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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맛대로 고르는 법치주의
[이재동 칼럼]
2020년 12월 01일 (화) 16:54:20 평화뉴스 이재동 칼럼니스트 pnnews@pn.or.kr

“하나의 유령이 대한민국을 떠돌고 있다. ‘법치주의’라는 유령이...” 칼 마르크스의 <공산당 선언>을 흉내 내서 말해 보았다. ‘법치주의’라는 말이 횡행하는 세상이 되었다. 정치적으로 상대편을 공격할 때 법치주의를 훼손하고 있다고 비난하는 것이 현실에서 가장 흔한 레토릭이 되었다.

 통치자의 변덕스러운 자의(恣意)에 의해 세상의 질서가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미리 국민의 위임을 받은 대표자들이 다수결로 만들고 공포된 법률에 의해서 세상이 움직인다는 법치주의나 혹은 영미법에서의 ‘법의 지배(rule of law)'는 근대 이후의 사회의 기본원칙이 되었다.

 근대 이후의 역사에서 법치를 부르짖는 소리가 요란한 시기는 평온한 시기가 아니었다. 특히 히틀러 같은 독재자들일수록 법치를 부르짖으면서 권력을 잡고 그 명목으로 인권을 유린하였음을 역사적 경험으로도 잘 알고 있다. 나치 형법에는 ‘건전한 민족감정에 비추어 처벌받아 마땅한 행위를 한’ 자는 처벌한다는 규정이 있었다. 옛날 우리 국가보안법에도 ‘적을 이롭게 한 자는’ 처벌하도록 되어있었다. 조선시대 형벌의 근거가 된 대명률(大明律)에는 ‘무릇 마땅히 해서는 안 될 행위를 한 자는 태(笞, 볼기를 치는 형) 40에 처한다’는 조항이 있었다고 한다.

 우리는 이제 이러한 법이 지배하는 사회를 법치주의라고 하지는 않는다. 법치주의는 민주주의를 전제로 한다. 실질적인 법치주의를 위해서는 우선 그 법이 근대 이후의 민주주의 사회의 기본원칙에 어긋나지 않아야 하는 것이다. 우리나라도 민주화를 이룬 이후 형식적인 의미의 법치주의가 지배하고 있다는 사실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법에 위반되는 행위는 그 자체로 효력이 없으며, 형사처벌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그러므로 어떻게 보면 국민의 자유의 제한이나 의무의 부과는 위임을 받은 대표들에 의하여 만들어진 법에 의하여야 하고 모든 국민들이 그 법을 지켜야 한다는 의미의 법치주의는 지금 현실에서는 별 의미가 없는 것이다. 지금 회자되는 법치주의의 침해는 제정법을 어겼다는 의미라기보다는 차라리 헌법정신이나 우리 사회의 건전한 상식에 반한다는 정도의 뜻으로 쓰이는 것 같다.

 그러한 의미의 법치주의는 각자의 생각이나 가치관에 따라 구체적인 사안에서 다르게 나타나는 것이어서 무엇이 법치주의에 맞거나 어긋나는 것이라고 잘라 말하기가 힘들다. 어떤 법학자가 법치주의라는 표현은 결국 우리 측 주장이 옳다는 이상의 의미가 별로 없다고 말한 것도 이런 의미일 것이다. 브라이언 타마하나라는 법학자가 말한 것처럼 현대사회에서 법치주의는 ‘대단히 모호한 개념’이며, ‘온갖 다양한 방식으로 이해되고 있으며’, 모두들 지지하지만 그것이 무엇인지에 해하여는 각자 다른 확신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선(善)의 개념과 유사하다고 하였다.

   
▲ 사진 출처 / KBS뉴스 <야 "국정조사 추진"… 여 "법관 사찰 심각">(2020.11.27) 캡처

 추미애 법무부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 사이의 대립에 관하여도 윤 총장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검찰권의 권력으로부터의 독립을, 추 장관의 입장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무소불위의 검찰 권력에 대한 통제를 각각 법치주의의 요체로 내세우면서 상대방이 법치주의를 훼손하였다고 비난하고 있다. 각자의 정치적 입장에 따라 법치주의의 하나의 요소를 골라잡아 그 주장의 근거로 삼고 있는 것이니, 자신이 옳고 상대는 그르다는 것 이상의 의미가 없다.
   
 현대사회에서 법치주의를 위협하는 요소 중의 하나로 국민의 정치성향의 양극화를 든다. 최근의 미국 대선에서 극명하게 드러났듯이 사람들의 정치적 성향은 비슷하게 양분되어 있고 무엇보다 고착화되고 있어 논쟁이나 설득에 의해 바뀌지 않는다. 그 대립은 점점 첨예해져 객관적으로 드러난 결과도 음모론을 내세워 부정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현대의 법치주의가 개개의 법조문이 아니라 국가의 구성원들이 일반적으로 공유하고 전제로 하는 가치인 헌법정신을 따르는 것으로 본다면 이러한 극단적인 정치적 양극화는 법치주의의 존립근거를 없애고 그 말을 공허하게 만드는 것이다.

 법치주의라는 말이 공허하게 들리고 남용되고 오용되는 것은 우리 사회의 구성원들 사이에 우리 사회를 이루는 기본 원리에 관한 합의가 없거나 무너지고 있다는 뜻이다. 법치주의를 확립하자는 것은 법을 엄격히 집행하자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합의를 다시 정립하고 공유하자는 움직임이 되어야 한다.   

   







[이재동 칼럼 12]
이재동 /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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