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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을 강요하는 국가
[변홍철 칼럼] 밀양 주민 유한숙 씨의 죽음 앞에서
2013년 12월 09일 (월) 09:39:56 평화뉴스 pnnews@pn.or.kr

희망의 불씨

지난 11월 30일부터 12월 1일까지 전국의 2천여 명 시민들이 밀양에 모였다. 10월 초부터 강행되고 있는 초고압 송전탑 공사에 맞서 외롭게 싸우고 있는 밀양 주민들과 연대하기 위한 희망버스. 그동안 경찰에 의해 막혀 있던 공사현장 진입로들이 희망버스를 타고 모인 시민들의 힘으로 열리고, 밀양역 앞 광장은 수천 개의 촛불들로 출렁거렸다. 하나 둘씩 괴물 같은 철탑이 하늘을 향해 올라가는 것을 망연자실 바라보아야만 했던 주민들의 캄캄한 가슴에 이번 희망버스는 다시 한번 ‘희망의 불씨’를 지피는 계기가 되었다.

무엇보다 이 싸움이 결코 고립된 싸움, 밀양 주민들만의 외로운 저항이 아니라는 것을 희망버스는 분명히 보여줄 수 있었다. 그랬기에 보라마을에서 열린 정리집회에서 주민들과 희망버스 탑승객들은 마치 한 가족처럼 부둥켜안고 “다시 만나자”는 다짐의 눈물을 함께 흘렸던 것이다. 그날따라 오랜만에 날씨도 풀려, 희망의 따뜻한 기운이 밀양 땅에 번져나가는 듯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힘들여 지핀 불씨가 주민들 가슴에 웅크린 절망의 어둠을 모두 걷어내지는 못했던 모양이다. 바로 그 다음날인 12월 2일 저녁, 송전탑 경과지인 밀양시 상동면 고정리의 주민 유한숙 씨(71세)가 농약을 마신 뒤 병원에서 치료를 받다가 나흘 만인 6일 새벽 3시 50분께 숨지는 비극이 벌어지고 말았다. 2012년 1월, 이치우 씨가 분신자결한 이후 두 번째로 송전선 경과지 주민이 절망감 속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발생한 것이다.

경찰이 현재 고인의 음독 이유에 대해 ‘신변 비관’ 운운하며 진실을 왜곡하고 있기에, 유가족과 밀양 대책위가 함께 발표한 성명서를 참고하여 그 진상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자 한다.

"살아서 그것을 볼 바에야 죽는 게 낫겠다"

고인은 평소 활달하고 밝은 성격으로 젊은 시절에는 공직에 근무했으며, 상동면 고정리에서 28년째 양돈 농장을 경영하며 성실하게 살아왔다. 일흔을 넘은 고인의 삶에 던져진 가장 큰 비극은 765kV 송전탑 문제였다. 고인은 평소 송전탑 반대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는 않았지만, 자신이 키우던 돼지를 마을 모임 때 후원하는 정도로 뜻을 함께 해왔다.

   
▲ <경남도민일보> 2013년 12월 9일자 4면(사회)

그러던 지난 11월, 자택을 방문한 한국전력 직원 등으로부터 고인의 집과 농장이 송전선로에서 매우 가깝다는 사실을 듣고 나서부터 크게 낙심하게 되었다. 고인의 자택과 농장은 신고리-북경남 765kV 송전선로 117~118번 송전탑에서 300여 미터 떨어진 지점에 자리하고 있다. 

그때부터 고인은 상동면 도곡저수지에 차려진 주민 농성장에 참여하였고, 그 자리에서도 절망적인 심사를 주민들에게 자주 토로했다. 주민들의 전언에 의하면, “나는 솔직히 데모에도 자신이 없고, 앞으로 이것을 어떻게 막겠느냐, 앞으로 살 길이 막막하다, 나는 다 살았다, 한전 놈들 죽이고 싶다”면서 괴로워했다. 고인은 고민 끝에 양돈 농장을 처분할 마음으로 소유하고 있던 1,300여 평을 부동산에 내놓았지만, 송전탑 경과지라는 이유로 찾는 이도 없고 거래가 되지 않아 더욱 낙심했다. 

음독 이후, 부산대학병원에 있다 다시 밀양병원으로 옮겨온 12월 4일 오전, 고인은 “대책위 사람을 만나보고 싶다”는 뜻을 밝혀, 당일 오후 1시경 대책위 대표인 김준한 신부 및 간사가 병실을 방문했다. 그 자리에서 자신의 뜻을 다음과 같은 요지로 전했다. 

“나는 28년간 돼지 키우면서 열심히 일해서 아이들 공부도 시키고 결혼도 시켰다. 그런데 11월경에 한전 과장 1명과 또다른 1명이 찾아와 송전선로에서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 알게 되었다. 150미터인지 200미터인지 가까이에 철탑이 들어선다는 사실을 알았다. 철탑이 들어서면 아무것도 못한다. 살아서 그것을 볼 바에야 죽는 게 낫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그래서 송전탑 때문에 농약을 마셨다.”

특히 고인은 “내만 죽는 게 아니라 글(그리)로 지나가면 다 죽는다, 어떻게 하든 765가 글로 가면 안 돼. 와 저놈의…와 지나가노”라고 안타깝고 괴로운 심정을 마지막으로 토로했다.

"얼마의 희생을 더 원하는가?"

그런데도 경찰은 아직까지 진실을 왜곡하며 고인의 죽음을 욕되게 하고 있다. 한전과 정부는 단 한 마디 사과도 없이 고인이 숨진 뒤에도 공사를 계속 강행하고 있다. 일부 현장에서는 대낮같이 불을 밝히고 오늘도 야간공사를 벌이고 있다.

   
▲ <경남도민일보> 2013년 12월 9일자 1면

또한 밀양시내에 시민분향소를 설치하려는 주민들을 경찰은 야만적인 폭력으로 밀어붙였다. 천막을 부수고 칼로 찢고 연로한 주민들을 완력으로 제지하는 과정에서, 여러 명의 주민들이 다치거나 실신해 구급차에 실려 응급실로 이송되는 참담한 상황이 지난 8일 하루종일 이어졌다. 결국 영남루 건너편 공원에, 바람을 막아줄 천막도 하나 없이, 어렵사리 노천 분향소를 차릴 수밖에 없었다. 유족들과 밀양 대책위는 송전탑 공사가 중단될 때까지 장례를 무기한 연기하기로 했다.

“사람이 죽어나가도 꿈쩍도 하지 않는” 정부와 한전의 야만적인 행태 앞에서 지금 주민들의 분노와 절망감이 밀양 전체에 번져가고 있다. 출구가 없는 분노와 절망감은 비극을 불러올 수밖에 없다. 지난 10월 초 공사 재개 이후 밀양 주민과 전국의 수많은 시민들이 가장 우려해온 것이 바로 그러한 비극의 재연이었다. 더 이상의 비극을 막기 위해 ‘희망의 불씨’를 다시 지피려고 했던 안타까운 노력이 한전과 정부, 경찰에 의해 무참하게 짓밟히고 있다. 국가권력이 절망을 강요하고 있다.   

어둠이 깔리고 날씨가 추워진다. 천막도 없이 공원 한켠에 초라하게 차려진 시민분향소에 ‘밀양 765kV 송전탑 경과지 4개면 주민 일동’이 걸어놓은 현수막이 바람에 부르르 떨며 외친다.

“우리 마음이 딱 고인의 그 마음이다! 얼마의 희생을 더 원하는가?”

   





[변홍철 칼럼 26]
변홍철 / <하이하버연구소> 소장,  전 《녹색평론》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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