문에 참여여부를 확인할 수 없다"고 답하자, 교감은 "주민등록번호로 확인해보면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이씨는 "참여율을 높이라고 매일 학년과 반별로 보고를 시키더니 이제는 주민등록번호로 참여여부까지 조회하라고 시키고 있다"며 "원칙이 비밀보장인데다 주민번호는 고유정본데 이런 지시를 내려 황당하다"고 했다. "100% 응답률을 못채운 학교는 대구시교육청이 질책성 전화를 할꺼라는 엄포를 놓았기 때문에 난리를 치는 것"이라며 "교육청이 잘못된 조사를 유도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A초등학교 홈페이지 배너를 클릭하면 뜨는 '2013년도 2차 학교폭력실태조사' 웹사이트
A초등학교 홈페이지 배너를 클릭하면 뜨는 '2013년도 2차 학교폭력실태조사' 웹사이트

대구 수성구 수성동 B중학교 1학년 담임교사 오모(40)씨도 지난 주 학년부장에게 이씨와 비슷한 지시를 받았다. "학생 주민등록번호로 어떤 학생이 학교폭력실태조사에 참여했고 안했는지 확인해 보고하라"는 것이다. 오씨는 당시에 다른 반 선생님들과 함께 이 지시를 거부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대부분의 교사들이 주민등록번호를 이용해 조사 참여여부를 확인하자 갈등을 하기 시작했다.

오씨는 "주민등록번호로 참여여부를 확인하고 안한 아이들에게 하라고 하면 편한 일이다. 그러나, 학교폭력실태조사가 원칙을 깨면서까지 진행돼야 하는지 의문"이라며 "교육청이 응답률에 집착하다보니 이런 무리수까지 두는 것 아니겠냐. 뭐든지 과정이 중요한데 절차를 무시하면 탈이난다"고 말했다.

학교폭력실태조사 웹사이트는 '학생용'과 '학부모용'으로 분류돼 있다
학교폭력실태조사 웹사이트는 '학생용'과 '학부모용'으로 분류돼 있다
   
대구지역 일부 학교들이 학생들의 주민등록번호를 동의없이 무단사용해 '학교폭력실태조사' 참여여부를 확인했다는 주장이 나와 논란이 일고 있다. 교사들은 "조사 응답률을 높이려 학교와 교육청이 강제한 것"이라고 주장한 반면, 학교와 교육청은 "참여를 독려했을 뿐 사실무근"이라고 반박했다.

'한국교육개발원'은 9월 9일부터 10월 18일까지 6주동안 전국 초등학교 4학년에서 고등학교 2학년 재학생, 학부모를 대상으로 <2013년 2차 학교폭력실태조사>를 실시하고 있다. 이 조사는 1, 2학기에 걸쳐 2번 진행되는 설문조사로 전국 17개 시.도교육청이 한국교육개발원의 조사를 위탁해 실시한다. 

조사목적은 학교폭력 피해・가해여부와 상세한 피해 내용을 파악해 학교폭력 현황을 통계치로 나타내는 것이다. 조사는 온라인을 통해 진행되며, 나이스대국민서비스(www.neis.go.kr)나, 학생・학부모 참여 통합서비스(www.eduro.go.kr), 각 시.도별 학교홈페이지에 있는 배너(대구는 http://hes.dge.go.kr/std.html) 로 접속하면 된다.

대구교육청도 지난달 9일부터 대구 전지역 441개 초.중.고교를 대상으로 학교폭력실태조사를 실시하고 있다. 대구교육청이 16일 밝힌 현재 대구지역 학교폭력실태조사 평균 응답률은 90%다. 첫 실태조사가 이뤄진 2012년 1차 조사 응답률 19.3%, 2차 응답률 86.6%에 비하면 높은 수치다.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설문조사 전 학교와 학년, 이름, 주민등록번호를 입력하고 인증번호를 받아야 한다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설문조사 전 학교와 학년, 이름, 주민등록번호를 입력하고 인증번호를 받아야 한다

이와 관련해, 학교 현장 교사들 사이에서 불만이 나오고 있다. 교육청과 학교가 응답률을 높이려 학생본인과 학부모 동의없이 학생 주민등록번호로 참여여부를 확인하고 불참한 학생에게는 재차 조사에 응하라고 지시한다는 것이다. 교사들이 학생개인정보에 쉽게 접근할 수 있고, 조사가 진행되는 사이트에 접속해 학교와 학년, 이름, 주민등록번호만 입력하면 참여여부를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진희 전교조대구지부 정책실장은 "개인정보를 동의 없이 사용하는 것은 감히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지난해에도 무리한 방법으로 참여율을 높여 무리를 일으키더니 올해는 아예 신종방법을 도입해 응답률 100%를 만드려고 한다. 대구교육청이 교육청평가에서 타 시.도에 앞서려 과도한 경쟁심을 갖다보니 계속 편법과 잘못된 절차를 밟고 있다. 해당 학교는 징계를, 교육청은 사과해야 한다"고 했다. 

김광미 평등학부모회 집행위원원장도 "동의 없이 주민등록번호를 임의로 사용한 것은 범죄나 마찬가지"라며 "어처구니 없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교육청이 응답률에 지나치게 집착해 벌어진 "이라며 "해당 학교만의 문제인지 아니면 교육청이 개입했는지 진상을 밝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학교폭력실태조사 웹사이트에는 정보보호를 강조하는 '유의' 문구가 게재돼 있다
학교폭력실태조사 웹사이트에는 정보보호를 강조하는 '유의' 문구가 게재돼 있다

그러나, 해당 학교와 대구교육청은 "독려만 했을 뿐 사실무근"이라고 반박했다. 안희원 대구교육청 학교생활문화과 장학사는 "정확한 통계를 위해 되도록 많은 학생들이 참여하도록 독려는 하고 있지만 주민등록번호까지 조회해서 참여여부를 확인하라는 지시를 내린 적은 없다"면서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이어, "만약 그런 일이 있었다해도 충성심 강한 교사나 교장, 교감이 스스로 판단해 저지른 일일 것"이라며 "교육청이 그런 일을 지시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된다"고 말했다.

A초등학교와 B중학교 교장은 "교육청에서 계속 참여율을 높이라는 전화가 오고 공문이 내려와 교사들에게 독려를 많이 하라는 지시는 내렸어도 주민등록번호 조회까지 지시하지는 않았다"고 부인했다.

저작권자 © 평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당신이 좋아할 만한 기사
지금 주목 받고 있어요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