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 보수' 언론권력 바로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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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ㆍ동아 종편, 5.18 관련 '왜곡' / KBS '신보도지침' ㆍ윤창중 '두둔'


언론 통제 중심에 '윤창중' 있다

언론 보도를 전두환 군인정부가 통제하던 보도지침이 KBS에서 되살아났다. 지금이 전두환 신군부 철권통치 시대도 아닌데. 성추행 사건이 박근혜 대통령의 대변인에 의해 미국을 방문 중인 박근혜 대통령의 바쁜 일정 가운데서 저질러졌다. 성범죄자에 대해서는 화학적 거세도 불사하라는 기사를 특필해오던 수구 언론들이 이번에는 입을 다물었다. 대신 청와대 가신들더러만 ‘잘 모시라’고 나무라고 있다. 언론이 겁을 먹고, 언론이 알아서 언론인을 통제하는 그 중심에 '윤창중'이 있다.

<경향신문> 2013년 5월 18일자 1면
<경향신문> 2013년 5월 18일자 1면

동아·조선의 종편이 난리다. 유신독재 붕괴 후의 ‘서울의 봄’을 폭력으로 진압한 전두환 신군부 쿠데타에 맞서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지키려 광주시민들이 들고 일어난 광주 민주화 항쟁에 북한군이 투입됐다는 내용이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종편’이란 입으로는 국민들이 공기처럼 누리지만 광주시민들이 피를 흘려 이룩한 민주화를 모독해 국민을 분열시키면서 ‘신문’이란 글로는 ‘국민통합’을 걱정한다(조선. 5. 20. 사설 「5·18 기념식 파행이 일깨워준 국민통합 긴급과제」)그런데도 합리적 보수세력을 자임해온 세력들은 입을 다물고 있고 방조한다. 그 중심에 ‘괴물’이 되어가는 ‘괴물보수’가 있다(한겨레. 5. 17. 「조선·동아 종편 “5·18은 북한군 소행” 왜곡 방송」. 5. 18. 「5·18 왜곡방송, 극우 일본과 뭐가 다른가」, 경향. 5. 18. 「‘괴물’이 되어가는 보수」, 「역사 부정·윤창중 음모론 들먹이는 일각의 ‘괴물 보수’」 「국민통합 해치는 반역사적 5·18 왜곡 시도」).

<한겨레> 2013년 5월 18일자 1면
<한겨레> 2013년 5월 18일자 1면
<한겨레> 2013년 5월 17일자 1면
<한겨레> 2013년 5월 17일자 1면

미씨USA도 친노ㆍ종북?

‘등록금 반값’ 요구를 종북세력의 공작으로 몰아치고, 대선기간 특정 후보를 지지하기 위해 그 반대편 후보를 음해하는 SNS 메시지를 날려 민주주의의 꽃인 선거를 ‘만화’로 희화화한 ‘국정원 정치개입’ 문건 책임자가 지금 청와대 민정수석실에 근무 중이라고 언론은 보도하고 있다. 알아서 보도지침을 내려 통제하는 KBS, 국민 통합에 분열의 불을 질러 골을 파면서 물을 뿌리는 척 하는 조선일보. 이 모든 것의 중심에 ‘재주만능’을 신앙처럼 믿는 세력들의 일상 문화가 있다. 성추행, 국정원 정치개입, 민주화 역사 부정…. 그것이 이들 세력에겐 지극히 당연한 일상의 문화. ‘갑'의 밀어내기에도 희망을 찾으려 발버둥 치고, 여성답게 살기 위해 성추행 당한 사실을 고백하고 알리면서 눈물 흘리는, 맞은편에 선 국민다수 ’을‘의 문화와는 너무 거리가 멀다. 5월 이후 신문기사 속에서 언론의 헛말과 진실고백을 정리해본다.

대한민국의 국격을 세계 중심에서 여지없이 허물어뜨려 만신창이를 만든 ‘윤창중 성추행 사태’는  미주(워싱턴) 한인 여성들이 ‘미씨 유에스에이’(www.missyusa.com)라는 생활 관련 블로그를 통해 양심에 호소하는 봉화를 9일(현지시간) 올렸다(89334. [단독] 靑 고위관계자, 방미중 성추행 연루 의혹, 急 귀국). 국정원 정치개입의 SNS 전문팀과는 달라도 너무 다른 ‘미씨 유에스에이’의 용기 있는 모습(삶을 지키려는)이 아닐 수 없다. 국내에서라면 압력성 댓글에 서버를 내려놔야 했을 SNS였을 테니까. 국내 일간신문은 5월 10일자 석간신문을 통해 보도되기 시작했다.

윤창중 성추행 사태를 다룬 기사를 보자.

윤창중 성추행 관련 보도(숫자는 보도일자, 보도 면수)
 
 

윤창중은 그럴 사람 아니다?

윤창중이 도망치듯 귀국한 대목에서 청와대가 배후에서 개입한 사실/정황을 엿볼 수 있지만, 언론 주도 세력과 관련해서 보면 경향(5월 15일치 2면) 「보수 인사들 ‘윤창중 두둔’ 발언 논란」 보도가 윤창중의 네트워크를 드러내보인 점에서 눈길을 끈다. 윤창중과 한배를 탄 ‘보수인사들’의 언동이어서 그들의 속내를 드러내기도 하듯 “윤창중은 그럴 사람이 아니다”라거나 “윤창중 개인 문제일 뿐”이라고 해 박근혜 대통령에게 미칠 파장을 지레 차단하는 한편 ‘사소한 개인문제’로 축소지향의 말을 쏟아냈다. 진실 추적이란 의식은 찾아볼 수 없다.

<경향신문> 2013년 5월 15일자 2면(종합)
<경향신문> 2013년 5월 15일자 2면(종합)

윤창중이 21세 된 여성 인턴을 성추행한 사태가 여성대통령을 수행한 사절단의 일원, 여성 대통령의 입으로서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인데다, 그의 성추행이 대통령의 방미 행적을 결딴내고 향후 대한민국 국민들이 세계 속에서 두고두고 창피를 느끼게 할 치욕의 정화, 대한민국 외교사의 수치란 점은 이들의 언어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나아가 윤창중의 성추행을 ‘미씨 유에스에이’가 동포들의 공론장에 올린 사실을 두고 “윤창중이 미시 유에스에이의 친노종북세력에게 당한 듯하다. 교묘하고 계획적으로 거짓말을 한 판 벌였다.”고 해(변희재 미디어워치 대표) 어김없이 ‘친노’‘종북세력’으로 몰아 색깔논쟁을 부추기고 있다.

대통령의 사과에 이르기까지 관련 보도
 
 

제2ㆍ제3 윤창중 '예고'

국격을 형편없이 모독한 윤창중을 비호한 이들 ‘보수인사들’이 주로 이용한 언론 매체가 채널A 등 동아·조선의 종편이란 점은 이들 채널에 투자했고 협조관계를 맺고 있는 또 다른 일간신문들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도 2차 후유증은 심각할 수밖에 없다. 경향은 이런 관계를 작은 기사지만 제대로 보도해 ‘보수인사들’의 뿌리가 어딘지, 그 네트워크가 얼마나 이념적인지 알게 했다. 이들의 말을 통해 앞으로 제2, 제3의 ‘윤창중 사태’가 재연될 수 있다는 것도 읽게 했다. 잘못된 일이란 의식이 그들의 말에 배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진실 찾기-사실 축소ㆍ왜곡 두 길

박근혜 대통령의 사과와 관련해서는 윤창중 성추행 사태를 언론사들이 어떻게 보는지 본색을 극명하게 드러낸다. 문제의 본질이 무엇인지, 그 근본이 어디에서 만들어졌는지를 밝히려는 진실 찾기 보도 매체와, 청와대 보좌진들이 할 일을 못해서 그렇다고 청와대 보좌진들을 탓하고 비판하는 매체로 나뉘고 있다. 후자는 비판을 통해 드러난 진실을 공론장에 올린다는 언론 본연의 자세에서 벗어나 ‘박근혜 근위대로서의 언론’에 충실하려는 것인데 그 보도의 플롯과 논리를 보면 이렇다. 

윤창중 성추행 사태에 대해 기득권 추구 언론 매체의 보도태도와 사실 인식을  ‘대통령의 사과에 이르기까지 관련 보도’, ‘윤창중 성추행을 보는 사설 인식’, ‘박근혜 대통령 태도 관련 사설’의 셋으로 나눠 살펴보자.

청와대 책임자는 홍보수석인가

먼저 기득권의 수구언론. 조선일보는 예고기사로 박근혜 대통령이 유감을 표명할 것으로 5월 13일 1면에서 다뤘다. 예고기사란 점, 사과가 아니라 ‘유감 표명’을 할 것이란 점을 독자들은 눈여겨봐야 했다. 다음날(14일) 보도에서는 ‘유감 표명’이 아닌 ‘사과’를 한 사실을 다뤘다. 독자들의 기대치 이상의 몫을 대통령이 한 것에 독자들이 감격해 ‘그래, 이만하면 됐다’는 인식 변화를 이끌어내려 한  것이다. 독자 심리 조작(操作) 기법, 다른 말로 ‘언론공학’ 기법을 동원한 것이다. 이런 보도태도는 조선일보의 11일 1면 보도(「청와대 대변인이 먹칠한 國格/윤창중, 訪美 수행중 인턴 性추행 의혹으로 경질당해…홍보수석 “국민과 대통령께 사과”」)에서 잘 드러난다.

<조선일보> 2013년 5월 11일자 1면
<조선일보> 2013년 5월 11일자 1면

책임은 윤창중에게 있고, 가신인 홍보수석이 ‘국민과 대통령께 사과’하는 것이다. 사과를 하는 경우 책임자가 사과를 하고, 그 책임자가 사람을 잘못 썼으면 더더욱 책임을 지고 사과하는 것이 사과의 기본이라면 조선일보 식의 사과는 변칙임을 알게 한다. 조선일보에 따르면 청와대 책임자는 ‘홍보수석’이 되는 셈인 것이다. 매일(13일 1면)은 윤창중 성추행 사태가 공직사회 기강 해이 때문인 듯이 다뤘다. 

'회의실 사과'는 자성 없는 사과

그러나 경향·한겨레 보도는, 대통령 자신이 문제를 만들었음을 말하지 않고 공직기강 해이로 방향을 돌린 것은 방향을 잘못 잡았다는 사실을 봤다. 먼저 경향. 경향신문은 박근혜 대통령의 사과 사실을 14일치 1면에 다뤘으나 그 사과는 수석비서관회의 석상에서 한 발언임을 빠뜨리지 않았다. 국민 앞에 서서 사과하는 것과는 격이 다름을 놓치지 않았다. 한겨레 역시 같은 날 1면에 사과 사실을 다루었으나 ‘회의실 사과’로서 ‘자성 없는’ 것, 그래서 국민의 실망을 달랠 수 있을지 의문임을 다뤘다. 또 윤창중 성추행 사태가 박근혜 내각 꾸리기에서 심각한 문제점으로 부각된 ‘불통 인사’의 자연스러운 결과임을 박근혜 대통령이 말하지 않은 사실도 부제로 다뤘다.

<한겨레> 2013년 5월 14일자 1면
<한겨레> 2013년 5월 14일자 1면

조선일보 등 기득권 수구 매체는 홍보수석→비서실장→대통령의 순으로 사과의 격을 높여감으로써 결과적으로 국민들에게 ‘변한 게 없다’는 실망감을 업그레이드하도록 보도의 판을 짰다. 경향·한겨레는 윤창중 성추행 사태의 시발점이 인물을 권력의 핵심부로 잘못 선택, 임명한 사실, 그리고 그 임명 때문에 대한민국의 국격이 타격을 받고 있는 책임이 어디, 누구에게 있는지 문제의 근원을 파고들었다. 중요한 것은 독자/국민들이 문제의 본질을 잘 알고 있다는 사실이다. 필자가 만난 한 70대 할아버지는 “딸 같은 젊은 여성을 성추행하다니…부끄러워서 어디 가서 말을 할 수 없는 지경…”이라고 했다. 이 할아버지는 평소 조선일보를 읽는 독자였다.

윤창중 성추행을 보는 사설
 
 
박근혜 대통령 태도 관련 사설
 
 
국정원 정치 개입 관련 보도
 
 
5ㆍ18민주화 운동 탄압·'괴물 보수' 관련 보도
 
 
차별을 보는 칼럼들
 
 
'갑'의 '을' 내몰기 관련 보도
 
 

변해야 할 사람, 언론은 모르고 국민은 안다

윤창중 성추행 사태를 다룬 사설을 보기로 한다. 이 대목을 보면 보수언론도 이미 윤창중 사태가 국격을 허물어버린 망칙하고 씻을 수 없는 사태임을 인식하고 있다. 조선일보가 내보낸 5월 11일치 사설 「대한민국을 세계에 망신시킨 윤창중 사태」는 이 사실을 잘 보여준다. 그런데 그것이 누구 탓인지, 그래서 누가 변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국민 일반의 판단과 많이 다른 점을 보였다.

<조선일보> 2013년 5월 14일자 사설
<조선일보> 2013년 5월 14일자 사설

5월 14일치 사설 「청와대가 크게 바뀌지 않으면 안 된다」를 보면 “윤씨 사건은 최악의 시점에 최악의 방식으로 터졌다. 평범한 상식을 가진 사람이라도 그것이 대통령의 리더십과 청와대의 국정지휘 능력에 큰 타격을 주리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라고 하고 있다. 또 “…지금 청와대 참모진 내부는 이 정도로 무질서하다. 홍보수석은 윤씨의 직속상관이다. 그런데도 청와대 직원들은 “윤씨가 홍보수석 지시를 따를 사람이냐?”고 되묻는다고 한다. 청와대 내부에 직급과 직책에 따른 위계서열은 그냥 형식에 지나지 않고 힘센 사람의 순서는 다른 요인으로 정해진다는 뜻이다.”

비뚤어진 토기더러 토기장이에게 대들라니…

그런데도 조선일보는 청와대 보좌진들이 가감 없이 대통령에게 직보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한다. 최고 권력 의지에 누가 더 가까운가로 권세를 휘두르는 냉정한 세계에 대고 ‘그렇더라도 직보하라’고 하는 것은 말이 되는 이야기일까. 토기장이가 토기를 그렇게 만들었는데도 비뚤어진 토기더러 토기장이에게 할 말은 하라고 한다면 토기장이는 “내 맘이다.”란 말 외에 더 무엇을 말할까. 이런 점에서 조선일보의 이날 사설은 그럴듯하지만 그렇지 않은, 권력의 세계를 출입하면서도 그 세계가 힘의 세계를 모르는 듯이 말하고 있을 뿐이다. 권력 핵심의 심사를 건드리지 않으려는 태도, 언론공학적 태도가 아닐까?

'인사실패' 반성 안하면 국민 마음 못 움직여

윤창중 성추행 사태가 나라망신 시키는 짓, 윤 씨에 대해 가져야 할 태도를 다룬 사설을 지나 책임소재에 본질 면에서 접근한 사설은 아쉽게도 경향·한겨레 두 신문 외에는 싣지 않았다. 경향은 윤창중 사태는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나설 것, 인사 실패에 대한 반성이 없으면 그 사과는 사과로서 국민의 마음에 다가갈 수 없음을 강조했다.

<경향신문> 2013년 5월 13일자 사설
<경향신문> 2013년 5월 13일자 사설

박 대통령의 사과와 책임자 처벌은 불가피하다. 더 중요한 것은 진실규명이고, 피해자의 명예회복이며, 유사사태의 재발방지다. 필요하다면 윤 전 대변인을 미국으로 보내 미 경찰의 수사에 협조해야 한다.(「박 대통령이 직접 나서 ‘윤창중 참사’ 수습해야」(5. 13. 사설)

그러나 박 대통령의 사과는 내용과 형식면에서 모두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고 본다. 가장 큰 문제는 ‘내 탓이오’가 빠진 점이다.…사과를 하려면 ‘불통인사’의 책임부터 인정하는 게 도리다. 박 대통령은 그러나 인사실패에 대해 한 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사과는 내용 못지않게 형식도 중요하다.…지도자는 자신이 원할 때뿐 아니라 내키지 않을 때도 국민이 원할 때면 그들 앞에 서야 한다. 그것이 지도자의 숙명이다.(「‘인사실패’ 반성 빠진 박 대통령의 사과」(5. 14.)


<경향신문> 2013년 5월 14일자 사설
<경향신문> 2013년 5월 14일자 사설

문제는 대통령

한겨레는 윤창중 성추행 사태의 문제가 바로 박근혜 대통령에게서 비롯됐다고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한겨레> 2013년 5월 13일자 사설
<한겨레> 2013년 5월 13일자 사설

이번 사건의 궁극적 책임은 압도적인 반대여론에도 불구하고 윤씨를 인수위 대변인에 이어 청와대 대변인으로 발탁한 박 대통령에게 있다.…박 대통령은 비서진 뒤에 숨어 있지만 말고 국민 앞으로 나와 당당하게 설명할 책임이 있다. 추행과 관련한 진실공방은 사법당국에 맡기더라도 윤씨의 도피가 청와대의 방조와 지원 속에 이뤄진 것인지, 자신이 이 사건을 언제 인지했는지는 직접 밝히는 게 옳다.(「윤창중 추태, 결국 박 대통령의 문제다」(5. 13.)

박 대통령의 사과는 우선 형식적으로 미흡하다. 국격을 크게 훼손한 전대미문의 성추문 사건의 파장을 고려하면 국민과 재외동포 앞에 직접 머리 숙여 사과했어야 했다.…박 대통령의 사과는 사안의 본질과도 거리가 멀다. 이번 사건은 일차적으로 박 대통령의 인사 잘못에서 비롯됐다. 누가 보더라도 부적격자임이 분명한 인물을 대통령직인수위원회와 청와대대변인으로 연이어 발탁한 ‘불통인사’ ‘오기인사’가 사건의 근본원인이다. 이번 기회에 박 대통령은 자신의 인사 잘못에 대해 국민에게 석고대죄하는 심정으로 사죄했어야 한다.(「대통령의 어정쩡한 사과로 끝낼 일이 아니다」(5. 14.)


<한겨레> 2013년 5월 14일자 사설
<한겨레> 2013년 5월 14일자 사설

권력 눈치보기 나선 KBS


윤창중 성추행 사태에 또 다른 개입자가 나타났다. 바로 언론이다. 그 단적인 예를 우리는 KBS의 '신보도지침'에서 볼 수 있다. KBS는 태생적으로 관제언론이다. 일제강점기에는 일제의 내선일체를 위해 전파로 복무했다. 해방이 되면서 이번에는 미군정의 정책수행을 위해 나섰다. 미군정이 친일관료, 친일경찰을 재 등용해 민족을 탄압하는데도 말이다. 정연주 사장 시절 KBS가 제 궤도로 돌아가자 정치권이 가만두지 않았다. KBS의 영향력을 정치의 도구로 삼으려 했기 때문이었다. 그런 이력의 KBS를 박근혜 대통령 정부가 그냥 놔뒀을 것인가.

KBS 보도지침 관련 사설

나라망신, 아니 박근혜 대통령의 이미지가 크게 훼손당할 사건이 윤창중 성추행 사태란 사실은 KBS도 직감했을 것이다. 경향신문의 사설을 보자.

KBS가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의 성추문 뉴스를 다루는 과정에서 ‘보도지침’ 논란에 휩싸였다. 관련뉴스를 제작하면서 태극기와 청와대 브리핑룸 사진을 쓰지 말도록 자체 지침을 만든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사건의 파문으로부터 박근혜 대통령과 청와대를 보호하기 위해 무리수를 뒀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사실이라면 참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사안의 성격상 누구보다 엄정하게 사실보도를 해야 할 KBS가 알아서 청와대 눈치보기에 나선 것이나 다를 게 없다. KBS는 철저한 진실규명과 함께 관련자를 징계하고 비슷한 일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대책을 내놔야 한다.
이 사건은 공영방송 위상과 직결된 문제다. 뉴스 영상제작 부서의 공지사항을 보면 윤 전 대변인 뉴스의 배경화면으로 태극기나 청와대 브리핑룸 그림(화면)을 사용할 수 없다고 했다. '신(新)보도지침' 논란을 부를 만한 사안이다. 이 사건을 청와대와 무관한 개인비리로 축소하려는 의도로 볼 수밖에 없다. ’국격에 먹칠을 했다‘는 이유로 국민적 공분이 들끓는 마당에 국영방송도 아닌 공영방송이 ’‘여론조작’이나 진배없는 일을 했다니 믿기지 않는다.(「KBS의 황당한 ‘윤창중 보도지침’」(5. 13.)


<경향신문> 2013년 5월 13일자 사설
<경향신문> 2013년 5월 13일자 사설

80년대 보도지침과 '닮은꼴'

공영방송의 도리는 공공의 이익에 봉사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관제방송 의식에 젖어 ‘여론조작’이나 다를 바 없는 작태를 버젓이 하는 것은 윤창중 사태를 개인비리로 축소하려는 의도라는 것이다. 윤창중 성추행 사태만큼이나 언론으로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전두환 신군부가 명령하다시피 저지른 80년대 ‘보도지침’으로 되돌아가는 듯하다. 80년대 보도지침은 전두환의 권력이 지시했다. 그러면 KBS ‘신보도지침’은? KBS는 그런 일은 없다고 부인했다. 그러나 부인에도 불구하고 방송은 실제로 어떻게 나갔는가. 한겨레 사설을 본다.

한국방송에서는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의 ‘성 추태’가 국민적 관심사로 떠올랐던 10일, 이른바 ‘신보도지침’ 논란이 벌어졌다. 방송사 쪽은 보도국 편집실에 ‘윤창중 전 대변인 그림 사용시 주의사항’이란 문건을 게시하고, 청와대 그림 사용 금지, 배경화면에 태극기 등 그림 사용 금지를 주문했다. 또 ‘윤창중 그림 쓸 경우는 일반적인 그림 사용을 사용해주세요’라고 특별히 당부까지 했다. 방송사 쪽은 시청자의 항의를 전달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오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이날 주요 뉴스의 화면이 지침대로 나갔고 정권  향 방송을 해온 그 동안의 전력에 비추어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기 어렵다(10일 이후 윤창중 관련 뉴스를 보면 KBS의 주장이 한낱 주장으로 그쳤음을 보게 된다). 더구나 한국방송은 11일 뉴스의 초점이 된 윤창중씨 기자회견의 생방송도 외면했다.(「한국방송 ‘신보도지침’과 수신료 인상」(5. 14.)

<한겨레> 2013년 5월 14일자 사설
<한겨레> 2013년 5월 14일자 사설

정치 맛 들인 언론, 제대로 된 보도 했을까
언론이 정치 맛을 보면 국민을 외면하게 된다. 그러려면 처음부터 언론이 아니어야 한다. 정치 맛을 들인 언론인들이 제대로 보도했을 것으로 생각한다면 바른 판단일까 오산일까? 국민들은 언론 매체를 통하지 않고는 사실을 알 도리가 없다. 알 수 있다고 하더라도 번거롭고 매우 제한적이다. 그런데 그 신문, 방송이 작심하고 진실을 축소하거나, 방향을 확 틀어 의미를 왜곡하거나, 있는 사실을 없는 것으로 만들어 무시하거나 한다면 국민들은 어떻게 되나?

인턴 여대생의 눈물 이해해야

언론 매체가 누리는 배타적 특성에 ‘괴물 보수’가 눈을 떴을 때 독자/시청자들의 할 일은 뭘까. 소통하는 말 한 마디 건네기? 답은 독자/시청자 나름대로 여러 가지일 수 있겠다. 그 가운데 하나-인턴 여대생의 눈물과 분노를 이해하려는 마음/노력이 아닐까? 그녀의 아픔을 알린 동료 여직원의 정의감, 그 사실을 블로그에 올린 작은 손, 큰 용기의 그 마음이 거대한 압력의 벽을 넘을 수 있었기에 더욱 그렇다.






[평화뉴스 미디어창 233]
여은경 / 대구경북민주언론시민협의회 사무처장. 전 대구일보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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