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 여러분! 이러면 안 되는 거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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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택진 칼럼] "대통령과 소수 특권층이 안녕한 시대, 시민 여러분! 안녕들 하십니까?"


박근혜 대통령 당선 1년이 되던 즈음 처제가 아내에게 전화를 했다. SNS를 파도타기 하다가 사람들이 엄청 많은 촛불집회 사진을 봤다며 요즘은 왜 하냐고 물어본 것이다. 아내는 국정원 댓글사건, 철도민영화, 대학생들의 안녕들 하십니까 등에 대해 설명해줬다. 처제는 질문을 했다. “근데 왜 TV에도 뉴스에도 안 나와? 사람들이 수만 명은 되 보이던데….”아내는 잠깐의 설명을 했고 처제는 이렇게 말했다. “언니 내가 이렇게 이상한 걸 알면 세상 사람 다 아는 건데…” 그랬다. 선거란 선거는 다 공휴일로 생각하고 놀러가기 바빴던 사람 정치는 개뿔 먹고 살기 바쁘고 친구들과 놀기 바쁜 30대 후반의 노처녀 그녀가 우리 처제다. 처제의 눈에도 들어온 부당한 언론환경은 박근혜 당선 1년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당선 1년에 즈음하여 “원칙대로 하는 것에 손가락질하고 불통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자랑스런 불통” 이라던 청와대 이정현 홍보수석의 발언은 가히 오만불손하다. 주권자인 국민이 대통령의 소통에 대해 불만이 있다면 더 낮은 자세로 수렴해야 하거늘 ‘비판’을 ‘손가락질’로 폄하하고 ‘불통’을 ‘원칙’으로 둔갑시키는 청와대의 홍보수석은 ‘불통정권’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드러내준다.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당선 이후 지금까지도 논란이 되고 있는 ‘국정원 댓글사건’은 그 진상이 하나 둘씩 드러나면서 국가권력기관의 조직적인 대선개입임에 명백해졌다. 그럼에도 과거의 권력이 아니라 현실의 권력에서 국가정보원은 여전히 반성을 하지 않고 있고 내부개혁이란 미명하게 면피하기 급급하다. 대통령의 국정원 개혁을 위한 진정성 담긴 의지는 찾아보기 힘들다. 군 대선 개입사건 발표에 대해서도 ‘윗선’도 없고 정치개입은 있었지만 대선개입은 없었다는 국방부 조사본부의 발표에는 도대체 이 정부가 국민의 수준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 경악을 금할 수 없다.

철도민영화 반대를 위한 철도노조 파업을 대하는 정부의 모습은 또 어떠한가?

<한겨레> 2013년 12월 23일자 1면
<한겨레> 2013년 12월 23일자 1면

정부는 철도 민영화를 하지 않는다는데 왜 자꾸 한다고 하느냐며 하소연하지만 수천 명의 철도노동자들과 시민사회단체가 갑자기 ‘정부불신증’에 걸려 ‘정신병’이라도 앓아서 생업을 내놓고 파업에 나섰단 말인가? 자회사 설립 후 민영화 방지 대책을 발표하고 있지만 비판세력의 입을 막기 위한 미봉책이란 의심을 거둘 수 없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 출석한 현오석 경제부총리가 "공기업이 정말로 운영이 부족한 부분은 민간이 들어올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라며 말해 '민영화 가능성'을 부인하지 않은 것을 보면 정부의 속내를 들여다 볼 수 있는 것이다. 철도민영화의 진실공방을 떠나서도 정부의 철도노조 파업에 대한 대응은 가히 심각하다. 코레일 측의 파업 다음날부터 시작된 ‘직위해제’조치와 정부의 ‘법과 원칙’발언은 과거 군사독재정권과 권위주의 정권시절에 익숙한 모습이다. ‘철도민영화’문제에 대한 사회적 논란이 첨예한 상황에서 정부는 불법파업으로 호도하고 체포영장을 남발하며 강제구인을 위해 대대적인 공권력을 투입해 사회불안을 조장한다. 조그만 불편에 인내하며 올바른 해결을 기대하고 있는 국민에게 이 정부가 보여준 것은 ‘힘’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진압’ 밖에는 없단 말인가.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준비생인 A는 졸업평점 4.3 정도에 토익 900점이 넘고 영어회화 실력이 뛰어나고 각종 연수와 인턴경험, 사회봉사활동 등 거의 A+급 스펙을 가지고 있다. 그의 유일한 단점은 지방사립대를 졸업했다는 것이다. 그는 대기업에 입사해서 본인이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생계도 꾸려갈 계획이다. 여러 군데 이력서를 넣고 있지만 아직 합격했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고 있다.

대구에 살고 있는 20대 지인의 얘기다. 구직활동을 벌이고 있는 지방대 출신의 슬픈 현실이다. 학벌이 아니라 개인의 창의성과 능력을 높이 산다고 기업들은 말하지만 현실에선 서류전형도 통과하지 못하고 있다. 대기업 입사는 낙타가 바늘구멍 통과하기보다 힘들다. 단군 이래 최강의 스펙을 가진 대학생들이 단군 이래 최대의 취업난을 맞고 있는 이 위기에 대해 도대체 무슨 말로 설명이 가능하단 말인가? 무한경쟁에 스스로를 좀더 좋은 상품으로 포장하여 시장에 내놓고 원하는 연봉을 적어내야 하는 청춘의 상처는 또 어떻게 할 것인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얻을 수 있고 뜻하는 것은 무엇이건 될 수가 있”는 아 대한민국은 적어도 2013년 20대 대학생들에겐 불가능한 얘기다.

고려대 학생이 시작한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에 대한 언론의 관심과 사회적 반향이 크고 동료 대학생들의 대자보 파도타기로 이어지고 있다. 무한경쟁에 노출된 채 ‘시대의 안녕함’에 대해 눈 감고 귀 닫고 입 막았던 대학생들의 자문이다. 수능을 통과하고 고등학교 4학년으로 대학에 들어와 청춘을 누릴 틈도 없이 학자금 대출에 아르바이트에 취업준비에 바쁜 대학생들에게 우리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에 대해 눈을 돌릴 마음의 여유는 얼마나 있었을지 의문이다. 안녕하지 못한 채로 누구나 다 겪는 일에, 혼자서는 어찌 할 수 없는 이 숨막히는 사회에 젊음으로 버텨온 것이다. ‘안녕들 하십니까?”라는 물음이 고등학교까지 번지자 교육부는 ‘차단 공문’으로 청춘의 대화와 소통을 차단하고 나섰다. 최강 스펙을 가진 대학생들과 글로벌한 시각을 갖춘 청소년들에게 일부 사학재단과 교육부는 글로벌하지 못한 후진적 행태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안녕들 하십니까’라는 질문에는 대학생들 스스로보다 먼저 기성세대가 답해야 한다. 국민을 섬기지 않는 권력이, 모든 것을 집어 삼키는 자본이, 시대에 뒤떨어진 정치와 제도가, 제 밥그릇 지키기에 눈 먼 기성세대가 청춘들의 질문에 답해야 한다. 경쟁을 부추기고 일자리를 만들지 못한 권력이, 중소기업을 죽여가며 혼자 독식하며 비대해진 대기업이, 요란한 경제민주화 말잔치에 제도는 바꾸지 않는 정치권이, 산업화와 민주화 시대의 열매를 모두 가져가버린 현재의 40대 50대 엘리트들이 변하지 않는 한 불행하게도 현실은 20대 만으로 바꿀 수 없다.

 너희들에게만은 인간을 가장 귀하게 여기는 세상을 물려주고 싶었는데….너를 키우면서 부끄럽게도 성적과 돈에 굴종하는 법을 가르쳤구나…미안하다….이제 너의 목소리에 박수를 보낸다… 82학번 너희들의 엄마가….

고려대 학내 게시판에 붙은 이 짧은 대자보에 담김 선배세대의 자성이 ‘울림’으로 퍼져나가길 기대한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 1년. 18년만에 민주노총 사무실을 압수수색영장 없고 체포대상인 철도노조 간부들도 없는 곳을 수천명의 병력을 동원하여 공권력을 투입한 것은 폭력적이고 무능한 정부의 자화상이다. 80년대 ‘땡전뉴스’를 하던 시절에 ‘진실’을 알리고자 했던 대자보가 2013년 다시 대학에 불붙기 시작한 것은 지금의 시대상황이 어떤지를 보여주고 있다. 때마침 ‘변호인’이란 영화가 개봉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을 모델로 하고 사실에 기초했지만 허구라는 영화제작진의 설명을 무색하케 할 정도로 영화와 현실은 오버랩된다. 극중 조작사건에 휘말린 대학생들 변호하겠다면 송우석 변호사(송강호 분)가 인권변호사를 찾아가 하는 이말이 가슴에 오래 남는다. “이런 게 어딨어요. 이러면 안 되는 거 잖아요. 하겠습니다. 변호인”

소통이 가로막히고 민주주의가 질식 당해가는 세상. 우리는 정말 이러면 안 되는 시절을 지금 살고 있다. 죽은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향수가 아니라 살아있는 권력이 영화 ‘변호인’의 최다관객 신기록 수립에 크게 기여할 것 같다.

대통령과 소수 특권층이 안녕한 시대를 사는 시민 여러분! 안녕들 하십니까?
이런 게 어딨어요. 정말 이러면 안 되는 거잖아요.
국가란 국민입니다.





[오택진 칼럼] 18
오택진 / 평화뉴스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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