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특성화고 실습생만 3천여명, '실습'에 가려진 노동인권

평화뉴스 김지연 기자
  • 입력 2017.04.03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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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전공 업무에 폭언, 임금체불도...시민사회 "노동인권교육 의무화" 등 정책 제안 / 교육청 "권한 밖"


대구 A특성화고등학교 3학년 학생인 나모(18)씨는 8개월째 B섬유업체에서 사무보조로 일하고 있다. 현장실습생으로 전공을 살리는 중이다. 하지만 반복되는 상사의 폭언과 초과근무로 매일이 괴롭다. 그만두고 싶지만 한 번 포기한 실습생에게 학교가 이직 기회를 잘 주지 않아 일을 접지 못하고 있다.  
  
"상사가 경력자와 비교한다. 매번 기분 나쁘게 말한다. 초과근무도 일상이다. 그만두고 싶다. 그런데 기회가 없을 것 같다. 선생님들은 '돌아오지 마라'고 한다. 어떻게 해야할지 잘 모르겠다"고 털어놨다.

편의점에서 담배판매대를 정리하고 있는 청소년 아르바이트 노동자(2015.12.8) / 사진. 평화뉴스 김지연 기자
편의점에서 담배판매대를 정리하고 있는 청소년 아르바이트 노동자(2015.12.8) / 사진. 평화뉴스 김지연 기자
프랜차이즈 카페에서 일하는 아르바이트 노동자(2014.10.15.동성로)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프랜차이즈 카페에서 일하는 아르바이트 노동자(2014.10.15.동성로)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대구지역 특성화고 3학년 학생 5천여명 중 졸업 전 미리 일을 하는 '현장실습생'은 특성화고·마이스터고 19곳, 3천여명에 이른다. 그러나 폭언, 초과근무, 임금체불 등 인권·노동침해를 당해도 끊어내기가 쉽지 않다. 교육부가 각 교육청을, 교육청은 다시 학교 취업률을 평가하는 구조라 실습생 스스로가 원치 않는 직장을 그만두기 어렵고 교육청도 이들을 보호할 장막이 없거나 있어도 부실하기 때문이다.

교사들도 이 상황을 모르지는 않는다. 대구 C특성화고 교사 김모(55)씨는 "현장실습 전에는 A 부서에 배치하기로 학교와 약속해놓고 학생이 출근하면 다른 부서에서 궂은일이나 단순 업무를 시키는 경우가 많다"며 "전공과 달라 일이 서투르면 폭언에 시달린다고 하더라. 헌데 자리는 부족하고 학교는 할당량처럼 취업 수를 채워야하는 압박감이 있어 평이 안좋은 업체에 소개시키는 형편"이라고 말했다.

특히 청소년 노동인권보호를 위한 조례를 제정해 현장실습생이나 청소년 아르바이트 학생들을 보호하는 서울, 광주 등 다른 지자체와 달리 대구에서는 이들의 노동인권을 지켜줄 최소한의 제도조차 없는 상태다. 대부분의 학교에서 취업 전 노동인권 교육은 유인물과 책자로 대신하고 있다. 취업 후 노동환경 실태 파악은 두 차례 담임교사의 지도가 전부다. 올 2월 달서구에서는 청소년 노동인권조례가 발의됐지만 보수단체와 의석의 과반 이상을 차지한 자유한국당 의원들의 반대로 상임위에서 무산됐다.

대구 특성화고 재학생 790명의 '청소년 노동교육 필요성' 실태조사 / 자료.대구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 제공
대구 특성화고 재학생 790명의 '청소년 노동교육 필요성' 실태조사 / 자료.대구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 제공
청소년 근로계약 위반사항 실태조사 / 자료.대구청노넷
청소년 근로계약 위반사항 실태조사 / 자료.대구청노넷

실태를 반영하듯 대구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가 지난해 지역 특성화고 학생 79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청소년 노동 실태조사에 따르면 81.4%가 '취업 전 교육을 받지 못했다'고 했다. 그 결과 32.1%가 '일하다가 다친 경험이 있다'고 했고 27.5%는 '반말·무시', 22.3%는 '임금체불 피해를 입었다'고 했다. 때문에 학생 81.2%는 '노동인권 교육이 필요하다'고 응답했다.

이와 관련해 지역 청소년·노동·교육단체 4곳(대구청노넷, 전교조대구지부, 민주노총대구본부, 알바노조대구지부)은 3일 대구교육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특성화고 현장실습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 방안이 필요하다"며 ▷교육청·고용노동청 청소년 고용사업장 공동 관리감독 ▷청소년 노동인권 교육과정 편성 의무화 ▷안심알바신고센터 활성화 ▷노동인권 전담교사 채용 ▷청소년 노동실태 전수조사 실시 등의 정책을 제안했다.

청소년 노동인권 증진 정책제안 기자회견(2017.4.3.대구교육청 앞) / 사진.평화뉴스 김지연 기자
청소년 노동인권 증진 정책제안 기자회견(2017.4.3.대구교육청 앞) / 사진.평화뉴스 김지연 기자

이들은 "최근 LG U플러스 전주고객센터에서 일한 특성화고 3학년 학생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안타까운 사건이 발생했다. 일하는 청소년의 취약한 노동조건이 원인"이라며 "파견형 현장실습은 땜질식 개선책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 교육당국은 대안적 직업교육 계획을 마련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손호만 전교조대구지부장은 "현장실습은 업체 폭리를 취하기 위한 제도로 변질됐다"며 "대구교육청은 청소년들이 처한 상황을 방관하지 말고 우리가 제안한 정책을 수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최병도 대구교육청 과학직업정보과 직업교육팀 장학사는 "특성화고 자체가 취업을 위한 학교다. 취업율이 평가에 들어가는 것은 당연하다. 이들이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다는 것은 지나친 확대 해석"이라며 "노동정책은 우리 권한 밖의 일이다. 대구시와 대구지방고용노동청이 할 일이다. 이미 교육청은 할 수 있는 것은 받아들여 시행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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