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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혹되지 않는 마음
[이재동 칼럼]
2021년 01월 27일 (수) 18:08:29 평화뉴스 이재동 칼럼니스트 pnnews@pn.or.kr

 17세기에 살았던 프랑스의 수학자 파스칼은 신(神)의 존재 여부를 따지는 도박에서 신을 믿는 것에 패를 거는 것이 더 이득이라는 말을 하였다고 한다. 이는 확률에 있어서의 ‘기댓값’이라는 개념 때문인데, 만약 신이 존재함에도 신을 믿지 않은 패를 선택한 경우에 받는 불이익(지옥에서의 영원한 형벌)과 신이 존재하지 않음에도 신을 믿은 경우에 입는 손해(일요일에 교회를 가거나 십일조를 바치는 정도)를 비교하면 앞의 경우가 훨씬 크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신이 존재할 확률이 낮더라도 그 존재를 믿고 따르는 것이 이익이 된다는 것이다.

 이 주장의 결함 중의 하나는 신 또는 하느님의 속성을 인간과 같은 것으로 제한하였다는 것이다. 자신을 믿고 숭배한 자들에게는 천국의 지복을, 그렇지 않은 자들에게는 지옥의 고통을 주는 것은 인간의 옹졸한 심성에서 나온 것이다. 아무리 인간이 자신의 모습에 따라 신을 만들었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신에게 이러한 속성을 부여할 수는 없을 것이다.
 
 나는 강고한 무신론자는 아니다. 그러나 신이 있다고 하더라도, 신은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범위 밖에 있으며 인간들이 하는 행동이나 선악의 기준에 관하여 아무런 관심이 없다고 믿는다. 우리 시대에 가장 우주의 비밀에 근접해 있었던 과학자 스티븐 호킹이 강연을 마친 후 어떤 청중이 신의 존재에 관하여 묻자 자신은 거기에 관하여 아무 것도 모른다고 답한 것은 인상적이었다. 어떤 사람들이 신에게 인간의 모습이나 감정을 투영하는 것은 자신의 숨겨진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로 모두가 힘든 시기에 그 창궐의 근거지로 일부 교회가 지적되어 왔고 그 반사회적인 행태에 관하여 많은 비판이 일었다. 계몽과 이성의 시대를 거쳐 과학의 시대에 살고 있음에도 유독 우리나라와 미국에서 기독교가 더욱 번성한 것에 관하여는 여러 이유가 있을 것이다. 미국은 성경을 자구(字句) 그대로 믿고 기본 교리를 엄격하게 지키는 원전주의(Textualism)나 근본주의(Fundamentalism) 신자들이 많지만 그렇지 않은 유럽보다 더 사회의 폭력성이 높고 행복지수는 낮다.

   
▲ 교회 세례식 모습(사진은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 없음) / 사진 출처. 대구 A교회 홈페이지

 철학자 버트란드 러셀은 ‘나는 왜 크리스천이 아닌가’라는 글에서 세계의 주요한 종교들은 그 교리들이 거짓일 뿐 아니라 해롭다고 단언하였다. 인간의 역사에서 어떤 종교가 태어나고 세력을 넓히는 과정은 대량 살육의 역사였다. 누군가 말했듯이, 종교가 없어도 좋은 사람은 좋은 일을 하고 나쁜 사람은 나쁜 일을 하지만, 좋은 사람이 나쁜 일을 하는 것은 대개 종교의 이름 아래에서였다. 어느 진화론자의 말에 따르면, 남에게 베풀기를 좋아하고 공동체를 위하여 희생하는 인간의 성품은 자신의 유전자를 후세에 전달하려는 ‘이기적 유전자’ 속에 포함되어 있는 것이지 종교의 가르침 때문에 생긴 것은 아니다.

 지금 우리 사회의 현상을 살펴보면, 사람들은 종교의 교리를 배우고 이를 신봉해서 개종하는 것이 아니라 어느 집단에 포함되기 위하여 그 교리를 믿거나 믿는 척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개인주의와 자유주의가 팽배한 사회에서 현대인들은 현실을 초월한 종교적 공동체가 주는 마음의 위안이나 소속감을 갈구하는 것이 아닐까. 우리 사회가 유례없이 급속하게 변하면서 대가족이나 친구, 마을과 같은 위안과 도움이 되는 공동체가 파괴된 것과 종교가 번창한 것은 그 시기를 같이 한다.

 종교는 내세에 대한 믿음을 전제로 하는 경우가 많지만, 이는 증명할 수도 없고 근거도 없는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종교가 순기능을 하기 위해서는 자신도 확신하지 못하는 내세에 대한 환상을 내세워 현세에 불화와 갈등을 일으키는 폭력적인 삶을 권할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이웃들과의 조화롭고 행복한 삶을 중시하는 ‘유순하고 세속적인’ 종교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신의 존재나 속성에 관하여 쉽게 미혹되지 않는 강건한 마음을 가지도록 모두가 힘쓰는 것이다.  

   







[이재동 칼럼 14]
이재동 /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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