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민주.개혁세력을 위한 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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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락 칼럼]..."예의가 있고 교양과 성실성으로 감동을 주어야 한다. 운동가라면"


* 장면-1

지난 6월 14일(일요일) 저녁 7시경부터 대구 신천둔치에서 소위 대구지역 민주개혁인사 50여 명이 모여 막걸리 잔치를 했다. 노 전 대통령 서거 이후 시국이 하수상하니 얼굴이나 한 번 보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자고 누군가가 생각을 냈고, 많은 분들이 암암리에 동의해서 이 모임이 이뤄진 것 같았다.

나도 모임 날 며칠 전부터 여러 지인들에게서 행사를 알리는 공지 문자를 받았고 당일 민예총 행사 때문에 조금 늦었더니 평소 알고 지내던 선배 교수께서 직접 전화까지 해서 왜 빨리 안 오냐고 채근까지 주셨다. 민예총 행사를 마치고 내가 현장에 도착했을 때는 벌써 밤이 10시 30 정도였고, 몇몇 분은 술에 취해서 그 자리를 빠져나가고 있었다. 당시 머물러 있는 숫자는 스물댓 분 정도였다.

면면들을 보니 오랫동안 지역에서 민주화운동을 해 오신 원로 선생님, 노무현 정권에서 부총리, 여당 국회의원, 지방사립대 총장, 지방 사립전문대 이사장, 청와대비서관을 지내신 분, 야당 인사들, 시민단체 관계자, 전교조 선생님, 개혁적인 대학 교수 등이 몇 그룹으로 나뉘어 뭔가 열띤 이야기들을 나누고 있었다. 이들의 공통점은 이 지역의 주류 정치성향과는 다른 길을 걸어왔다는 점일 것이다. 그리고 우리사회가 좀 더 민주화되고 인간적인 삶이 가능한 영역으로 만들자는 생각을 가졌을 것이다.

내가 늦게 끼어든 그룹에서는 최근 대구 <매일신문>의 한 인사가 쓴 노무현 폄훼논설을 두고 언론의 횡포, 수구적인 지역정서에 대해 걱정하는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마침 그 자리에는 내가 평소 존경하고 신뢰하는 선배(그는 노 정권에서 청와대 근무를 한 적이 있다)가 있어서 후배로서 어리광부리듯이 말했다. 권력을 잡아 청와대에 있을 때는 뭐하고 지금 그런 이야기를 하느냐고......

참여정부 '경반'과 '향반'

단지 소문인지 사실이 그랬는지 확인하지는 않았지만, 노무현 정권 때 지역 인사들이 유난히 정부 고위직에 많이 진출했다. 소위 대통령이 자신의 권력 반을 나눠주고 싶다고 했다는 왕 수석에서부터 부총리, 장관, 경제수석, 청와대 비서관 등등. 그래서 지역에서는 ‘경반/향반’ 이라는 말이 흘러 다녔다. 이 용어는 조선시대 때 서울 양반을 경반이라 부르고 시골 양반을 향반이라 부르면서 폄하한 데서 비롯된 일종의 비틀어진 언어이다. 노 정권 때 이런 말이 대구에서 떠돌게 된 것은 ‘경반’이라 불리는 사람들이 지역의 대표성을 갖고 정권에 참여했으면서도 지역에 대해 한 것도 없이 폼만 잰다는 일종의 비판적인 언어였다. 이런 여론에 대해 ‘경반’들도 나름 할 말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역차원에서 보면 안타깝지만 가시적인 성과를 낸 게 별로 없다.

대안언론의 싹을 키운 것도 없고, 부산의 민주공원처럼 민주화운동 관련한 변변한 사무실 하나 마련해 놓지 못하고 정권을 넘겨준 것도 사실이다. 민주개혁 인사들이 사랑방으로 모일만한 사무실 하나 마련하지 못해 신천강변에서 막걸리를 마시는 게 현실이다(물론 그날은 시원한 강바람을 쐬자는 차원이었겠지만).

지역 식자들이 언론 이야기를 할 때주로 예로 드는 게 인천에서 발행되는 계간 <황해문화>라는 잡지이다. 시사 학술 종합지 성격의 3백쪽 내외 분량의 이 잡지는 인천이라는 지방에서 발행하지만 전국적인 영향력과 명성을 갖고 있다. 그래서 대구에서도 그런 잡지를 한 번 내보자는 이야기를 하곤 한다. 이 글을 쓰기 위해 그저께 그 잡지를 발행하는 '새얼문화재단' 사무국장과 통화했다. 이 재단은 1975년 10월 23일 이사장을 맡고 있는 지 아무개라는 분이 6천만 원의 종잣돈으로 법인설립을 하고 지난 30년 동안 1구좌에 5천원의 시민들의 후원을 받아 2009년 현재 자본금 50억 원을 모았다는 것이다. 그 돈으로 장학사업을 비롯해서 여러 가지 사업을 하고 있는데 <황해문화> 발간은 출판사업의 일환이며, 매 호 낼 때마다 2천5백만 원 정도 들고 대부분 무가지이며(오롯이 적자 본다는 이야기이다), 편집주간, 운영위원 등 관계자는 거의 봉사차원의 활동비만 받고 있다는 것이다.

내 자신 공익을 위해 돈을 내 본 적이 없으면서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게 파렴치 하고 자격도 미달이지만, 대구에서 공익을 위해 누가 종잣돈 1천만 원이라도 낸 사람이 있는지? 노 정권에 참여해서 공시가격으로 수십억씩의 재산을 등록한 분 가운데 지역사회 민주화를 위해 종잣돈 1천만 원 내 놓았다는 이야기를 들어보지 못했다. 이런 사정이니까 후배들 가운데 화염병에 최루탄 맞아가면서 표 모아 민주정권 만들어주었더니, 개인 출세만 하고 지역 발전을 위해 한 게 뭐있냐는 비난이 암암리에 그렇지만 광범하게 떠돌고 있는 게 사실이다.

이름만 대면 바로 알 수 있는 타 지역 출신의 우리 지역대학의 저명한 교수 한 분은 반은 공적인 자리에서 대구의 선배들은 자신의 출세만을 위해 일할 뿐 후배들을 위해 일하지 않는다는 뼈아픈 직언을 한 바도 있다.

어느 교수의 후원 3만원

‘노블리스 오블리제’가 반드시 재벌이나 보수주의자에게만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개혁세력, 민주세력에게도 노블리스 오블리제가 있다. 작고한 노무현 전 대통령 개인에 대한 평가, 그가 이끈 참여정부에 대한 평가가 다를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지난 대선 때 보수진영이 이명박과 이회창으로 분열되었는데도 소위 민주진영의 대선 후보가 530만표라는 역대 최대 표차로 대패한 이유를 곰곰이 되새겨 봐야한다. 한 사회나 개인의 발전에 헌신과 봉사가 왜 있어야 하는 지를 다시 생각해 봐야한다.

그날 막걸리 잔치에서 술에 취한 한 시민운동가가( 42세의 미혼 운동가이다) 일전에 있었던 한 시민단체의 후원 모금회에서 어떤 교수가 3만원을 후원한 사실을 두고 너무하다, 건달에 가까운 자신도 10만원을 했는데 어떻게 교수가 3만원을 하느냐, 너무하다고 여러 차례 투정을 했다. 3만원조차 하지 않는 더 많은 사람을 생각해보면 그 3만원도 고마운 것이다. 그 교수도 여러 군데 후원하다보니까 3만 원 했을 수 있고, 넉넉하지 못한 교수 자신의 형편에 맞게 한 액수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후원금의 액수도 중요하지만, 성경에도 가난한 과부의 동전 두 닢이 더 소중하다고 말 한 바 있다는 사실을 상기하면 너그럽게 넘어갈 수 있는 사안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 젊은 친구의 투정이 심했다고 생각했는지, 곁에 있던 수십억 재산 등록의 경험이 있는 어른 한 분이 야! 그건 그 단체가 그 교수에게는 3만 원 정도 가치 밖에 안 된다고 생각해서 그 액수를 한 게 아니냐는 투로 타박을 하는 것이었다.

그 교수가 실제로 그렇게 생각해서 3만원을 기부했을 수도 있다. 요즘 시민단체가 비효율적으로 조직을 운영해서, 후원자들은 자신의 후원금이 단지 활동가들 급여에 대부분 쓰인다는 사실에 대해 의구심을 가지고 지속적인 후원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 어른의 말이 자신의 인색함에 대한 변명으로 작용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돈을 내 놓고 싶어도 그걸 제대로 쓸 만한 사람(조직)이 없고, 시기가 아니라서 못 내놓는 변명을 그런 방식으로 하는 게 아닌가하는 생각을 해봤다.

이 글이 극소수의 사례를 지나치게 일반화 시키는 한계가 없다고 말하지는 않겠다. 그러나 이런 사례가 시사하는 바는 분명 있을 것이다. 오해를 피하기 위해 사족을 달자면 이 글이 특정인이나 특정 그룹을 폄훼하기 위해서 쓴 글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나 자신을 반성하고 성찰하기 위해서 쓴 글이다. 그래도 기분 나쁜 분들이 있다면 너그럽게 이해해주길 바란다.


* 장면-2

그로부터 하루 뒤 15일 오후 7시 대구지역의 인터넷신문인 <평화뉴스>, <대구사회연구소>, <대구·경북민주교수협의회>가 공동으로 대구MBC 7층 강당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이후 대구 민주·개혁세력의 대응과 전망’이라는 주제로 시국토론회를 열었다. 이 토론회에 참석한 이들은 시민단체 관계자 두 사람, 대구사회연구소 소속 교수 한 사람, 민주당, 민노당, 진보신당 대구시당 관계자 각 한 사람, 대구경북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출신 의사 한 사람이 사회를 맡아서 모두 일곱 분이 의견을 나누었다. 그리고 객석에는 70여명의 방청객이 질의 하고 토론도 했는데 나도 관객 중의 한 사람이었다.(<평화뉴스> 2009. 6. 16 참고). 이날 연단에서 발제와 토론을 한 이들은 나이가 주로 40대인데 대구지역사회의 중심적인 활동가라고 할 수 있다.

그날, 이들은 모두 성실하고 의미있는 토론을 해주었는데 그간 헌신적으로 각 분야에서 지역 활동에 매달려온 이력이 느껴질 정도로 수준 높은 논의였다. 그날 그 장소에서 많이 들렸던 단어는 ‘성찰’ ‘반성’ ‘연대’ 등과 같은 그간의 우리의 삶과 우리 사회를 되돌아보게 하는, 말 그대로 성찰과 회고, 전망을 담은 어떤 염원의 언어였다.

토론이 끝나고 질의 응답시간에 한 질문자가 연단의 논의 수준이 자신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던지 이런 수준의 논의는 아고라 토론방에 가면 쉽게 접할 수 있는 수준이니,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끼리만 모여 이러지 말고 시민현장에 들어가서 어떻게 하면 대구지역민들을 설득하고 견인할 수 있을까 고민하는 게 나을 것이라는 취지의 발언을 하기도 했다. 탁상공론 하지 말고 몸으로 뛰라는 주문 같았다.

언제까지 서울 이론을 '번안'할텐가. 내부 식민지처럼

주지하는 바이지만, 변혁운동에서 이론도 중요하고 실천도 중요하다. 둘 가운데 어떤 걸 우위에 둘지는 변혁주체의 철학이나 당시의 주·객관적인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문제이다. 또 어떤 이는 이론실천이라는 말로 이론을 탐구하는 것도 중요한 실천의 범주로 잡기도 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이 글에서 이론은 변혁운동의 전략, 전술을 수립하는 문제를 말하는 것이고, 실천은 말 그대로 몸으로 뛰면서 목표를 성취하려는 행동을 말한다.

이것은 둘 다 중요하다. 하나만으로는 안 된다. 그날 토론회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이후 대구 민주·개혁세력의 대응과 전망’이었지만, 노 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이미 언론에서 다 나온 이야기를 재탕하는 수준이었고, 대응과 전망도 “반성과 성찰”이라는 당위적인 언급에서 그쳤다. 뭔가 구체적이면서도 날카로운 대안이나 전망을 기대했던 사람으로서 다소 힘이 빠졌다. 오해는 말기 바란다. 내가 그 자리에 앉았어도 역시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날 연단에 앉은 일곱 사람은 지역운동권의 이론과 실천적인 면에서 중추세력이다. 앞서 언급한 바 있지만, 그간 이들이 보여준 자기희생이나 헌신과 성실성에 대해서는 지역사회의 신뢰를 받아왔고, 나도 진심으로 존경을 보낸다. 그래서 더욱 안타까웠다. 뭔가 좀 더 쌈박한 견해는 없었을까? 우리사회 전체로 봐도 어렵고, 대구지역으로 좁혀보면 더욱 어려운 이런 현실을 돌파할 수 있는 훌륭한 대안을 그들이 제시할 수 있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내가 이런 말을 할 자격이 있는지는 모르지만, 지역운동가들이 좀 더 공부하는 분위기를 만들어 갔으면 좋겠다. 그 속에서 한국사회 전체 변혁운동의 이론틀을 대구지역 운동가들이 만들어 낼 수 있었으면 하는 생각을 해 봤다. 언제까지 지역운동권도 내부 식민지처럼 서울의 이론을 받아 지역에 적용하는 ‘번안’ 수준에서 머물러야하나? 하는 아쉬운 심정이다.

도덕적 우월감, 예의도 교양도 없이


소위 개혁세력도 보수파도 아닌 평범한 친구들에게 자주 듣는 이야기 가운데 하나이다. 운동권들이 그 어려운 군사독재 시절에 일신의 영달을 위해 고무신 거꾸로 신고 도서관과 고시원에서 공부해 판검사 되고 대기업사원이 되어 편안하게 살지 않고, 사회의 정의를 위해 징역살고 헌신해온 데 대해서는 인정하고 존경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거기까지라는 것이다. 세월이 바뀌었는데도 여전히 알량한 도덕적 우월감을 내면화해서 사람을 대할 때 대체로 예의도 없고 교양도 없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 지적에 대해 그 자리에서는 동의하지 않았지만 오랫동안 마음에 남아 있었다.

대구지역에서는 한 줌 밖에 안되는 게 민주개혁세력의 실체이다. 이 소수세력이 차이보다 동질성에 주목하고 뺄셈보다는 덧셈의 정치를 할 수 있는 여유와 아량도 키워야 한다. 그게 진정한 연대의 의미인지도 모른다.

또 한 분은 역시 이름만 되면 곧바로 알만한 대학 총장을 몇 차례 역임하고 국회의원까지 지낸 분이 사석에서 하는 말을 내가 직접 들은 내용이다. 서울 국회에 가서 생활해보니 소위 운동권들이 우파로 불리는 사람들에 비해 불성실하고 무능하더라는 것이었다. 덧붙여 경쟁에서 진 사람들이 운동권에 뛰어들어 오로지 비판만 하는 게 아니지 모르겠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나는 속으로 너무 충격을 받아서 “운동권들이 조금 게으른 면은 있지요” 하면서 그 분이 말이 더 나가는 것을 막았다.

비록 일부이기는 하나 지역의 주류신문을 비판하면서 그 신문을 읽지도 않는 불성실도 있고, 시사 잡지조차 읽지 않으며, 현실이나 역사에 대해 가쉽 수준의 안목으로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좌중의 리더를 자처하며 남의 시간을 허비하고 있다. 이런 나태하고 게으른 태도로 어떻게 시민을 설득하고 새로운 세상에 대한 비전을 말할 수 있겠는가? 군사독재 때처럼 민주화 진영과 독재 진영이 분명하지도 않고 이 둘을 선/악으로 거칠게 이분할 때는 이미 지났다.

  진정한 운동가라면 인간을 대할때 예의가 있어야하고 풍부한 교양과 성실성으로 감동을 주어야 한다. 다시 한 번 내가 이런 말 할 수 있는 자격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나 자신을 포함하여) 일선 운동가들은 공부 좀 제대로 해야 한다. 책 좀 읽어야한다. 그래야 대구 민주.개혁세력, 평화세력의 미래가 있는 것이다.





[김용락 칼럼 27]
김용락 / 시인. 경북외국어대 교수. 평화뉴스 칼럼니스트 daegusc@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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