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에 선 이들에게 대구 '촛불'의 길을 묻다

평화뉴스 김지연 기자
  • 입력 2016.12.14 2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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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무자들이 말하는 촛불 "우리는 조력자, 시민 자발성이 동력...헌재 압박·내각 총사퇴·적폐 청산 초점"


대구 광장에 80년대 민주항쟁 이후 30여년만에 최다 인파가 지난 한 달여간 거리로 쏟아졌다.

대선에서 박근혜 대통령을 압도적으로 지지한 도시. '박근혜·박정희' 기념물이 곳곳에 설치된 도시. 보수 여당에게 30년 넘게 몰표를 준 도시. 이곳 광장에서 십만여명의 시민들은 한 달 넘게 촛불을 들었다. '당신은 더 이상 우리의 대통령이 아니다'. 분노의 외침으로 든 촛불의 열기는 감히 한 겨울의 추위도 꺾지 못했다. 결국 국회는 촛불민심을 받들어 대통령 박근혜 탄핵소추안을 압도적으로 가결했다.

(맨위부터)대구2.28기념공원, 대구백화점, 중앙로에서 열린 1,2,3차 대구시국대회 / 사진.평화뉴스
(맨위부터)대구2.28기념공원, 대구백화점, 중앙로에서 열린 1,2,3차 대구시국대회 / 사진.평화뉴스

'보수 대구'에서 국정농단에 맞선 30년만에 최다 촛불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으로 대구의 콘크리트 지지층은 무너졌다. 대통령 박근혜를 만든 대구. 최근 대통령 지지율은 한 자리수로 추락했다. 6차례 대규모 시국대회가 열렸고 연인원 15만여명이 참석했다. 또 밤마다 시국발언대와 동네촛불도 뒤따랐다. 대략 16만명이 겨울 거리에서 함께했다. 

매주 토요일 '대구시국대회‘를 만드는 사람들

새로운 역사를 연 대구 촛불의 주인은 단연 시민들이었다. 그러나 시국대회 행사 전반을 이끈 조력자는 시민사회, 정당, 노동단체들이었다. 집회신고를 하고, 무대를 세우고, 프로그램을 짜고, 피켓·현수막을 제작하고, 행진노선을 경찰과 협의하고, 음향장비와 양초 컵 등 각종 물품을 준비하고, 안전문제를 해결하거나 언론 취재 협조 요청을 하는 등 이들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곳은 없다.

(맨위부터)중앙로, 동대구로, 국채보상로에서 열린 4,5,6차 대구시국대회 / 사진.평화뉴스
(맨위부터)중앙로, 동대구로, 국채보상로에서 열린 4,5,6차 대구시국대회 / 사진.평화뉴스

지역 58개 단체 연대로 11월 3일 출범한 '박근혜 대통령 퇴진 촉구 대구비상시국회의'는 곧 '박근혜 퇴진 대구시민행동'으로 이름을 바꾸고 42일이 지난 현재 86개 시민사회, 정당이 참여하고 있다. 시민행동은 매주 토요일 시국대회를 위해 30여명의 활동가들이 일주일의 시간을 쏟아붓고 있다.

월요일 시국대회 기조, 집회장소, 구호 등을 논의해 홍보·기획·대외협력 3팀으로 나눠 웹포스터 작업, 집회신고, 물품구매 등 실무를 준비한다. 당일에는 아침부터 물품을 나르고 무대를 설치한다. 회당 2천여만원 비용은 현장모금, 후원으로 충당한다. 시민들의 성원으로 시국대회가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왼쪽부터)위 - 서승엽 대구시민단체연대회의 운영위원장, 김선우 대구경북진보연대 집행위원장, 김영순 대구경북여성단체연합 대표 / 아래 - 한상훈 대구민예총 사무처장, 최일영 민주노총대구본부 정책국장, 심인고 최진욱 학생
(왼쪽부터)위 - 서승엽 대구시민단체연대회의 운영위원장, 김선우 대구경북진보연대 집행위원장, 김영순 대구경북여성단체연합 대표 / 아래 - 한상훈 대구민예총 사무처장, 최일영 민주노총대구본부 정책국장, 심인고 최진욱 학생

실무자들이 말하는 촛불의 의미와 방향 “우리는 조력자...광장은 시민들 공간"

시민행동 대변인 서승엽(52) 대구시민단체연대회의 운영위원장은 "개인의 국가조직 농단, 보수가치 붕괴 등 시민들이 집회에 나온 이유는 다양하고 뚜렷하다"며 "우리는 기술자, 조력자 역할만 했다. 시국대회 공은 시민들 것이며 광장은 민주주의 의식을 각성한 시민들 공간"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활동가들은 대중을 선도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어떤 의제를 시민에게 무리하게 대입시키면 안된다"며 "일단 헌재 탄핵안 인정에 압박을 가하고 총리 황교안 대통령 대행을 비롯한 내각 총사퇴, 박 대통령 즉각 사퇴 등을 수순으로 고려하고 있다"고 했다. 또 "그동안 적폐 청산 등 여러 현안 해결도 중요하다. 하지만 당장 해야할 일이 마무리되지 않은 시점에서 성급한 측면이 있다"고 밝혔다.

현 시국을 비판하는 전단지를 보고 있는 시민(2016.12.10.국채보상로)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현 시국을 비판하는 전단지를 보고 있는 시민(2016.12.10.국채보상로)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시민행동 상황실장인 김선우(45) 대구경북진보연대 집행위원장도 "정부의 잘못된 정책 강행과 역사를 되돌리려는 시도가 계속되는 한 시민들 분노는 여전할 것"이라며 "광장의 주인은 시민이며 탄핵안 가결도 시민들의 승리다. 이들이 야기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 촛불 동력을 이어가겠다"고 말했다.

탄핵안 가결 후 촛불의 동력이 꺼지지 않을까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시민행동 공동운영위원장인 김영순(50) 대구경북여성단체연합 대표는 "정권 부역자들과 민주주의 가치를 훼손한 이들을 처벌하고 바로잡는 것이 촛불 규모보다 중요하다"면서 "이미 탄핵으로 광장 민주주의를 체험한 시민들은 다시 새로운 의제가 만들어진다면 언제든 다시 나와 힘을 실어줄 것"이라고 했다.
 
탄핵 가결 후에도 시민들은 광장에서 촛불을 들었다(2016.12.10.국채보상로)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탄핵 가결 후에도 시민들은 광장에서 촛불을 들었다(2016.12.10.국채보상로)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시국대회 차수 늘수록 획기적인 아이디어 고민"

 
시국대회 차수가 늘수록 기획자들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무대음향, 프로그램 기획총괄을 맡은 한상훈(40) 민족예술인총연합회대구지부 사무처장은 "매주 특이하고 획기적인 아이디어를 짜내려 고민한다"며 "그러나 시민들에게 참여하기 쉬운 집회도 중요해 어깨가 무겁다. 누구나 광장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말 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서 나오기 편안하고 익숙한 집회를 기획하려고 한다"고 밝혔다.   

무대에서 3번의 사회를 본 최일영(39) 민주노총대구지역본부 정책국장은 "수 만여명이 한 목소리로 구호를 외칠 때 감동적이었다. 특히 6차 시국대회 때 1분 소등이 제일 기억에 남는다. 앞으로도 새로운 기획을 시도하고 싶다"고 했다. 이어 "예상보다 많은 시민들이 참여하는 것을 보고 시민들의 분노가 크구나 생각했다. 앞으로도 정치권이 촛불민심을 기만하면 분노는 더 커질 것"이라고 전했다.
 
대구 청소년 6백여명의 시국언선(2016.11.11.대구2.28기념공원 앞)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대구 청소년 6백여명의 시국언선(2016.11.11.대구2.28기념공원 앞)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두드러진 10대들의 참여...청소년 시국선언·시국대회 이끈 최진욱 학생

         
이번 정국에서 청소년들의 참여도 두드러졌다. 대구에서는 지난달 11일 6백여명의 청소년들이 박 대통령 하야 촉구 시국선언을 했고 지난 5일 동성로 한일극장 앞에서는 첫 시국대회도 열었다.
 
청소년 시국선언을 처음 제안했던 심인고등학교 2학년 최진욱(17) 학생은 "최순실 국정농단부터 정유라 입시 특혜까지 많은 학생들이 분노했다"면서 "시국선언 후 세월호 7시간, 약물중독 등 온갖 의혹이 불거진 지금 사회의 모든 잘못된 폐단을 깨달았다. 고위공무원들이나 정치권이 올바른 생각을 갖고 일했으면 좋겠다. 수준 미달인 정치인들이 너무 많다"고 비판했다. 또 "청소년들도 어른들 못지않게 생각하며 활동하고 있다. 기특하다는 표현보다 청소년 그 자체를 인정해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한편 '박근혜 퇴진 대구시민행동'은 오는 17일 오후 5시 중앙로에서 7차 대구시국대회를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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