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은 시간,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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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성 칼럼] "늘 공부하고 날카로운 비판적 의식을 벼르지 않는다면"


2012년 총선이 끝났다. 총선 결과에 대한 여러 분석이 나오고 있다. 겉으로 드러난 승자는 여당이다. 이런 결과를 야기한 야당, 특히 민주통합당에 대한 국민의 시선이 매우 따갑다. 선거 전만 하더라도 야당의 승리와 여당의 패배가 확실하다는 전망이 우세했기 때문이다. 당파적 이해나 관점에 따라 여러 분석들이 있지만 그 중에는 지극히 우려스러운 내용도 일부 있다. 야당이 패배의 결과를 이미 알고 있으면서 총선에 임했다는 대선 음모론이나 부르주아 양당체제로의 고착화를 위한 신호탄이라는 분석들이 그 예다. 매우 정치공학적인 분석이면서 동시에 적실성을 담고 있다.

어쨌거나 총선의 결과는 뚜렷한 양당체제의 강화라는 정치적 강자의 모습으로 드러났다. 진보통합당은 제3당으로 진입했으나 지금 현재로서는 그 역할을 기대하기가 쉽지 않다. 당 내부에서의 분열 조짐이 예사롭지 않기 때문이다. 이미 수구 언론들은 당 정체성을 흔들고 있다. 그러나 이번 선거에서 무엇보다 아쉬운 대목은 정치적 약자인 진보신당과 녹색당이 당의 존립을 유지하지 못한 채 당 해체의 수순을 밟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부자와 중산층을 포함한 부르주아를 대변할 당들은 거대 정당으로 거듭났으나 정작 사회적 약자, 즉 농민, 노동자, 소수자 그리고 서민을 대변해야할 정당은 살아남지 못한 것이다. 선거 자체가 계급 배반적으로 이루어진 것임을 보여주는 대표적 예다.

승리를 자축하고 함께 기쁨을 나누는 진영과 달리 패배한 진영에서는 절망과 체념의 정조에 휩싸였고, 그 결과 멘탈붕괴(일명 '멘붕')라는 신조어를 낳기도 했다. 야당에 기대를 했거나 혹은 지지를 보냈던 많은 사람들은 절망을 넘어 체념의 상태에 빠지기도 했다. 필자도 '혹시나' 하는 마음을 '역시나'에서 확인하는 절망을 또다시 맛보았다. 그럼에도 이번 총선에서 분명해진 것은 선거의 결과가 여당의 특정 후보의 대통령 만들기 전초전의 성격을 띤 선거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라는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서울 경기 지역 이외의 모든 지역에서 드러난 투표 결과를 보면 알 수 있다. 듣는 이에 따라 기분 나쁠 수도 있겠으나 이번 선거는 근대적 시민의 주권 투표라기보다는 봉건적 하인의 예속 맹세에 불과하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총선이 끝나자마자 선거의 전선은 대선으로 급속하게 이동하고 있다. 박근혜 상수와 안철수 변수의 구도로 전세가 고착화되고 있다. 물론 여당의 김문수 대선 출마 선언, 정몽준 등의 반박 저항선 구축, 야당의 손학규, 문재인, 박선영, 김부겸, 이인영 등 잠룡들의 국민경선 이벤트가 선거용 확장 변수들로 등장하겠지만 '현재 상태'에는 무용지물이다. 현재로선 그들만의 동종교배적 리그전일 뿐이지 국민들은 이미 누굴 뽑을지 결정해 두고 있다. 총선의 결과만 두고 보더라도 선거권자들은 근대적 의미의 공화국에서 자유롭고 평등한 시민이 되어 나라의 주인으로서, 자유로운 인간으로서의 권리와 의무를 다했다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아직 많을 수도 적을 수도 있는 8개월이라는 시간이 남았다. 남은 시간,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이대로 절망하거나 체념하고 말 것인가. 이 지점에서 홍세화 진보신당 대표의 선언은 우리가 무엇을 할 것인가를 진지하게 고민토록 한다. 그는 절망에 대한 정직한 응시는 희망과 만날 수 있지만, 체념은 부질없는 자기 위안을 동반할 뿐이라고 주장하며, 총선에서 살아남지 못할 경우 '하방'하겠다고 한 약속을 실행에 옮기겠다고 밝혔다. 아래로 내려가서 '현재 상태'의 절망을 정직하게 응시하겠다는 뜻이다. 그래서 정치 부문에서 배제되고 있는 사회적 약자들을 "어떻게 조직화, 정치화할 것인가의 물음이 우리가 가는 길의 과정이며 행선지이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것은 저 아래에서부터 다시 공부를 하겠다는 말이다.

공부라고? 뻔한 소리라고 해도 좋다. 그럼에도 필자는 필자 자신을 포함한 모든 독자들에게 각자 자신에게 가장 근본적인 물음을 던져보라고 권하고 싶다. 개인의 자유와 평등이 보장되는 민주주의 공화국이라는 국민국가의 틀 안에서 과연 각자는 주인으로서, 자유로운 인간으로서 자신의 권리와 의무를 다했는지, 다하고 있는지. 만일 아니라는 생각이 들면 즉각 공부를 다시 시작하자.

필자가 말하는 공부는 주어진 현실을 타개하면서 자신을 새로운 존재로 정립해나가는 인간진화의 내적 추동력이다. 하여 필자가 여기서 말하는 공부는 궁극적으로 '자기 자신을 돌보기'라는 뜻을 담고 있다. 공부를 한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공부하는 사람이 자신을 돌보고 가꾸고 만들어나가기 위해 하는 능동적 활동방식인 것이다. 삶이 힘들고 어렵게 느껴진다는 느낌은 공부하지 않을 경우 내가 바보가 될 수도 있다는 느낌과 유사하다. 이것은 곧 내 삶을, 우리 모두의 삶을 둘러싸고 있는 사회적·자연적 환경 전체를 이해하는 노력을 게을리 할 경우, 삶이란 어떤 거대한 힘에 휩싸여 흘러가버리는 극히 수동적인 무엇이 될 수밖에 없다는 느낌이다.  

우리의 삶은 민주공화국의 형태를 띤 국민국가라는 틀, 즉 대한민국에서 영위되고 있다. 대한민국이라는 국민국가의 틀이 과연 어떤 과정을 통해 형성되었고, 그 틀의 의미 맥락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 틀은 어떤 긍정적·부정적 성격을 띠는지 등을 공부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저 그 틀을 이미 주어진 것으로 간주한 채 아무 생각 없이 살아갈 것이다. 이는 곧 정치적 바보가 된다는 것이고, 사회적으로 어리석은 자가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혹시라도 우리는 이번 선거에서 정치적 바보, 사회적 우중임을 스스로 확인했던 것은 아닐까. 때문에 우리를 둘러싼 매우 엄중하고 복잡한 환경에 대해 늘 공부하고 날카로운 비판적 의식을 벼르지 않는다면 저 거대한 환경의 소용돌이에 떠밀려 '우중'으로 살아남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여러분은 공화국을 원하는가 아니면 왕조를 원하는가. 이 모든 것은 결국 우리의 선택에 달려있다.






[이재성 칼럼 35]
이재성 / 계명대 교양교육대학 교수. 평화뉴스 칼럼니스트. ssyi@km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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