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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평리 당산나무
[변홍철 칼럼] "내 땅 내가 지키겠다"는 할머니들의 '법'
2014년 03월 05일 (수) 14:14:51 평화뉴스 pnnews@pn.or.kr

할머니들의 기도

만장이 펄럭이고, 풍물소리에 작은 마을이 술렁이고 있다. 가는 비가 뿌리는 청도 각북면 삼평 1리 당산나무 주위로, 흥겨움을 넘어 이제 신령스런 분위기가 감돈다. “천왕당 큰할아버지, 당산 작은할아버지, 여기에 철탑이 안 들어오게 꼭 막아주이소. 이 동네를 지키주이소.” 일흔이 넘은 삼평리 할머니들이 큰절을 올리고 간절하게 기도를 드린다. 이 할머니들이 태어나기 전, 할머니들의 어머니들이 태어나기 전부터 마을을 지키고 있던 당산나무 높은 가지를, 비구름인지 안개인지 휘감고 있다.

지난 3월 1일, 34만 5천 볼트 초고압 송전탑 공사를 막기 위해 한전과 정부에 맞서 싸우고 있는 삼평리에서는 ‘대동 장승굿’이 열렸다. ‘청도 345kV 송전탑 반대 공동대책위원회’(대책위)와 대구 민예총 등의 예술가들이 함께 주최한 행사에, 대구 경북뿐 아니라 전국에서 200여 명의 시민들이 모였다. 같은 고통을 겪고 있는 밀양에서도 주민 대표들이 연대하기 위해 달려왔다.

   
▲ 경북 청도군 각북면 삼평1리 당산나무...이 곳에서는 3월 1일 '삼평리 평화를 위한 대동 장승굿'이 열렸다. / 사진 제공. 이용우(천주교 대구대교구 정의평화위원회 사무국장)

대책위 조직 1주년을 맞아 열린 이번 장승굿은 ‘항의 집회’나 ‘결의 대회’와는 그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무엇보다 이번 장승굿을 통해 삼평리 할머니들의 마음 깊은 곳에 자리잡고 있는 ‘믿음의 뿌리’를 오롯이 만날 수 있었다. 어떻게 그토록 끈질기게 저항을 이어올 수 있었는지를 비로소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노인봉을 건드려 재앙이 내렸다"  

청도군 34만 5천 볼트 송전탑은, 신고리 핵발전소에서 시작해 기장-양산-정관-밀양-창녕변전소(10만평 부지의 동양 최대 변전소)까지 이어지는 76만 5천 볼트 송전선로에서 분기해, 청도군 풍각면을 거쳐 각북면으로 연결된다. 송전탑 높이는 평균 70~80미터이며, 총 40여 기 중 각북면에만 19기가 세워진다. 이 가운데 삼평 1리에 3기(22~24호)가 세워지는데, 실제적으로 7기(22~28호)가 삼평 1리 가시권 안에 있을 뿐 아니라, 그 7기의 송전탑이 마을을 포위하는 형국이다.

특히 22호와 23호의 송전선은 삼평 1리 마을과 농토를 가로지르게 되어 있다. 또 23호기의 철탑 높이는 송전선의 높이를 억지로 유지하기 위해, 76만 5천 볼트 송전탑과 비슷한 수준인 100~120미터 정도라고 한다. (현재 주민들의 저항에 부딪쳐 공사가 중단된 것이 바로 이 23호기이다.)

22호기 부지는 옛날부터 기우제를 올리거나 자식을 낳기 위해 기도하는 자리였다고 할머니들은 말한다. 그런데 지난 2012년 4월 말, 바로 이 22호기 부지에서 수차례 산을 뒤흔드는 발파작업이 있었다. 송전탑을 세우기 위한 공사가 강행된 것이다. 그리고 며칠 뒤인 5월 8일, 어버이날, 엄청난 우박이 삼평 1리에 쏟아졌다. 90세 할머니는 “내 구십 평생 이런 재앙은 처음이다. 노인봉(22호기 부지인 산을 마을에서 부르는 이름)을 건드려서 이런 재앙이 내렸다”고 한다. 우박 피해는 과수와 양파 농사를 주업으로 하는 마을의 1년 농사를 망쳤다. 한 해 농가 수입이 거의 0에 가까웠다. 그것도 이상하게 22호기 송전탑 부근에 집중적으로 우박이 쏟아져 피해가 더 컸다. 

그후 주민들은 삼평 1리 당산나무(마을에서는 지금도 정월대보름에 당산제를 지내고 있다) 가까이에 세워지는 24호기 철탑의 위치 변경을 요구했다. 22호기와 같은 ‘재앙’을 두려워해서였다. 그러나 한전은 그 요구를 묵살해버렸고, 결국 24호기 철탑은 당산나무에서 올려다보이는 바로 뒷산에, 마을을 억누르는 듯한 기세로 세워졌다.

뿌리 깊은 '법'

당산나무 앞, 삼평리 할머니들의 간절한 기도의 바탕에는 ‘두려움’이 깔려 있다. 그것은 송전탑 공사 강행으로 입게 될 재산상의 손해, 물리적 피해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다. 그것은 정부와 한전이 감히, “사람이 손대서는 안 되는 것”을 범하고 있다는 데서 오는 근원적인 두려움이다.

이런 두려움을 근거 없는, 비과학적인 ‘미신’이라고 치부할 수 있을까? 할머니들에게 삼평리 노인봉과 당산나무는 마을 주민들의 삶과 따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다. 평생을 땅을 일구며, 자연과 이웃에 서로 의지해 살아온 이들에게,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은 결코 분리할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은 “사람이 함부로 손대서는 안 되는 것이 있다”는 근원적인 통찰, 심오한 ‘공경’의 사상에 잇닿아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무시하는 것은 ‘오만’이고 ‘불경’이다.

삼평리 할머니들의 저항은 바로 이러한 ‘오만’과 ‘불경’에 대한 분노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내 땅 내가 지키겠다는 게 우째 불법이냐”는 할머니들의 외침은, 결코 무지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억지나 떼쓰기가 아님은 말할 것도 없다. 이때 할머니들이 믿고 따르는 ‘법’은, 오직 돈있고 힘있는 자들만의 이익을 지켜주기 위해 수시로 악용되는 그 알량한 ‘실정법’을 뛰어넘는 근원적인 것이다. 이토록 뿌리 깊은 법, 신령한 법에 근거를 둔 싸움이 어떻게 쉽게 꺾일 수 있겠는가.

“천왕당 큰할아버지, 당산 작은할아버지, 여기에 철탑이 안 들어오게 꼭 막아주이소. 이 동네를 지키주이소” 하고 비는 할머니들은, 그 신령한 법을 스스로 수호하겠다고, 온몸을 다해 마을을 지키겠다고 다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날 ‘삼평리 평화공원’에 두 장승을 세운 모든 사람들이 그러한 다짐을 함께 한 것이다. 

이제 재앙을 두려워해야 할 사람들은 삼평리 할머니들이 아니다. ‘합법적인 공사’ 운운하며 신령한 법을 어기는 자들, 오만과 불경을 일삼는 자들에게 어찌 동티가 내리지 않겠는가.

   





[변홍철 칼럼 28]
변홍철 / <하이하버연구소> 소장,  전 《녹색평론》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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