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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와 아들, 긴 하루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칠성시장서 10년째 수제비 파는 모자 / 새벽 3시부터..."내 삶의 터전이자 동아줄"
2013년 02월 08일 (금) 09:10:55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pnnews@pn.or.kr

아직 새벽 어스름이 깔려 있는 아침. 칠성시장 한 노점에서 하얀 김이 올라온다. 새벽 일을 마친 택시기사들과 이제 출근한 상인들이 하나 둘 노점으로 모여들었다. 여기저기서 "수제비 주소"라고 외치자 아주머니와 청년이 동시에 고개를 들고 "네"라고 말했다.   

한파특보가 발효된 7일 아침 6시 30분. 대구 북구 칠성시장에서 10년째 수제비 노점을 하고 있는 박영자(54.동구 신천동)씨와 그의 막내아들 김모(29)씨는 이날도 새벽 3시부터 오후 6시까지 길 위에서 수제비를 팔았다. 추위를 막기 위해 설치한 투명 비닐과 노점 옆 가로수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바람에 흔들렸지만 모자는 불평없이 식재료를 다듬고 설거지를 했다.

   
▲ 칠성시장 노점에서 수제비를 파는 박영자씨와 그의 막내아들(2013.2.7)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아주머니는 "위에 6겹, 밑에 3겹. 새벽 추위 견디려면 이 정도는 입어줘야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벌써 귀, 허벅지는 동상에 걸렸고 뜨거운 물을 쏟아 발에는 화상까지 입었다"며 "이제 더 아플 곳도 없다"고 씁쓸히 말했다. 옆에 있던 김씨는 "병원에 가야되는데 시간이 없다"며 걱정스러운 눈길로 아주머니를 바라봤다.

햇빛이 들기 시작한 아침 7시 30분. 아주머니는 빨갛게 변한 맨손을 입으로 불며 밀가루를 반죽했다. 김씨는 아주머니 뒤에서 호박과 감자를 썰었다. 반죽을 치대는 소리와 칼질하는 소리가 끊임없이 났다. 그때, 아주머니가 앞치마로 콧물을 훔치자 헐었던 코끝에 피가 맺혔다. 그러나, 육수가 넘쳐 가스 불을 낮추느라 피를 제대로 닦지도 못했다.

아주머니는 주문이 들어오는 대로 500원짜리 크기로 반죽을 떼 냄비에 넣었다. 다 익은 수제비는 그릇에 담고 육수를 부었다. 옆에 있던 김씨는 호박과 감자를 수제비 그릇에 곁들여 손님에게 가져다주고 먹고 남은 그릇을 차곡차곡 쌓아 뜨거운 물에 불렸다. 그러자, 반죽을 하던 아주머니가 장갑을 끼고 설거지를 하기 시작했다.

   
▲ 새벽부터 수제비 장사를 하고 있는 박영자씨(2013.2.7)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좌판 옆에는 1,000원짜리 지폐와 500원, 100원짜리 동전이 담긴 분홍색 통이 걸려 있었다. 아주머니가 10년 동안 사용한 돈통이다. 이날 모자는 5시간 동안 2,500원짜리 수제비 9그릇을 팔아 22,500원을 벌었다. 모자의 겨울철 평균 하루 수입은 7-8만원. 하루 15시간을 꼬박 일해야 벌수 있는 액수다. 아주머니는 "오늘 많이 벌어야 설 때 조카들 세뱃돈도 주고 친척들 선물도 사고 할텐데...걱정이다"며 "그래도 오랜만에 멀리 살던 가족들을 보게 돼 좋다"고 했다.   

10년 전 아주머니는 수제비를 혼자 팔았다. 매일 새벽 2시 30분 잠에서 깨 3시쯤 노점에 나와 좌판을 닦고 비닐을 둘러쳤다. 60kg에 육박하는 밀가루 3포대를 고무 대야에 붓고 반죽을 하며 집에서 떠온 물을 20리터짜리 냄비 3개에 부어 육수도 만들었다. 그러나, 6년 전부터 도저히 혼자 할 수 없다고 판단해 맏아들과 함께 일을 했다. 하지만, 맏아들이 일을 얻어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 지금은 막내아들과 3년째 수제비를 팔고 있다.

   
▲ 설거지를 하고 있는 박영자씨(2013.2.7)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일자리를 구하던 막내아들은 어느 날 아주머니를 따라 노점에 나왔다. 그렇게 3년이 지났다. 짧게 끝날 줄 알았던 도움은 생각보다 길어졌다. 아주머니는 "대견스럽고 고맙지만 미안하고 안쓰러운 마음이 더 크다. 특히, 막내아들 또래 직장인들이 주문을 하면 쟁반을 들고 수제비 배달을 가는 뒷모습이 너무 짠하다"고 털어놨다.

김씨는 "그동안 새벽마다 일 나가는 엄마를 외면했다. 그런데 한 번 일해보고 얼마나 힘겹게 일하는지 알게 됐다"고 말했다. 또, "수제비를 팔면서 새벽일을 하는 사람들을 보고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에너지도 받게 됐다"며 "정신이 맑고 건강해지는 것 같다"고 했다. 이어, "어머니를 위해 꼭 번듯한 가게를 장만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아주머니는 경남 창녕군 부곡면에서 태어나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10대 후반부터 부산 양파공장, 미싱공장에서 일했다. 그리고, 부산에서 지금의 남편을 만나 결혼을 하고 작은 슈퍼를 하며 두 아들을 낳았다. 그러나, 1997년 외환위기로 형편이 어려워져 가게 문을 닫게 됐고 빚까지 지게 됐다. 그때 축산업을 하던 친척이 '같이 소를 키워보자'고 말해 그 길로 대구로 이사 왔다. 그러나, 미국산 쇠고기가 수입되면서 남편의 벌이는 줄어들었고 형편은 다시 어려워졌다. 

   
▲ 아침 7시...모자의 수제비 노점을 찾은 사람들(2013.2.7)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아주머니는 "매달 내야하는 대출 이자에, 자식들 교육비, 생활비까지...노점상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러나, "여름철 장마와 아스팔트 열기, 겨울철 눈과 추위 때문에 정말 쉽지 않았다. 이렇게 고생할 거라는 생각은 못했다"고 했다. 게다가, 술을 먹고 행패 부리는 사람, 돈 통을 훔치는 사람, 자릿세를 받으러 다니는 깡패들과 철수하라고 으름장 놓는 구청직원들까지..."지금은 나의 모든 삶의 터전이자 마지막 동아줄이지만 정말 그만두고 싶었던 때도 많았다"고 털어놨다. 

그래도, "내가 엄마니까. 여기서 쓰러질 수 없다. 새끼들 먹여 살려야 되고, 우리 남편도 돌봐야 하고, 갚아야할 빚도 있고, 아들 장가도 보내야 되고. 할 일이 많다"고 웃으며 말했다. 오전 9시. 손님이 뜸해지자 모자는 그제야 한숨을 돌리고 의자에 앉아 쉴 수 있었다. 두 사람은 언 손을 뜨거운 물에 담그고 "아 좋다"고 동시에 말했다. 이어, 아주머니는 동상이 걸려 진물이 나오던 귀와 허벅지에 약을 발랐고 김씨는 잠깐 눈을 붙이러 집에 들어갔다. 모자의 긴 하루는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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