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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정이 '중우정치'라고?
[김윤상 칼럼] 올해, 연동형 비례대표제 좌절이 아쉽다
2020년 12월 07일 (월) 10:50:04 평화뉴스 김윤상 칼럼니스트 pnnews@pn.or.kr

다시 연말이 되어 한 해를 돌아보니 선거제도 개혁 실패가 큰 아쉬움으로 다가온다. 올해의 최대 사건은 물론 코로나19이고, 우리가 살아온 방식의 근본적인 변화가 불가피해졌다. 하지만 이런 변화도 대의민주주의 체제에서는 선거를 통해서야 이룰 수 있으므로, 선거제도 개혁이 중요한 과제가 아닐 수 없다.

작년에 우여곡절 끝에 미흡하나마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로 선거법이 개정되고 금년에 4.15총선을 치르게 되었다. 아, 그런데 양대 정당이 소위 ‘위성정당’을 만들어 비례대표 의석을 가져가는 바람에 개혁이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이런 꼴을 강 건너 불처럼 지켜만 보았다.

민주주의는 희망이 있는가?

의회가 국민을 대표하여 제도와 정책을 결정하는 대의민주주의에서 정당 지지율과 의석수 간의 비례성은 너무나 당연한 원칙이다. 하지만 민주정 자체에 대한 회의론이 만만치 않아 비례성 원칙도 대접을 제대로 못 받는 측면이 있다. 고대 아테네에서 플라톤은 직접민주주의를 ‘중우정치(衆愚政治)’라고 비판하면서, 훌륭한 철인의 독재가 바람직하다고 하였다. 그의 제자 아리스토텔레스는 민주정을 긍정하면서도, 적어도 생계를 떠나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는 중산층 정치가 바람직하다는 견해를 폈다.

   
▲ <경향신문> 2019년 12월 28일자 6면(정치)...문희상 국회의장이 27일 국회 본회의에서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표결 처리한 것에 반발하며 의작석을 에워싼 자유한국당 의원들의 집단 항의를 뚫고 선거법 개정안 투표 시작을 알리고 있다.

현대에도 민주정에 대한 회의는 이어지면서 ‘참여민주주의’, ‘숙의민주주의’ 등 여러 대안이 제시되고 있다. 철학자 롤스(John Rawls, 1921~2002)도 <정의론>에서 ‘무지의 베일’(veil of ignorance)이라는 유명한 가정을 전제하기도 하였다. 사회의 구성원이 자신의 처지를 모른다는 가정이 있어야 바람직한 사회원리에 만장일치로 합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다양한 회의론에 공통점이 있다. 공익에 무관심하고 이해관계에 매몰된 주민이 다수를 차지하는 현실사회에서는 다수결로 좋은 결정을 도출하기 어렵다는 인식이다. 극단적으로는 민주정에는 희망이 없다는, 또는 선거제도를 개혁해봤자 나아질 것이 없다는 결론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그렇다면 이런 회의론은 어느 정도 타당할까?

다수결에 관한 모의실험

궁금해서 필자가 간단한 계산을 한번 해보았다. 우선 사회제도를 이기형ㆍ균형형ㆍ이타형 제도로 분류하였다. 이기형 제도는 이기적 행동, 즉 타인에게 손해를 끼치면서까지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행동을 용인하는 제도, 즉 약육강식 제도다. 균형형 제도는 누구에게도 손해가 되지 않도록 하는 제도로서 정의로운 제도라고 할 수 있다. 이타형 제도는 어려운 처지의 타인을 위해 양보하도록 하는 제도로서, 부자의 세금을 재원으로 삼는 복지제도가 좋은 예이다.

또한, 사회제도의 결정 주체이자 적용 대상이기도 한 주민을 대인관계에서의 성향, 즉 자신과 타인 중 누구의 이익을 우선하는가를 기준으로, 이기적ㆍ균형적ㆍ이타적 주민으로 분류하였다. 이기적 주민은 타인에게 손해를 끼치더라도 자신의 이익을 우선하는 사람, 균형적 주민은 자신이든 타인이든 서로 손해가 없도록 행동하는 사람, 이타적 주민은 타인을 위해 자신의 손해를 어느 정도 감수할 수 있는 사람이다.

또 하나, 같은 성향의 주민이라고 하더라도 지지하는 사회제도는 계층 - 아니 더 정확하게는 자신의 소속 계층에 대한 인식 - 에 따라 다를 수 있다. 그래서 주민의 사회적 계층을 강자ㆍ중간층ㆍ약자 계층으로 분류하였다. 이런 분류를 바탕으로 주민의 성향별ㆍ계층별 제도 지지율을 계산해보았다. 계산 방식에 관한 설명은 생략한다. 계산 프로그램은 필자가 관리하는 인터넷 카페인 <지공주의 연구실>의 자료실에 올려두었으므로 관심 있는 독자께서 참고하시기 바란다.(http://cafe.daum.net/landpolicy/SLBE/16?svc=cafeapi)

이기적 주민이 많아도 정의로운 제도 지지율이 높다

이기적ㆍ균형적ㆍ이타적 주민의 비율로는 일단 50%, 30%, 20%라고 가정하였다. 이때 자신을 강자ㆍ중간층ㆍ약자로 인식하는 계층의 비율이 20%, 40%, 40%일 때, 계산 결과 이기형ㆍ균형형ㆍ이타형 제도에 대한 주민의 지지율은 10%, 54%, 36%로 나타났다. 아리스토텔레스의 희망처럼 중산층이 많아서 계층의 비율이 10%, 70%, 20%라면, 세 제도 지지율은 5%, 72%, 23%로 균형형 제도 지지율이 더 높아진다. 숫자를 바꾸어 입력해보아도 대부분의 경우 균형형 제도, 즉 정의로운 제도에 대한 지지율이 높고 이기형 제도에 대한 지지율이 낮게 나온다.

이런 계산 결과로 의외의(?) 사실을 알 수 있다. 이기적 성향의 주민이 많더라도 다수결로 좋은 제도를 채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민주정에 대한 회의론의 근거는 튼튼하지 않다는 것이다. 민주주의에 대한 믿음과 희망으로 진정한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다시 추진해야 한다.

[추가]
그럼, 수많은 현자ㆍ석학이 민주정에 대해 염려한 이유는 무엇일까? 추상적인 제도가 아닌 구체적인 사안에서는 사익을 앞세우는 주민이 적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 쓰레기 매립장을 모두 기피하는 님비(NIMBY), 동남권 신공항을 서로 유치하려는 핌피(PIMFY) 현상이 그런 예가 된다. 그렇다면 자연스럽게 이런 의문이 생긴다. ‘구체적인 사안의 결정에서는 민주적 방식을 포기해야 하나?’ 그렇지 않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인데, 이 주제에 대해서는 다른 기회에 다루기로 한다.

   






[김윤상 칼럼 98]
김윤상 / 자유업 학자, 경북대 명예교수. 평화뉴스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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