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만과 불통에 대한 통렬한 심판, 그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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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두현 칼럼] "20대 국회, 잘못된 법 바로잡고 확고한 민주체제 정착시켜야"


20대 총선의 결과를 요약하면 새누리당 심판, 더불어민주당 1당 등극, 국민의 당 선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아무도 예상치 못했던 결과였다. 대부분의 여론조사와 선거전문가들은 새누리당이 과반을 넘어 국회선진화법을 무력화 시킬 수 있는 180석을 확보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았다. 심지어 개헌이 가능한 200석을 확보할 것이라는 예상도 많았다. 제 1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선전해야 110석이고 100석 내외가 될 것이라는 분석이 우세했다. 80석 정도가 가능할 것이라는 우울한 전망도 있었다. 제 2야당인 국민의 당은 호남의 선전을 바탕으로 30석 내외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다. 새누리당이 압승할 것이라는 전망의 이유는 선거를 치러본 소위 선수들(?)이라면 누구나 이야기하는 승패의 결정적 요소인  선거구도가 새누리당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하기 때문이다.

첫째, 1여 다야 구도로 인해 과반 가까운 의석을 차지하고 있고 몇 천표, 심지어 몇 백표 차이로 승부가 갈리는 수도권에서 새누리당의 승리가 예상되었기 때문이다. 둘째, 총선 시기 민심의 흐름을 만들어내는 여론 환경이 야당에 절대적으로 불리하기 때문이다. 소위 기울어진 운동장이라고 불리는 여론환경은 종편은 물론 공중파도 여당 편향적이다. 기사의 양은 물론이고 여당에 불리한 사안 숨기기, 야당에 불리한 사안 부풀리기, 북한 관련 뉴스 도배하기 등으로 이번 총선에서도 방송과 뉴스는 공정한 심판자를 넘어 선거에 직접 뛰어든 선수가 되었다. 이러한 불리한 구도를 넘어설 수 있는 것은 주체의 대응인데 이번 선거에서는 주체의 대응조차 시원치 않았다. 1여 다야구도를 넘어설 수 있는 후보단일화는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고 비례공천파동으로 국민들의 선거참여 의지를 꺾였다. 제 1야당의 ‘경제심판론’은 물론이고 제 2야당의 ‘양당심판론’ 등 총선의제 역시 국민들에게 설득력 있게 다가오지 않았다.

구조적 불리함과 주체의 대응 미숙은 총선결과에 대한 암울한 전망을 더욱 현실화하는 듯 했다. 그런데 4월 15일 총선일 오후 6시에 나온 출구조사 결과는 물론, 실제의 선거결과는 모두의 예상을 뛰어넘는 새누리당의 참패와 더불어 민주당의 승리, 국민의 당의 선전이었다. 어떻게 이런 결과가 가능했던 것일까?   

참패의 근본 원인은 오만과 불통

새누리당의 총선 성적표는 참담했다. 선거 하루 전날까지 과반 달성이 어렵다며 과반을 달라는 읍소는 엄살로 받아들여졌다. 새누리당은 여의도 연구원의 130석 예상보다 미달한 122석 확보로 1당 지위마저 상실케 되었다. 새누리당은 수도권 122개 의석 중 35석(28.6%)을 얻는 데 그쳐 참패했다. 아성이라고 여겼던 영남권에서 마저 총 65석 중 17석을 야당과 무소속에게 내주었다. 더불어 민주당은 소위 지역기반인 호남에서 28석 중 3석 획득에 그치는 참패를 하고도 수도권에서 탄핵열풍이 몰아치던 17대 총선의 성적 65곳(58.0%)을 뛰어 넘는 82곳(67.2%)을 획득하는 대약진에 힘입어 123석을 획득, 제 1야당이 되는 예상외의 승리를 거두었다.

무릎 꿇고 읍소하는 대구 새누리당 후보들(2016.4.6.대구문화예술회관)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무릎 꿇고 읍소하는 대구 새누리당 후보들(2016.4.6.대구문화예술회관)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1여 다야와 불리한 여론환경 등 구조적 불리함과 제 1야당의 공천 파동과 총선전략의 미흡 등 주체의 대응 미숙에도 불구하고 여당의 참패와 야당의 대승이라는 결과를 가져오게 한 것은 선거구도를 뛰어넘는 국민들의 현명한 전략투표 때문이었다. 다시 말해 수도권에서 소위 교차투표를 통해 국민들은 정당투표는 지지정당에게 하더라도 지역구 투표는 당선가능한 야당후보에게 표를 몰아주었던 것이다. 1여 다야의 불리함 선거구도를 국민들은 전략투표로 돌파해냈던 것이다. 물론 국민들의 이러한 전략투표가 가능했던 것은 선거막판 문재인을 비롯한 더불어민주당의 대대적인 호소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최근의 악화된 경제상황과 삶의 팍팍함, 헬조선으로 대변되는 희망의 상실 등도 더불어민주당의 경제심판론이 수도권을 중심으로 투표에 영향을 준 요인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는 부차적인 요소이다. 보다 근본적인 요소는 국민들의 짧게는 3년 길게는 8년 새누리당과 이명박, 박근혜정권에 대한 인내가 폭발했던 것이다. 특히 20∼40세대의 간절함이 1여 다야 구도의 불리함을 돌팔할 수 있었던 힘이었다.

새누리당 참패의 원인은 현상적으로는 총선 하루전날까지 옥쇄파동 등을 일으켰던 공천파동이다. 하지만 본질적으로는 쌓이고 쌓인 정권의 오만과 불통, 그리고 무능에 대한 심판이라고 봐야 한다. 역사교과서 국정화 추진과 한일일본군위안부 졸속합의 등에서 보여준 밀어붙이기식 국정운영, 세월호 참사와 메르스 사태 등에서 보여준 무능한 국정운영에 대한 국민들의 분노가 폭발한 것이다. ‘보수는 혁신’이라는 새누리당의 화장술도 이번에는 통하지 않았던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붉은 옷을 입고 실질적으로 여당의 선거운동을 하였고 배신의 정치와 국정의 발목을 잡는 야당심판을 요구하였지만 국민들은 소통하지 않는 불통의 리더십, 선거개입 논란은 무시하는 오만의 리더십과 무능한 국정운영에 분명한 경고장을 보인 것이다. 특히 경제민주화를 내걸고 당선되었던 박근혜 대통령의 경제무능과 재벌위주의 경제운영 등 국민들을  배신한 정치를 심판한 것이다.

유쾌하지 않는 승리, 더불어민주당
 
더불어민주당은 이번 총선에서 비례대표 공천파동과 호남공천 실패에도 불구하고 제 1당이 되었다. 호남의 참패에도 불구하고 제 1당이 된 것이다. 수도권의 압승과 충청, 영남권의 선전의 덕이다. 호남의 참패는 역설적으로 더불어민주당을 전국정당으로 만들어 주었다. 호남을 기반으로 한 더불어민주당이 호남에서 얻은 의석(3석)보다 영남에서 얻은 의석(9석)이 3배가 넘는다. 또한 지금까지 여당의 텃밭으로 여겨졌던 수도권의 서울 강남, 성남 분당 등에서도 승리했다. 분명 유의미한 성과이다. 그러나 마냥 웃을 수만은 없는 승리라는데 역설이 있다.

우선 더불어민주당은 선거 막판 문재인 전대표의 연이은 호남방문과 대선불출마 가능성 등 배수의 진을 쳤지만 광주에서 전석을 잃는 등 참패했다. 지역구 득표율은 더민주 37%, 국민의당 46%로 9%p 차이(광주 34%-56%, 전북 39%-42%, 전남 38%-44%)에 불과했다며 참패하지 않았다고 강변하는 것은 변명이다. 더불어민주당은 분명하게 국민의 당과의 호남대전에서 참패했다.

더불어민주당은 과연 호남민심을 회복할 수 있을까? 이는 왜 호남민심을 잃었는가에 대한 진단이 명확해야 가능하다. 진단이 정확해야 올바른 처방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참여정부 당시 호남을 홀대하지 않았다는 근거를 들이대고 호남 출신 몇몇에게 주요 당직을 준다고 해서 호남민심이 돌아서지는 않을 것 같다. 문제의 근본은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호남인들이 거리감을 느낀다는데 있다. 고난과 시련을 함께 하며 정서적으로 일체화되었던 민주당이 아닌 왠지 다른사람들이 주인이 된 정당에 호남인들이 객체화되고 있다는 정서말이다. 이는 호남인들이 다시 더불어민주당의 주체로 설 수 있도록 해야 하며 자기정당으로 느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첫째, 호남인들이 더불어민주당의 주체로 설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장기적인 인재발굴과 양성 프로그램이 필요할 것이다. 둘째, 자기정당으로 느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1,2차례의 이벤트식 방문이 아니라 호남의 선택을 존중하고 겸허하게 끊임 없이 다가서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런데 수도권을 중심으로 전국정당이 된 더불어민주당이 호남민심잡기에 공을 들일 필요가 있나라는 반론이 제기될 수 있다. 일부에서 이미  세대구도가 지역 구도를 능가할 것이며 20∼40세대가 한국정치의 다수파가 될 가능성이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따라서 2017년 대선 역시 이들을 중심으로 전략을 짤 경우 승리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2002년 대선과 열린우리당의 기억은 이러한 전망을 우울하게 한다. 2002년 대선에서의 노무현 대통령 당선 역시 20∼40 세대의 적극적인 참여와 지지로 인해 가능했지만 기본적으로는 호남의 압도적 지지를 기반으로 한 것이었다. 20∼40세대의 참여와 지지는 수도권 승리와 영남의 균열에 기여했지만 부차적이었다고 볼 수 있다. 2004년 열린우리당의 총선 승리 역시 20∼40세대의 탄핵역풍에 기댄 것이지만 호남의 승리가 있었기에 과반의석 확보가 가능했다. 이후 호남의 지지를 잃은 열린우리당의 잇따른 선거참패와 해체의 과정은 지역기반 없는 정당의 운명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수도권의 민심은 고정적인 것이 아니다. 언제라도 정치상황에 따라 급변할 수 있는 것이다.

<한국일보> 2016년 4월 15일자 4면(선거)
<한국일보> 2016년 4월 15일자 4면(선거)

지역기반을 넘어 세대기반에 바탕을 둔 전국정당화의 이상은 이미 열린우리당 시절에 시도되었고 좌절된 바 있다. 만일 더불어민주당이 세대, 또는 계층을 중심으로 새로운 기반을 확고히 하지 않는다면 열린우리당의 전철을 밟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는 것이 현실적일 것이다. 과연 더불어민주당이 집토끼인 호남과 야권이 고정지지층을 다지는 전략으로 갈지 산토끼인 20∼40세대와 영남, 그리고 중도층을 확보하는 전략으로 갈지는 앞으로 두고볼 일이다. 하지만 집토끼와 산토끼 모두 잡지 않으면 2017년 대선 승리가 불가능하다는 것은 분명한 일이다. 문제는 어느 토끼를 잡아야 하느냐고 아니라 두마리 토끼를 다 잡을 방안과 과정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20대 국회, 확고한 민주제도 정착시켜야

19대 국회는 이제 5월말로 끝이 난다. 여소 야대로 바뀐 20대 국회에 대한 기대가 어느때보다 크다. 당장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은 18일 총선이후 첫 3당 회동에서 6월 말 종료되는 세월호특별조사위원회의 활동 기간을 연장하는 세월호특별법 개정안과, 세월호 사고 진상규명을 위한 특검 요청안을 요구할 예정이다. 5월 말로 끝나는 19대 국회에서 가장 시급히 처리해야 할 법안이라는 판단에서다. 이 외에도 두당은 역사교과서 국정화 저지, 테러방지법 개정 등 입장을 같이 하는 법안이 많다. 하지만 국민의당은 새누리당과 입장을 같이 하는 법안도 있다. 벤처기업 투자 활성화 등 경제관련 법안의 경우 비슷한 입장이 많다. 따라서 새누리당과 더불어민주당 등 양당이 과반을 확보하지 못한 상황에서 국민의 당의 동의를 받지 못할 경우 어느당도 법안을 일방적으로 처리할 수가 없는 상황이다. 국민의 당이 단순 캐스팅 보트 역할이 아니라 20대 국회를 주도하겠다고 하는 배경이다.

그렇다면 20대 국회에서 가장 시급한 법안은 무엇일까? 개별적으로 보면 모두가 시급한 법안이라고 볼 수 있다. 일방적으로 몰아부친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저지해야 하고 304명의 목숨을 앗아간 세월호의 진상규명을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국민들을 일상적으로 감시할 수 있는 테러방지법 역시 개정되어야 할 것이다. 어느 것 하나 시급하지 않은 법안이 없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20대 총선에서 나타난 민심을 제대로 반영하는 것이다. 20대 총선의 민심은 87년 이후 확고하다고 생각했던 절차적, 민주적 민주주의와 기본적인 인권이 후퇴하고 무너지는데 대한 저항이라고 볼 수 있다. 3권 분립을 무시하는 제왕적 대통령의 부활, 집회와 시위 그리고 표현의 자유의 후퇴, 언론의 불공정성 등 새누리당 집권 8년동안 후퇴한 민주주의를 회복시키고 불안한 미래에 대한 안전망을 확보하는 것이 20대 국회의 가장 큰 임무일 것이다. 시행령을 통해 청와대와 정부 자의적으로 상위 법안의 취지를 무력화시키는 행위도 금지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국가정보원이 6월부터 시행하겠다며 15일 입법예고한 테러방지법 시행령에는 군 병력의 민간 투입을 가능케 하는 조항을 삽입하는 등 국정원의 전횡과 민주주의·헌법 침해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시행령에 대한 국회의 견제, 통제 권한 강화가 필요한 이유이다.

어떤 이는 이번 총선에서 87년 체제의 붕괴가능성을 언급하기도 한다. 필자는 외려 이번 총선의 민의는 87년 체제로 불리는 형식적, 절차적 민주주의, 최소한의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요구로 보인다. 따라서 20대 국회는 87년 6월 항쟁을 비롯해 우리사회가 피와 땀을 흘려 이룬 민주주의가 불가역적으로 확고히 제도화 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또한 절차적, 형식적 민주주의를 넘어 내용적, 경제적 민주주의를 통해 양극화를 해소하고 사회안정망을 확대하는데에도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국정원 대선개입과 세월호 사건, 4대강 사업 등 이명박 정권 이후 발생한 의혹에 대한 진상규명이 제대로 이루어져야 함은 물론이다. 표로 드러나는 민심과 선거결과가 일치할 수 있도록 독일식 정당명부 비례대표제나 대선결선투표제 등을 도입하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일이다.

 2017년 대선의 성격은 이번 총선의 결과로 인해 극적으로 박근혜 정부의 심판의 의미를 넘어 1년 6개월간의 20대 국회의 성적을 평가하는 장으로 변화하였다. 제 1당인 더불어민주당이 20대 총선에서 나타난 민의를 받아 안고 20대 국회에 부여된 역할을 제대로 해야 하는 이유이다. 더불어민주당이 20대 국회 제 1당으로 도약한 것은 정권교체의 기회이자 부담이 된 것이다. 기회가 될지 부담이 될지는 온전히 더불어민주당의 몫이다.







김두현 / 평화통일대구시민연대 사무처장. 평화뉴스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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