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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해 끝날의 밤과 새해 첫날의 새벽, 사람들
도서관에서 공부하는 청년, 폐지 줍는 어르신, 청소부 가장..."올핸 조금만 더 잘 살기를"
2016년 01월 01일 (금) 17:23:13 평화뉴스 김지연 인턴기자 pnnews@pn.or.kr

   
▲ 새해 2시간 전까지 중앙도서관에서 공부를 하고 나가는 어느 20대 여성(2015.12.31) / 사진.평화뉴스 김지연 인턴기자

2015년 12월 31일 밤 9시 55분. 대구중앙도서관에서 도서관 문을 닫는다는 방송이 나왔다. 자동차수리 서비스업체에서 6년째 일하고 있는 이모(33.중구 동인동)씨는 2015년 마지막 날까지 공부를 하고 도서관을 나왔다. 이씨는 얼마 전 둘째가 태어나 두 아이의 아빠가 됐다.

"회사에 다니고 있지만 자리도 안 잡히고 힘들 것 같아 창업을 준비하고 있다"며 "관련 책들을 읽으려 퇴근 후 도서관에 와 공부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창업 계획을 아직 구체적으로 세우지 않았지만, 딸린 식구가 있는 가장인데 신중해야할 것 같다"며 "새해에는 좋은 일만 있었으면 좋겠다"고 소망했다.

같은 시각 중앙도서관 안에는 해가 가는지도 모르고 여전히 공부하는 사람들이 남아 있었다. 4층 여자열람실에는 20명가량의 사람들이 각자 토익과 한자공부 등을 하면서 동영상 강의도 보고 있었다. 도서관 옆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에서 새해 타종행사를 진행하느라 시끄러운 음악소리가 몇 시간동안 계속 나왔지만 공부하는 이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2015년 마지막 날까지 공부에 집중했다.

   
▲ 새해 타종행사를 보러 모인 시민들(2015.12.31.국채보상공원) / 사진.평화뉴스 김지연 인턴기자

황모(27.북구 태전동)씨는 9시쯤 짐을 챙겨 열람실을 나와 집으로 향했다. 예술에 관심이 많아 건물 설계디자인을 하고 싶었다는 황씨는 "제가 회계학과를 나왔는데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2년째 세무사시험을 준비하고 있다"고 멋쩍게 말했다. 한 해 마지막 날 공부를 하고 귀가하는 황씨에게 새해를 맞이하는 소회를 묻자 "새해라는 것이 중요하지 않다. 그냥 한 살 더 먹는다는 생각 뿐"이라며 "그래도 원래 10시까지 하는데 노래도 들리고 기분이 싱숭생숭해 한 시간 일찍 나왔다"고 웃으며 말했다.

황씨는 그 길로 버스를 타러 도서관에서 나왔다. 황씨가 버스를 타러 가는 길에는 많은 시민들이 삼삼오오 모여 새해를 맞이하게 위해 거리에서 사진을 찍으며 연말을 즐겼다. 황씨는 "올해는 시험에 꼭 붙어서 내년에는 나도 저 자리에 있었으면 좋겠다"며 "빨리 돈을 벌어 효도하고 싶다"고 희망했다.

   
▲ 이모 할머니가 박스를 수레에 모은 뒤 벤치에서 쉬고 있다(2015.12.31) / 사진.평화뉴스 김지연 인턴기자

같은 날 저녁 7시 대구시 중구 동성로 대구백화점 앞. 큰 트리와 빛나는 조명이 빛나고 시끄러운 음악이 상점 곳곳에서 들려왔다. 윤순덕(가명.77) 할머니는 모자와 목도리로 꽁꽁 싸맨 채 벤치에 앉아 있었다. 할머니는 폐지를 쌓은 수레를 옆에 두고 초코바 하나로 저녁을 때웠다. 할머니는 "수레는 내 밥벌이"라며 "가끔 사람들이 쓰레기통인줄 알고 쓰레기를 버려 씁쓸할때도 있다"고 털어놨다. 

윤 할머니는 10년째 동성로 일대의 화장품, 옷 가게 등에서 나온 폐지를 고물상에 팔아 생활하고 있다. 이미 이날 오후부터 저녁까지 인근 상점을 다니며 모은 상자와 폐지가 수레 위로 높게 쌓여있었다. 고물상에 폐지를 가져가면 1kg에 110원을 받는다. 아침 8시부터 밤 11시까지 일을 하면 하루에 20~60kg정도를 모은다. 할머니가 하루종일 일을 해 버는 돈은 2천원에서 6천원이다.

"여기 가게들이 문을 닫아야 박스를 모아 집에 가지. 어제는 새벽까지 있었어"라며 "요즘은 이거 하는 사람이 많아 자리를 계속 지키고 있어야 해. 모아놓은 것도 가져가는 판국"이라고 말했다. 작은 원룸에서 혼자 사는 윤 할머니는 "밤에 집에 가면 밥맛도 없어서 안 먹고 TV를 보다 잠들어. 그래도 끼니를 챙길 수 있어서 다행이지"라고 말하며 "내년에는 1천원이라도 더 벌고 싶다"고 작은 소원을 말했다.

   
▲ 동성로에서 박스를 모아 생계를 유지하는 윤순덕 할머니 (2015.12.31) / 사진.평화뉴스 김지연 인턴기자

도서관, 길, 버스정류장에서 2015년의 끝을 보낸 이들. 그들에게 2016년 새해 첫날이 다가왔다.

2016년 1월 1일 새해 첫 날. 아직 해가 뜨지 않은 새벽 6시. 버스를 기다리거나 바쁘게 발걸음을 옮기는 사람들 사이에서 형광색 점퍼를 입고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하는 한모(68.남구 대명동)씨. "아이고 여기는 그래도 한적한 편이지. 동성로 쪽으로 가면 전단지에 커피컵에 아주 말도 못한다"며 고개를 저었다.

한씨는 중구청 소속 환경미화원으로 2007년까지 근무하다 퇴직 후 2년 전 다시 기간제로 일하고 있다. 오토바이로 출퇴근하며 새벽 5시30분부터 아침 9시30분까지 4시간, 오후 1시부터 5시까지 4시간 나눠 일을 한다. "1년 중 3개월씩 세 번 계약하고 나머지 3개월은 쉰다"며 "구청에서 원하는 대로 일하기 때문에 언제 쉴지 모른다"고 한 숨을 쉬었다. 또 "월급도 140만원으로 반토막 나 답답하다"면서 "그래도 이 일이 있어 밥 먹고 살 수 있다. 적은 돈이라도 벌어서 내년에도 잘 살아야지"라고 말했다. 

   
▲ 새해 첫 날 새벽 환경미화원 한모씨가 중앙로를 청소하고 있다(2016.1.1) / 사진.평화뉴스 김지연 인턴기자

새해 첫 날 아침을 여는 이들의 발걸음은 계속됐다. 아침 7시 중구 약령시. 이규동(가명.68)씨와 김영오(60)씨는 재활용 수거 용역업체에서 일한다. 이들은 약령시 한 일식집 앞에서 생선이 담긴 스티로폼 상자 30여개와 식용유통을 정리하고 있었다. 이씨는 "여기는 식당이라 그렇지 대봉동이나 봉산동 주택가는 분리수거가 더 엉망"이라며 "재활용과 음식물쓰레기를 같이 넣어 힘들다"고 한 숨을 쉬었다.

"일요일에 쉬는데 월요일에는 쓰레기 양이 두, 세배 이상이라 더 애를 먹는다"며 "연말과 새해가 끼여서 그런지 쓰레기 양도 더 많은 것 같다"고 고충을 털어놨다. 이어 "새해에는 그저 이 일도 잘 풀리고 자식들도 잘 먹고 살았으면 좋겠다"면서 "그 뿐이다. 다른 건 바라지도 않는다"고 웃으며 말했다.

   
▲ 매일 새벽 대구 중구에서 쓰레기를 수거하는 이규동씨(2016.1.1) / 사진.평화뉴스 김지연 인턴기자

한 해의 끝 날 밤과 새해 첫 날의 새벽. 밤 늦게까지 미래를 위해 공부를 하는 청년들, 생계를 위해 폐지를 줍는 어르신들, 자식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거리에서 일하는 가장들은 각자 있어야 할 곳에서 주어진 을 묵묵히 하고 있었다. '좀 더 잘 살기를' 바라는 평범한 이들의 소박한 소망은 모두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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