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과 자본 사이에 '평화'가 가능한 언어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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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6.28 1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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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득재 / "대놓고 노동 홀대하면서 2백억 노사평화의 전당?...대구시 자가당착, 전면 폐기해야"


2018년 4월 27일 남북 정상이 200미터 거리를 건너기 위해 11년이나 기다렸다.

그러나 노동자는 수 십년간 기다리고 기다려도 돌아오는 것은 천대요 홀대뿐이다. 남북 정상은 서로 만나 격려의 말을 주고받았지만 대구시는 '붉은 조끼'니 '머리띠'니 '강성노조'니 해가며 대구 경제가 쇠락한 이유가 모조리 노동자에게 있는 것처럼 뒤집어 씌웠다. 노동자는 언제나 자본주의 제물이자 희생양인 듯 국가와 자본은 경제위기를 늘 노동자 탓으로 돌렸고 노동자에게 책임을 지게 만들었다.

대구시청 앞 대구 시조(市鳥 )독수리상 앞 붉은 머리띠를 맨 한 노동자(2018.3.29)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대구시청 앞 대구 시조(市鳥 )독수리상 앞 붉은 머리띠를 맨 한 노동자(2018.3.29)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구조 조정'이라는 그럴싸한 말 속에 해고의 칼날을 숨기지 않으면서 자본은 노동자 탄압을 통해 자기모순을 해결하려 들었다. 한 편으로는 노동자들의 붉은 조끼 머리띠를 비난하고 노동자들을 해고하면서 다른 한 편으로는 노사평화를 외치고 더 나아가 200억원을 들여 '노사평화의 전당'까지 지으려고 하는 이 자가당착과 자기모순은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 강성노조니 귀족노조니 하는 말들도 자본의 위기를 노동자에게 전가하고 노동자들을 희생양으로 삼으려고 하는 자본의 정치적인 언어 아니던가.

홀대도 이런 홀대가 없다. 아예 대놓고 붉은 색의 노동자들의 조끼까지 헐뜯는 대구시의 망언 앞에서는 아연질색해질 도리 밖에 없으나 겉만 번드르르 포장한 '노동 존중의 세상'이니 '비정규직 제로(Zero) 시대'니 하는 말들은 원색적인 대구시의 비난보다 노동자들을 더욱 홀대하는 것이다.

"희망퇴직 철회, 구조조정 반대" 대구시청 앞 피켓 시위 중인 노동자(2018.5.16) / 사진.평화뉴스 김지연 기자
"희망퇴직 철회, 구조조정 반대" 대구시청 앞 피켓 시위 중인 노동자(2018.5.16) / 사진.평화뉴스 김지연 기자

남북 정상이 만났다해도 자본주의 체제 안에서 만나는 것이고, 노동자들을 착취하는 자본주의 기본 체제 안에서는 노동 존중이 있을 수 없고 비정규직이 제로가 될 수 없다. 실업예비군이 사라질 수가 없다. 자본주의체제 안에서 노동과 자본 사이에는 평화가 불가능하다. 대구시가 추진하는 노사평화의 전당이 평화가 아니라 "갈등의 전당이 될 수도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있지만, 노동과 자본 사이에는 갈등이 아니라 모순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 갈등과 평화란 언어는 정확한 표현이 아니라는 말이다.

평화(Peace)는 진압(Pacification)의 다른 표현이고 '갈등'은 자본주의 체제 문제를 노동자나 자본가에게 덧씌워 자본주의 체제 '모순'을 은폐시키는 언어적 표현이다. 진압 뒤에 오는 평화, 국가폭력과 자본 탄압 뒤에 사후약방문식으로 찾아드는 화해니 치유니 하는 말들은 그저 허망한 언어일 따름이다.

대구시 '노사평화의 전당' 건립 철회 촉구 민주노총대구본부 기자회견(2018.3.29)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대구시 '노사평화의 전당' 건립 철회 촉구 민주노총대구본부 기자회견(2018.3.29)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한 편으로 최저임금 인상을 하고 비정규직 제로 운운하면서 다른 한 편으로는 최저임금 산입범위 조정이니 직무급제니 해가면서 최저임금 인상과 비정규직 제로 구호를 무력화시키는 것이 쇼가 아니면 무엇이란 말인가. 자기가 한 일을 헌신짝처럼 뒤집기에 하는 말이다. 그러니 노동 존중 세상 구호가 뻥으로 들릴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 "노동이 당당한 나라" 구호도 유사한 헛헛한 말잔치일 뿐이다.

대구시가 달성군 대구국가산업단지에 지으려는 200억 '노사평화의 전당' 계획은 전면 폐기돼야 한다. 건축 예산 200억원이 있으면 그 돈으로 대구 저임금 노동자 임금문제·임금체불을 해결하는데 도움을 줘야 한다. 노동자·민중 돈을 헤프게 사용하니 대구 경제가 이모양 이꼴 나락에 떨어진 것 아닌가.

한낱 대구시가 이처럼 노동자들을 노골적으로 헐뜯게 된 데에는 노동자들 책임도 있다. 노동자들이 국가와 자본에 분명한 선을 긋지 않고 '노·사·정' 대화니 하면서 '정권 딸랑이' 역할을 자처하는 현 '민주노총(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집행부를 보고 있자니 부아가 치밀어 오른다.

▲민주노총대구본부 '최저임금법 개악 반대' 민주당 대구시장 후보 캠프 농성(2018.5.21) / 사진.평화뉴스 김지연 기자
▲민주노총대구본부 '최저임금법 개악 반대' 민주당 대구시장 후보 캠프 농성(2018.5.21) / 사진.평화뉴스 김지연 기자

최근 'GM 사태'를 보더라도 노동자가 제일 먼저 희생되고 많은 노동자들이 지상의 삶을 박탈당한 채 전국 공중에서 저항하는 지금 정권과 자본 뒤꽁무니만 쫓아다녀서 도대체 무엇을 얻겠다는 것인가. 대구시가 비난하는 강성노조가 과연 있기나 한 것인가. 대구시가 비난하는 강성노조란 '노동 3권(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을 요구하는 노조일 따름이다. 자본주의에서 노동자가 노조 활동을 하는 것은 당연한 권리다. 그것을 강성노조 운운하며 노동자 입에 재갈을 물리려는 것은 파렴치한 짓이다.

남북이 만난 지금도 세계자본주의는 유례없는 공황 여진 속이다. 대한민국 부채는 무려 1경원이 넘었다. 전태일 열사 후로 지금까지 노조 할 권리를 포함해 노동권조차 제대로 확보치 못한 채 제자리걸음이거나 심대하게 훼손됐다. 노동자들 전선은 현재 심각할 정도로 후퇴했다. 노사평화의 전당 건설 폐기를 넘어 대구시가 그토록 증오하는 붉은 조끼를 다시 입자. 노동혐오의 세상을 끝낼 태풍은 장마전선이 몰고 오지 않는다. 노동자들이 전국적, 또 계급적으로 단결할 때 그 세상은 끝난다.      


이득재 민중행동 대표
이득재 민중행동 대표





[기고]
이득재 / 민중행동 공동대표·대구가톨릭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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