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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핵과 총파업
[변홍철 칼럼] 핵산업 확대는 위헌적 성장독재, 안전과 민주주의 위해 막아내야
2014년 01월 17일 (금) 09:46:25 평화뉴스 pnnews@pn.or.kr


'증핵' 공식화한 에너지기본계획

박근혜 정부가 2035년까지 핵발전소를 현재 23기에서 최소한 39기 이상으로 늘리는 것을 뼈대로 한 ‘제2차 에너지기본계획’을 확정 발표했다. 시민단체와 상당수 시민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결국 ‘핵발전소 증설’(증핵)을 공식화한 것이다. 강고한 핵 카르텔의 위력을 다시 한번 실감한다.

삼척·영덕 등 신규 핵발전소 부지로 선정된 지역의 주민들이 가장 먼저 반발하고 나섰다. 1월 15일 영덕의 주민들이 규탄 기자회견을 연 데 이어, 16일에는 삼척의 주민들이 반대 입장을 천명했다. 핵발전소 문제와 하나로 연결되어 있는 송전선로를 둘러싼 사회적 갈등도 앞으로 더욱 격렬해질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정부 계획대로라면 태백산맥을 관통하는 대규모 송전시설이 2개 이상 새로 건설돼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가능한 계획인지 의문”(이헌석 에너지정의행동 대표, <한겨레> 1월 15일자 기사 인용)이 들 정도다. 밀양과 청도 삼평리에서 지금 벌어지고 있는 ‘재앙’이 박근혜 정부의 계획에 의해 얼마나 더 많은 지역에서 재연될지, 가늠하기조차 끔찍하다. 

핵발전소 개수와 설비용량에서 한국은 현재 세계 5위이다. 스리마일(미국), 체르노빌(구 소련), 후쿠시마(일본)와 같은 대규모 핵참사의 공통점은 핵발전소 개수가 많은 나라들(핵 선진국)에서 일어났다는 것이다. 한국은 국토면적 대비 핵발전소 설비용량(밀집도)에서 세계 1위 국가이다. 좁은 국토에서 만에 하나 핵사고가 일어난다면 그 결과는 곧 나라의 멸망이다.

   
▲ <한겨레> 2014년 1월 15일자 1면

후쿠시마 사고 이후 전 시민적으로 확산된 핵발전소의 안전성에 대한 우려를 외면한 ‘증핵’ 계획은 ‘에너지안보’와 ‘산업경쟁력’이라는 상투적인 논리에 의해 뒷받침되고 있다. 전력수요는 계속 늘어날 것이고, 기업은 경쟁력을 위해 값싼 전기를 계속 공급받아야 하고, 경제성장을 위해서는 바닷가 외딴 마을들과 농촌의 노인들은 계속 희생을 감수해야 한다는 논리다. 성장하지 않으면 혼란뿐이다, 혼란이 두렵다면 ‘국익’을 위해 핵발전소를 받아들여라, 괴담과 유언비어에 속지 마라! 한국의 핵발전소는 수명을 아무리 늘려도 사고 안 난다, 짝퉁 부품을 써도 안전하다, 하면 된다!

성장주의 이데올로기와 민주주의의 말살

사고 위험성의 문제를 차치하고, ‘증핵’의 배경이 되는 획일적 성장주의 이데올로기는 무엇보다 민주주의를 짓밟는다. 박정희의 성장신화가 인권과 자유, 민주주의의 말살과 결코 분리할 수 없는 동전의 양면이듯이. ‘국가’의 살림살이를 좌우하는 에너지기본계획인데도 주권자인 ‘국민’의 우려가 조금도 반영되지 않은 채 공식화된 이번 발표는 본질적으로 성장주의 독재의 고착화, 영구화를 의미한다. 온갖 복잡한 계산과 그럴듯한 표현으로 포장하더라도 그것은 결국 ‘헌법’의 무력화에 다름 아니다.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의 헌법은 전문(前文)에서 “우리들과 우리들의 자손의 안전과 자유와 행복을 영원히 확보할 것을 다짐”하고 있지 않은가.  

“한국은 원전 보유 규모와 높은 가동률, 각종 원전 비리 및 낮은 안전의식 등으로 대형 사고의 가능성이 작지 않은데, 이런 우려에서 앞으로 최소 70년간 자유로울 수 없게 됐다. 추가로 건설하는 원전은 2020년 이후에 지어져 최소 2080년이 넘어야 수명을 다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라는 그린피스의 성명(<한겨레> 1월 15일자 기사 인용)은, 다른 말로 하면 앞으로 100년 가까이 우리가 ‘다른 삶’을 상상할 자유가 박탈당한다는 얘기다.

   
▲ <한겨레> 2014년 1월 15일자 8면(종합)

잠재적 사고 위험성에 대한 공포는, 그러한 ‘증핵’ 시스템이 일단 가동되기 시작하고 이어서 시민들이 자의반 타의반으로 그것을 묵인하기 시작하는 순간, 성장주의 독재권력에게는 결코 해로울 것이 없다. 그 공포로 인해 더 많은 사회적 통제수단을 갖게 되므로. ‘전쟁공포’가 박정희에게 ‘반공’과 국가주의 이데올로기라는 무소불위의 통제수단을 제공했다면, 핵사고의 위험성에 대한 대중의 공포는 결국 핵 체제의 중요한 본질 중 하나인 ‘비밀주의’와 강력한 정보통제 등 비민주적 수단을 갈수록 많이 지배권력에게 허용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다른 삶'을 상상할 자유   

백번 양보해 ‘확률의 신’이 보우하사, 대참사가 일어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마찬가지이다. 저들이 애호하는 ‘성장’이라는 말이 민중의 풍요를 뜻하는 것이 아니며, 저들이 사랑하는 ‘안보’가 풀뿌리의 평화가 아니므로, 비록 요행히 대참사의 불운을 피할 수 있다 하더라도,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불평등과 부정의, 무력감과 생존의 공포를 벗어난 ‘다른 삶’의 실현은 끊임없이 유예될 것이다.

‘다른 삶’을 상상할 자유는 획일적인 성장주의와 결코 양립할 수 없다. 그것은 창조적 혼란 없이는 불가능하다. 혼란 속에서라야 개인이든 사회든 성찰할 수 있다. 이미 길이 뻔하게 정해져 있다면, 개인도 사회도 더 나은 삶의 가능성을 위해 고뇌하지 않는다. 좀더 인간다운 삶을 위한 투쟁도 사회적 토론도, 그 동력을 잃어버리게 된다. 

‘증핵’을 공식화한 박근혜 정부의 제2차 에너지기본계획은 따라서 단순히 에너지에 관계된 문제가 아니다. 이 가공할 프로젝트는 우리가 그릴 수 있는 100년 뒤의 국가의 청사진을 단 하나만(그것도 현실가능성이 지극히 의심스러울 뿐만 아니라, 설령 그러한 계획이 실현될 수 있다 하더라도 그 과정에서 이 나라 국토와 민중의 삶은 황폐해질 대로 황폐해질 것이 뻔한 청사진 하나만) 남겨 두겠다는 빈곤하기 짝이 없는 상상력의 소산이다. 냉정하게 말해 지금 박근혜 정부나 핵 카르텔의 기득권자들은 100년 뒤 이 땅 민중의 삶에는 관심조차 없을지도 모른다.

영원히 처치 곤란한 핵쓰레기, 지역간·계층간·세대간 불평등과 비윤리성, 터무니없이 낮은 효율성과 고비용, 일상적인 방사능 오염, 우라늄의 고갈로 인한 지속 가능성의 문제 따위에 대해서는 여기서 이야기를 시작하지도 않았지만, 이런 문제들을 모두 뒤로 돌리더라도, 이것은 무엇보다 자유의 질식을 의미한다.

“‘혼란’이 없는 시멘트회사나 발전소의 건설은, 시멘트회사나 발전소가 없는 혼란보다 조금도 나을 게 없는 것 같은 생각이 든다”고 시인 김수영은 산문 <詩여, 침을 뱉어라>(1968년)에서 일찍이 말한 적이 있다. 혼란은 개인에게나 한 사회에게나 중요하다. 혼란 속에서, 바닥에서부터 창조해 가는 질서야말로 개인과 사회의 성숙을 보장하기 때문이다. 그런 창조적 혼란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사실 그것을 ‘혼란’이라고 부르는 자들은, 바닥에서부터 밀고 올라가는 생명의 질서, 풀뿌리의 질서를 두려워하는 기득권자와 독재자들이다.

박근혜 정부와 한국의 핵 카르텔

‘증핵’을 골자로 한 제2차 에너지기본계획 발표에 뒤이어, 이 글을 쓰고 있는 동안에도 박근혜 정부의 ‘핵산업 확대’는 노골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그는 후보 시절 핵산업에 대해, 마치 ‘안전성’을 고려해 ‘유보’적인 듯한 태도를 취해 왔다.) 1월 15일, 인도 방문 중 국영방송 두르다르샨과의 인터뷰를 통해 “한국은 원전의 건설, 운영 그리고 안전까지도 인도에 아주 좋은 파트너가 될 수 있다”고 핵발전소 수출에 강한 의지를 밝혔다. 작년 9월 베트남을 방문했을 때에도 베트남에 핵발전소를 수출하기 위해 세일즈 외교를 펼쳤던 바 있다. (그러나 베트남은 국민들의 우려를 반영하여 핵발전소 건설 계획을 6년간 전면 유보했다는 소식이 1월 16일 국내 보도를 통해 전해졌다.)

이것은 후쿠시마 사고 이후 핵발전의 안전성에 대한 우려가 국제사회에 확산되고 독일, 벨기에, 스위스, 이탈리아 등 여러 나라가 잇따라 ‘탈핵’을 선언하고 있는 추세에 역행하는 시대착오적인 발언이며, ‘죽음을 파는 장사꾼’이라는 국제 시민사회의 지탄을 받아 마땅한 처사다. 

특히 시민단체인 에너지정의행동의 논평처럼 “인도는 NPT(핵비확산조약) 미가입 상태에서 핵개발을 하는 등 핵확산을 막고자 하는 국제사회의 노력에 역행하고 있는 국가이다. 더 이상 핵무기 확산이 이뤄지지 않도록 하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인 NPT는 강대국의 핵보유를 인정하는 불평등조약이라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더 이상의 핵무기 확산을 막는다는 점에서 최소한의 장치로서 역할을 하고 있다. 이러한 국가에 핵발전소를 수출하는 것은 인도가 갖고 있는 핵무기 정책을 인정하는 모양새를 띠는 것으로, 이런 점을 고려하지 않은 채 단지 ‘수출’만을 생각하는 것은 국제사회의 핵비확산 노력을 무시한 처사”(1월 15일자 논평)에 다름 아니다. 이는 “밖으로는 항구적인 세계평화와 인류공영에 이바지”하겠다고 한 대한민국 헌법의 정신에도 정면으로 위배되는 것이다.

이처럼 위험천만한 핵산업 확대 정책의 노골화와 함께, 박근혜 정부는 여당 국회의원들을 통해 핵산업 진흥부서이자 비리의 당사자인 산업통상자원부에 아예 ‘사업자 규제권’까지 쥐여주려 하고 있다. 작년 7월 박근혜가 “산업통상자원부 중심으로 정부의 원전 안전관리 체계를 재정비하라”고 한 지시에 따라, 새누리당 비례 1번으로 국회의원이 된 핵물리학자 출신 민병주 의원이 최근 ‘원전 사업자 등의 관리 감독에 대한 법률’을 대표발의한 것이다. 한마디로 생선가게를 통째로 고양이에게 넘겨주겠다는 얘기다. 이명박 정부에 이어 박근혜 정부를 통해 한국의 핵 카르텔이 자신들의 기득권을 확실하게 굳히고 이를 영구화하기 위한 수순이 착착 진행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탈핵을 바란다면 국민총파업에 함께하자

먼저 환경단체와 탈핵운동가들에게 호소한다. 이제 한국의 ‘탈핵운동 진영’이 결단할 때다. 한국사회 핵 카르텔의 ‘약한 고리’는 바로 박근혜 정권이다. 비록 이번 에너지기본계획을 ‘증핵’ 기조로 밀어붙임으로써 핵 카르텔의 요구를 대변하긴 했지만, 태생적으로 불법적인 ‘유사 정권’에 지나지 않는 박근혜 정권은 이미 여러모로 심각한 도전을 받고 있다. 이 약한 고리를 치는 것이야말로 강고한 핵 카르텔에 균열을 내는 가장 효과적인 계기가 될 것이다. 나아가 에너지 전환과 에너지 민주화를 위한 중요한 기회가 될 것이다.

이미 ‘정권퇴진’과 ‘국민총파업’이 시민권을 얻은 정치적 슬로건이 되었다. 민주노총이 후퇴할 수 없는 깃발을 들었다. 가톨릭을 비롯한 여러 종교의 양심적 성직자들도 이미 ‘정권퇴진’을 정의와 평화를 위한 불가피한 요구로 내걸고 있다. 이제 와서 승산 있고 없고를 따질 때가 아니다. 특히 팔짱을 끼고 노동운동의 한계를 논할 때는 더더욱 아니다. ‘탈핵을 위한 정권퇴진 운동’으로 한국의 탈핵운동 진영이 화답할 기회이다. ‘탈핵동맹’을 머리로만 고민하지 말고, ‘적녹연대’의 꿈을 미루지 말고, 2월 25일 국민총파업을 탈핵운동 진영도 함께 결의하고 조직하자.

핵사고와 방사능 위험을 우려하는 시민들에게도 부탁드리고 싶다. 이제 무기력과 두려움을 떨치고 국민총파업의 대열에 함께하자. 조직된 노동자가 아니라고 해서 총파업(General Strike)에 참여할 수 없는 게 아니다. 각자 자신의 위치에서, 일손을 놓고 사회 전체의 공익적 문제에 대해 함께 토론하고 요구하는 열린 광장으로 나오는 것이 바로 총파업이다. 자영업자는 가게 문을 닫고, 학생들은 학교에 가지 않고, 주부들은 가사노동을 멈추고 총파업에 함께 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이 사회가 그동안 누구의 힘으로 굴러왔는지를 스스로 확인하고, 지역과 업종을 넘어 연대하는 가장 아름다운 시민교육의 장이자 신명나는 축제가 바로 총파업이다. 물론 자본과 국가, 기득권 세력에게 이것이 가장 두려운 민중의 직접행동이라는 것은 말할 것도 없겠지만. 

특히 아이들의 건강과 밥상의 안전을 염려하는 주부들은 ‘탈핵을 위한 주부파업’을 마을과 생협 등을 중심으로 조직할 수 있다. 미국 최초의 거대한 반핵운동으로, 1963년 ‘제한적 핵실험 금지조약’이라는 중요한 승리를 이끌어내는 데 기여한 것은 평범한 주부들이 조직한 ‘평화를 위한 여성파업(Women's Strike for Peace)’이었다. 우리 사회에도 지난 2008년 유모차를 밀며 촛불광장으로 나왔던 젊은 엄마들의 멋진 투쟁 경험이 있지 않은가. 우리 모두의 미래를 짓밟고 처치 곤란한 핵쓰레기를 다음 세대에게 떠넘기려는 어른들에게 분노한 청소년-학생들도 ‘청소년파업’을 얼마든지 조직할 수 있다.

민주노총 같은 노동조합과 시민들이 함께, 각 도시의 거리와 광장에 모여 한판 난장을 벌이고, 눈앞의 가장 중요한 공공적 의제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함께 결의하고 자본과 국가를 향해 요구하자는 것이 국민총파업의 취지이다. 그것은 어렵거나 두려운 것이 결코 아니다. 그것은 민주공화국 시민으로서 누구에게도 빼앗길 수 없고 양도할 수 없는 우리의 신성한 주권을 스스로 확인하고 선언하는 ‘헌법적 권리’ 실현의 장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기왕에 빗장이 열린 ‘정권퇴진’과 ‘국민총파업’의 광장에서 우리가 ‘다른 삶’을 상상할 수 있는 힘과 자유를 만끽하는 것이다. 절망을 강요받는 대신 희망을 선택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확인하는 것이다. 더 이상 ‘탈핵’을 대변해 줄 ‘정치세력’을 기다리지 말고, 우리 스스로 ‘정치적 대안’이 될 수 있다는 연대의 기쁨과 자신감을 확인하는 것이다. 우리가 지켜야 하고 또 새롭게 건설해나가야 할 나라는 바로 이 아름답고 신명나는 ‘혼란’의 광장에 있다.

그리고 후쿠시마 사고 3주년이 되는 3월 11일을 거쳐 체르노빌 사고 28주년을 맞는 4월 26일까지, 더 많은 동료시민들에게 ‘탈핵’의 중요성과 긴급성을 최대한 알려내고, 이를 ‘정권퇴진’ 투쟁의 장 속에서 계속 확산시켜 나가자. ‘탈핵’이야말로 갑오년, ‘보국안민(輔國安民)’을 위한 대한민국 모든 시민들의 중요한 깃발 중 하나가 되어야 한다.   

그럼 핵발전의 대안이 뭐냐고? 핵무기가 그렇듯, 핵발전의 대안은 풀뿌리의 평화와 민주주의이다.

   





[변홍철 칼럼 27]
변홍철 / <하이하버연구소> 소장,  전 《녹색평론》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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