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이 살만한, 서민이 행복한 새해를...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 입력 2014.01.01 2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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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을산에서 만난 대구 시민들 / "첫 취업, 정치 화합, 교육...살림 좀 나아졌으면"


천을산에서 해돋이를 보며 기도를 하는 신영씨의 뒷모습(2014.1.1)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천을산에서 해돋이를 보며 기도를 하는 신영씨의 뒷모습(2014.1.1)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2014년 새해 첫 날인 1월 1일. 해돋이를 보기 위해 새벽부터 대구 수성구 고산동 천을산을 찾은 시민들은 지나간 2013년의 묵은 감정을 털어버리고 "서민들이 행복한 새해"를 입모아 희망했다.

10대에서 70대까지 세대별로 바라는 소원은 다양했지만 "서민이 웃을 수 있는", "행복한", "먹고 살만한", "걱정 없는", "무사한" 한해를 바라는 데에는 같은 목소리를 냈다. 특히, 새벽 6시~아침 10시까지 산에서 만난 시민 30명 가운데, 10대들은 "성적"과 "친구관계", "가족행복"을 가장 많이 소망했고, 20-30대들은 "취업"과 "토익성적", "결혼", "월급", "집 장만"을, 40-50대들은 "자녀", "건강", "정치", "사교육비", "생계"를, 60대 이상 노년층은 "건강"과 "남북평화", "행복한 노년"을 가장 많이 기원했다.

천을산 중턱 돌탑에서 새해 소망을 비는 중년부부(2014.1.1)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천을산 중턱 돌탑에서 새해 소망을 비는 중년부부(2014.1.1)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새벽 5시 30분쯤 산에 올라 해돋이를 보고 내려가던 50대 부부는 산 중턱에 있던 돌탑에 작은 돌 2개를 쌓고 두 손을 모아 기도를 했다. 남편 도정환(53.수성구 고산동)씨와 함께 식당을 운영하는 이금숙(50) 씨는 "지난해에는 장사도 안되고 건강도 나빠져서 너무 피곤한 한해였다"며 "올해는 몸도 건강해지고 손님도 2배 정도만 늘어나서 빠듯한 살림이 좀 나아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도정환씨는 "대구는 서민은 더 힘들고 잘 사는 사람만 계속 잘사는 동네"라며 "아무리 아등바등 살려고 노력해도 쉽지 않다. 위정자들은 뭘 그렇게 싸우는지 뉴스를 보면 답답할 때가 많았다. 이제는 여야가 정치 화합을 이뤄서 서민이 먹고 살만한 세상을 만들었으면 좋겠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웃고 행복하게"...강성미씨가 해를 보고 소망을 빌고 있다(2014.1.1)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웃고 행복하게"...강성미씨가 해를 보고 소망을 빌고 있다(2014.1.1)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정상에서 해돋이를 보며 정성스레 기도를 올리던 40대, 50대 두 중년여성도 "먹고 살만한 새해"를 기원했다. 동구 율하동에서 반찬가게를 하는 강성미(42)씨는 "다른 거 없어요. 작은 가게를 하는데 그게 좀 잘됐으면 좋겠어요. 갈수록 서민은 먹고 살기 힘들잖아요. 그렇다고 대구를 떠날 수도 없으니 다같이 먹고 사는데만 지장이 없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모두가 열심히 일한만큼 좀 웃고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네요. 그거 말고 다른 건 바라는 건 없어요"라고 말했다.

옆에서 기도를 하던 신영(수성구 범어동.57)씨는 "학교에서 밥 만드는 일을 하는데 눈에 질병이 있어 병원에 가려고 한 달에 한 두 번 빠진 적이 있었다. 그럴때마다 눈치가 많이 보인다. 내년에는 눈이 싹 낫던가 아니면 그런 걸 학교에서 좀 이해해줬으면 좋겠다. 먹고 살려고 일하는데 아프다고 남에 눈치까지 보려니 참 서럽다. 걱정 없이 편안하게 보내길 바란다"고 소망했다.

천을산 정상을 향해 등산하는 사람들(2014.1.1)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천을산 정상을 향해 등산하는 사람들(2014.1.1)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해가 떠오르기 시작한 새벽 6시 30분쯤 이제 막 정상을 앞둔 사람들은 발걸음을 정상으로 빨리 옮기기 시작했다. 5살짜리 쌍둥이 예진이와 예원이의 고사리 손을 잡고 산을 찾은 박기영(38.경산)씨는 "아이들을 위해 좀 더 큰 집으로 이사를 가려고 한다. 그런데 집값이 너무 비싸 적당한 곳을 못 찾고 있다"며 "새해는 월급쟁이들이 집값 걱정없이 살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기영씨 이웃집에 사는 이기민(36)씨, 예옥희(33)씨 부부는 잠에 빠진 아들 성주를 들쳐업고 등산을 했다. 이씨는 "월급 인상이 제일 큰 새해소망이죠. 올해 성주도 학교에 들어가고 전세값도 올려줘야 하는데 너무 빡빡하거든요. 둘이 벌어도 힘들어요. 사교육비도 많이 들어가고...교육감님이나 시장님이 젊은 부부들을 위해 뭔가 좋은 정책을 내놨으면 좋겠네요"라고 말하며 정상을 향해 올라갔다.

쌍둥이 손을 잡고 하산하는 박기영씨 부부(2014.1.1)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쌍둥이 손을 잡고 하산하는 박기영씨 부부(2014.1.1)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정상에 오른 사람들은 해돋이를 보고 소원을 빈 뒤 하산을 하거나 준비해 온 라면과 김치, 막걸리, 커피 등을 먹으며 얘기를 나눴다. 정자에서 부인, 막내아들과 컵라면을 먹던 우정수(자영업.70)씨는 "아들 둘, 딸 하나는 다 출가했는데 막내는 아직이다. 취업을 못해 3년째 서울서 공부만 하고 있는데 걱정이다. 올해는 좋은 결과가 나길 바란다"고 했다.

또, "대구 경제가 좀 살아나서 젊은이들이 떠나지 않고 여기서 일할 수 있는 곳이 되길 바란다"며 "너무 여당정치인만 뽑아줘 우리를 우습게 보는지...싹 갈아치우든지 정치 균형을 이루게 해야 한다. 올해는 선거도 있으니 나랏님들이 제발 정신 좀 차리길 바란다"고 쓴소리를 했다.

아버지 옆에서 함께 라면을 먹던 우창환(29)씨는 새해를 맞아 준비하던 공무원 공부를 잠시 접고 서울에서 대구로 내려왔다. "첫 취업, 첫 출근을 제일 바라죠. 대구에 일자리가 있으면 좋겠지만 마땅치가 않아요. 토익 점수도 오르고 스펙도 쌓아서 무사히 합격하길 바라요. 여자친구까지 생기면 더 좋구요. 그 동안 가족들에게 면목이 없었는데 그렇게만 되면 더 바랄 게 없을 것 같네요"라고 했다.

지팡이를 짚고 해돋이를 본 뒤 하산하는 노부부(2014.1.1)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지팡이를 짚고 해돋이를 본 뒤 하산하는 노부부(2014.1.1)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많은 사람들이 해돋이를 보고 하산한 아침 9시. 지팡이를 짚은 노부부는 대전에 사는 딸이 걸어온 새해 안부인사 전화를 받으며 두 손을 맞잡고 천천히 산을 내려왔다. 뇌졸중으로 쓰러져 지난해 가을까지 병원에 입원했던 할아버지의 손을 꼭 잡은 김증숙(77) 할머니는 "오늘도 집에만 있겠다는 걸 내가 끌고 왔다"면서 "이렇게 새해 할아버지랑 산에 온 것만으로 너무 감사하다. 그저 모두 건강하고 아프지 않으면 된다. 자식들한테 폐 안끼치고 행복하게 노년을 보낼 수 있길 소망했다"고 말했다.

엄마, 아빠의 손을 잡고 산을 찾은 10대들도 많았다. 5학년 소현이는 A4용지에 "사랑하는 가족들의 건강과 성공을 기원하며 살 빼게 해달라"는 귀여운 소망을 적었고, 9살 민준이는 "할머니가 건강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학교 선생님과 엄마에게 덜 혼났으면 좋겠다"는 투정어린 새해소원을 빌었다.

어린이들의 새해 소원(2014.1.1.천을산 중턱)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어린이들의 새해 소원(2014.1.1.천을산 중턱)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등산을 마친 중년남성들은 산 입구에 피워놓은 모닥불을 둘러싸고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특히, 이들은 지난해 일어난 정치・사회적 이슈를 언급하며 "더 나은 새해"를 소망했다. 권영훈(60)씨는 "철도파업이다, 전쟁위협이다, 국정원이다 참 많은 일이 있었다"며 "새해에는 남북은 평화롭고, 정치인들은 국민만 바라보고, 큰 탈 없이 행복하게 더 나은 나라가 되길 바란다. 나라가 불안하면 국민도 불안하다. 이제 싸우는 모습은 그만 봤으면 좋겠다"고 정치인들이 민생을 잘 돌봐주기를 희망했다.        

산 입구에 모닥불을 피우고 몸을 녹이는 사람들(2014.1.1)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산 입구에 모닥불을 피우고 몸을 녹이는 사람들(2014.1.1)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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