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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2.28민주운동, 학생들의 가슴 속에 되살려낼 때가 지금이다
[임성무 칼럼]
2023년 02월 28일 (화) 11:58:40 평화뉴스 임성무 칼럼니스트 pnnews@pn.or.kr

2·28 민주운동이 일어난 지 꼭 63주년이다. 최근 대구MBC가 제작한 ‘1960 대구 민주의 봄’은 새로운 역사 자료들을 발굴해서 보도했다. 내 마음에 꽂힌 몇 가지 놀라운 사실이 있다. 먼저 2·28민주운동은 전국으로 퍼져나가면서 대전3.8민주의거, 이어서 마산3.15의거, 마침내 4.19혁명으로 완성이 되었다. 그래서 2.28민주운동은 대한민국 최초의 민주화 운동이라 불린다.

당시 3.15일에 보도된 영국 '더 타임즈' 기자의 시선에 주목해야 한다. '대구는 일제 강점기 때 이미 저항의 중심지였고, 4년 전인 1956년 선거에서도 자유당이 크나큰 패배를 경험한 곳이 바로 이곳 대구'라는 내용이다. 대구는 서울의 3.1만세운동 일주일 뒤인 3월 8일 만세운동을 벌였다. 갑자기 소문을 듣고 할 수 있는 운동이 아니라 치밀한 준비를 했었다는 뜻이다. 1915년 8월 25일 대구 달성공원에서 대한광복회가 결성된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이어 1919년 대구경북 유림들은 각 문중이 참가하여 유림 134명이 서명한 파리장서(프랑스 파리에서 개최되는 강화회의에 한국독립을 호소하는 장문의 서한을 작성)했다.

대구경북은 가장 많은 독립운동가를 배출한 지역이다. 기자는 “대구가 가진, 일제 강점기 때부터 저항의 중심지로서의 전통이 2·28로 이어져 왔고, 특히 고위 관료나 부유층 자제가 다니는 학생들의 시위라는 점에 큰 의미”를 두고 기사를 썼다. 당시 주역이었던 여든 살이 된 최용호 선생(사대부고)은  당시의 고등학생들이 나선 것을 설명하면서 “용기 있다기 보다는 청소년기에 꿈이 있는 사람들이 가질 수 있는 평범한 포부들, 조국을 위해 또 그 시대를 위해 뭔가를 해야 한다는 사명감들이 그 당시에 고등학교 상급 학년이었다면 그때는 좀 많았어요.”라는 말에 진한 아쉬움이 묻어있다. 당시만 해도 저항의 정신이 각 가문에 남아있었고, 고등학생들에게도 이어져 왔다는 것이다. 63년 전 18살 최용호가 지금 현재 대구의 고등학생들을 보면서 그 저항의 정신이 어어지고 있는 것일까 하는 우려의 마음일 것이다.
 
   
▲ 사진 출처. 대구MBC 창사 60주년 특집 다큐멘터리 <보수의 심장에 묻힌 화석 2.28>(2023.2.17) 방송 캡처

2.28민주운동의 정신은 시대의 불의에 굴하지 않고 독재정권에 맞서 싸운 저항의 정신이 바로 대구의 정신이 아닌가? 대한민국헌법 전문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하고”를 가장 잘 이어온 지역이 어쩌면 대구경북일텐데 지금 여기의 대구시민들의 대구의 청소년시민들이 되새겨 보아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 이 정신은 대구가 배출한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군사정권 30여년을 지나오면서 점점 사그라졌다. 박정희는 5.16군사정변을 혁명이라고 부르면서 자신이 계승하겠다고 한 4.19혁명은 의거로 낮추어 명명했다. 40대 이상은 '4·19 의거'라고 배웠다. 2018년에 와서야 정부는 공식 행사에서 '4.19혁명'으로 사용했다. 이러니 2.28 대구학생들의 민주화운동은 학생들에게조차 가르치지 않게 되고, 2.28민주운동 기념사업은 당시의 주역들이나 민주화운동에 헌신한 사람들에 의해 주도되지 않은 채 일부 인사들에 의해 박제되면서 시민들과 학생시민들로부터 멀어진 상황이다.

그렇다면 교사들의 책임은 없는가? 아쉽게도 당시 2.28은 학기 중이었지만, 지금 2.28은 봄방학 기간이다. 그러다보니 2.28민주운동과 3.1운동에 대한 계기수업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4.19혁명의 도화선이 2.28민주운동이니 4.19혁명 기념일 전후로 계기수업을 하자는 것이다. 아울러 3.1운동은 대구3.8만세운동 기념일에 계기수업을 하자는 것이다. 대구가 정말 대구의 정신을 미래 세대들에게 이어가고 싶다면 그렇게 해야 한다.

나는 21~22년 동안 전교조대구지부장으로 파견을 나가 일했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2.28민주운동을 대구시민들이, 교사들이, 아니 내가 속한 전교조 교사들이 먼저 배우고 가르치게 할까하는 생각으로 ‘2.28이 5.18에게(5.18이 2.28에게)’라는 교육달빛동맹을 추진했다. 그리고 광주에 있는 228번 버스처럼 대구 518번 버스에도 5.18민주화운동을 알리는 안내 자료를 설치하게 하고, 대구시청 건물에 5.18희생자를 추모하고 정신을 계승하는 현수막을 걸게 할까 고심하고 노력했다.

우리의 노력 때문인지 몰라도 2021년 딱 한번 실현되었고 2022년은 또 그냥 지나쳤다. 아무튼 대구교사들은 5.18에 맞추어 광주를 방문했다. 그리고 2022년 광주의 교사들이 대구 2.28에 대구를 방문했다. 대구는 다시 5.18에 광주를 방문했고, 이 교류 사업은 광주교육청의 사업이 되었다. 지난 12월과 올해 1월 광주의 교사들이 경북 독립운동과 대구 2.28민주운동을 답사하는 달빛역사동맹을 실시했다.  
 
   
 
다시 2.28이다. 우리는 지금 다시 1960년 대한민국 최초의 민주화 운동의 결의문을 읽어야 한다.

“인류 역사이래 이런 강압적이고 횡포한 처사가 있었던고, 근세 우리나라 역사상 이런 야만적이고 폭압적인 일이 그 어디 그 어느 역사책 속에 끼어 있었던가?
오늘은 바야흐로 주위의 공장 연기를 날리지 않고 6일 동안 갖가지 삶에 허덕이다 모이고 모인 피로를 풀 날이요, 내일의 삶을 위해 투쟁을 위해 그 정리를 하는 신성한 휴일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 하루의 휴일마저 빼앗길 운명에 처해있다.
우리는 일주일 동안 하루의 휴일을 쉴 권리가 있다. 이것은 억지의 말도 아니고, 꾸민 말도 아니고, 인간의 근세 몇 천년동안 쭉 계속해서 내려온 관습이요, 인간이 생존해 나가기 위한 현명한 조치이다. 그러나 우리는 살기위해 만든 휴일을 어찌 빼앗기리. 우리는 피로에 쓰러져 죽어야만하나, 생각해 볼지어다. 우리는 배움에 불타는 신성한 각오와 장차 동아[東亞]를 짊어지고 나갈 꿋꿋한 역군이요, 사회악에 물들지 않는 백합같이 순결한 청춘이요, 학도이다.

우리 백만 학도는 지금 이 시각에도 타고르의 시를 잊지 않고 있다.
‘그 촛불 다시 한 번 켜지는 날 너는 동방의 밝은 빛이 되리라’
큰 꿈을 안고 자라나가는 우리가 현 성인사회의 정치 놀음에 일체 관계할 리도 만무하고 학문 습득에 시달려 그런 시간적인 여유도 없다. 그러나 이번 일을 정치에 관계없이 주위 사회에 자극 받지 않는 책냄새 땀냄새 촛불 꺼멓게 앉은 순결한 이성으로써 우리의 지금까지 배운 지식을 밑바탕으로 하여 일장의 궐기를 하려한다.

백만 학도여! 피가 있거든 우리의 신성한 권리를 위하여 서슴지 말고 일어서라, 학도들의 붉은 피는 지금 이 순간에도 뛰놀고 있으며 정의에 배반되는 불의를 쳐부수기 위해서는 이 목숨이 다 할 때까지 투쟁하는 것이 우리들의 기백이며, 이러한 행위는 정의감에 입각한 이성의 호소인 것이다.
우리는 민족을 사랑하고 민족을 위하여 누구보다도 눈물을 많이 흘릴 학도요,
조국을 괴뢰가 짓밟으려 하면 조국의 수호신으로 가버릴 학도이다.
이 민족애의 조국애의 피가 끓는 학도의 외침을 들어 주려는가?
우리는 끝까지 이번 처사에 대한 명확한 대답이 있을 때까지 싸우련다.


이 민족의 울분, 순결한 학도의 울분을 어디에 호소해야 하나?
우리는 일치단결하여 피 끓는 학도로서 최후의 일각까지 부여된 권리를 수호하기 위하여 싸우련다.”


당시 교사들은 자신들이 가르친 학생들이 배운 대로 분연히 일어서는 모습을 보고 부끄러웠다. 그래서 교사들은 4.29혁명이 끝나고 이승만이 하야한 직후인 5월 7일 ‘교원노동조합’을 결성했다. 대구경북의 교사들이 가장 앞장섰다. 역사는 이 교원노동조합 이름 앞에 4.19를 붙여서 부른다.
 
   
이목 선생님(전국교원노동조합총연합회 초대 사무국장) / 사진 출처. KBS대구방송총국 [기억, 마주서다] '교실 밖에 선 선생님'(2019.2.3) 방송 캡처

당시 경북여고 여학룡 선생과 사대부고 이목 선생 등 수많은 교사들이 동참했다. “수업 시간에 우리에게 어떻게 가르쳤습니까? 정의와 민족을 위해서라면 희생을 감수하고서라도 싸워야 한다. 그렇게 가르치지 않았습니까? 왜 우리를 막습니까?”라는 학생들의 말에 교사들은 뒤늦게 행동으로 응답한 것이다. 능인고등학교 교사인 김장수 선생은 시를 쓰고, 백남영 선생이 '2·28행진곡'을 썼다. 하지만 군사독재정권은 1500명이 넘는 교사들을 해고했다. 이 분들은 영원히 교단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이후 30여년이 지난 1989년에서야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 결성되었고 또다시 1500여명이 해고되었다. 역사의 아이러니란 참 고통스럽고 지루하다.

2.28민주운동이 일어난 지 63년을 맞았다. 하청일의 결의문, 전날 밤을 새우며 이대우의 집에 모였던 학생들과 길고 길었을 밤의 결의와 긴장감, 사진반 학생들에게 기록을 하게 했던 일을 보면 당시 2.28을 주도한 학생들 얼마나 주도면밀했는지 알 수 있다. 그 증거 가운데 하나가  2.28의 정신은 교사들이 가르쳤지만 비겁했고, 학생들은 행동으로 보여주며 교사들을 깨워냈다. 지금 교사들은 무엇을 가르치고 있는가? 무엇을 가르쳐야 할 것인가? 학생들을 어떻게 해야 ‘그 저항의 정신’을 지금 여기에서 행동으로 드러낼 것인가? 지금은 기후위기와 불평등의 시대이다. 깊은 성찰이 필요한 때이다.

 
   
 






[임성무 칼럼 2]
임성무 / 대구강림초등학교 교사


* 참고 자료
<2021년 대구지부가 초안한 공동 선언문>

<2.28이 5.18에게>
“1980년 ‘5.18민주화운동’은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밑거름으로 1987년 ‘6월 민주항쟁’으로 이어졌으며, 민주·인권·평화·통일의 정신적인 지표가 되었다. 아울러 독재정권에 맞서 싸우고 있는 아시아 여러 나라의 민중에게 귀중한 경험을 제공하고 있으며, 전 세계인들에게 위대하고 아름다운 사건으로 기억되고 있다. 1960년 ‘대구 2.28민주운동’은 대전 3.8민주의거, 마산 3.15민주의거, 4.19혁명으로 가는 신호탄을 쏘아올린 대한민국 최초의 민주화운동이었다.
대구는 5월 광주를 생각하면 괜히 머리가 숙여진다. 광주 학살의 주역인 전두환, 노태우를 비롯한 군부독재 세력이 대구 출신들이고, 대구경북에서는 최근까지도 광주를 폄훼하고 모욕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지역의 유력 신문인 매일신문은 지난 3월 18일 만평으로 폄훼했으니 변명하기조차 부끄럽다. 더구나 2013년 3월 광주와 대구는 상생을 위한 ‘달빛동맹’을 맺지 않았는가? 광주는 상징적으로 2019년엔 금남로를 지나는 버스 번호를 228번으로 바꾸고, 버스 한 대를 2.28민주운동 안내 자료로 꾸며 운행하고 있다. 반면 대구의 518번 버스는 예전 그대로이다. 광주가 대구를 생각하는 정책이 따뜻한 데 비해 대구는 여전히 진정성이 보이지 않는다. 그동안 대구와 광주는 달빛동맹을 정치나 경제적 목적으로만 활용했지 시민들 사이의 문화로 자리를 잡도록 노력하지는 않았다는 반증이다.
5.18 계기교육을 생각하면 대구는 더 부끄러워진다. 대구교육청은 5.18민주화운동 41주년을 맞는 올해까지 광주교육청이 5.18교육을 요청하는 협조공문을 겨우 공문 게시로만 처리하고 있다. 어릴 때 경험하고 배우는 좋은 교육은 오랫동안 피가 되고 살이 되어 민주시민으로 살게 한다. 그러므로 학생들이 대한민국의 주체가 되도록 돕기 위해서는 민주주의의 역사를 때맞추어 바르게 배우도록 하는 것이 참으로 중요하다.
이에 전교조 대구지부와 광주지부는 교육청 간의 달빛동맹을 맺을 것을 촉구하면서 늦었지만 전교조가 먼저 ‘교육달빛동맹’을 맺기로 했다. 해마다 2.28과 5.18에 맞추어 정기 교류 사업을 추진하며, 대구 교사들은 5.18교육을, 광주 교사들은 2.28교육을 4.19교육과 더불어 수업할 것을 약속한다. 일상적인 참교육실천 활동을 공동 추진하고 다양한 문화교류 사업을 기획하며, 학생들을 위한 교류 사업에도 적극 참여할 것을 약속한다. 이러한 활동을 통해 교사들 뿐 아니라 우리의 제자들이 특별히 달빛동맹을 받아들이고 ‘민주·인권·평화·통일’을 배우고 살아가는 생태민주시민으로 성장하도록 도울 것을 다짐한다.”

< 2022년 대구를 방문한 광주교사들이 쓴 초안>

<교육달빛동맹 광주․대구 교사 시민이 선언합니다. -2·28과 5·18의 저항정신을 계승하고 실천하겠습니다.>
“광주와 대구가 만났습니다. 2.28과 5.18을 삶에 새긴 광주와 대구의 시민들이 만났습니다. 이 땅의 지배세력들은 더러운 독재 권력의 연장을 위해 지역감정이란 원한으로 대구와 광주를 갈라놓으려 하였으나, 대구와 광주의 시민들은 2.28과 5.18 정신을 통해 광주와 대구가 민주주의를 향한 저항의 공동체란 일란성 쌍둥이였음을 잊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 기억에 부끄럽지 않게 민주주의를 향한 달빛교육동맹을 굳건히 외치고 실천하고자 하는 이 자리에 함께 섰습니다.
인류 지성사의 위대한 철학자 알베르 카뮈는 말했습니다. 원한은 자신이 가지고자 했던 것들을 얻지 못하여 발생한 분노와 질투가 외부로 발산되지 못하고 내부에 쌓여 생긴 것이요. 저항은 인간으로서 지키고자 했던 것들, 더 이상 양보할 수 없는 것들을 침해당하였을 때 나타나는 분노입니다.
이 땅의 지배 세력은 자본과 권력의 독점체제 유지를 위해 원한에 기초한 경쟁 시스템을 곳곳에 일제 강점기 쇠말뚝처럼 박아 넣었습니다. 부자 되세요. 서울대 가세요. 주식대박 나세요. 부동산 대박 나세요. 등등 오직 1등만이 가치 있고, 오직 부자가 되는 것만이 가치 있다는 승자독식의 체제를 상식으로 만들어왔습니다. 경쟁에서 패배한 이들은 살 가치가 없으며 그들이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삶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것들에 대한 요구조차 불공정한 요구라 낙인찍었습니다. 그런 요구가 이 각박한 승자독식의 경쟁에서 힘들게 살아가고 있는 당신의 것을 빼앗으려는 무임승차자들의 이기주의라고 왜곡하였습니다. 만인의 만인에 의한 투쟁 상태, 서로를 존중하며 나누려는 대신 서로의 것을 빼앗으려는 원한의 시스템을 일상화 시켰습니다.
그 결과 학교 현장에서는 입시경쟁교육에 의해 무엇과도 교환될 수 없는 가치를 지닌 아이들이 점수로 치환되어 상품화되고 교사들은 노동기본권과 정치 기본권이 과도하게 제약당한 채 입시경쟁교육의 도구로 내몰리고 있습니다. 산업현장에서는 사람의 생명보다 자본을 우선하는 작업환경 속에서 노동자들의 손과 발이 절단되고, 애먼 목숨 줄이 끊어졌습니다. 산과 들, 강과 바다는 과거와 현재 미래의 인간을 비롯한 무수히 많은 생명들이 삶을 만들어갈 터전의 지위를 박탈당한 채, 돈이라는 숫자로 환원되어, 거대한 플라스틱 더미들과 화석 산업이 뿜어내는 온실가스, 방사능에 뒤 덥혔고, 소수의 부자를 제외한 대다수의 시민들은 평범한 물과 공기조차 누리기 어렵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대구와 광주의 시민들은 2.28과 5.18의 외침을 잊지 않았습니다. 1980년 5.18의 마지막 날 밤, 광주 길거리에서 전옥주 열사는 말했습니다. “광주 시민 여러분. 지금 우리 형제자매들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어떻게 집에서 편안하게 주무실 수 있습니까. 여러분들이 도청으로 나오셔서 우리 형제, 자매들을 살려주십시오.” 1960년 2월 28일 낮 12시 55분 경북고 학생부 위원장 이 대우님은 말하였습니다. “백만 학도여, 피가 있거든 우리의 신성한 권리를 위하여 서슴지 말고 일어서라. 학도들의 붉은 피가 지금 이 순간에도 뛰놀고 있으며, 정의에 배반되는 불의를 쳐부수기 위해 이 목숨 다할 때까지 투쟁하는 것이 우리의 기백이며, 정의감에 입각한 이성의 호소인 것이다.” 5.18과 2.28을 상징하는 이 말들처럼 5.18과 2.28은 이 땅 위의 인간이자 대한민국의 주권자로서 결코 더 이상 양보할 수 없는 민주주의가 침해당하였을 때 결코 참지 않고 떨쳐 일어난 저항의 공동체 그 자체였으며, 그 저항의 정신을 기억한 광주와 대구의 교사 시민들이 원한에 기초한 경쟁 체제를 극복하고자 이 자리에 모인 것입니다.
광주와 대구의 교사 시민들은 선언합니다. 만 16세 이상의 참정권 확대라는 시대의 변화에 조응하며 청소년 시민들과 함께 청소년 시민과 교사 시민들이 민주주의와 역사의 주체로 우뚝 설 수 있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모든 국민에게는 집회, 결사, 표현의 자유가 있으며, 어떤 경우에도 그 본질적 가치가 훼손되어서는 안 된다는 헌법적 가치가 교사 시민과 청소년 시민들에게 똑같이 보장될 수 있도록 하는 법적, 제도적 장치 마련을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나아가 이 땅의 모든 생명들이 지속 가능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생태적 대전환을 위해 청소년 시민들과 함께 노력할 것입니다. 그 첫 발걸음으로 광주와 대구의 교사들은 4월에 2.28의 결코 양보해선 안 될 것을 위한 저항정신을, 5월에는 5.18의 결코 양보해선 안 될 것을 위한 저항정신을 교육현장에서 수업으로 실천해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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