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린 진실과 '뮌헨의 창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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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곤 칼럼] 가릴수록 드러날 수밖에 없는 것, 그것이 진실의 힘이다


1887년 독일 슈투트가르트의 한 인쇄소에서 경리직원으로 일하던 에두아르트 푹스(Eduard Fuchs・1870-1940)는 처음부터 학자가 될 팔자는 아니었다. 마흔두 살에 <풍속의 역사> 3권(우리말 번역판은 4권)을 펴내 세계적인 풍속사 연구가・문명사가・미술수집가로 문명을 날릴 때에도 한번도 ‘학자입네’ 한 적이 없는 그였지만, 기질적으로 그는 천생 학자였다.

비스마르크 지배 아래 당시 독일에서 사회민주당의 첫 번째 과제는 급증하는 노동자 계층을 위한 지식의 대중화, 교양・교육사업이었다. 이에 사민당은 노동자 교양 간행물들을 발간했는데 경영상 문제에 부닥쳤다. 이 문제를 해결할 적임자를 찼던 사민당은 인쇄・제판 능력까지 통달한 푹스를 바이에른 지역 기관지 <뮌헨 포스트> 기자로 스카우트했다.

<뮌헨 포스트>가 펴내던 풍자잡지 <남부 독일 포스틸론> 간행에 임시지원 형식으로 참여한 푹스는 우연한 기회에 편집과 기사 작성 등을 맡아 1887년 5월 잡지 사상 최초로 유색 삽화를 곁들인 책자를 펴냈다. 1년에 2,500부 정도 팔리던 이 잡지는 무려 6만부가 팔렸다.

이 유례없는 성공으로 그는 정치풍자 전문잡지의 젊은 편집인이 됐다. 그에게 세상은 끊임없이 유혹하는 호기심의 원천이었다. 일상에서 예술에 이르는 방대한 지식욕에 불타는 청년의 문체는 명쾌하고 날카로웠다. 여기에다 기록과 회화에 대한 수집벽까지 타고난 그는 몸으로 습득한 프롤레타리아의 관점을 끝까지 지킨 지식인이었다.

이후 그는 신문 기사로 국가원수를 모독했다는 죄목으로 10개월을 복역했고, 1942년 ‘조르게 사건’ 연루자로 몰려 검거돼 집행유예 4년과 집필금지 판결을 받고 풀려나기도 했다.

<풍속의 역사>(1910-12)에는 그가 필생 수집한 68,000여 장의 도판에서 골라낸 500여 장의 그림이 실려 있다. 그는 민중의 관점에서 이 그림과 함께 노래, 시, 속담을 통해 르네상스에서 부르주아 시대에 이르는 복장, 연애, 결혼, 사교생활, 매춘제도, 종교, 사회제도 등 당대의 풍속을 적나라하게 폭로하고 해부하고 조롱하고 정리했다.

이 기념비적 저작은 이런 점에서 민중이 중심인물로 등장하는 유럽 최초의 과학적 역사서로 평가받는다. 이 책은 창녀들에 의해서가 아니라 1933년 히틀러 정권에 의해 금서로 지목돼 불태워지는 비운을 맞으면서 이 책 초간본은 희귀본 중의 희귀본이 됐다.

‘뮌헨의 창녀(1880)’(가로 4cm X 세로 6.3cm)는 <풍속의 역사>에 나오는 도판이다. 이 그림은 검은 바탕색 가운데서 육감적인 여체를 희게 드러낸다. 종아리 절반까지 덮은 부츠와 무릎까지 덮은 길고 두꺼운 양말은 여성의 몸을 ‘꽁꽁’ 싸매면서 외부에 대한 여체의 강한 방어와 거부의 심리를 표상한다.

그런데 이 그림의 당황스런 상황은 그림 속 여성이 자신의 레이스 원피스를 활짝 걷어 올려 가슴 아래 하반신을 다 드러냈다는 점이고, 더욱 당황스런 사태는 이 여성이 원피스 말고는 아무 것도 입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래서 검은 배경색이 밀려날 만큼 탄력 있고 풍만하게 발달한 엉덩이와 배경색보다 더 검고 무성하게 우거진 음모가 거리낌 없이 노출된다. 이 도판에서 가장 먼저 시선을 이끄는 부분은 얼굴이 아니라 이곳이다.

부츠와 양말이 당대의 부르주아 도덕관념이 요구한 위선과 은폐였다면, 활짝 걷어  올린 치마와 모든 것을 폭로한 여체의 하반신은 당대 도덕관념의 실상이자 부르주아의 위선에 대한 조롱이다. 그래서 수많은 남성들의 잉여 욕망들을 받아낸 그 무성한 검은 숲은 추하거나 역겹지 않다. 오히려 건강하고 웅숭깊은 숲이자 바다로 보이는 이유다.

뒤집힌 치마에서 통쾌한 풍자와 역설의 반전을 본다. 이 도판을 실은 푹스의 의도 역시 그러한 것이 아닐까. 머리 위로 둥글게 팔을 굽혀 치마를 들어 올린 여성의 얼굴은 활짝 웃고 있다. ‘뮌헨의 창녀’는 제 몸을 물증으로 드러냄으로써 도덕의 이름으로 가린 채 자본과 권력과 정력을 과점한 부르주아의 위선을 한순간에 까발린다. 

그로부터 110년이 훌쩍 흘러, 이 도판 위에 이름도 모를 수많은 국내 걸그룹들의 효시인 스파이스걸스의 멤버 멜라니 브라운의 무대 의상이 겹친다. 온몸을 팽팽히 감싼 검은 점박이 흰색 가죽 재킷은 그 속 몸의 어떤 기미도 보여주지 않는다. 단지 음부 부분에서 재킷은 투명해진 듯 검은 음모의 기미를 그대로 노출한다. 가리면서 보여주고, 보여주면서도 가리는 노출과 은폐의 역설이다.

우울하고도 위중한 세월호 정국에서 이 무슨 불경하고 천박한 소리냐는 독자의 소리가 들린다. 그러나 세월호의 해법을 찾는 과정에서 우리 사회 상당수가 보여준 불경과 천박, 사악함과 저열, 오만과 뻔뻔함은 극한을 넘어서 오탁악세의 진구렁이다. 이를 달리 비유할 말을 찾을 수 없다. 사람은 공기로 숨 쉬고, 말로써 함께 산다. 오탁악세는 말이, 말의 질서가 거짓에 의해 무너진, 그래서 함께 살 수 없는 사회다. 악마만이 악마의 세계를 살 수 있다.

세월호 참사의 원인은 아무 것도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고, 사후 구조 실패의 진상도 아무 것도 규명되지 않았다. 그런데도 진상 규명을 간절히 청원하며 단식하고 있는 세월호 가족들을 인간으로서는 할 수 없는 말과 행위로 능멸하는 악마들은 세월호 탓에 경제가 죽는다고, 민생이 밀린다고 난리다. 모두 다 가해자에게 해야 할 소리를 거꾸로 피해자에게 대놓고 하고 있다. 이제 저들은 가해자 편이 아니라 모두가 가해자다.

논란의 한 가운데 대통령의 7시간이 있다. 미국 대통령과 일본 총리의 일정이 1분 단위, 5분 단위로 주요 신문에 공개된다는 사실도 그들에게는 ‘그래서 어쩌라고’일 뿐이다. 그저 대통령의 사생활이라며 금기를 친다. 가리면 가릴수록 진실은 ‘뮌헨의 창녀’처럼 환히 드러날 것이다.

진실은 치부다. 치부가 드러날수록 민중은 웃고, 권력은 기겁한다. 가릴수록 드러날 수밖에 없는 것, 그것이 진실의 힘이다. 닭그림이 철거된 전시장에 푹스의 도판 하나를 대신 걸고 싶다.






[김윤곤 칼럼 2]
김윤곤 / 시인.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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