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맛'에 따라 변하는 언론 보도

평화뉴스
  • 입력 2013.07.02 0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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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방중, '말의 성찬'과 '청와대 입맛' / NLL 논란과 민생 / KBS 관영방송?


언론, 자유로우십니까?

신문은 사주의 것인가? '공영방송'은 지금 공영인가?
이 질문은 이명박 대통령에 이어 박근혜 대통령 정부 아래서도 국민들-독자와 시청자들-이 계속 강하게 제기하는 의문점들이다. 독자들이 참여할 수 없고 소통도 안 되고 시청자들에게 제대로 뉴스를 보도하면 여지없이 해임이란 인사 조치를 당해 입을 틀어막아버리기 때문이다.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정부가 언론을 권력의 힘으로 탄압했다면 요즘 언론은 자유로운가? 보도지침이 사라진 자리에 KBS는 '신보도지침'을 윤창중 성추행 사태 보도에 적용한 것으로 보도됐다. 권력의 언론조종과 탄압 대신 권언유착이 한동안 대세를 이뤘다. 그리면 지금은 자유인가? '사주'가 알아서 하니까? '공영방송'이니까?

언론자유는 기자들의 보도 자유와 함께 국민들이 언론자유를 누릴 때 이뤄진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최근 언론의 키워드로 등장하다시피 한 박 대통령 외교, 국정원 불법 선거개입, NLL 대화록 발췌 공개 과련 보도를 독자들이 막 펼친 신문, 이상한 태도를 보이는 TV 뉴스 화면을 통해 보자. 과연 그런지.

<조선일보> 7월 1일자 1면
<조선일보> 7월 1일자 1면

'성과 있다'면서 뒷면으로 밀어

먼저 박 대통령의 방중 관련 보도를 보자.
조선일보 관련보도 「'통일 한반도의 비전' 중국을 설득하다」(조선일보 7월 1일 1면)를 본다(조선일보가 지방신문 매일신문보다 나아서가 아니라 기사 흐름을 먼저 잡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1면 기사 치고 내용이 없다. '새로운 한반도 구상 제시'란 말만 되풀이 하고 있다. 박 대통령의 방중 외교에 별 성과가 없었다는 것은 이 신문이 박 대통령이라면 '못 먹어도 고(GO!)' 하는 수구언론의 간판타자란 사실을 독자들이 잘 알고 있는데도 박 대통령에 대한 기사를 4면, 5면으로 밀어버렸고 그 나마 다룬 내용은 신변잡기, '나 홀로' 행보가 중심이란 것을 보면 알 수 있다.(7월 1일 A4, 韓·中 정상회담, 「"한국에 남은 중국군 유해 360구 송환하겠다"」, 「朴 대통령, 중국인 관심 끈 키워드는 '文·緣·色'」(7월 1일 A5, 韓·中 정상회담) 등이다.  이 신문은 사설에서 박 대통령의 방중 외교가 별무성과란 점은 우회적으로 다음과 같이 주장하고 있다.

현재 북핵 문제에 대해 양국이 '이견'을 보였다고 할 수 있는 것은 중국이 6자회담의 조속한 재개를 바라고 있는 반면, 우리는 비핵화의 실질적인 진전을 가져올 수 있는 대화를 원하고 있는 정도다. 그러나 이 '차이'는 조만간 한·미와 중국 간의 견해차로 표면화될 가능성이 있는 만큼 면밀한 조율이 필요하다.


말의 성찬 '신판 경마보도'

사설에서 주장하는 내용의 행간을 보면 박 대통령과 시진핑 사이에 넘지 못할 큰 강이 있음을 보게 된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조선일보는 한국과 미국 대 중국 간에 다름이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고 말하는 대목이다. 중국에 북핵 불용을 수용할 것을 들고 간 것은 모든 언론들이 다 보도했는데 중국이 그걸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것은 견해 차 정도가 아니라 전략이 본질적으로 다름을 보여주는 것은 아닐까? '면밀한 조율이 필요하다'는 수사는 '갈 길이 멀다'는 것은 말하는 것은 아닐까? 그런데 조선일보는 '한국과 미국'-'중국'으로 외교 관련 흐름을 이분법으로 제시하고 있다. 보기에 따라서는 한국은 미국이 없이는 독자적인 행보를 할 수 없다는 것으로 조선일보 사설은 보게 한다. 대한민국의 외교 능력이 독자적, 주체적일 수 없다는 점을 조선일보는 기정사실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매일신문> 6월 29일자 1면
<매일신문> 6월 29일자 1면

매일신문은 박 대통령의 방중 외교 활동 보도(6월 27일 1면, 「한·중 정상 "북핵 비핵화 공조"」, 성과 보도(7월 1일 27면, 오피니언, 사설-「박근혜 대통령의 방중 성과와 기대」)를 통해 박 대통령의 방중 외교에 대해 국민-독자들로 하여금 박 대통령이 중국으로 출발하고 중국에 머물 때는 '활약'을 '기대'하게 했다. 이 신문은 박 대통령의 방중 외교가 진행 되고 있던 6월 29일 동정보도로 박 대통령의 일거수일투족을 자세히 다뤘다(1면, 「박 대통령, 시안서 경제협력 논의」). 일종의 '경마보도'인 셈이다. 그리고 박 대통령이 귀국했다. 그런데 따져보니 별 성과가 없는 것으로 나타나자 '말의 성찬'을 확대했다. 7월 1일 사설은 이렇게 시작한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5월 방미에 이어 6월 방중(訪中) 일정을 마치고 귀국했다. 4일에 걸친 중국 국빈 방문을 통해 박근혜 대통령은 마음과 믿음을 쌓아가는 여행 곧 '심신지려(心信之旅)'를 통해 문화적이면서도 인간적이고 역사적이면서도 치유적인 쌍방향 행보를 개시해 큰 관심을 끌었다.


<매일신문> 7월 1일자 사설
<매일신문> 7월 1일자 사설

'역사적' 찬사 넘쳐

독자들로 하여금 큰 '기대'를 끌게 하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역사적'이란 말을 사용할 정도였으니까. 외교는 성과가 중요하지 않은가. 그런데 성과와 관련된 대목은 끄트머리 부근에서야 나온다.

하지만 가장 큰 고민거리인 북한의 핵 개발과 관련해서는 북핵 불용을 명시하지 못하고, 한반도 비핵화와 유관 핵 개발 금지에 멈췄다. 가장 큰 숙제는 일부 변화됐으나 여전히 남아 있는 셈이다.

이 대목은 박 대통령의 중국 방문 외교의 '가장 큰 목적'인 북핵 개발과 관련해 근본적인 진전은 없었다는 내용을 에둘러 표현했을 뿐이다. 그걸 위해 매일신문의 사설은 독자들의 합리적인 판단이 아닌 감성에 호소하는 수사를 길게 펼친 것이다. 숙제를 하지 않은 학생이 교사에게 뭐라고 대답할까? '숙제를 해오지 않았습니다' 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문학 이야기를 해드릴까요?'라고 해야 할까? 매일신문의 이날 사설은 애매하게 말의 방향을 돌리는데 열심이었다.

매일신문의 이런 술에 술 타기, 물에 물 타기 식 보도는 이미 NLL 관련 보도에서 꼬리를 드러낸 바 있다.

<매일신문> 6월 26일자 27면(오피니언) 사설
<매일신문> 6월 26일자 27면(오피니언) 사설

민생 들먹이는 진짜 이유 '여론 등 돌려'

매일신문은 참으로 편리한 궤변-NLL을 들먹이며 노무현 전 대통령을 극한적인 언사로 비난하는 기사를 실어왔는데(6월 26일 27면, 오피니언, 사설-「NLL은 바꾸면 안 되는 우리의 영토선」) 이제 와서 '국민들은 식상해한다(매일신문, 7월 1일 27면 오피니언, 사설-NLL 논란 접고 민생국회를 기대한다)'고 방향을 돌린다. 국정원이 공개한 NLL 발췌본에 대해 새누리당 의원들이 이러니저러니 하며 온갖 극한 발언들을 쏟아내는 것을 다룰 땐 언제고 이젠 '민생을 볼모로 한 정쟁'이라고 꼬리를 내리는 것이다.

<매일신문> 7월 1일자 27면(오피니언) 사설
<매일신문> 7월 1일자 27면(오피니언) 사설

여론조사 보도에 따르면 NLL 관련 보도 내용에 대한 국민들의 호응이 극히 저조한 것으로 나타났다(국정원 국정조사 호응도의 절반 선도 안 된다). 매일신문 등이 꼬리를 내리는 진짜 배경은 이 때문으로 보인다. 그런데 매일신문의 이 사설은 같은 날 아침 수구 신문 조선일보에 실린(먼저 다뤄진) 비슷한 내용의 기사와 흡사하다(조선일보, 7월 1일 A6 정치, 「民生팽개친 'NLL 공방'…與野 지지율 함께 하락」). 달리 표현하면 바통 터치(이어달리기)한 것으로 보인다. 조선일보가 '민생'을 내걸자 매일신문이 따라서 '민생'을 내걸었다. '내가 하면 사랑이고 남이 하면 불륜'이란 말인가? 꼬리를 내리는 진짜 원인은?

<조선일보> 7월 1일자 6면(정치)
<조선일보> 7월 1일자 6면(정치)

'청와대 입맛' 구체적으로 지적

한겨레의 박 대통령 중국 방문 관련 기사를 보자(7월 1일 2면, 종합, 「방중 성과 '입맛대로' 발표하는 청와대」, 7월 1일 5면 「한-중, 배려 돋보였지만…서로 원했던 건 못 얻었다」). 한겨레는 박 대통령의 방중 성과를 청와대가 '입맛대로' 발표했다고 했다면서 청와대의 '입맛대로'를 구체적으로 이렇게 지적했다.

한반도 비핵화 문제의 해법과 관련해 리(리커창) 총리는 "중국의 (한)반도 비핵화 입장은 일관, 명확, 확고하다. 조기에 6자회담을 개최해 대화화 협상을 통해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수호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청와대는 "리 총리는 '중국은 북한의 핵무기 보유는 반대하며, 한반도 비핵화를 실현하기를 희망한다는 일관되고 확실한 입장을 갖고 있다'고 하면서 '대화와 협상을 통해서 문제를 풀어가자'고 말했다"고 밝혔다. 리 총리가 언급하지 않은 '북한의 핵무기 보유 반대' 부분이 추가되고, 그가 해법으로 강조한 '6자회담 재개'는 빼버렸다. 북한의 진정서 있는 조처 없는 6자회담 재개에 소극적인 태도를 유지하며 '북핵불용' 원칙을 밝혀온 우리 정부가 중국 총리의 발언을 입맛에 맞게 왜곡한 셈이다.

<한겨레> 7월 1일자 2면(종합)
<한겨레> 7월 1일자 2면(종합)

'북핵 불용'-'영토분쟁지지' 함수관계 몰랐나

'북핵불용'은 국내 언론이 하도 많이 다뤄 내용을 모르는 국민이 없을 정도다. 시진핑 주석이 밝힌 '영토분쟁지지'는 뭔가? 일본이 주변국들과 갈등을 빚고 있는 '댜오위다오(조어도, 일본은 '센가쿠열도'라고 부름)'와 남중국해 문제를 뜻한다. 한겨레는 박 대통령의 중국 방문 외교에 대해 전문가들의 견해를 빌려 '탐색전', '불협화음 확인’으로 그 성과를 평가했다. 탐색전을 폈건, 불협화음을 확인했건 그것은 핵심사항과 관련된 것이다. 이 점에서 한겨레의 보도는 냉정하면서도 비판적이고 균형잡힌 것으로 보인다. 국민/독자들이 올바른 판단을 스스로 하는데 기여한 것이다.

박근혜 외교력은 '숙제' 평가


경향신문 관련기사를 본다(7월 1일 1면, 「박 대통령 "새로운 한반도 만들어야" 」, 7월 1일 3면, 「시진핑과 신뢰 다졌지만 북핵 문제 등 '숙제' 남겨」). 경향신문 역시 박 대통령의 '나 홀로' 기사를 특보했다. 하지만 「박 대통령 방중 결산」에서는 박 대통령의 중국 방문 외교성과 여부의 핵심인 '북핵문제' 등은 '숙제로 남겼다'고 다음과 같이 평했다.  

<경향신문> 7월 1일자 3면(종합)
<경향신문> 7월 1일자 3면(종합)

시진핑과 신뢰 다졌지만 북핵 문제 등 숙제 남겨 박 대통령 방중 결산 박근혜 대통령의 3박4일 중국 국빈 방문은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과 신뢰 쌓기를 통해 향후 5 년간 양국관계의 협력 틀을 다졌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다만 북핵 문제에서 양국이 큰 틀의 공감대를 형성하면서도 중국이 한국의 손을 완전히 들어줬다고 보기는 어려운 게 사실이다. 한반도 문제의 주도적 해결을 위한 박근혜 정부 외교력은 숙제로 남겨졌다.

'북핵불용'-박 대통령은 이것을 중국에 기대했을 것이다. 그런데 중국의 발표문에는 기대와 달리 그런 내용이 없다. 왜 그럴까? 중국의 요구-영토문제에 박 대통령이 화답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주고받기에서 준 게 없는데 받기를 기대할 수 있을까? 그런데도 매일신문 보도는 박 대통령의 방중외교는 '성공적'이었다고 보도했다. 당연히 1면 톱 감이 아닐 수 없겠는데 정작 기사는 8면으로 밀어버렸다(매일신문, 7월 1일 8면 정치, 「'미래비전 성명' 中  설득 최대 성과」). 주고받기의 외교란 관점에서 볼 때 '미래비전'의 보따리는 중국으로선 받아주더라도 별 의미를 부여하기 어려운 '겉으로 화려한, 그러나 안으론 줘도 잃을 게 없는 것'이라는 그런 정도로 비친다. 말하자면 「'미래비전 성명' 中 설득」이란 다분히 국내 선전용-말하자면 '내수용'으로 봐야 한다.

미국 방문 외교의 결말을 대한민국 외교사에 더 없이 부끄러운 기록으로 남을 '윤창중 성 추행'이란 전대미문의 국격 추락으로 매듭지은 박 대통령의 이번 방중 외교는 '혹시나' 하는 부푼 기대와 달리 '역시나' 하는 것으로 끝났다. 언론보도의 행간은 그렇게 말한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이번 박 대통령의 방중 외교는 '우물 안 개구리' 격이 아닐 수 없다. 언론보도는 한 결 같이 그렇게 전달하고 있는 것이다. 매일신문의 말장난 보도가 이 신문이 팔리는데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 독자들은 말한다. "매일신문이여, 신문이 제대로 팔리기를 기대하려면 정직한 보도를 하라!"고.

KBS '보직해임' 만행


그러면 KBS를 보기로 하자. KBS는 매체비평 프로그램 '시청자데스크'를 운영하고 있는데 KBS는 6월 28일 돌연 이 프로그램의 데스크를 맡고 있던 시청자본부의 고영규 시청자국장과 홍성민 시청자서비스부장을 보직에서 해임했다. KBS의 9시뉴스(뉴스9)가 국정원 여직원의 선거 개입 댓글 공작 의혹에서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불구속 기소에 이르기까지 다룬 보도의 문제점, 앞으로의 개선점에 대해 '시청자데스크'는 '클로즈업 TV'라는 꼭지를 통해 미디어비평 차원에서 김서중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미디어평론가 민동기 기자를 불러 견해를 들은 프로그램(30분 짜리)이었다. 그런데 KBS는 6월 28일 낸 인사발령에서 돌연 시청자데스크의 핵심 멤버들을 보직에서 해임해버렸다.

KBS
KBS

김서중 교수는 이 프로그램 앞머리에서 KBS의 9시 뉴스가 '국기문란'이라고까지 불리는 국정원 불법 선거 개입 사건에 대해 심층보도는 물론 그 의미까지 잘 전달했어야 했는데도 단순 정보 전달에 그쳐 그런 사건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뿐이지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알 수 없게 해 낙제점 보도였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김 교수는 KBS가 공영방송으로서 그런 것으로만 보도하는 것이 옳은 것인지 의문을 제기했다.

매체비평 차원의 프로그램인데도 KBS가 시청자와 소통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 프로그램 책임자들을 보직 해임한 것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고 그 배경은 뭘까? 시청자들이 강하게 의문을 제기하는 대목이다. 혹여 "내 방송이니까 내가 맘대로 한다"는 심사였을까. 전파는 국민의 것인데 말이다. 이 방송이 나가자 길환영 KBS 사장은 임원회의에서 이 방송의 제작과정을 조사하라는 지시를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고 언론보도는 전한다.

내 언론 내 맘대로 한다?

문제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조선일보든 KBS든 매일신문이든 사주, 경영자가 언론보도의 생명인 균형과 비판을 짓밟은 채 '내가 언론이다. 언론은 바로 나다'라는 식으로 칼날을 휘두르고(전횡) 있는 점에선 공통적이다. 독자와 시청자들은 눈에 없다. 그렇지 않고서는 이런 보도나 보직 해임이란 언론탄압조치는 나올 수 없다. 이런 사고방식은 "짐은 곧 국가다"라고 말한 프랑스의 전제군주 루이 14세(1638-1715). 조선왕조 숙종(1661-1720) 대에 해당)에서 볼 수 있는데 자신을 국가와 동일시하는 정신병적 망상의 전형이라 할 수 있다. 그런 정신병적 망상을 우리 시대 수구언론 사주들, 방송 경영자들이 아직껏 버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문제가 심각하다. 그런데 이들 언론매체 사주와 경영자들은 '시간이 흐르면 잊히게 마련'이란 것을 너무나 잘 안다. 그러면 독자, 시청자들은 대책 없이 손을 놓고만 있어야 할까?

먼저 KBS 사태는 정치권력에 휘둘리지 않고서는 그런 인사를 할 수가 없다고 본다. 보직 해임 계선의 꼭대기는 누군가? KBS의 본색은 뭔가? KBS는 겉으로는 공영방송이다. 그런데도 KBS가 뉴스보도로 하는 행위는 편향적, 일방적이다. 정치권력이 원하지 않는 것을 국민들이 알기를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온 수법이 시청자들로 하여금 모르게 하는 것-바로 바보로 만들자는 것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YTN이나 MBC가 국정원 불법 선거 개입 관련 사실을 제대로 다루지 않았다는 것은 또 다른 보도매체들이 다루고 있지 않은가.

공영방송 대신 '관영방송'으로

KBS는 국정원 사태 보도나 국정원 사태를 알아보는 프로그램을 다룬 프로그램 책임자들을 보직 해임한 것을 보면 공영방송다운 모습을 전혀 찾을 수 없다. 관영방송이 아니면 저지를 수 없는 행동을 서슴없이 장기간에 걸쳐 저질렀다. 그러므로 KBS는 더 이상 공영방송이라고 부를 수 없다. 뭐라고 부를까? '관영방송'이 합당한 타이틀이 아닐까. 관영방송 시절의 구태를 재연하니까 말이다. KBS를 '공영방송'이라는 이름 대신 '관영방송'으로 부르면 어떨까. '그렇고 그런 신문들'은 '전단'이라고 부르기로 하고….

사실은 사실대로 보도하고 기대 이상이면 더 잘 할 수 있도록, 기대 이하면 왜 그런 결과가 나왔는지 냉정하게 분석, 보도하는 것이 언론이 할 일이다. 언론의 비판기능은 이를 두고 하는 말이다. 그런데 매일신문, 조선일보의 보도를 보면 과연 수구언론은 서울에서 발행하든지, 지방에서 신문을 찍든지 한 통속이다 하는 것을 절감하게 한다. '신문사' 수준이 아니라 '인쇄소 인쇄물-전단' 수준이다. 다루는 수단은 다르지만 KBS는 윤창중 성추행 사태에서 '신보도지침'이란 압박 카드를 사용한 전력이 있는데 다시 시청자와 소통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 프로그램 책임자들을 이 프로그램에서 내쫓았다. '언론만행'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국민들, 확성장치 뉴스엔 안 속아


젖을 갓 뗀 아기들도 엄마가 진짜로 칭찬하는지, 거짓으로 칭찬하는지 알아채고 대응한다고 한다. 아기들이 이럴진대 이승만 독재, 박정희 군사정부, 박정희 유신체제, 전두환 신군부 정부, 문민정부,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를 겪으면서 사리를 파악하는데 산전수전 다 겪으면서 역사 속에서 진실 판단법을 익혀온 국민-독자들에게 '카더라' 하면 다 믿던 확성장치(PA시스템) 식 보도는 이젠 국민들에겐 통하지 않는다. 왜? 역사 속에서 배운 경험칙을 소중히 여기기 때문이고, 확성장치를 통해 아무리 정보를 흘려보내도 그게 진실이 아니란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뭘로 그렇게 말할 수 있을까? 균형 대 편향, 비판 대 찬양 경도, 국민 이익 대 특정 정치세력 이익의 어느 것을 확성장치 식 언론 매체들이 선택해 전달하느냐를 보면 알기 때문이다.

우리 이야기로 우리 신문·방송을

바쁜 시대. 방송을 끄고, 신문에서 손을 놓자. 그리고 이야기로 돌아가자. 정이 넘치는 이야기, '카더라'가 아닌 '우리'가 살아서 소통하는 이야기. 그리고 그것으로 우리 방송을 만들고 우리 신문을 제작하자. "선전은 가라"고 하자. 돈과 권력이 손을 잡은 위에서 언론을 제약하는 언론공학, 간섭하는 권력이 제 구실을 하지 못할 우리 이야기를 하면서 말이다.

※확성장치-PA 시스템=1960년대 전반 이런 것을 '스피카(스피커)'라고 불렀다. 가로 세로 20여 센티미터 쯤 되는, 주황색 칠을 한 베니어 통에 스피커를 붙이고, 껐다 켰다 하는 조금 큰 손잡이를 붙인 것. 동네에 연결된 검은 색 통신선에 매달린 이 물건에선 「김 삿갓 북한방랑기」, 「칼 맑스의 제자들」 같은 반공이념 홍보용 방송이 우리 동네에 쟁쟁 울려 퍼졌다. '스피카'는 방송을 편집해 유선으로 전달하는 확성장치였으며 수신료를 내야 했다. '스피카'가 설치된 가정에서는 켜고 끌 수만 있을 뿐 채널을 돌려 다른 방송을 선택하는 것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했다. 소리는 조금 컸다. 우리나라 일방통행 식 관제/관영방송의 원조라고나 할까.






[평화뉴스 미디어창 238]
여은경 / 대구경북민주언론시민협의회 사무처장. 전 대구일보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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