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회견이 '집시법' 위반?...대구 경찰, 소환장 '남발' 논란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 입력 2015.12.24 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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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시민단체 10여명 수사, 검찰 '징역형'까지 구형 "미신고 집회"/ "표현의 자유 억압"


'미신고 집회를 연 혐의로 조사할 것이 있으니 출석하시길 바랍니다'

대구수성경찰서는 지난 9일 최상훈(32.학교비정규직노조 경북지부 조직국장)씨에게 출석요구서를 보냈다. 21일까지 조사받지 않을 경우 체포한다는 내용이 명시돼 있었다. 최씨는 21일 조사를 받았다.

경찰은 최씨에게 '집시법(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를 적용했다. 노조가 지난 1일 대구시 수성구 대구지방노동청 앞에서 연 기자회견이 '미신고 집회'라는 것이다. 당시 기자회견 참석자 20여명 중 최씨와 표명순(58.학교비정규직노조 경북지부장)씨가 출석요구서를 받았다. 

대구수성경찰서가 최상훈에게 보낸 출석요구서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대구수성경찰서가 최상훈에게 보낸 출석요구서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당일 기자회견은 경북도교육청이 비정규직을 이전보다 쉽게 해고하는 '일반해고'를 전국 교육청 중 처음으로 취업규칙에 일방 포함시키고, 이것을 대구노동청이 승인해 두 기관을 규탄하는 내용이었다.

최씨는 23일 평화뉴스와의 통화에서 "기자회견은 집회·시위가 아니기 때문에 법적으로 신고가 불필요하다"며 "지난 3년간 노조 활동을 하면서 회견을 열어 집시법으로 수사받은 것은 처음"이라고 밝혔다. 그는 "정부 정책에 반대하는 세력에 대해 위헌적으로 공안몰이하는 것이 아니겠냐"고 지적했다.

특히 노조는 "법적 근거가 없고 사회적 통념과 형평성에도 어긋난다"며 반발하고 있다. 기자회견은 집회·시위와 달리 경찰에 신고할 법적 의무나 규정이 없다는 게 이유다. 때문에 노조는 경찰에 기자회견 을 알리지 않은 것은 "당연하다"고 반박했다. 통상 기자회견은 기자들을 상대로 보도 요청을 하고 해당 단체가 알리고자 하는 내용에 대한 보도자료, 기자회견문을 기자들에게 전달하는 자리로 활용된다.

(위)경찰이 '미신고 집회'로 문제 삼은 지난 1일 학교비정규직노조의 대구노동청 앞 기자회견과 (아래) 집회 신고된 지난 16일 새누리당 대구시당 앞 민주노총대구본부의 결의대회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김지연 인턴기자
(위)경찰이 '미신고 집회'로 문제 삼은 지난 1일 학교비정규직노조의 대구노동청 앞 기자회견과 (아래) 집회 신고된 지난 16일 새누리당 대구시당 앞 민주노총대구본부의 결의대회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김지연 인턴기자

또 당일 오전 11시 대구시 수성구 새누리당 대구시당 앞에서 진행된 같은 형식의 다른 단체의 기자회견에 대해서는 "경찰이 어떤 조사도 진행하지 않고 있다"며 "형평성에도 맞지 않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대구수성경찰서는 "회견 형식을 빌린 미신고 집회"라며 "노동계의 기존 집회 방식과 동일해 불법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조사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특히 경찰은 당시 노조 활동이 기자회견이 아닌 집회·시위라고 판단한 이유로 ▷통일된 구호 제창 ▷앰프(소리 출력을 높이는 스피커)를 이용한 사회 진행 ▷민중의례를 통한 '임을 위한 행진곡' 등 민중가요 합창 ▷A4용지 사이즈의 피켓팅을 꼽았다.

대구 경찰이 기자회견을 '미신고 집회'로 해석해, 기자회견에 참가한 노동·시민단체 활동가 10여명에게 '집시법 위반' 혐의를 적용해 출석요구서를 통보하고 소환조사를 진행해 논란이 일고 있다.

민주노총대구·경북본부에 따르면, 현재 대구경북에서 기자회견에 참석했다 '집시법 위반'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고 있는 활동가는 10여명이다. 경북은 학교비정규직노조 2명, 대구에서는 노조 상근자와 시민단체 활동가 등 8명 이상이다. 앞서 5년간 이 같은 이유로 수사가 진행된 것은 올해가 처음이다.  

'민주노총대구본부 간부 영장청구 규탄 기자회견'(2015.6.24.대구지법)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민주노총대구본부 간부 영장청구 규탄 기자회견'(2015.6.24.대구지법)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경찰이 문제를 삼은 것은 모두 5건으로, ▷지난 4.24 대구 범어네거리 민주노총대구본부 총파업 결의대회 당시, 경찰의 과잉진압을 규탄한 4월 27일 기자회견과 ▷29일 대구지방경찰청 앞 기자회견 ▷5월 12일 대구지방법원 앞 유사 내용의 기자회견 ▷6월 24일 대구지검 앞 4.24 총파업 관련 노조 간부 영장 청구 검찰 규탄 기자회견 ▷6월 25일 대구지법 앞 노조 간부 구속 법원 규탄 기자회견이다.

대구 경찰은 이를 모두 기자회견이 아닌 '미신고 집회'라고 보고 있다. 대구지검과 대구지법도 경찰의 수사를 인용해 보수적 판결을 내려 반발을 사고 있다. 특히 4월 27·29일 기자회견 관련 '집시법 위반' 1심 결심공판에서, 대구지검은 한 시민단체 활동가에게 '징역 6월'을 구형했다. 기자회견에 참석한 이유로 구속까지 감안해야 하는 상황이다. 선고는 오는 24일 대구지법에서 열린다. 또 6월 25일 기자회견 관련 '집시법 위반' 1심에서 재판부는, 민주노총대구본부 활동가 2명에게 각각 1백만원 이하의 벌금형을 선고했다. '유죄' 판결을 내린 것이다. 이들은 현재 항소한 상태다.  

임성열 민주노총대구본부장은 "박근혜 정부에 반대하는 노동·시민단체 목소리를 차단하려 소환장을 남발하는 것"이라며 "기자회견 조차 못 열게 하는 것은 헌법에 보장된 집회·시위,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위헌적 처사"라고 비판했다. 박희은 민주노총대구본부 사무처장도 "노골적 탄압이 이런 형태로 자행되는 것"이라며 "민주주의의 의사표현 자유마저 원천봉쇄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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