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주민투표 결과와 대구의 현실
지난 8월 24일, 서울시 무상급식 주민투표에서 오세훈 시장이 패배했다. 길게 말할 것도 없이, 서민들의 입장에서 이것은 통쾌한 일이다. 무엇보다 이번 주민투표를 계기로 무상급식을 포함한 ‘보편적 복지’에 대한 관심과 사회적 논쟁이 한 단계 높은 수준에서 전개될 것이라는 점에서 크게 환영할 만한 일이다. 대단한 정치적 분석에 기대지 않더라도, 내년 총선과 대선에서 복지 문제가 가장 중요한 사회적 쟁점이 될 것이라는 점은 불을 보듯 뻔하다.
민주노동당 대구시당 등이 주민투표 종료 직후 낸 논평대로, 이러한 상황에서도 한나라당이 행정과 의회를 거의 독점하다시피 하고 있는 대구지역의 형편은 딱하기 짝이 없다. 보다 못한 대구의 51개 시민사회단체와 야당들이 지난 8월 19일 ‘친환경 의무급식 대구운동본부’를 발족하고, ‘친환경 의무급식 등 지원에 관한 조례 주민발의’에 나서겠다고 선포했다. 이미 ‘대세’가 된 무상급식 추진을 교육청과 의회, 시정부가 끝내 소극적으로 다루겠다면, 시민의 힘으로 이를 이루어내겠다고 팔을 걷어붙인 것이다.
‘세계 3대 스포츠 제전’의 하나라는 ‘세계 육상선수권 대회’를 열고 있는 ‘국제도시’ 대구의 ‘자랑스런’ 위상을 생각한다면 퍽 한심스럽다는 생각도 들지만,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생각한다면 이 주민발의를 통해 ‘아래로부터’ 시민의 힘을 조직해 나감으로써 오히려 더 값진 복지 모델을 일구어 나갈 수도 있을 것이라는 희망도 가져 볼 만하다.
어쩌면 ‘위로부터’ 주어지는 복지보다 풀뿌리 스스로 힘을 조직함으로써 ‘아래로부터’ 싹을 틔워 나가는 복지가, 비록 험난한 길이긴 하지만 민주주의의 대의에 더욱 부합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나아가 이렇게 풀뿌리 시민의 힘을 성공적으로 모아나갈 수 있다면, 그렇게 형성된 힘은 무상급식 문제를 넘어 지역의 정치적 힘 관계를 변화시키는 의미 있는 동력이 될 가능성이 크다. 아무튼 ‘친환경 의무급식 등 지원에 관한 조례 주민발의’ 운동에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그리고 아이를 키우는 부모로서 적극 관심을 가지고 참여해야겠다는 다짐을 해 본다.
기후변화와 식량위기
다시 한번 말하지만, 이번 서울시 주민투표를 계기로 전면 무상급식 추진이 전국적으로 탄력을 받게 된 것은 의미 있는 성과이다. 그러나 여기에서 우리가 냉철하게 생각해야 할 문제가 있다. 이러한 성과는 ‘밥그릇’을 확보한 차원의 문제이지, 거기에 담을 ‘밥’까지 저절로 확보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기상 관측 이래 최대(최고)’라는 수사(修辭)에 어느덧 둔감해질 만큼 최근 ‘이상기후’에 따른 재해가 세계적으로 잇따르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잦은 비와 일조량의 절대적인 부족으로 작년에 이어 올해에도 벼 대흉작이 예상된다고 농민들은 우려하고 있다. 물론 정부는 작황이 ‘양호’하다고 아직도 우기고 있지만. (〈한겨레〉8월 20일자 기사 참고)
그런데 최근 출간된 주목할 만한 책,《긴 여름의 끝 : 지구에게 문명과 인류의 생존에 대해 묻다》(다이앤 듀마노스키 지음, 아카이브 펴냄)는 이러한 상황이 일시적이거나 비정상적인 ‘이변’이 아니라, 21세기의 ‘일상’이 될 것이라고 예고하고 있다. ‘긴 여름’은 과학자들에게는 ‘홀로세’라고 알려진 “비정상적일 정도로 길고 안정된 간빙기(間氷期)”를 일컫는 말이다. 약 1만 2천년간 지속된 이 예외적으로 온후하고 은혜로운 시기 동안 인류는 지금 우리가 ‘문명’이라고 부르는 지구적 규모의 ‘실험’을 이어올 수 있었다. 특히 저자가 이 책에서 여러 번 강조하고 있듯이 현재 70억 인구를 먹여 살릴 수 있을 만한 규모로 확대된 ‘농업’이야말로 이 ‘긴 여름’의 축복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었다.
그러나 “인류가 이 행성 전체에 미치는 영향 때문에 이제 이 온후한 시기는 끝나가고 있다. 오늘날 산업자본주의의 지나친 성장과 인구 증가에서 비롯된 부담은 그 파괴력에서 지구의 역사를 뒤바꿔 놓았던 소행성 충돌과 빙하기에 비견될 만한 ‘행성 수준의 힘’을 발휘하고 있다.” 지금 우리 눈앞에 연일 등장하고 있는 기상이변은 바로 이러한 새로운 세기로 진입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전조’들에 불과하다. “우리는 앞으로 몇십 년 안에, 20만년 인류의 진화에서 단 한번도 존재하지 않았던 조건과 마주칠 것”이라고 저자는 경고한다. 이러한 새로운 조건이 우리에게 가하는 위협은 “그 언젠가 태어날 관념 속의 후속 세대를 향한 모호한 위험”이 아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 아들과 딸들이 살아가는 동안에 맞닥뜨리게 될 구체적인 것이다.
《긴 여름의 끝》의 저자는 이 책의 상당 지면을 할애해, 오로지 효율성만을 추구하는 ‘세계화’ 시스템, 특히 농업과 먹을거리의 세계화 체제에서 시급히 탈출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진화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이런 식의 세계화는 특히나 요즘처럼 불안정과 불확실성이 증가하는 시대에 위험”하기 짝이 없다. 그것은 “국지적 위기가 단 일주일 만에 전지구를 마비시킬 수도 있는 위험한 통합”인 것이며, “사고가 터지기를 기다리고 있는 상태”나 마찬가지다. ‘일상’이 되어 버린 ‘이상기후’ 때문에 주요 식량 수출국의 작황에 문제가 발생할 경우 전세계의 식량가격은, 최근 몇 년 동안 이미 보아왔듯이 폭등할 것이며, 식량자급률이 쌀을 제외하면 5퍼센트에도 미치지 못하는(쌀을 포함할 경우 약 25퍼센트를 겨우 자급하는) 한국사회는 하루아침에 비참한 식량난에 허덕일 수 있다. 북한사회의 비극이 결코 남의 일이 아닌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는 아무리 ‘친환경 무상급식’과 ‘보편적 복지’의 제도적 틀이 갖추어져 있다고 하더라도, 아이들의 식판에 충분한 밥을 채워주지 못하는 일이 벌어질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비극을 최대한 피해 가기 위해서는, 앞으로 탄력을 받아 추진될 ‘전면 무상급식’이 반드시 국내 농업, 특히 가까운 지역의 농업(농기업이 아닌 소농 공동체들)을 보호하고 확대하는 방향에서 조직되지 않으면 안 된다. 기왕에 팔을 걷어붙인 대구의 ‘주민발의’ 운동도 ‘지역 농업 및 먹을거리(로칼푸드 시스템) 보호 및 확대’라는, 우리 생존의 가장 기본적인 ‘진지 구축’을 철저하게 염두에 두고 추진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후쿠시마'는 남의 일이 아니다
지난 8월 4일자〈한겨레〉신문 제1면은 후쿠시마 핵발전소에서 30킬로미터 떨어진 한 농장에서 4월 말에 태어난 ‘귀 없는 토끼’의 사진과 기사를 크게 싣고 있다. 일본 시민단체 ‘식품과 생활의 안전 기금’의 기관지《식품과 생활의 안전》8월호에 실린 기사에 따르면, “원전사고 초기 어미 토끼가 먹이를 통해, 기형의 새끼를 낳을 만큼 심하게 방사능에 내부피폭된 것으로 보인다”고 한다. 피부나 호흡기를 통한 직접적인 방사능 피폭이 아닌, 방사능에 오염된 먹을거리를 섭취함으로써 입게 되는 치명적인 피해를 ‘내부(체내)피폭’이라고 한다.
이 ‘귀 없는 토끼’의 문제가 단지 동물들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은 길게 말할 필요도 없다. “방사능이 3월 15일부터 급격히 확산됐고 일본 정부가 후쿠시마산 시금치의 출하를 중단시킨 게 3월 21일이라, 그 사이 고농도로 오염된 채소를 먹은 사람이 있을 가능성은 배제하기 어렵다.” 시금치와 채소만이 문제일까? 아무리 검사를 엄격히 한다고 하더라도, 무색․무취․무미의 방사능 위험을 완벽하게 차단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체르노빌 핵참사 이후에도 그러했지만, ‘후쿠시마 이후’ 일본이 토양과 바다의 방사능 오염, 그리고 생선과 농산물, 축산가공품 등 먹을거리의 연쇄적인 방사능 오염으로 인해 앞으로 얼마나 끔찍한 ‘내부피폭’의 피해를 입게 될지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양심적인 전문가들은 “일본 사회는 결국 한두 세대 안에 백혈병 등 방사능 피폭에 의한 질병의 만연과 이에 대한 사회적 비용의 지불 부담으로 사실상 국가 시스템 전체가 흔들리는 상황”을 맞게 될 것이라고 예견하기도 한다. 문제는 상황이 종료되거나 해결되어 가고 있기는커녕, 아직 본격적인 재앙은 시작되지도 않았다는 데 있다. 일본과 한국의 언론이 모두 이 문제에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는 것은 참으로 기이한 일이다.
후쿠시마의 거대사고는 결코 남의 일이 아니다. 이미 이 지면에서 여러 차례 되풀이해서 이야기했지만, 21기의 핵발전소가 가동 중인 우리 사회 역시 언제든 직면할 수 있는 ‘준비된 재앙’인 것이다. 소위 ‘원자력 안전신화’는 철저하게 무너졌다. 만약 그러한 재앙이 발생한다면, 우리 자신과 아이들의 밥상을 도대체 무엇으로 차릴 것인가.《녹색평론》7-8월호(제119호)에 실린 조 갬브론의 글〈미래의 후쿠시마 아이들〉의 마지막 대목은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발언이다.
모든 핵발전소는 정기적, 일상적으로 유해 방사성 입자들을 방출하고 있다. 이것은 모든 정부가 안전하지 않다고 인정하고 있는 물질이다. 그러므로 사태는 명백하다. 아직 지구상에 우리들을 먹여 살릴 만큼 오염되지 않은 농경지가 남아있는 동안에, 원자력은 마땅히 폐기되어야 한다. 엄밀한 도덕적 의미에서, 이 무분별한 발전소들은 무수히 많은 타인의 아이들을 위험에 빠트린다. … 이것은 수많은 사람들에 대한 고의적인 인권침해이다.
서울시 주민투표의 ‘승리’에 환호하기에 앞서, 우리가 바라는 ‘무상급식’, 나아가 ‘보편적 복지’는 기후변화와 식량위기, 핵발전소와 방사능의 위험이라는 좀더 큰 차원의 생존 문제에 대한 철저한 고민과 단호한 대응 없이는 실현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그뿐만 아니라, 설령 우리 사회 내에서 일시적으로 그것을 실현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이러한 지구적 차원의 문제를 외면한 채 달성하게 될 ‘보편적 복지’라는 것은 필경 지구에 존재하는 또 다른 ‘타자’(미래 세대를 포함하는)의 희생을 대가로 하는 ‘비윤리적인’ 것임을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이다.
[변홍철 칼럼 7]
변홍철 / <물레책방> 인문학연구실장, 전《녹색평론》편집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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