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10월항쟁 70년 "새로운 사회 꿈꾼 민중의 열망 기억하자"

평화뉴스 김지연 기자
  • 입력 2016.09.23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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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회 "특별법·기억공간 통해 역사적 의미 전국 확산" / 10월 1일 노동자대회·시민문화제


일제강점기 해방 후 우리나라 근현대사의 대표적인 민중항쟁 가운데 하나로 손꼽히는 '대구 10월항쟁' 70년을 맞는 올해, 유족회와 지역 시민사회가 항쟁의 역사적 의미와 정신계승 방안을 논의했다.

10월항쟁유족회, 10월문학회, 민주노총대구지역본부 등 31개 단체가 참여하는 '10월항쟁70년 행사위원회(공동대표 채영희 권택흥)'는 22일 대구시민공익지원센터에서 '항쟁에서 해방으로'를 주제로 토론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는 채영희 10월유족회장과 권택흥 민주노총대구본부장을 포함해 시민 40여명이 참여했으며 임순광 한국비정규교수노조 위원장 사회로 4시간가량 진행됐다.

'항쟁에서 해방으로'를 주제로 열린 10월항쟁 70년 토론회(2016.9.22.대구시민공익센터) / 사진.평화뉴스 김지연 기자
'항쟁에서 해방으로'를 주제로 열린 10월항쟁 70년 토론회(2016.9.22.대구시민공익센터) / 사진.평화뉴스 김지연 기자

참가자들은 주로 10월항쟁의 ▷성과와 역사적 의미 ▷진상규명과 사회적 과제 ▷운동적 성격 등에 대해 자신의 입장을 밝히는 시간을 가졌다. 또 지난달 제정된 대구시의 10월항쟁 지원 조례에 대한 활용방안과 특별법 제정에 대한 의견도 제시했다.

채영희 10월유족회장은 "기억하지 않으면 역사는 쓸쓸히 뒤로 사라질 것"이라며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한 다양한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진상규명과 희생자 명예회복에 함께 힘써 달라"고 당부했다. 권택흥 민주노총대구본부장도 "10월항쟁은 새로운 사회를 꿈꿨던 노동자들와 민중들의 열망이었다"면서 "현재 우리 지역에서는 그런 열망이 사라졌다. 그 정신과 역사를 함께 기억하고 고민하자"고 했다.

특히 이 토론에서는 대구경북에 한정된 역사적 의미를 전국적으로 확대해야 한다는 의견에 힘이 실렸다. 이영일 여수지역사회연구소장은 "일부 규명된 부분이 있지만 지역이 대구경북에 한정돼 의미가 축소된 부분도 있다"며 "제주 4.3항쟁처럼 개별 특별법이나 여수·순천사건과 함께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희생자 지원 특별법 제정 등 법률적 검토가 시급하다"고 했다. 또 "사료관을 만들고 평화·인권교육으로 정신을 이어나가야 한다"며 "전국 실태조사와 체계적 연구결과를 이끌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10월항쟁의 진상규명 그리고 사회적 과제'를 발제한 이영일 여수지역사회연구소장(2016.9.22) / 사진.평화뉴스 김지연 기자
'10월항쟁의 진상규명 그리고 사회적 과제'를 발제한 이영일 여수지역사회연구소장(2016.9.22) / 사진.평화뉴스 김지연 기자

10월항쟁에 대한 역사적 오해 해소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손호만 전교조대구지부장은 "좌익 선동 폭동이라고 인식하고 있는 사람들이 여전히 있지만, 정당성을 밝히기 위해 유족과 시민사회가 그 동안 노력했고 그 결과물로 올해 대구시의회에서 10월항쟁 지원 조례가 통과됐다"며 "특별법 제정이나 정신계승 사업도 하루빨리 진행할 수 있도록 힘써야 한다"고 주장했다.

기억하고 배우기 위한 '공간' 설립 주장도 나왔다. 박근식 대구경북민주화계승사업회 사무처장은 "70년 전 일을 대중에게 설득력 있게 다가가려면 기억 공간이 있어야 한다"며 "4.19혁명 도화선 2.28운동도 기념관과 공원을 통해 인지하는 것처럼 물질적 기반이 정신계승 계기를 만든다"고 설명했다.

올해 9월 26일 대구시의회를 통과한 '대구광역시 10월항쟁 등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희생자 위령사업 지원 등에 관한 조례' 활용방안에 대한 지적도 이어졌다. 이영일 소장은 "지자체 조례는 중앙정부의 지원 없이 예산과 사업진행에 한계가 있다"며 "합동위령제와 추모사업에 그칠 게 아니라 기념사업회, 민간인희생자 지원사업, 재단설립 등 다양한 방법으로 항쟁의 근본정신을 지켜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토론회는 임순광 한국비정규교수노조 위원장의 사회로 진행됐다(2016.9.22) / 사진.평화뉴스 김지연 기자
이날 토론회는 임순광 한국비정규교수노조 위원장의 사회로 진행됐다(2016.9.22) / 사진.평화뉴스 김지연 기자

토론자들은 10월항쟁의 역사적 의미에 대해 다양한 시각으로 접근했다. 안태정 노동자역사 한내 연구위원은 "당시 민중 삶은 일제강점기와 미군정 아래 다른 점이 없었다. 식량정책 실패와 친일파 기용, 노동권 억압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민중운동이 바로 10월향쟁"이라고 했다. 조남수 민중행동 정책실장은 "9월총파업 연장선이 10월항쟁이다. 미제국주의 억압으로부터 해방을 위한 싸움"이라고 했다.

한편 '10월항쟁70년 행사위원회'는 오는 1일 저녁 7시부터 2.28공원에서 시민문화제를 개최한다. 문화제에서는 희생자에 대한 추모와 함께 대구경북작가회의와 10월문학회가 중심이 돼 시극, 시낭송, 밴드공연 등을 선보인다. 같은날 오후 민주노총은 영남권 노동자 6천여명이 참석하는 전국노동자대회를 열고 삼덕네거리에서 대구역까지 행진한다.

이날 토론회는 채영희 10월유족회장을 비롯해 40여명이 참석했다(2016.9.21) / 사진.평화뉴스 김지연 기자
이날 토론회는 채영희 10월유족회장을 비롯해 40여명이 참석했다(2016.9.21) / 사진.평화뉴스 김지연 기자

10월항쟁은 1946년 대구지역 노동자, 민중들이 미군정의 식량정책 실패와 친일경찰의 횡포 등 사회문제를 비판하며 벌인 대규모 항쟁이다. 노동자들의 9월총파업에 시민들이 가세한 가운데, 10월 1일 경찰의 진압 도중 노동자 2명이 사망하면서 시위대가 대구경찰서를 점거하고 무기를 빼앗아 대구역 앞에서 경찰과 총격전을 벌였다.

미군은 10월 2일 오후 5시 계엄령을 선포하고 장갑차와 기관총부대를 투입해 시위를 진압했지만 시위는 전국으로 확산돼 그 해 12월까지 계속됐다. 당시 진압된 시위 참가자들은 대구형무소에 수감됐고, 이승만 정권이 들어서면서 보도연맹, 좌익으로 몰려 집단 사살됐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2010년 이 과정에서 희생된 민간인 피해자 가운데 신원이 확인된 피해자만 60명으로 사망자 수를 추정하면 대구, 칠곡, 영천, 경주지역에만 수 백여명에 이른다.

진실화해위원회는 10월항쟁을 "해방 직후 미군정이 친일 관리를 고용하고 토지개혁을 지연하며 식량 공출을 강압적으로 시행하는 것 등에 대해 불만을 갖고 경찰과 행정당국에 맞서 발생한 사건"이라고 규정했다. 또 민간 희생자들에 대해 ▷위령추모사업 지원 ▷가족관계기록부 정정 ▷역사기록 수정 등재 ▷평화인권교육 강화 등을 권고했다. 이를 근거로 대구시는 지난 8월 26일 10월항쟁 등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희생자 위령사업 지원 등에 관한 조례안을 통과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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