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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실종 - 세월호에서 종북몰이까지
[이재성 칼럼] 더 인간적인 삶을 위한 선택,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다
2014년 12월 28일 (일) 17:03:39 평화뉴스 pnnews@pn.or.kr

그 어느 해보다 다사다난(多事多難)했던 2014년이 저문다. 다사다난이란 말 그대로 여러 가지 일들과 탈이 잦았던 한해였다. 필자는 작년 2013년 연말 칼럼에서 한국사회를 진단하는 단어로 ‘정치 실종’을 언급했던 적이 있다. 당시 정치 부재의 자리를 대신했던 것은 오만과 편견으로 가득한 ‘불통’이었고, 그것이 남긴 온갖 찌꺼기와 오물을 고스란히 넘겨받아 출발한 것이 2014년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2014년 새해 벽두 정부가 꺼내든 카드는 인간적인 삶에 기반한 경제민주화가 아니라 물적 성장과 성공 신화에 기반한 ‘창조 경제’였다. 그러니 시작부터 삐걱거릴 수밖에 없었다. 2014년 한국호의 항로는 이미 시작부터 험로를 잉태하고 있었던 것이다.

필자는 그 칼럼(이재성 칼럼-우리가 원하는 세상)에서 수많은 갈등과 불통에도 불구하고 2014년 새해에 우리가 원하는 세상은 자율적인 사회임을 강조했었다. 어떻게라도 ‘희망’을 붙들고 싶었던 간절함이 있었다. 사람들이 자신의 삶이 처한 여건을 통제할 능력이 없다고 생각하거나 피할 수 없는 상황에 대해 체념하고 항복하게 된다면 더 이상 스스로 규정하고 운영하는 자율적인 사회는 유지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타율적인 사회라는 배에 승선한 사람들은 쉽게 자신의 처지를 받아들이고 선박의 항해 일정을 자신들이 결정할 수 있다는 희망을 포기하기 때문에 이런 사회에서 자치적이고 자율적인 인간 세상을 향한 모든 모험은 끝내 막을 내리고 말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불행히도 필자의 예언 아닌 예언은 엉뚱한 곳에서 적중해버렸다. 지난 4월 16일 세월호 참사라는 비극에서였다. 사실 이것은 필자의 예언적 능력이 아니다. 건전한 이성에 바탕한 공정하고 객관적인 시선으로 한국사회를 바라보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참사였다. 한국사회의 불행은 바로 여기에 있다. 건정한 이성에 기초한 공정하고 객관적인 관점이 통용되지 않는 곳에서 불행의 싹들이 무럭무럭 자라고 있었던 것이다. 다양한 자기주장이 불가능한 사회, 차이를 차별로 인식하는 사회, 선과 악의 극단적 이분법을 지향하는 사회에서 공정하고 객관적인 입장은 통용될 수 없다. 공정하고 객관적인 시선이 무너진 곳에서는 ‘몰이’나 ‘마녀사냥’과 같은 독버섯이 횡행하게 마련이다. 이런 곳에서 나타나는 것이 바로 ‘인간의 실종’이다.

   
▲ 'REMEMBER 20140416 세월호 대구시민 공감문화제'(2014.10.31 대구백화점 앞)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특정한 가치 판단을 종용하는 독버섯의 만연은 세월호 참사에 대처하는 정부의 태도에서 분명히 확인되었다. 우리는 인간미라곤 눈꼽만큼도 찾을 수 없었던 대통령의 연출된 모습에서 절망했고, 세월호 참사를 그저 대형 교통사고로 치환하려는 안일한 사고방식, 혹은 유가족에 대한 보상 문제나 생존 학생의 대학특례입학 내지는 희생자의 의사자 지정에 관한 쟁점으로 문제의 핵심을 흐려버리는 정부의 태도에서 재난이나 재앙에 대한 정부의 문제해결 능력의 무능함에 얼마나 분노했던가. 죽임으로 내몰린 아이들의 생명은 어느새 보상의 이름으로 물건이 되어 있었고, 유가족들은 아이들을 팔아 장사한다는 비인간적인 부모가 되어 있었다. ‘인간의 사물화’를 웅변적으로 보여준 것은 바로 정부였다. 정부 각 부처의 초기 대응력에서는 역시나 타율적 사회의 특징인 오만과 편견으로 가득한 불통 라인이 골 깊게 패어 있었던 것이다. 대충 넘기려고 뭉기적거리는 정부의 태도에 전 국민적 공분이 일어나고 나서야 허둥지둥 세월호 특별법을 제정하는 꼴사나운 모습도 연출했다. 지금도 정부는 유가족이 진정으로 바라는 투명한 진상규명을 시작도 않고 영결식부터 우선 강행하면서 유가족들의 가슴에 깊은 상처만 남기는 말만 무성히 남긴 채 해를 넘길 준비를 하고 있다. 

정부의 무능과 무지로 인해 세월호 참사는 역설적으로 권력 의지의 도덕성에 심각한 타격을 주는 촉매제가 되는 결과를 낳기도 했다. 권력 의지의 치명적인 민낯, 비인간적인 모습이 만천하에 드러난 것이다. 아무리 감추려 애써도 국민들은 다 알아버렸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가 되어버렸다. 전국적 서명 작업으로 촉발된 국민의 자발적 연대를 경험한 권력의 입장에서는 위기를 벗어날 묘수가 필요했다. 권력은 비인간적인, 너무나 비인간적인, 그러면서도 가장 효능이 좋은 네 가지 특효약을 대중매체를 통해 선전했다. 이름 하여 “신은미 종북 콘서트 사건, 북한을 테러지원국으로 몰고 갈 수 있는 소니 해킹 사건, 통진당 해산 결정, 전작권 포기” 등이다. 기본적으로는 ‘종북몰이’라는 코드와 결합된 사건들이다.

   
▲ 보수단체의 '신은미&황선 전국 토크콘서트' 반대 집회(2014.12.9. 대구 동성아트홀 앞)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한국사회의 사회적 건강성을 체크하기 위해서는 꼭 확인해야 하는 용어가 ‘종북’이다. 이 용어가 사용되기 시작하면서 한국사회에서 종북이라는 위협 세력은 인간이 아니라 유령이나 다름없다. 종북은 무조건 배제되고 제거되어야 할 비인간적 존재이다. 종북의 문제를 민주주의의 위기로만 진단하는 것은 추상적이다. 한국사회에서 종북은 ‘모든 인간적 존재 근거의 박탈’이라는 매우 구체적인 용어다. 민주주의와 인권이 유린되고 있는 이런 나라를 어떻게 민주주의 국가라고 할 수 있는가. 인간 삶의 온전한 근거를 박탈하고서 어떻게 자유민주주의라고 떠들 수 있는가.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듯 권력의 부패를 종북으로 가리려고 하는가.

권력이 부패하는 경향은 권력이 인간의 나쁜 속성들을 풀어놓음으로써 발생하는 현상이다. 인간은 타인의 존경을 받을 때보다 타인의 기를 제압할 때 자신이 권력을 행사하고 있음을 확인한다. 권력을 행사한다는 것은 타인의 선택권과 결정권을 박탈하고 타인의 의지와 무관하게 타인을 마음대로 이용할 수 있는 지위에 있음을 뜻한다. 이러한 즐거움과 편리함 앞에서 분별력 따위는 쉽게 사라진다. 분별력 없음에는 인간이 끼어들 여지가 없다. 제거되어야 할 비인간만이 남는다. 혹시라도 현존 권력은 종북이라는 무기로 타인들을 절대적으로 통제할 수 있다는 권력의 즐거움을 누리고 있는 것은 아닌가.

권력의 안전에 대한 위협에 대응하는 정부, 즉 타율적인 사회는 타인의 자유를 위축시켜 권력의 안전을 도모하려고 한다. 하지만 이 경우 권력은 위협 세력에게 부분적인 승리를 안겨주게 된다는 사실을 모른 채 권력에 취해 있다. 벤저민 프랭클린이 “일시적인 안전을 위해 필수적인 자유를 포기하는 사람은 자유도 안전도 누릴 자격이 없다.”고 일갈했던 것처럼, 이제 우리는 종북이라는 공포와 구속으로 만들어진 방 안에 갇혀 안전하게 살 것인지, 아니면 사소한 위험을 무릅쓰고 자유롭게 살 것인지를 선택해야 할 지점에 서 있다. 이것이야말로 보다 더 인간적인 삶을 위한 선택의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다. 권력의 영웅적인 미덕은 현실 권력을 고결하게, 타인들의 이익을 위해 사용할 때만 가능하다.

   





[평화뉴스 이재성 칼럼 54]
이재성 / 계명대 교양교육대학 교수. 평화뉴스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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