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들이 선택한 영덕의 미래..."원전 반대 91.7%"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 입력 2015.11.13 1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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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만여명 '반대', 투표율 60.3%, 찬성 7.7% ..."민주주의 승리, 원전 고시 철회해야"


"91.7%"

경상북도 영덕군 신규 원자력발전소 유치 여부를 묻는 찬반 주민투표 결과, 91.7%라는 압도적인 숫자의 주민들이 원전 유치 '반대'에 자신들의 한 표를 던졌다. 영덕 주민들은 첫 주민투표라는 민주주의 방식을 통해 정부 에너지 정책에 제동을 걸어 원전이 없는 영덕을 자신들의 미래로 택했다.

11~12일까지 영덕군 내 각 투표소에서 원전 찬반 투표를 하는 주민들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11~12일까지 영덕군 내 각 투표소에서 원전 찬반 투표를 하는 주민들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주민투표 개표는 12일 밤 11시 넘어서야 시작됐다. 13일 새벽까지 계속 개표가 진행되면서 개표현장인 영덕농협은 긴장으로 가득찼다. 그리고 13일 늦은 새벽 모든 개표가 끝나고 91.7%의 주민이 원전 유치를 반대한다는 투표 결과가 발표됐다. 새벽까지 개표 현장을 숨 죽이며 지켜보던 영덕 주민들과
이번 주민투표를 돕기 위해 전국에서 자발적 봉사자로 온 시민단체 활동가, 전문가들은 압도적인 반대율 수치를 듣고 서로 부둥켜 안고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 일부 주민들은 눈시울이 붉어지기도 했다.

영덕핵발전소 유치찬반 주민투표 관리위원회(위원장 노진철)는 13일 새벽 개표 직후 브리핑을 갖고 "투표인명부에 등록한 영덕 주민 18,581명 중 60.3%인 11,209명이 지난 11~12일까지 이틀간 투표해, 91.7%인 10,274명이 원전 유치에 반대, 7.7%인 865명이 찬성, 0.6%인 70명이 무효표를 던졌다"고 밝혔다. 투표에 참여한 주민 10명 중 9명이 신규 원전 유치에 압도적으로 반대하고 있는 셈이다.

원전 찬반에 대한 주민들의 의사가 담긴 투표함 20개(2015.11.12)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원전 찬반에 대한 주민들의 의사가 담긴 투표함 20개(2015.11.12)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선거관리위원회에 등록된 만19세이상 영덕 유권자 34,432명을 기준으로 하면 투표욜은 32.5%(11,209명)다. 주민투표법(제24조)상 법적 효력을 갖는 유권자 3분의 1(33.3%) 참여에는 조금 못 미친다. 그러나 지자체 도움 없이 부재자 투표도 받지 못한 채 민간주도로 전체 주민의 30%가 넘는 1만여명이 정부 정책을 거부하고 자신의 손으로 지자체 미래를 결정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투표관리위는 "산업통상자원부, 행정자치부, 한국수력원자력 등이 불법적인 허위사실 유포, 향응과 물품 제공, 관광 보내기 등의 온갖 비정상적인 방법을 동원해 투표를 방해했지만, 주민들은 굴하지 않고 투표를 성공시켰다"며 "이희진 영덕군수, 강석호 국회의원을 비롯한 정부, 새누리당은 투표에서 확인된 영덕 주민들의 민심을 에너지 정책에 반영시켜 민주주의의 원칙을 지켜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영덕 원전 유치 찬반 주민투표 개표(2015.11.13.영덕농협)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영덕 원전 유치 찬반 주민투표 개표(2015.11.13.영덕농협)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노진철 위원장은 "압도적인 주민들이 원전 반대를 외친 것을 정부는 겸허히 수용해야 한다"면서 "반드시 원전 유치 고시를 철회해야 한다"고 했다. 이강석 영덕군의회 의장은 "주민 의사를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생기는 불상사는 정부가 책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혜령 영덕핵발전소반대범군민연대 대외협력위원장은 "무려 1만여명이 투표에 참여해 처음으로 주민의 목소리를 온전히 냈다"며 "이뿐 아니라 1만여명이 원전에 반대하고 있다는 놀라운 결과까지 냈다. 우리의 투표는 합법적이고 정당했다. 정부는 반드시 주민투표에 나타난 민의를 무섭게 받아들여 원전 계획을 백지화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시민단체와 야당도 13일 일제히 투표 결과를 환영하고 나섰다. 환경운동연합은 논평을 내고 "민주주의와 지방자치의 승리를 실현한 주민들에게 존경과 박수를 보낸다"면서 "압도적 반대의견을 확인한 이상 정부는 핵발전소 부지고시를 철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영덕핵발전소반대 범군민연대는 논평을 통해 "이번 투표 결과는 민주주의를 지킨 영덕 주민의 위대한 승리"라며 "영덕의 미래와 민주주의를 지키려 손에 손을 잡고 투표소로 나온 주민 모두와 함께 탈핵으로 나아 갈 것"이라고 밝혔다.

영덕읍에서 주민투표 참여를 독려하는 시민들(2015.11.12)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영덕읍에서 주민투표 참여를 독려하는 시민들(2015.11.12)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새정치민주연합 경북도당은 성명서를 통해 "정부는 주민이 자율적으로 실시한 주민투표 결과를 존중하라"면서 "원전의 대안이 없는지 국가 에너지 계획도 재검토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의당 소속 김제남(탈핵에너지전환위원회 위원장) 의원도 성명서를 내고 "박근혜 대통령은 선거에서 원전은 국민 여론을 수렴해 결정하겠다고 약속했다"며 "주민투표 결과를 겸허히 받아들여 영덕 원전 건설계획을 즉각 철회해 갈등을 해소해야 한다"고 했다. 녹색당도 "민주주의가 이긴 투표였다"며 "압도적인 반대율에 따라 원전 계획은 더 이상 영덕에 있을 수 없다. 정부는 지정고시를 해제하라"고 촉구했다.

이틀 동안의 주민투표 후 투표관리위는 이번 투표 결과를 정부와 영덕군에 보내 수용을 촉구한 뒤 해단식을 갖고 해체한다. 올해 7월 신규 원전 유치 계획 발표 후 넉달 동안의 주민투표 운동은 마무리되는 것이다. 범군민연대 등 일부 단체는 조직을 유지하고 정부에 계속 탈핵을 요구할 예정이다.

병곡1리 마을회관에 붙은 산자부 장관의 투표불참 독려 담화문(2015.11.12)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병곡1리 마을회관에 붙은 산자부 장관의 투표불참 독려 담화문(2015.11.12)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그러나 윤상직 산자부 장관은 13일 담화문에서 "이번 투표는 법적 근거와 효력이 없어 정부는 투표 결과를 인정할 수 없다"며 "다만 적법한 절차를 거쳐 확정된 원전 건설에 대한 지역사회 분열과 갈등이 매우 안타깝다. 일부지만 반대 의견이 있다는 정도만 겸허히 받아들이겠다"고 밝혔다.

앞서 7월 22일 산자부는 신고리 7~8호기를 영덕에 건설하는 7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을 발표했다. 150만KW 대규모 원전 2기를 2026~2027년까지 건설한다는 계획이다. 완공 후 명칭은 신고리 7~8호기가 아닌 '영덕 1~2호기'로 바꾼다. 2029년까지 6GW 신규 원전 2기도 영덕이나 삼척 중 한 곳에 추가 건설한다. 신고리 7~8호기에 신규 원전 2기까지 지으면 영덕에는 원전 4기가 들어선다. 영덕 원전 예정 부지는 영덕읍 석리, 노물리, 매정리, 축산면 경정리 일대 324만㎡다. 예정 부지 반경 30km 안에는 영덕군 전체와 영양, 포항 북부, 울진 남쪽지역이 포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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