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단이 두 가지? 인혁당 둘 다 무죄났는데 대통령은…

미디어오늘 이하늬 기자
  • 입력 2015.05.31 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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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인혁당 사건도 50년만에 무죄 판결…"앞으로의 판단에 맡긴다"던 박 대통령 사과할까

 
사상 최악의 ‘사법살인’으로 이어진 이른바 ‘1차 인민혁명당 사건’이 대법원에서 무죄를 확정받았다. 1965년 대법원에서 유죄를 확정받은 지 50년 만에 판결이 뒤집힌 것이다. 2차 인민혁명당 사건 역시 지난 2007년~2008년 재심에서 모두 무죄를 선고받았고 검찰이 항소하지 않아 무죄가 확정됐다. 박근혜 대통령이 “두 개의 판단이 있다”고 했던 일련의 사건들이다.

대법원 3부(주심 권순일 대법관)은 1차 인혁당 사건의 당사자인 도예종씨 등 9명에 대한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한 고등법원 판결을 확정했다고 지난 30일 밝혔다. 이들은 옛 반공법 혐의로 유죄를 선고받았는데, 이번 재판부는 이에 대해 범죄의 증명이 없다고 본 것이다. 이들 9명 중 도예종(1924~1975)씨는 2차 인혁당 사건에 연루돼 사형이 집행되기도 했다. 

재판부는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와 당시 국회 조사자료 등을 볼 때 인혁당이 강령을 가진 구체적 조직이라는 사실이 입증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어 재판부는 “이들의 몸에 고문 흔적으로 보이는 상처가 있었고, 당시 이들은 변호인이나 가족과의 면담·접견도 허락되지 않은 상태에서 조사를 받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당시 기소됐던 13명 가운데 4명은 재심청구가 기각돼 누명을 벗지 못했다.
 
인혁당재건위 조작사건으로 사형을 선고받은 이들
인혁당재건위 조작사건으로 사형을 선고받은 이들
 
1차 인혁당 사건은 박정희 정권 시절이던 1964년 중앙정보부가 “북괴의 지령을 받아 반정부 조직인 인혁당을 결성해 국가 사변을 기획했다”며 수십명을 검거했던 사건이다. 당시 서울지검 검사들이 공소제기를 거부하며 사표를 제출하기도 했지만 도씨 등 13명은 결국 반공법 위반 등의 혐의로 기소됐다. 그리고 1년뒤 대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됐다. 7명 실형, 6명 집행유예다.

인혁당 사건의 비극은 1차에서 끝나지 않았다는 것에 있다. 10년 뒤인 1974년 중앙정보부는 유신반대 투쟁을 벌인 민청학련(전국민주청년학생연맹)을 수사하면서 그 배후·조종세력으로 1차 인혁당 사건 연루자들을 지목했다. 이에 따라 1차 관련자들은 다시 기소됐고 이듬해 8명에 대한 사형이 집행됐다. 2차 인혁당 사건으로 불리는 ‘인혁당 재건위 사건’이다.

당시 중앙정보부는 이들이 북한의 지령을 받은 남한 내 지하조직이라고 규정했고, 대법원에서 사형을 선고한 후 18시간만에 사형이 집행됐다. 이후 국제법학자협회는 이들의 사형이 이뤄진 1975년 4월 9일을 ‘사법 사상 암흑의 날’로 규정하기도 했다. 이후 2차 인혁당 사건 피해자 유족들은 재심을 청구했고, 2007년 1심 재판부는 무죄를 선고했고 검찰은 항소하지 않아 무죄가 확정됐다.

1·2차 인혁당 사건에 대해 박근혜 대통령은 ‘역사적 판단’ ‘앞으로의 판단’ 등을 강조한 바 있다. 그는 대선 후보시절이던 지난 2012년 9월 11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1차 인혁당 사건에 대해 “그 조직에 몸 담았던 사람들이 최근에도 여러 증언을 하고 있어 그런 것까지 다 감안해 역사의 판단에 맡겨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박범진 전 한성디지털대 총장이 2010년 학술총서에서 “1차 인혁당 사건은 조작이 아니”라고 한 것 등을 두고 한 말이었다.

해당 발언의 하루 전날에도 박 대통령은 MBC 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에서 (2차) 인혁당 사건 피해자들에게 사과할 의향이 있냐는 질문에 “앞으로의 어떤 판단에 맡겨야 하지 않겠는가”라고 말했다. 이어 당시 대통령은 “그 부분에 대해선 대법원 판결이 두 가지로 나오지 않았는가”라는 발언을 해 원심과 재심의 개념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원심 판단이 재심에서 뒤바뀌면 재심 판단이 확정 판단이 된다.

박 대통령의 ‘역사적 판단’ 발언으로부터 3년이 지났고 이번에 대법원 재판부는 “인혁당이 강령을 가진 구체적 조직이라는 사실이 입증되지 않는다”고 못박았다. 사실상 실체가 있는 조직이라고 볼 수 없다는 ‘역사적 판단’이 내려진 셈이다.

[미디어오늘] 2015-5-31 (미디어오늘 = 평화뉴스 제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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