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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이 끝나고 길은 시작됐다
[김윤곤 칼럼] "거짓과 궤변, 무능천지를 그냥 둘 국민은 없다"
2015년 01월 05일 (월) 15:41:49 평화뉴스 pnnews@pn.or.kr

숨을 쉬기가 어려워요.
폐에서 물 좀, 물 좀, 빼주세요.
숨 막혀서 못 견디겠어요.
도와줘요, 제발.
폐 속에는 물이 아니라 피가 흥건해요.
깊은 바다에 들어와 있는 것 같아요.
익사하고 싶지 않아요.
숨만 제대로 쉴 수 있다면 죽어도 좋아요.
영영 눈을 감아도 좋아요.
숨만 차지 않으면 집에 돌아갈 수 있을 텐데.
마루에 기대앉아 쉴 수 있을 텐데.
- 나희덕 시 「겨우 존재하는」 (부분)


보낼 수 없는 한 해를 보냈다. 보낼 수 없는 고운 아이들과 이웃을 보낸 한 해였다. 흐르는 시간은 어쩔 수 없어 조금도 새로울 것 같지 않은 새해를 맞았지만, 세월호 참사는 사고가 아니라 사건이었다는 점에서 우리는 아직도 그 사건의 해저에서 빠져나오지 못 하고 있다. 주변에는 ‘아직도 세월호 얘기냐’며 펄펄 뛰는 사람들이 적잖다. 대구․경북이라는 지역 정서인지는 알 수 없으나, 그럴수록 사실은 그 사건에 우리 사회가 꽁꽁 묶여있다는 것을 반증할 뿐이다.

참사의 원인과 진상을 규명하는 과정에서 전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일들이, 그리고 전혀 상상할 수 없었던 것은 아니었으나 설마 했던 일들이 거의 모두 사실로 드러나고 있다. 세월호 참사는 이 땅의 많은 사람들에게 ‘아우슈비츠 이후 서정시는 불가능하다’는 테오도르 아도르노의 명제를 다시 떠올리게 했다. “나는 반복되는 악몽을 꾸다가 이 근원적인 질문을 떠올렸다. 그 꿈속에서 나는 내가 더 이상 산 사람 같지 않았고, 그저 아우슈비츠의 희생자들의 소망에서 비롯된 산물일 뿐이라는 기분을 떨칠 수 없었다.”

아도르노는 훗날 자신의 명제를 수정했다. 그의 질문은 서정시라는 예술의 장르를 부정하거나 부인한 것이 아니었다. 예술의 바탕이자 원천인 우리의 삶 그 자체가 근본적으로 무너져 내렸다는 민감하고도 절망적인 상황 인식이며, 이런 천박하고 추악한 세상에 인간의 가장 보편적인 정서와 감정을 노래하는 서정시란 대체 무엇인가라고 묻는 것이었다.

세월호만으로도 심장마비에 걸린 ‘선량한 시민들’의 인식․판단 중추는 연말의 ‘사건번호 2013헌다1’로 또 다시 뒤통수를 맞았다. ‘2013’년 ‘헌’법재판소에 접수 계류된 사건으로서 청구사건 유형 ‘다’(정당해산심판)이며, 끝의 숫자 ‘1’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접수되지 않은 사상 최초의 사건이라는 뜻이다. 민주적 기본 질서, 즉 민주주의의 핵심적 요소들을 공격하고 이를 파괴하는 직접적이고 계획적인 시도가 있었다는 어떠한 구체적 증거도 없이, ‘숨은 의도’를 꿰뚫는 헌재 판관들의 ‘관심법’으로 통합진보당은 해산됐고 의원들은 자격을 박탈당했다.

세월호 참사와 진보당 해산결정은 부박한 이 시대와 이 정권의 유지에 필요했던 희생제의의 제물이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르네 지라르는 인간 사회와 문화 속에 만연한 악과 부조리의 문제를 모방적 경쟁과 희생양 메커니즘으로 풀어 설명한다. 그에게 모방은 이미테이션(imitation)이 아니라 미메시스(mimesis)였는데, 대립이나 마찰을 수반한다는 의미였다.

‘적절한 거리’ 안에서, 즉 경쟁이 될 만한 관계에 있는 개인/집단에게 좋은 일이 생기면 경쟁심이 유발된다. 이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적절한 거리’ 밖, 즉 나와 별로 상관이 없는 제3자, 희생양을 만든다는 것이다. 집단 간일 때 문제는 더 심각하다. 대립하고 있는 두 집단 중 누군가가 혼란의 원인을 제3자에게 떠넘기게 되고, 상대방을 향해 품었던 적의가 이제는 다른 제3자를 죽이거나 사회에서 추방하는 쪽에 모방적으로 행사된다. 이 과정에서 두 그룹 간의 차별은 사라지고 공공의 적을 향해 하나가 되는 동질화 현상이 발생한다.

세월호 참사 후 정권의 충복인 기레기 언론들이 조장한 유가족 때리기와 고립화의 패륜행위는 참사를 제대로 규명하고 수습할 능력은커녕 처음부터 의도적으로 악용하려 했던 정권의 실상을 그대로 보여준다. 세월호 희생자와 유가족, 그리고 통진당은 광범위한 대선부정과 정윤회․십상시 농간 등을 덮기 위해 벼랑으로 떠밀린 제3자, 희생자였으며 조르조 아감벤의 ‘호모 사케르’였다.

호모 사케르는 법 혹은 어떤 사회적 책임의 테두리 바깥으로 밀려나 그 보호를 받지 못하는 대상들이다. 적잖은 국민들의 의도적인 외면으로 관심 밖으로 밀려난 세월호 희생자와 유가족이나, 헌법적 질서 밖으로 쫓겨난 진보당이나 마찬가지다. 호모 사케르는 정치적 파국의 순간에 인권이나 생명 자체의 존엄성에 대한 사회과학적 사유들이 허망하게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이유들을 추적한다.

물속에 갇히거나 자녀나 가족을 잃지도 않았으며, 진보당과는 아무 관련이 없는 사람들에게도 지난해는 나희덕의 시구처럼 ‘숨 막혀서 못 견디겠어요. … 폐 속에는 물이 아니라 피가 흥건해요.’라는 탄식이 절로 나오는 한 해였다. 아무 것도 할 수 없으며 아무 것도 바뀌지 않을 것 같은 무력감에 시달리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 새해를 맞으며, 생각은 의외로 명료하게 정리됐다. 물론 명료하다고 해서 쉽거나 간단한 문제는 아니다. 분명한 것은 이 정권이 상상을 초월하는 거짓과 억지와 궤변으로 정국을 타개하지 않고는 어떤 퇴로도 열 수 없을 만큼 궁지에 몰렸고 무능하고 뻔뻔하고 교활하다는 점이다. 해도 해도 너무 했다. 정권의 개로 전락한 기레기 언론의 호위를 받으며 일방적으로 기울어진 운동장만 믿고 너무 나간 것이다.

'여행이 끝나고 길은 시작됐다.' 게오르그 루카치의 말이다. 그 불행한 수학여행은 끝났지만, 우리의 여행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아니 더 많은 국민들이 함께 여행을 떠나고 있다. 여행이 끝난 순간에도 마음 속 여행의 전말과 진상을 되물으며 다시 떠나는 자에게 길은 열린다. 포기하는 순간 길은 끝난다. 포기하지 말아야 할 충분한 이유를 우리는 지난 2년 동안 얻었다. 이 개명천지에 이토록 말도 안 되는 거짓과 궤변과 무능천지를 그냥 둘 국민은 없다. 또 다시 상상을 초월하는 무슨 공작으로 덮기, 물타기, 밀어내기를 하더라도 박근혜 정권은 이전 정권과 함께 금도를 넘어도 한참 넘었다. 백주대낮에 시대착오의 케케묵은 종북놀음은 추가 옵션이다.

자업자득. 스스로 선택한 벼랑이다. 벼랑을 택한 막장정권은 불행히도 중하위층 대다수 서민의 삶을 인질로 잡고 벼랑으로 내몰고 있다. 다수 국민이 떨어지든 막장 정권이 떨어지든, 새해는 그 벼랑의 시작이다. 다수 국민은 더 밀릴 곳이 없다. 그 한 치의 틈새 햇살 비치는 벼랑 위에 물속 잠긴 아이들도 모두 나와 함께 기쁜 심호흡을 할 것이다. 

   





[김윤곤 칼럼 4]
김윤곤 / 시인.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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