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m 굴뚝 위에서 408일, '차광호' 기다린 건 체포영장

평화뉴스 박성하 인턴기자
  • 입력 2015.07.08 2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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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스타케미칼 '해고자 복직' 요구하며 최장 고공농성, 건강 양호 / 경찰, '업무방해' 체포


스타케미칼 해고자 차광호씨가 408일만의 고공농성을 끝낸 후 땅에 내려와 부인의 얼굴을 잡고 울고 있다(2015.7.8) / 사진.평화뉴스 박성하 인턴기자
스타케미칼 해고자 차광호씨가 408일만의 고공농성을 끝낸 후 땅에 내려와 부인의 얼굴을 잡고 울고 있다(2015.7.8) / 사진.평화뉴스 박성하 인턴기자

스타케미칼 해고노동자 차광호(45)씨가 45m 높이의 굴뚝에서 농성을 벌인지 408일만에 땅을 밟았다.

흐린 하늘에서 비가 쉼 없이 내리던 8일 저녁 7시 30분. 차씨는 애타게 그리던 가족들의 품에 안겼다. 2014년 5월 27일부터 "해고자 복직"을 요구하며 홀로 굴뚝에서 보낸지 꼬박 408일만이다. 당초 내려오기로 예정된 시간은 오후 2시였지만 5시간이 지나서야 가족들과 동료들을 만날 수 있었다. 경북지방경찰청이 차씨에게 발부된 체포영장을 집행하겠다는 의사를 내비춰 마찰을 빚었기 때문이다. 

동료들과 안고 인사를 하는 차광호씨의 볼을 어머니가 만지고 있다(2015.7.8) / 사진.평화뉴스 박성하 인턴기자
동료들과 안고 인사를 하는 차광호씨의 볼을 어머니가 만지고 있다(2015.7.8) / 사진.평화뉴스 박성하 인턴기자

장시간 실랑이 끝에 경찰과 합의를 본 차씨는 크레인을 타고 굴뚝 위에 올라 온 성정미 헤아림 숲치유센터 대표, 전규석 금속노조 위원장과 함께 굴뚝 위에서 사용한 생필품들을 정리했다. 저녁 7시쯤 드디어 크레인을 타고 내려오던 차씨는 확성기를 들고 스타케미칼 공장 밖에서 자신을 기다려준 600여명의 사람들에게 "우리 노동자들이 정의롭고 바른길을 가야 사회가 변할 수 있다"고 외쳤다.

그리고 저녁 7시 30분 차씨는 지상으로 내려오자마자 부인과 어머니의 얼굴을 잡고 눈물을 흘렸다. 이어 차씨는 가족들과 동료들에게 "우리의 싸움이 끝나 것이 아니다"며 "노동자들이 고용을 쟁취하고 노동자로서, 사람으로서 살아갈 수 있도록 같이 만들어 나가자. 지켜봐 달라"고 말했다. 그러나 땅을 밟은 지 5분도 안돼 차씨는 경찰이 준비한 구급차에 이송됐다. 그리운 이들과의 만남은 너무 짧았다.

전국금속노조에 따르면, 차씨는 혜원성모병원에서 건강상태를 점검 받고 큰 문제가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현재 차씨는 칠곡경찰서에 업무방해와 건조물 침입 혐의로 체포된 상태다. 이와 관련해 전국금속노조는 9일 오전 10시 칠곡경찰서 앞에서 '차광호 석방 촉구 기자회견'을 열 예정이다.  

차씨가 농성을 벌인 경북 스타케미칼 공장 굴뚝(2015.7.8) / 사진.평화뉴스 박성하 인턴기자
차씨가 농성을 벌인 경북 스타케미칼 공장 굴뚝(2015.7.8) / 사진.평화뉴스 박성하 인턴기자

8일 오전 10시. 차씨를 내려줄 크레인과 구급차는 이미 굴뚝 아래에 대기중이었다. 그러나 경찰은 체포영장 집행을 고집하며 차씨가 내려오는 즉시 경찰 호송차에 태워 병원으로 가겠다는 말을 반복했다. 차씨 동료인 스타케미칼 해고자 복직투쟁위원회와 차씨의 가족들은 짧은 인사라도 허락해달라고 맞섰다. 5시간 대치 동안 스타케미칼 공장 안팎으로 6개 중대의 경찰이 차씨 주변에 대기했다. 

이 과정에서 차씨의 어머니 오정자(73)씨는 경찰의 출입 차량을 막아선 뒤 "엄마가 아들을 보러 왔는데 그것 하나 허락해주지 않느냐"며 "당신들도 부모님이 있을 것 아니냐. 입장바꿔서 한 번 생각해 보라. 아니면 누가 나와서 변명이라도 해보라"고 울부짖었다. 경찰은 묵묵부답이었다.  

차씨가 내려오기 전 체포영장을 집행하기 위해 공장 안에 대기 중인 경찰병력에게 차씨의 어머니가 소리를 치고 있다(2015.7.8) / 사진.평화뉴스 박성하 인턴기자
차씨가 내려오기 전 체포영장을 집행하기 위해 공장 안에 대기 중인 경찰병력에게 차씨의 어머니가 소리를 치고 있다(2015.7.8) / 사진.평화뉴스 박성하 인턴기자

차광호씨는 지난 2014년 5월 27일부터 올해 7월 8일까지 꼬박 408일 동안 경북 칠곡군 석적읍 중리 45m 높이의 스타케미칼 공장 굴뚝에서 농성을 했다. 스타케미칼 해고근로자 11명에 대한 "복직"을 요구하기 위해서다. 앞서 김진숙 민주노총부산지역본부 지도위원의 309일간 한진중공업 고공농성보다 99일이 길어 우리나라에서 최장기간 고공농성을 벌인 슬픈 기록의 당사자가 됐다.

스타케미칼은 2010년 폴리에스테르 원사 제조업체인 옛 한국합섬을 헐값에 인수한 뒤 공장을 가동했다. 그러나 지난 2014년 1월 폐업 후 매각절차에 들어가면서 노동자 228명의 희망퇴직 신청을 받았다. 사실상 대량해고를 하겠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차씨 등 노동자 28명은 이를 거부해 해고됐다. 이 가운데 해고자 11명은 스타케미칼 해고자복직투쟁위를 결성하고 지금까지 투쟁을 벌이고 있다. 

앞서 6일 민주노총 금속노조와 스타케미칼 해고자복직투쟁위는 스타케미칼 모회사인 스타플렉스와 교섭을 갖고 해고자 11명을 모두 복직시키기로 합의했다. 합의안에는 ▷회사 별도 법인 설립 후 해고자 11명 고용 보장 ▷법인 설립과 고용은 2015년 12월 31일까지 완료 ▷노조 승계와 활동 보장 ▷모든 민·형사상 소송, 고소와 고발 취하 등의 내용이 포함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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