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고살기 힘드니 핵발전소라도 짓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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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홍철 칼럼] 풀뿌리의 생존과 평화의 토대를 짓밟는 ‘경북 원자력 클러스터’ 추진


  '좋은 삶'의 희망

  10년 전, 경북 영덕의 시골로 귀농한 친구가 있다. 처음부터 그 친구는 큰돈 된다는 작목이나 과수(果樹), 겉보기에 번듯한 시설농 따위에 한눈 팔지 않고, 묵묵히 유기농을 고집하면서 쌀과 주곡(主穀) 중심의 ‘자급소농(自給小農)’ 원칙을 지켜왔다. 화학비료와 제초제를 쓰지 않음으로써 땅을 돌보고 건강한 먹을거리를 생산하기 위해서는 ‘소농’의 규모를 넘어설 수도, 넘어서서도 안 된다는 것이 그의 올곧은 믿음이었다. 이런 원칙과 믿음을 우직하게 지키는 농사꾼의 ‘현금수입’이 한 해에 얼마나 되겠나. (게다가 무슨 대단한 ‘밑천’을 가지고 귀농한 것도 아니다. 그가 귀농의 첫 삽을 뜰 때 쥐고 있던 돈은 전에 일하던 직장을 다니면서 모아둔 2천만 원이 전부였다.) 하지만 그는 지난 10년 동안 작은 규모의 논밭을 자신의 힘으로 일구고 몇 통의 꿀벌을 치면서, 뜻이 맞는 배필을 만나 결혼을 하고, 두 아이를 낳고, 얼마 전에는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 튼튼하고 아름다운, 자신의 흙집을 짓기까지 했다. 오직 ‘현금수입’만으로 ‘생활수준’을 따지는 사람들의 기준으로는 도저히 ‘견적’이 나오지 않는 시골생활이지만, 그는 10년 만에 어엿한 농부로서 땅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것이다.

  이런 얘기를 하고 있는 줄 알면 얼굴을 붉히면서 손사래를 칠 것이 뻔하지만, 내가 보기에 그의 삶은 ‘좋은 삶’의 모범이다. 풀뿌리 백성에게, 가족의 생계를 자신의 노동으로 너끈히 돌보고, 자연의 품 속에서 이웃과 더불어 소박한 행복을 일구어가는 것 이상의 ‘좋은 삶’이 어디 있겠나. 그를 아는 친구들은 그와 오랜만에 만나 막걸리라도 한잔 할 때면, 긴 말 나누지 않아도 넉넉한 위로를 받게 된다. 아마도 그것은 우리가 지금은 대도시에서 경쟁에 몰려가며 생존에 대한 불안과 초조, 누추함 속에 살 수밖에 없지만, 약간의 용기만 낸다면 그와 같은 ‘좋은 삶’을 우리도 살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그에게서 발견하는 데서 오는 위로일지도 모른다. 먹고사는 것이 사실은 그렇게 복잡하지도, 어려운 것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경제를 위해 핵 단지를?

  그런 친구가 지난 6월 30일, 오랜만에 대구에 왔다. 모내기를 끝내놓고 모처럼 친구들을 만나 한가롭게 회포라도 풀려고 나들이를 온 것이 아니었다. 내가 그 친구를 만난 곳은 이따금 비가 뿌리는 경북도청 앞, 김관용 지사의 ‘경상북도 원자력 클러스터’ 추진을 규탄하고, 울진 영덕의 신규 핵발전소 유치를 반대하는 지역주민들의 항의집회 겸 기자회견에 참가하러 온 것이다.

  이미 보도된 대로, 김관용 경상북도지사는 최근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유치에 실패한 후 원자력 클러스터 추진을 ‘대안’으로 내세우고 있다. 2028년까지 포항, 경주, 영덕, 울진 등 경북 동해안에 12조 7천억 원 규모의 원자력 관련기관을 유치한다는 계획이다. 지난 6월 21일 열린 ‘경상북도 원자력 클러스터 포럼’에서는 이 사업에 대해, 생산유발 23조 7,936억 원, 고용창출 20만 명의 경제효과를 낼 수 있다는 장밋빛 청사진을 내놓았다. 그런데 이 ‘원자력 클러스터’는 이름은 거창하지만, 사실은 핵발전소, 핵폐기장, 핵연료 재처리시설 따위를 한데 모은 ‘핵단지’, ‘핵벨트’를 경북 동해안에 건설하겠다는 이야기에 다름 아니다. 바꾸어 말하면 경북 동해안을 인류 최대의 ‘위험․혐오시설 종합선물세트’로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원자력 클러스터' 내 도입 시설 / 자료. 경상북도청
'원자력 클러스터' 내 도입 시설 / 자료. 경상북도청

  그리고 이와는 별도로 영덕군과 울진군은 강원도 삼척시와 함께 2024년 이후 원전신규부지 유치신청을 이미 내놓은 상태이다. 지난 6월 30일은 정부와 한수원에서 신규 핵발전소 부지 선정을 확정 발표하기로 한 날이었다. 그런데 후쿠시마 핵발전소 대재앙으로 핵발전소에 대한 위험성이 확인되고 전세계적으로 부정적인 여론이 확산되자, 부지 선정 발표를 무기한 연기하는 ‘꼼수’를 부리고 있다.

  한국사회 언론들의 ‘업무태만’과 ‘기본책무 망각’ 때문에 일본 후쿠시마 핵발전소 재앙이 불과 몇 달 사이에 우리의 시야와 관심에서 희미해져 가고 있지만, 문제의 심각성은 조금도 사라지지 않고 있다. 그렇기는커녕 ‘일본 사회의 회생 불가능’, 또는 머지않은 ‘국가 파산’을 예견하는 진지한 목소리들이 세계 곳곳의 학자들, 언론인들, 핵 전문가들(핵발전 찬반 여부를 떠나)로부터 나오고 있다. 결국 핵폭탄의 사용과 마찬가지로, 핵발전소 사고에 의해서도 한 사회의 시스템이 완전히 정지(붕괴)할 수 있다는 ‘오래된 경고’를 우리는 이번 세기 전반에 우리 눈으로 직접 확인하게 될지도 모르는 상황을 맞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결코 남의 일이 아니다. 한국사회는 핵발전소 수로는 세계 5위, 밀집도로는 세계 1위의 ‘핵발전 대국’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특히 경상북도는 이미 전국에서 가장 많은 핵발전소(전체 21기 중 10기)가 밀집해 있고, 4기의 신규 핵발전소와 중저준위 핵폐기장까지 건설되고 있는 최대 핵단지 지역이다. ‘원자력 클러스터’를 추진하지 않더라도 이미 경북은 핵시설로 인해 방사능 오염과 해양생태계 파괴, 주민간 갈등으로 피폐해져 가고 있다. 나아가 월성 1호기 수명연장, 물이 새는 핵폐기장 건설 강행 등으로 동해안 일대의 핵사고 위험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이미 버린 몸, 한탕 크게 하고 끝장을 보겠다”는 막가파식 발상인가. 이미 이런 지경인데, 핵발전소보다도 더 높은 수준의 방사능을 배출한다는 ‘사용후 핵연료 재처리시설’까지 떠안는 ‘원자력 클러스터’라니. 제 정신 가진 사람이라면 이런 참담한 발상에다가 어떻게 ‘경제효과’ 운운하는 포장을 덧씌울 수 있다는 말인가.

  자연, ‘좋은 삶’의 유일한 토대

  “차라리 풀뿌리를 캐먹을지언정 핵발전소는 안 된다!” 영덕에서 친구와 함께 경북도청에 온 한 농민은 이렇게 외쳤다. 경북이 먹고살기 위해 ‘원자력 클러스터’를 추진해야 한다는 허황한 논리에 대한 민초의 엄중한 비판이다. 도대체 먹고산다는 것이 무엇인가. 먹을거리의 유일한 토대인 땅과 바다가 단 한번의 핵발전소 사고로 결딴나고 있는 저 일본 동북지역의 생생한 사례를 눈앞에 두고도, “먹고살기 위해서”라는 허울좋은 명분을 내세우는 것은 경북도민들을 우롱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설령 그들이 내세우는 경제효과의 십분의 일, 백분의 일이라도 기대할 수 있다손 치더라도, 그것은 이 땅의 민초들을 오직 ‘돈’밖에 모르는 천박한 존재들로 취급하는 모멸적인 발상이다.

경주핵안전연대를 비롯한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경북도청 정문 앞에서 "'원자력 클러스터' 계획은 경북을 세계 최대의 핵 단지로 만드는 위험천만한 계획"이라며 "즉각 철회"를 촉구하고 있다(2011.06.30) / 사진. 평화뉴스 박광일 기자
경주핵안전연대를 비롯한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경북도청 정문 앞에서 "'원자력 클러스터' 계획은 경북을 세계 최대의 핵 단지로 만드는 위험천만한 계획"이라며 "즉각 철회"를 촉구하고 있다(2011.06.30) / 사진. 평화뉴스 박광일 기자

  “김관용 지사가 경북의 경제를 살리는 데 원자력 클러스터 말고 대안이 없다고 한다면, 지사직을 당장 내놓아야 한다”고 6월 30일 도청 앞에 모인 민초들은 외쳤다. 이것은 단순한 으름장도, 속이 빈 정치적 수사(修辭)도 아니다. 그 말 속에는 사실 ‘경제’와 풀뿌리 민주주의, 주민자치에 관한 심각한 문제의식이 녹아 있다고 보아야 한다. 선거로 뽑힌 임기 불과 몇 년의 자치단체장이, 대대손손 민초들이 의지해 살아가야 할 땅과 바다를 더럽히고 생존의 토대를 짓밟으려 하는 것을 두고 본다면 그것이 어떻게 민주주의라고 할 수 있겠나.

  귀농 10년차인 내 친구뿐만이 아니라 이제 더 많은 도시의 이웃, 특히 청년들이 농촌으로, 어촌으로 돌아가 자연에 기대어 자신의 생계를 꾸려갈 시대가 올 것이다. 자본주의의 파국은 그리 멀지 않았다. 석유를 비롯한 에너지원의 고갈(그것은 핵발전의 연료인 우라늄도 마찬가지이다!)과 식량위기로 인해 그 파국은 더욱 거세게 재촉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러한 파국과 대전환의 시대에 우리 사회가 가장 비폭력적인 방식으로 대처하고 민초들 스스로 삶을 평화롭게 지속할 수 있는 최선의 길, 아니 유일한 길은 사회구성원의 상당수가 자연의 순환에 의지해 ‘연대’와 ‘자급’의 사회, ‘자유’와 ‘협동’의 민주주의를 아래에서부터 다시 쌓는 것이다. 그러한 ‘비폭력 혁명’은 우리가 의지하고 발 디딜 수 있는 ‘자연’이라는 토대가 남아 있을 때에나 가능하다는 것은 길게 말할 필요도 없다.

  핵발전소와 핵폐기장, 사용후 핵연료 재처리시설은 그러한 유일한 토대를 완전히 불살라 버림으로써 풀뿌리의 생존과 평화, ‘좋은 삶’의 가능성을 틀어막아 버리는 죽음의 길이다. 이미 일어난 후쿠시마의 대재앙과 앞으로 일본사회가 겪게 될 참담한 고통을 애써 외면하는 자들만이 이러한 진실을 인정하지 않으려 할 것이다.






[변홍철 칼럼 6]
변홍철 / <물레책방> 인문학연구실장. 전 <녹색평론> 편집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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