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배달' 아저씨의 아슬아슬한 하루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 입력 2013.02.23 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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퀵서비스 기사 10년 / 사고로 다쳐 수술도..."나 믿는 가족 위해 오늘도 무사히"


차들이 줄지어 선 도로 위. 신호 앞에 멈춘 오토바이 앞 단말기에서 3초 간격으로 '띵동' 소리가 울리자 알 수 없는 주소들이 끊임없이 갱신됐다. 헬멧을 눌러 쓴 아저씨는 '(급) 황금2동-KT플라자' 칸을 선택하고 '콜'을 눌렀다. 신호가 바뀌자마자 오토바이는 '부앙' 소리를 내며 시야에서 사라졌다.

21일 오후 5시. 퀵서비스 기사 경력 10년차 이모(56.대구 남구 대명1동) 아저씨가 중구 동인동에 있는 한 회사 앞에 내렸다. 오토바이 뒤에 있던 직사각형 짐칸을 열어 서류를 꺼내 건물로 뛰어 들어갔다. 경비 아저씨가 "누구세요"라고 경계하자 아저씨는 헬멧 쉴드(보호막)만 열어 서류를 흔들며 "퀵이요"라고 짧게 답했다. "들어가지 말고 여기서 기다려요"라고 말하는 경비 아저씨의 말투가 매섭다.

쭈뼛거리며 서 있던 아저씨는 핸드폰을 꺼내 손님에게 전화를 걸어 "로비에요"라고 말했다. 아저씨는 초조한 듯 손목시계를 확인했다. 5분 뒤 엘리베이터에서 키 큰 남자가 내렸다. 아저씨는 그 사람에게 서류를 전달하고 퀵서비스 대가로 5천원을 받았다. 다시 오토바이로 돌아와 끊임없이 '콜(주문)'이 들어오는 단말기를 확인했다. 여러 주소 중 수성구를 선택하고 다시 도로 위를 아슬아슬하게 내달렸다.

단말기에서 콜을 받은 뒤 전화를 하는 이 아저씨(2013.2.21)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단말기에서 콜을 받은 뒤 전화를 하는 이 아저씨(2013.2.21)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요즘에는 퀵배달 기사가 워낙 많으니까 경쟁이 심해. 그래서 멀고 힘들어도 웬만하면 콜을 다 받으려고 해. 그러다보니 별일 다 있다니까 말도 마. 배달은 기본이고 애들 잔심부름까지 해. 서류, 의류, 열쇠, 핸드폰, 이불, 책 같은 건 양반이고 속옷, 기저귀에 약까지 처방해달라는 사람도 있다니까"

오후 5시 20분. 아저씨는 황금2동 한 가정 집 앞에 도착했다. 작은 상자를 받자마자 목적지를 묻지도 않고 오토바이에 올라탔다. 차가운 바람이 헬멧으로 스며들어 김이 서렸다. 시야가 잘 보이지 않지만 10분 안에 도착해야 하기 때문에 속도를 줄일 수 없었다. 그러나, 퇴근 시간이 다가와 도로가 점점 막히기 시작했다. '왜 늦었냐'고 짜증내는 손님 얼굴이 어른 거렸다. 위험한 질주는 다시 시작됐다.  

"퀵배달은 위험해. 손님이 닦달하면 시속 100km을 밝아야 할 때도 있어. 그래서, 아스팔트 위를 달리다가 '이대로 죽는 건 아닌가'하는 나쁜 생각도 들어. 보호 장비도 하고 헬멧도 쓰지만 사고 나면 대형 사고니까 집에선 언제나 노심초사지. 내 몸이 내 몸인가? 가족 꺼지"

서류를 배달하고 떠나는 아저씨(2013.2.21)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서류를 배달하고 떠나는 아저씨(2013.2.21)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끼익' 소리를 내며 오토바이가 멈췄다. 아저씨는 상자를 들고 한 통신사로 들어갔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7층까지 올라가 직접 상자를 전했다. '고맙다'는 말 한마디 없지만 이제 서운하지도 않다. 돈만 받고 바로 내려왔다. 갑자기 보안 직원이 다가와 아저씨를 향해 손짓했다. '언제 왔냐. 왜 왔냐. 허락은 받았냐. 그냥 들어가지 마라. 회사 방침이다' 설명할 기운도 없는지 아저씨는 고개만 끄덕였다. 

"예전에는 안그랬는데 요즘 들어 오토바이는 찬밥신세야. 수성구같은 부촌이나 좋은 건물일수록 심해. 처음에는 서글펐지. 내 자신이 한없이 초라하게 느껴지고. 그런데, 저 사람들도 누가 시켜서 하는 거잖아. 훌훌 털어버려야지. 어쩔 수 있나"  

퇴근 시간이 다가오자 콜 횟수도 줄었다. 아저씨는 건물 구석에 오토바이를 세우고 오랜만에 휴식을 취했다. 헬멧과 장갑을 벗고 코 위까지 올린 마스크도 내렸다. 주머니에서 휴지를 꺼내 입가에 찬 땀을 닦고 안주머니에서 담배 한 개피를 꺼내 빼물었다. 오토바이 위에서 차가운 바람을 온몸으로 맞을 때는 아무리 껴입어도 춥지만 가만히 앉아 있으면 두꺼운 옷 때문에 땀이 차오른다.

"오늘도 무사히 잘 지나갔네. 고맙게도" 아저씨는 어두워진 거리를 보며 담배 연기를 길게 내뿜었다. "다행히 어려운 퀵이 없어 덜 힘들었어. 그 덕에 돈도 얼마 못 벌었지만. 하하하" 아저씨는 크게 웃었다. 오늘 3천원짜리부터 1만원짜리 퀵까지 모두 22건 배달로 아저씨는 7만원을 벌었다. 지폐를 세던 아저씨는 사납금과 자신의 몫을 분리해 주머니에 넣고 서부정류장으로 향하는 마지막 콜을 받았다. 오토바이 모습은 사라지고 굉음만 남았다.

마지막 콜을 누르는 아저씨(20213.2.21)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마지막 콜을 누르는 아저씨(20213.2.21)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퀵서비스 기사가 되기 전 이 아저씨는 11년차 베테랑 시내버스 운전기사였다. 그러다, 한 친구가 '함께 식당을 차려보자'고 설득해 회사를 그만두고 퇴직금을 받아 그 길로 족발식당을 개업했다. 그러나, 개업한지 몇 달 되지 않아 동업자였던 친구는 수천만원에 달하는 사업자금을 들고 사라져버렸다. 친구는 다시 돌아오지 않았고 아저씨는 가게를 접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방황하고 슬퍼할 시간이 없었다. 두 아들과 '손에 물 한 방울 묻히지 않고 호강시켜주겠다'고 약속한 아내가 있었기 때문이다. 아저씨는 가게를 접자마자 주변 사람들에게 일자리를 수소문했다. 마침 당시 막 성장하고 있던 지금 회사에 취직을 할 수 있었다.

"주저앉아 슬퍼하고 속은 나를 탓할 시간이 없었어. 내 뒤에는 나만 믿고 따랐던 가족들이 있었으니까. 그래서, 뭐에 홀린 듯 일자리를 찾았지. 만약 그때 내가 아무것도 안하고 남 탓만 하고 있었으면 지금의 나는 없었겠지. 그랬을 거야. 아마도" 

아저씨의 '콜 단말기'...끊임없이 벨이 울린다(2013.2.21.중구 동인동)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아저씨의 '콜 단말기'...끊임없이 벨이 울린다(2013.2.21.중구 동인동)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퀵서비스에 처음 발을 들인 아저씨는 "만만히 봤다 된통 당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기본적으로 퀵서비스 기사는 법적으로 회사 소속 '노동자'가 아니라 '개인사업자'로 분류된다. 그래서, 산업재해 보험 가입이 불가능해 일을 하다 다치거나 숨져도 보상이 없다. 때문에, 2년 전 배달 중 사고로 쇄골이 골절돼 나사를 박아 고정시키는 수술까지 했지만 아저씨는 모든 치료비를 자신이 냈어야 했다.     

또, 식비, 기름 값, 단말기 기계(100만원), 단말기 사용료(월6만원), 퀵 보험료(연60만원) 등 대부분 경비도 개인이 부담해야 한다. 사납금은 월35만원에 이른다. 때문에, 콜이 뜨면 최대한 많이 누르는 수밖에 없다. 그래서, 아저씨는 아침 8시부터 오후 8시까지 단말기를 붙들고 산다. 이런 체계가 지금이야 익숙해져 평균 월 150만원 남짓 고정수입을 벌고 있지만 처음에는 하루 2만원도 벌지 못했다.

"처음에는 우울했지. 자격지심도 생기고. 지금도 가끔 힘들 때 있어. 봐서 알겠지만 얼마나 위험해. 가족 위해 목숨 건 곡예를 하는 거지..."아저씨는 말끝을 흐렸다. "4-5년 돈 더 벌어서 장사해야지. 이제 젊은 패기로는 못살겠어. 60살 넘어서 오토바이 타다 다치면 버는 돈보다 나가는 돈이 더 많을걸? 그런데 사람 일 누가 알아. 70살 넘어서도 할지" 아저씨는 웃으며 코 위로 마스크를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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