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인학살 특별법, 60년 기다린 유족..."이번이 마지막"

평화뉴스 김지연 기자
  • 입력 2017.11.07 2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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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16년째 법안 폐기...유족회, 28일 행안위 심사 전 대구·광주 1인 시위 "대부분 노쇠, 법안 통과" 호소


자유한국당 윤재옥 의원 지역사무소 앞에서 1인 시위 중인 유족들(2017.11.7.달서구 상인동) / 사진. 평화뉴스 김지연 기자
자유한국당 윤재옥 의원 지역사무소 앞에서 1인 시위 중인 유족들(2017.11.7.달서구 상인동) / 사진. 평화뉴스 김지연 기자

"시위도 마지막입니다. 유족 대부분이 돌아가셨거나 노쇠합니다. 이번엔 법이 꼭 통과돼야 합니다"
 
조홍래(68.달서구 도원동)씨는 6일 오전 8시 대구시 달서구 상인동에 있는 자유한국당 윤재옥(달서구을.행전안전위원회) 의원 지역사무소 앞에서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희생자 진상규명 특별법' 제정 촉구 1인 시위를 벌였다. 67년 전 흔적도 없이 사라진 아버지에 대한 진실을 알기 위해 법안 제정을 바란 세월만 16년째. 유가족이 된 아들은 어느덧 일흔을 바라보는 나이가 됐다.  

한국전쟁이 발발했던 1950년 경북 청도군 풍각면사무소 직원이었던 조씨의 아버지 조경제(당시 27세)씨는 경찰을 따라간 뒤 돌아오지 않았다. 당시 아들의 나이는 2살로 아버지의 얼굴을 본 기억조차 없다. 중학교 진학 무렵 어머니가 보여준 아버지 도민증(주민등록증)에 붙은 손톱만한 사진이 아버지를 떠올릴 수 있는 전부다. 그렇게 아버지를 가슴에 묻고 산지 벌써 67년이 됐다. 그나마 노무현 정부 당시 진행된 진상규명 과정에서 경찰서에 보관 중이던 수감자 명단에 아버지 이름 석 자를 확인해 위령탑에 모실 수 있었다. 조씨는 그제야 자신의 아들에게 할아버지의 존재를 설명해줄 수 있었다.

조씨는 "보상을 바라는 게 아니다. 지난 세월 유족이 국가로부터 받은 상처를 치유해달라는 것"이라며 "이번에도 법이 제정되지 못하면 유족들에게 진상규명의 기회가 없다. 통과돼야 한다"고 호소했다.

민간인학살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1인 시위 중인 유족 조홍래씨(2017.11.7.달서구 상인동) / 사진. 평화뉴스 김지연 기자
민간인학살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1인 시위 중인 유족 조홍래씨(2017.11.7.달서구 상인동) / 사진. 평화뉴스 김지연 기자

'대구10월항쟁민간인희생자유족회(회장 채영희)', '한국전쟁전후민간인피학살자전국유족회(회장 윤호상)' 소속 회원들은 지난 6일부터 서울 여의도 국회를 포함해 행정안전위 소속 야당 간사 자유한국당 윤재옥(대구)·국민의당 권은희(광주) 의원 지역사무소 앞에서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이달 28~29일로 예정된 행안위 법안 심사에서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희생자 진상규명 관련 법안 통과를 촉구하기 위해서다.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희생자 진상규명을 위한 법안은 지난 2001년 16대 국회부터 2017년 20대 국회까지 회기마다 발의됐다. 하지만 단 한 번도 본회의를 통과하지 못하고 폐기됐다. 정치적 손익이나 피해자 범위를 특정할 수 없다거나, 예산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법안 제정은 번번이 무산됐다. 

유가족들은 이번을 법안 제정 마지막 기회로 보고 있다. 특히 현재 20대 국회에는 과거사 진상규명을 위한 법안이 무려 6개나 발의된 상태다. 또 문재인 정부도 '국민 눈높이에 맞는 과거사 문제 해결'을 국정 과제로 놓고 '2기 진실화해위 설치'와 '민간인 희생자 위령사업' 등을 추진 중에 있다. 

이와 관련해 유족 단체는 ▲과거보다 범위를 넓혀 피해자뿐 아니라 가해자·가담자까지 조사 ▲조사 권한 확대 등도 요구하고 있다. 이를 위해 일부 유족들은 322일째 국회의사당 앞에서 법안 제정을 위한 1인 시위를 하고 있으며, 과거사특별법 제정을 위한 전국 10만서명도 받았다. 유가족들은 이달 중으로 서명지와 호소문을 정세균 국회의장과 문재인 대통령에게 전달할 방침이다. 

한국전쟁 당시 민간인 1만여명이 묻힌 것으로 추정되는 가창댐(2017.4.7.달성군 가창면) / 사진. 평화뉴스 김지연 기자
한국전쟁 당시 민간인 1만여명이 묻힌 것으로 추정되는 가창댐(2017.4.7.달성군 가창면) / 사진. 평화뉴스 김지연 기자

정철규 한국전쟁전후민간인피학살자유족회 대구경북지역위원장은 "국가가 잘못한 일에 유가족이 평생 고통 받는 국가가 어떻게 나라냐"며 "과거사를 청산하지 않고는 사회 통합도 발전도 없다. 지금이라도 국가는 유족의 눈물을 닦아줘야 한다"고 말했다. 김선희 한국전쟁전후민간인피학살자전국유족회 사무국장도 "진상규명 하나를 십 수년째 기다리고 있다. 국가가 더 이상 유가족을 기다리게 해선 안 된다"고 했다.

이에 대해 윤재옥 의원실 측 관계자는 "현재 여야간 법안 심사 대상을 협의 중"이라며 "해당 법안 상정 여부나 통과 여부는 아무도 모른다. 그 일정조차 정해진 것은 아무것도 없는 상태"라고 밝혔다.

앞서 2005년 노무현 정부는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을 제정해 항일독립운동, 반민주·반인권적 인권유린과 폭력·학살·의문사 사건을 조사하는 '진실과 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를 만들었다. 진실화해위는 2010년 활동 종료까지 11,175건을 조사했고 이 가운데 민간인 집단 희생사건은 전체 73%인 8,206건으로 나타났지만 국가 책임으로 규명된 것은 300여건에 불과했다. 이마저도 이명박 정부 이후에는 종료돼 더 이상의 진상규명은 이뤄지지 않았다. 유족회에 따르면 당시 희생자는 전국적으로 최소 수 십만여명에서 수 백여만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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