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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가창골' 민간인 학살, 67년째 돌아오지 못한 이들
10월항쟁·보도연맹·대구형무소 합동위령제 / 희생자만 수 만명 추정...유족들 "특별법 제정, 위령탑 건립"
2017년 04월 06일 (목) 19:08:56 평화뉴스 김지연 기자 jyeon@pn.or.kr

영문도 모른 채 경찰서에 끌려간 남편은 결국 돌아오지 못했다. 아들은 태어난지 한 달만에 아버지를 잃게 됐다. 유골도 없이 위패만 절에 모시고 제사를 지내온 세월만 70년 가까이 된다. 유족들은 이제라도 함께 모여 억울하게 죽은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고 있다.

   
▲ (가운데)채영희 10월유족회장이 유족들을 대표해 희생자들에게 제를 올리고 있다(2017.4.6) / 사진.평화뉴스 김지연 기자
   
▲ 10월항쟁, 국민보도연맹, 대구형무소 희생자 합동위령제(2017.4.6) / 사진.평화뉴스 김지연 기자

'대구10월항쟁·한국전쟁 전후 민간인희생자 유족회'는 6일 오전 대구 달성군 가창댐 수변공원에서 ' 10월항쟁 71주기, 한국전쟁 전후 보도연맹·대구형무소 민간인 희생자 67주기 합동위령제'를 지냈다. 위령제는 허맹구 포항유족회장의 사회로 종교의례와 유족들의 제례, 시민 위령제 순으로 진행됐다.

이날 유족들을 비롯해 류규하 대구시의회 의장, 김혜정 시의원, 시민단체 관계자 등 1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권영진 대구시장과 김부겸(더불어민주당.대구수성갑) 의원이 추도사를 할 예정이었지만 일정으로 불참했다. 시인 이하석씨의 추모시와 무용가 박정희씨 진혼무에 유족들은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 한국전쟁 당시 희생된 가족들의 넋을 기리는 유족들(2017.4.6.달성군 가창면) / 사진.평화뉴스 김지연 기자
   
▲ 이날 위령제에 유족들을 비롯해 100여명이 참석했다(2017.4.6) / 사진.평화뉴스 김지연 기자

배모(89) 할머니의 남편은 1950년 한국전쟁이 일어난지 5일째 되는 날 경찰에 끌려간 뒤 돌아오지 못했다. 쌀을 준다고 해서 지장을 찍었던 보도연맹원 가입서 때문이었다. 남편이 경찰에 간 뒤로 면회조차 허락되지 않아 그 뒤로 얼굴 한 번 못봤다. 곧 풀려날거라는 경찰의 말을 믿고 갈아입을 옷만 전해준 것이 전부다.

그는 "(남편이) 죽은 날짜가 7월 10일 전이라는 것만 알고 있다. 수건으로 눈을 가리고 트럭에 실려나갔다고만 했다. 언제 어디서 죽었는지 아직도 모른다. 구덩이를 파고 묻었는지, 불을 질렀는지 소문만 무성했다"며 "그 때가 남편 나이 27살, 아들이 태어난지 한 달째였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3년 뒤 전쟁이 끝나고도 남편을 찾을 생각조차 못 했다. 이름 석자가 쓰인 위패를 절에 모셔놓고 매년 무연고자 추모제가 열리는 9월 9일에 맞춰 제사를 지내왔다. 그러다 남편처럼 끌려가 목숨을 잃었던 희생자들의 합동추모제가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3년 전부터 위령제에 참석하기 시작했다.

   
▲ 무용가 박정희씨의 진혼무(2017.4.6) / 사진.평화뉴스 김지연 기자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한국전쟁 당시 10월항쟁 가담자, 국민보도연맹원, 대구형무소 수감자 등이 7월 7일부터 31일까지 두 차례에 걸쳐 군과 경찰에 의해 달성군 가창면, 경산 코발트광산, 칠곡 신동재, 달서구 본리동 등에서 사살된 것으로 보고 있다. 이들과 같이 희생된 대구경북의 민간인 사망자는 수 만명에 이르며 이 가운데 가창골에서만 1만여명의 희생자가 묻혀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1959년 이 곳에 댐이 들어서면서 조사나 유해 발굴이 불가능한 상태다.

특히 진실화해위는 10월항쟁에 대해 "해방 직후 미군정이 친일 관리를 고용하고 토지개혁을 지연하며 식량 공출을 강압적으로 시행하는 것 등에 대해 불만을 갖고 경찰과 행정당국에 맞서 발생한 사건"이라고 규정하고, 희생자에 대한 ▷위령추모사업 지원 ▷가족관계기록부 정정 ▷역사기록 수정 등재 ▷평화인권교육 강화 등을 권고했다. 이에 대구시는 지난해 '10월항쟁 등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희생자 위령사업 지원 등에 관한 조례'를 제정하고 유족들과 위령탑·추모관 건립을 논의 중이다.

   
▲ 1만여명이 희생된 것으로 추정되는 가창댐 일대(2017.4.7) / 사진.평화뉴스 김지연 기자

유족들은 조사기간 연장과 유해발굴, 미해결 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국가의 집단학살 사죄 ▷2기 진실화해위원회 설립 ▷유가족에 대한 국가배상 ▷지역 추모공원 조성을 위한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고 있다. 2010년 진실화해위 조사기간이 종료되면서 진상규명 활동이 중단됐기 때문이다. 이에 20대 국회에서는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희생사건 등 과거사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한 기본법안'과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희생사건 진상규명 및 보상 등에 관한 법률안' 등이 발의된 상태다.


 
▲ 위령제 참석자들이 헌화 뒤 묵념하고 있다(2017.4.6) / 사진.평화뉴스 김지연 기자

채영희(73) 10월유족회장은 "자식들은 백발이 성성한 지금까지도 부모의 억울한 죽음을 밝히지 못하고 통한 속에 살아가고 있다"며 "연좌제에 묶여 죄인의 자식으로 살아온 유가족들이 마음에 짐을 덜 수 있도록 정부가 나서야 한다. 특별법 제정으로 국가의 잘못을 바로 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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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삼석
(121.XXX.XXX.213)
2019-01-13 21:44:38
아버지가 가창골에서 생을 마감 했습니다...?
대구에 사는 박삼석입니다. 저도 대구 가창골 에서 아버지가 돌아 가셨다는 이야기만들었습니다. 1945년생입니다. 평생을 살면서 아버지 라고 제대로 한번 불러보지도 못하고 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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