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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미문화원 폭파', 33년만에 진실 밝힐 재심 열릴까
박종덕·함종호 등 5명 재심청구 "감금·고문, 자백강요" / 당시 수사 경찰관 "기억 안난다"
2015년 12월 18일 (금) 13:49:21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pnnews@pn.or.kr

"어르신 제 얼굴 보세요. 기억나세요? 안면이 있어요. 이렇게 불쌍하다고 보셨죠"
"정확하게 잘 기억이 안나는데 눈에 익어요. 모르겠어요. 너무 오래전 일이라..."


1983년 대구 미문화원 폭파사건 용의자로 지목돼 '국가보안법 위반' 등 혐의로 징역 3년형을 선고 받았던 박종덕(56)씨는, 당시 자신을 수사한 경찰관을 다시 법정에서 만나 자신을 기억하냐고 물었다. 현재 경찰을 퇴직했지만 당시 대구지방경찰청 형사과 경사였던 변모(76)씨는 희미한 기억을 떠올렸다. 

33년만의 만남이었다. 세월이 지나 중년의 경찰은 어느덧 흰머리 희끗한 노년이 됐고, 용의자로 지목된 청년은 중년이 됐다. 경찰서 대공분실에서 경찰과 용의자로 만난 이들은 33년만에 법정 증인으로 섰다. 서로 얼굴을 보며 기억을 더듬어 과거를 떠올렸다. 하나의 사건을 둔 서로 다른 증언이 얽혔다.

   
▲ (왼쪽부터)박종덕, 함종호, 손호만씨(2015.12.17.대구지법)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대구지방법원(제2형사단독 김태규 부장판사)은 17일 '대구 미문화원 폭파사건'에 대한 재심 여부를 결정하기 위한 심문기일을 진행했다. 이날 심리에는 이 사건으로 국가보안법 위반 등 혐의로 '유죄' 판정을 받은 박종덕·함종호(58)·손호만(57)씨와 이들을 수사한 전 대구경찰 변모씨, 이 사건을 '인권침해' 사건으로 규정한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전 조사관 임채도씨가 증인으로 참석했다. 

대구지방경찰청에 따르면, 지난 1983년 9월 22일 저녁 9시 30쯤 대구시 중구 삼덕동 대구 미국문화원 정문 앞에 높인 정체불명의 가방에서, 제작회사명이 적히지 않은 TNT, 부비트랩, 전기뇌관 등 폭발물이 터져 1명이 숨지고, 4명이 부상을 입는 사고가 발생했다. 국가안전기획부, 대구지방경찰청, 국군, 육군 등은 합신조(합동신문조)를 조직해 수사를 벌였다. 합신조는 1년 2개월간 용의자 749,777명을 선정해 수사를 했다. 하지만 폭파사건 범인을 검거하지 못하고 1984년 11월 수사를 종결했다.

   
▲ 1983년 9월 23일 <동아일보> 2면 정치에 나온 '대구 미문화원 폭파사건' 기사

이 과정에서 합신조는 용의자를 '남파간첩', '국내 좌경 불순분자'로 추정해 장기수사를 이어갔다. '학생운동권'이 용의선상에 오른 이유다. 수사본부는 경북대 학생운동권이던 박종덕, 함종호 등 7명을 금지도서를 보유했다는 등의 이유로 국보법, 반공법, 집시법 위반 혐의로 구속했다. 그러나 경찰이 이들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 받은 시점은 1983년 10월 26일로 기재된 반면, 진술조서 일자는 이보다 앞선 9월 30일까지 거슬러간다. 때문에 박종덕씨 등은 "영장 없이 구금해 고문을 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당시 사건으로 유죄 판결을 받은 박종덕씨 등 5명은 진실화해위의 2010년 6월 결정문을 인용해 이 사건에 대한 재심청구를 지난해 법원에 냈다. 진실화해위는 결정문에서 "박종덕 등은 대구 미문화원 폭파 사건과 관계없이 반국가단체 고무·찬양·동조죄 등으로 구속돼 유죄 판결을 받았다"며 "조사 결과, 경찰이 약 30일간 불법구금한 상태에서 가혹행위를 가하고 자백을 강요하는 등 인권을 침해하고 국가보안법 위반 등으로 처벌받도록 한 반인권적 사건임이 밝혀져 진실규명이 필요하다"고 권고했다.

형사소송법(제420·422조)은 '원판결의 증언·증거물이 허위나 위조인 것이 증명될 경우 유죄 판결을 받은 자의 이익을 위하여 재심을 청구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때문에 박종덕씨 등 5명은 당시 사건이 "불법구금과 고문 등 허위로 자백을 강요받은 조작된 사건"이라며 재심을 청구하게 됐다.

   
▲ 1983년 12월 09일 <동아일보> 11면 사회, 미문화원 사건을 '간첩' 소행이라 보도한 기사

두 번째로 열린 이날 심문에서는 사건 당사자들이 처음으로 증언을 했다. 검찰 측은 유죄 판결을 뒤집을 수 없는 이유로 "고문을 입증 할 증거 부족", "재심청구한 신청인들의 진술에만 의존", "진실화해위 결정문에 대한 신빙성 부족", "수사 경찰들의 가혹행위 부인" 등을 들었다. 당시 대구경찰청 형사과 경사였던 변씨는 이날 증인석에 서서 검찰 측의 입장을 뒷받침하고 나섰다. 

변씨는 "강제구금과 고문은 전혀 알지 못하고 기억도 안난다"며 "멍자국이나 상처도 못봤고 고문 소리도 못 들었다"고 가혹행위 사실을 전면 부인했다. 또 "오래전이라 기억이 가물가물하다"면서 "나는 쫄병으로 수사 자체에 많이 참여하지 못했다. 대부분 서울에서 내려온 대공과에서 수사를 지휘했다. 대구시경은 거들었다"고 밝혔다. 이어 "각자 업무가 분담돼 나는 수사만 했지 연행 과정은 알지 못한다"면서 "출퇴근을 해서 저들이 계속 구금돼 있었는지 출입을 자유롭게 했는지 알지 못한다"고 덧붙였다.

변씨의 증언에 이어 박종덕씨와 함종호씨, 손호만씨의 증언도 뒤따랐다. 박씨는 "저 분(변씨)에게 직접 고문 받은 기억은 저도 없다"며 "대구경찰 중 최모 계장은 4~5일 정도 벗겨놓고 때린 것 같은데 저 어르신은 아니다"고 설명했다. 함씨도 "원대동 대공분실 옆 2~3층짜리 안가(안전가옥)에서 고문을 당했는데 저 분은 거기 없었다"며 "오히려 저 분은 우리를 동정적으로 본 기억이 난다"고 말했다.  

또 박씨는 "대구경찰은 주로 낮에만 조사했다. 대공과 경찰들이 주로 잠도 안재우고 벗기고 때리고 고문했다. 다만 일부 대구경찰 중 특진 욕심에 고문을 한 이들도 있었다"고 설명했다. 손씨도 "사건 하루 뒤인 9월 23일 경북도청 옆 안가에 끌려가 대구경찰들에게 두들겨 맞았다"면서 "1년6개월 징역형을 선고 받고 반년 가까이 옥살이를 하다 특사로 풀려날 때까지 강제구금돼 있었다"고 밝혔다.  

   
▲ 박씨 변호인이 심리 당시 가져 온 '진실화해위' 결정문(2015.12.17)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고문기술자'로 악명을 떨친 이근안씨의 이름도 이날 심리에서 거론됐다. 이씨는 전두환 군사정권 당시 경찰청 치안국 대공분과 소속 경위로 당시 이 사건에 투입돼 수사를 총괄했다. 재심청구 신청인들은 이씨를 가혹행위 주도자로 지목하고 있다. 이씨에 대한 증인신청은 본인 거부로 이뤄지지 못했다. 

김태규 판사는 "이근안씨 이름은 언론에 워낙 많이 나와 한 번쯤 들어봤을 것"이라며 "경위 정도가 본부 수사를 지휘하는 것이 자주 있는 일이냐"고 변씨에게 의문을 제기했다. 또 "이근안씨는 고문기술자로 알려져 있다"면서 "혹시 당시 이를 뒷받침할 만한 증거나 분위기는 느끼지 못했냐"고도 물었다. 이에 대해 변씨는 재차 "이유를 알지 못한다. 기억이 안난다. 전혀 알지 못하겠다"고 일축했다.
  
한편, '대구 미문화원 폭파사건' 재심청구 3차 심문기일은 오는 1월 26일 대구지법에서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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