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향해야 할 것과 지양해야 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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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성 칼럼] "우리 삶의 대전환, 지금 어디로 향할 것인지 방향의 날을 세워야"


프랑스의 저명한 사상가였던 폴 발레리는 대공황이 지속되던 1932년에 “일찍이 인류가 이토록 막강한 힘으로 이토록 많은 혼란, 이토록 많은 근심과 희생자들, 이토록 많은 지식과 불확실성을 이끌어낸 적은 없었다. 불안과 무의미함이 오늘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는 두 축”이라고 일갈했다. 현재 우리의 삶에 이보다 더 현실적인 통찰력을 제공하는 수사가 있을까.

당시 인류의 막강한 힘을 대변했던 것은 경제자유주의에 기반한 자본주의 시스템이었다. 시장의 자유경쟁이 단기적으로는 시행착오라는 낭비를 낳지만, 장기적으로 가장 효율적인 자원배분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확신 아래 정부나 사회 권력에 의한 개입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한 자유시장주의가 대세였다. 하지만 그 결과는 혼란, 근심과 희생자, 엄청난 지식과 불확실성에 기인한 인간 삶을 지배하는 두 축, 즉 ‘불안’과 ‘무의미함’이었을 뿐이었다. 그리고 우리는 이 불안과 무의미함의 탈출구가 결국 전체주의의 등장과 전쟁으로 이어졌고, 그것 역시 자본가들의 시장경쟁의 작동기제였음을 역사를 통해 익히 잘 알고 있다.

문제는 정확히 80년 전 발레리가 예견했던 저 상황이 지금 여기 우리의 일상적 삶의 모습과 너무나 닮아 있다는데 있다. 당시 이데올로기 행세를 했던 경제자유주의는 분명히 실패한 시스템이었다. 하지만 이 시스템은 지금도 여전히 대안 없는 시스템으로 더 강력하게 작동하고 있다. 파괴적인 과학 및 기술은 통제가 불가능할 정도로 비약적 발전을 이루었고, 이윤 경제는 전방위적으로 맹위를 떨치고 있다. 그 결과 대량살상무기 확산과 생태계 파괴라는 초유의 결과를 낳으며, 풍요보다는 빈곤을 초래했다. 이 문제들은 비단 지역적 문제일 뿐만 아니라 지구적 문제이기도 하다.

또한 20세기의 전체주의를 계승한 악무한적인 금융자본주의의 횡포는 국가와 국민을 금권에 굴복시켰다. 외국인 혐오, 타 인종과 민족, 영토에 대한 배타적이고 국수주의적인 경향이 다시금 부상하고 있다. 금융투기, 부동산투기 등에 대한 무분별한 맹신과 흑백논리가 결합했다. 그리고 그 폐해는 재앙을 예고하는 일련의 절차들을 증폭시키고 가속화하고 있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영토 문제, 하우스푸어, 묻지마 범죄, 아동 성폭행 등 일련의 사태들은 어쩌면 예고된 재앙의 작은 단초일 수 있다. 따라서 스스로 초래한 치명적 문제들을 해결할 능력이 없는 경제자유주의 시스템은 자기조절 내지 자기변화 시스템을 창출해내지 못하는 한 언제든지 와해되거나 퇴보할 운명에 처해 있다.

민주주의가 쇠퇴하고 고갈되는 이 지점에서 우리는 성장과 개발 지상주의로 편향된 우리의 삶의 방식을 다른 방식으로 대전환시킬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때문에 우리는 지금 어디로 향할 것인지 분명한 방향의 날을 세워야 한다. 만일 우리가 80년 전처럼 아직도 불안과 무의미함의 정조와 분위기에 휩싸여 있다면 당시와 동일한 결과를 얻게 될 수도 있다. 해서 우리는 지금 우리 삶에서 ‘지향해야 할 것’과 ‘지양해야 할 것’의 목록을 새롭게 규정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진정으로 우리의 삶을 보다 풍요롭게 하고자 한다면 친환경 에너지 개발, 대중교통 사용 확대, 사회연대경제, 즉 협동조합, 상호공제조합, 협회, 노동조합, 기금, 재단 등을 포괄하는 복합적 방식의 경제활동의 활성화, 학교를 통한 공공교육의 회복, 다양한 문화 창출, 대도시의 인간화를 목표로 하는 개발 등을 지향해야 할 것이다. 반면에 지금까지 우리의 삶을 불안과 무의미함으로 내몰았던 농업의 산업화, 화석연료와 원자력 에너지, 기생적이고 폭력적인 유통업계, 군수산업, 소비중독, 경박한 과잉경제, 낭비하는 생활방식 등에 대한 강한 의존은 지양해야 할 것이다.

물론 여기서 필자가 제안한 것은 기본적인 목록일 뿐이다. 지역에 따라 다양한 목록을 작성해서 우리 시대의 양면성, 즉 위기와 기회에 대처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세상은 아름다운 동시에 참혹하다. 세상을 아름답게 하건 참혹하게 하건, 그 모든 것은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다.






[이재성 칼럼 38]
이재성 / 계명대 교양교육대학 교수. 평화뉴스 칼럼니스트. ssyi@km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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