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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슬브라보와 아눈구아의 눈물...그리고 식민지 후예들의 밥상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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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성상희
반핵평화 방미증언단 활동기행 후기②
1954년 미국, 아일릉귀나 섬에 핵실험
조선인 피폭자와 후손들 그리고 아리랑
영국, 호주 아난구아에 핵폭탄 실험
"그곳에 우리가 살고 있었다" 증언

 

'핵무기금지조약' 제정운동을 벌여 이를 관철했고, 그 공적을 인정받아 2017년 노벨평화상을 받은 '핵무기폐기국제캠페인(ICAN)'이 주최한 핵금지 주간 선포 행사(2025.3.3.미국 뉴욕) / 사진.생명평화아시아 

 

2025년 일본 원폭투하피폭 80년을 맞아 조선인 피폭자 1세와 2,3,4세 고통을 세계에 알리고 핵무기 철폐를 염원하는 평화의 기운을 전하기 위하여 원폭 투하 당사국인 미국을 방문하는 방미증언단 행사가 있었다. 2025년 2월 17일~3월 9일까지 태평양에서 대서양 연안까지 여러 도시를 방문하여 미국 시민들과 한국교포들을 만나서 증언을 하고, 연설을 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대화를 나누는 짧지 않은 여정의 행사였다. 공식 명칭은 "피폭 80주년 조선인 피폭자의 대를 이은 고통을 알리는 방미증언단 활동"이다.  

아일릉귀나 사람들의 '핵피해자추모의 날'이 3월 1일이다.

우리 겨레에게는 일제로부터 국권을 완전 박탈당한지 10년째 되는 해에 전국적으로 독립을 외치는 민족해방운동을 전개한 날이고, 아일릉귀나 사람들에게는 일본의 지배를 거쳐 2차 대전 시기에 사실상 미국의 식민지 지배를 받는 상황에서, 미국이 본국의 안전에 지장이 없고 소수의 인구를 가진 아일릉귀나 사람 외에 피해받을 사람이 없다고 판단하여 1954년 그 섬나라에 대규모 핵실험을 한 날이다.

피폭일을 추념하여 아일릉귀나 사람들이 핵무기금지조약 당사국회의의 부대행사(Side Event)를 하는 날이다.

오후 1시에 초교파 교회로 잘 알려진 리버사이드 교회( Riverside Church)에서 행사가 진행되었다. 행사 시작 시간인 10시 무렵에 행사장에 도착하니 곧 행사가 시작되는 흐름이었다. 이미 탁자를 놓은 공간은 청중이 다 들어찼고, 우리는 주로 뒷자리에 놓은 의자에 앉았다. 마셜교육행동(MEI)의 대표 베네딕이 개회사를 하였다. 그는 이날 행사의 의미를 세가지로 정리하였다.

첫째, 미국이 핵실험으로 인해 고통받은 피해자들을 기억하고 그들의 고통을 인정하는 것. 둘째, 핵실험으로 인한 지속적인 영향과 피해를 알리는 것. 셋째, 기억에 기초하여 핵무기 폐기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것이다.

아일릉귀나 목사 한 사람이 기도를 하였다. 아일릉귀나 사람들과 청중들은 숙연한 분위기에서 기도를 듣고 있었다. 스프링데일 공동체서 만났던 가수 겸 국가대표 축구선수인 매튜가 고요한 분위기의 노래를 하였다. 행사장에는 그들 민족이 그린 그림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이어서 몇 사람이 차례로 나와서 발언을 하였다.  

미국은 1954년 3월 1일 아일릉귀나의 비키니 환초에서 '캐슬브라보(Castle Bravo)'라는 이름으로 히로시마에 투하된 원자폭탄의 1천배 위력을 가진 수소폭탄 폭발 실험을 하였다. 그로 인하여 거의 모든 아일릉귀나 사람들이 심각한 방사능 피해를 입었고, 그 이후 많은 사람들이 암, 정신병 등의 질병을 앓았다고 한다.  

일행 중 일부는 뉴욕 교민들이 주최하는 탄핵 집회에 참석한다고 갔고, 남은 사람들은 행사가 끝날 때까지 자리를 지켰다. 이어진 패널 5인의 토론회에는 여성1인과 사회자 포함 남성 5인이 참가하였는데, 피부색이 검은 사람 한명 외에는 모두 외모 기준으로 볼 때 유럽형 백인들이었다. 토론의 분위기와 토론자의 자세는 깊은 고민이 들어 있는 것 같지 않았고, 토론 내용에도 특별히 주목할 만한 새로운 내용은 없었다는 것이 끝까지 같이 한 동료들의 의견이었다. 

행사가 끝나고 6시 무렵에 미리 예정된 뉴욕 흥사단 사무소로 이동하였다. 집회 참가자들은 이미 그곳에 도착해 있었다. 그 공간은 '윤석열 내란사태'에 따른  뉴욕 비상시국회의 사무소로 사용되고 있었고, 그 기구의 회장과 총무를 비롯한 교민들 7~8명이 김갑송님과 함께 하고 있었다. 초청자들이 주위 가게에서 준비해 온 김치찌개, 된장찌개로 저녁요기를 하였다. 뉴욕 교민들의 분위기, 시국상황에 대한 교민들의 입장과 태도, 방문단의 목적과 며칠 사이의 활동 등에 대하여 의견을 나누었다. 오늘도 동포들로부터 귀한 대접을 받았고, 8시가 다 되어 호텔로 돌아왔다. 

3월 2일 일요일이다. 3월 3일 핵무기금지조약 개막식을 하루 앞둔 이 날, 핵무기금지조약 제정운동을 벌여 이를 관철하였고, 그 공적을 인정받아 2017년 노벨평화상을 받은 '핵무기폐기국제캠페인(ICAN)'이 주최한 핵금지 주간 선포행사에 참가하였다. 이 조직에는 현재 110개국 661개 조직이 참여하고 있다고 한다. 한국에서도 참여연대(평화군축센터),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평통사) 등 4개 단체가 회원단체로 가입되어 있다고 한다. 

조선인 피폭자와 후손들과 남태평양 섬나라 마우히누이 사람들...그리고 '아리랑'

이날 기행단은 호주에서 온 활동가, 콩고 배경으로 남아공에서 온 활동가 등 다양한 그룹들을 만나고 인사를 나누며 교류를 하였다. 피폭1세로서 박정순님, 피폭2세로서 한국원폭피해자 후손회 회장인 이태재님이 다양한 사람들로부터 주목을 받고 사진 촬영 요청도 많이 받았다. 오후에는 이태재 회장님이 주최측이 미리 요청한 대로 무대로 나가서 연설을 하였다. 이태재님은 유창한 영어로 차분하게 조선인 피폭자와 그 후손들의 역사와 상황을 전달하였다. 

행사를 마치고 소수민족 피해자 그룹들과 저녁식사 약속을 한 장소로 갔다. '더큰집'의 제일 큰 방에 20명 가까운 사람들이 모였다. 방문단 9명에 김갑송님, 카자흐스탄 활동가로서 원숙함을 보이는 인디라, 젊은 야르달렛, 노련함이 묻어나오는 호주 여성활동가로서 원폭2세인 카리나와 고등학생인 그의 아들 윌리엄,  반핵활동가로서 현역 국회의원인 히나와 그의 동료들 3명으로 구성된 네명의 폴리네시아인들이 모였다. 폴리네시아는 원주민 언어로 '마우히누이'라는 이름의 남태평양 섬나라이다. 마우히누이 사람들이 그들의 노래를 불렀고, 우리는 아리랑을 불렀다. 카자흐스탄의 벗들은 시 낭송으로 화답을 하였다. 아리랑을 부를 때 몇 사람은 눈시울이 붉어져 있었고, 나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우리들의 처지가 아니라 그들의 처지가 마음에 깊이 들어오고 우리의 과거 역사와 너무나 닮아 있는 그들 겨레와 나라의 모습이 짠하게 다가온 것이리라.  

이날 밤 작은 잔치를 마치고 나와서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그날 저녁값이 1,300달러 정도였다는 말을 들었다. 3,000달러를 재미해외동포재단(KAPF)이 방문단에 기부해 주기로 하였는데, 이틀 전 저녁식사와 합하면 벌써 절반을 더 써버린 셈이다.  막걸리 한병에 20달러(약 3만원)라는 사실을 몰랐던 것이다. 흥에 겨워 그 비싼 술을 취하도록 마셨으니.  

한국에서 온 평화연대와 조선인 피폭자 후손들과 마우히누이 사람들이 함께 손을 잡고 '아리랑'을 불렀다.(2025.3.2) / 사진.생명평화아시아
한국에서 온 평화연대와 조선인 피폭자 후손들과 마우히누이 사람들이 함께 손을 잡고 '아리랑'을 불렀다.(2025.3.2) / 사진.생명평화아시아

3월 3일(월요일)은 핵무기금지조약 3차 당사국 회의(UN TPNW 3MSP)가 개회되는 날이다. 오늘은 리버사이드 교회가 아니고 유엔 건물 맞은 편에 있는 유엔 교회센터 건물에서 오전 10시 30분에  행사가 있었다. 핵진실프로젝트(Nuclear Truth Projet)라는 흐름의 일환으로 개최하는 '세계핵피해자 교류회'다. 도착하니 벌써 많은 사람들이 와 있었다. 오전에는 호주 원주민들의 증언과 발표가 있었다. 신준식님의 의미 부여에 따라 '밥상연대'라고 부르게 된 어제 저녁자리를 같이 한 호주의 여성활동가 카리나와 그의 고등학생 아들 윌리엄이 나왔다. 카리나는 상세하게, 그리고 열정적인 언변으로 자신들의 상황과 피해에 대하여 내용을 알렸다. 

영국, 호주 남부 원주민 '아난구아'에 핵폭탄 실험..."그곳에 우리가 살고 있었다" 

영국이 호주 남부지역에 원주민들이 사는 지역 아난구아(Anangua)에 핵폭탄 실험을 하였고, 그로 인한 피해를 입었고 지금도 피해를 입고 있는 지역이다. 아난구아는 호주 서부의 대사막 지대에 거주하는 여러 원주민들을 통칭하는 원주민의 용어이다. 아난구아의 여러 사람이 나와서 간략히 인터뷰에 응하는 내용으로 구성된 영상물의 내용과 흐름도 인상적이었다. 기형으로 태어나거나 신체가 변형된 사람들이 다수 보였다. 카리나의 인상적인 말이다. "그들은 핵실험을 할 사막에는 아무도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곳에는 우리가 살고 있었다." 팔레스타인을 점령한 이스라엘 식민주의자들이 하는 말과 똑같은 정착형 식민주의자들의 궤변이다. 그들은 그곳에 살고 있는 원주민들을 사람으로 보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카리나의 아버지는 핵실험의 영향으로 추정되는 실명을 당하였다고 한다. 이들에 대한 어떠한 사과나 배상도 없었다. 호주에서 영국의 핵실험은 열두번 실행되었다고 한다. 

오후에는 '미국 서남부 원주민 지역에서 핵식민주의의 유산' 주제로 행사가 이어졌다. 미국 내의 핵무기 원료인 우라늄 채굴광산 지역에 사는 원주민들이었다. 애리조나 주, 뉴멕시코 주 등에서 온 사람들이었다. 미국을 비롯하여 제국주의 국가들은 앵글로색슨을 비롯하여 그들의 인종이 사는 지역에서는 절대로 핵실험을 하지 않는다. 지금까지 역사상 모든 핵실험은 원주민 지역에서 이루어졌고, 그로 인하여 그 지역들은 뿌리가 뽑히거나 심각한 고통을 지금도 당하고 있다. 식민주의와 제국주의에 대한 깊은 분노가 밑바닥에서 올라오는 느낌이었다. 젊은 시절과 달리 그 분노를 바로 바깥으로 드러내지는 않는다. 

세계 핵피자 교류회...영국의 핵실험은 호주에서 12차례 진행됐다. 원주민들이 그에 대한 피해를 증언하는 영상 / 사진.생명평화아시아

행사를 마치고 시간이 좀 남아서 다수파는 말콤엑스 기념관을 찾아가고 신준식, 김찬휘, 이승주, 성상희는 저녁밥 자리인 한식당 가까운 곳으로 가서 빵집에 가서 차를 마시며 시간을 보냈다. 우리가 조금 일찍 식당에 도착하였는데, 나중에 온 일행들은 월요일에 문을 닫아 말콤엑스 기념관에 들어가지 못하였다고 한다. 많이 아쉬운 일이었다. 

이날 저녁은 아일릉귀나 사람들과 함께 하는 밥상연대의 자리이다. 어제와 마찬가지로 '더큰집'이다. 아일링귀나 사람들 6~7명과 우리 일행 10명 전원이 모였다. 이들은 스프링데일에서 만나 며칠을 함께 보냈으므로 많이 친숙하다. 어제 밥자리에는 막걸리를 양껏 마셨고, 소고기 갈비까지 구워서 1,300달러 정도 밥값이 나왔다고 한다. 요즘 환율 기준으로 하면 거의 200만원에 이르는 돈이다. 미주한인평화재단에서 재정을 마련하여 우리 일행에게 3,000달러를 쓴다고 한다. 막걸리가 한국돈으로 2만원 정도 하는데, 거의 50만원치 가까이 마셨다고 한다. 오늘은 조금 조율을 하여 고기도 삼겹살 몇인분 정도로 줄이고 막걸리도 세통만 마시고 그 이후로는 맥주로 마시는 것으로 하였다. 그런데 나중에 보니 맥주는 거의 마시지 않아서 전날보다 술을 매우 적게 마셨고, 밥값도 500달러 정도 수준에 그쳤다고 한다. 

한 사람 한사람 일어나서 자기소개를 하고 소화를 이야기하는 시간을 길게 가졌다. 마칠 무렵에 두 겨레 사람들이 서로 노래를 불렀다. 아일릉귀나 사람들이 부르는 노래는 가사를 알 수 없었지만 낮은 음으로 이어지는 노래로서 무엇인가 강한 울림이 있었다. 우리는 어제 '아리랑'에 이어 오늘은 '아침이슬'을 불렀다. 고요히 시작된 노래는 후반부로 가면서 끓어오르는 기운과 함께 길게 이어졌다. 눈시울이 촉촉이 젖는다. 나중에 영상을 보니 녹색당 대표를 지낸 김찬휘님은 아예 눈믈을 쏟아내고 있었다. 김찬휘님은 '생명평화아시아'에서 모금을 하여 이번 평화기행에 파견하는 활동가의 이름으로 참여한 사람이다. 3주 전체 일정을 함께 하였다. 그리고 엄청난 부지런함을 보이며 매일 밤 그날의 일정을 세밀하게 정리한 일기를 작성하여 우리들의 여행을 생생하게 전달하고 기억하게 하는 소중한 역할을 하였다. 

[기고]  성상희 / 변호사. 생명평화아시아 부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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