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여성회 30년...상처 보듬어 미투까지 '성평등' 한 길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 입력 2018.03.30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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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2018년 '여성운동 30년' / 88년 '대현1동파출소 경찰관 성폭력 사건' 첫 상담·지원
대구교대·대구은행·금복주 성비위 사건 폭로하고 피해자와 연대...30일 경북대서 30돌 기념식


대구여성회가 올해로 30주년을 맞았다.

1987년 6.10항쟁 이듬해인 1988년 1월 23일 닻을 올린 대구여성회는 1996년 사단법인으로 등록하고 지역 여성운동을 이끌고 있는 가장 오래된 여성 시민단체다. 이주결혼여성, 비정규직여성노동자, 성매매생존자여성, 이주여성노동자, 한부모가정 여성가장, 북한이주여성 등 많은 이름의 여성을 위해 권익향상, 사회참여, 교육을 펼치고 성폭력·성차별을 없애 성평등 세상을 위한 한 길을 걷고 있다.

30주년 기념식 당일 대구여성회 사무실에 모인 활동가들(2018.3.30)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30주년 기념식 당일 대구여성회 사무실에 모인 활동가들(2018.3.30)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30일 오후 대구 중구 동인동1가 대구여성회 사무실. 남은주(45) 상임대표, 이은영(50) 공동대표, 신미
영(50.고용평등상담실 소장) 사무처장, 최윤희견(49) 대구위기청소년교육센터 팀장, 김재환(24) 활동가, 곽희원(24) 인턴 활동가를 포함해 지난해 퇴사한 김예민(40.회원)씨까지 이날 오후 후원인 5백여명이 모이는 30주년 기념식 준비에 바쁘다. 기념품 정리에 행사 순서 확인, 언론사 인터뷰, 예행 연습, 인사하러 온 공무원 맞이까지. 시계를 확인하며 옷을 갈아입고 화장도 하느라 눈코 뜰 새 없다.

사무실에는 '미투', '페미니즘', '민주주의', '성평등', '여성주의', '연대', '페미니스트' 등이 적힌 피켓과 홍보물이 어지럽게 널려있다. 대구여성회의 30년 긴 역사를 기록한 많은 책들도 벽면 한 가득 채워져 있다. 활동가들의 책상 뒤 쪽 한켠 에는 성폭력 피해자들을 위한 상담실들도 눈에 띄었다.

남은주 대구여성회 상임대표(2018.3.30)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남은주 대구여성회 상임대표(2018.3.30)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4년차 상임대표인 남은주 대표는 "87년 민주항쟁 이후 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시민단체가 아마 대구여성회 인 것 같다"며 여성회 30년을 돌아봤다. 그는 "아마 지역 첫 미투가 대구 대현1동파출소 경찰관 성폭행 사건일 것"이라며 "지금 돌이켜보면 있을 수도 없는 일"이라고 했다. 또 "굴곡 많은 여정이었지만 그래도 여성인권 향상에 대구여성회가 어느 정도 힘이돼 뿌듯하다"면서 "함께 싸우면 변화가 오긴 오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최근 미투가 전국을 휩쓸고 있다. 이제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에게 책임을 묻고 피해자가 더 이상 입을 다물지 않는 사회가 된 것 같다"며 "상처를 숨기고 자신 탓을 하던 사회에서 성평등, 젠더 평등한 '페미니즘'적 변화가 본격화 된 것 같다"고 말했다.

특히 남 대표는 미투·페미니즘에 대한 일부 '여성혐오'적 시각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는 "갑자기 확산된 용어에 반발이 있는 것은 당연하고 이 또한 바람직한 변화"라며 "여성단체는 이 변화를 정책 패러다임 전환을 위한 흐름으로 이끌어야한다"고 했다. 또 "성폭력, 성차별, 위계 폭력 근절뿐 아니라 가정이 아닌 여성 한 사람을 향한 고용질 개선, 복지 향상 등의 인식 전환도 절실하다"고 촉구했다.

대구여성회는 개소한 당해 1988년 경찰관 2명이 파출소에서 한 여성을 성폭행한 '대현1동파출소사건'을 통해 피해자를 상담하고 법률 지원한 것을 시작으로, 성차별·성폭력 피해자를 상담하고 법률 지원하는 일을 주로 맡고 있다. 1990년에는 '성폭력특별법' 제정을 위한 '여성들의 자기 몸 권리 찾기 운동'을 펼쳤고, 1995년에는 대구지역 10대 여성정책을 발표해 대구시장 후보초청 토론회을 진행했다.

1998년에는 일하는 여성을 위한 '평등의 전화'를 개설했고, 2000년에는 '출산파업문제'를 열고 대구 성매매 실태조사를 실시해 '성매매 방지법 제정' 운동을 펼쳤다. 2004년에는 성매매 여성을 위한 쉼터 '무명', 상담소 '힘내'를 설치해 성매매 생존자 여성 인권지원 사업을 시작했다. 2년 뒤에는 이주결혼여성 인권지원 상담전화를 개설했다. 특히 가장 유명한 시설은 '고용평등상담실'이다. 대구교대 전 총장 학생 성희롱 사건, 대구은행 간부들 여직원 성추행 사건, 결혼한 여성 퇴직 강요 금복주 사건 등의 피해자들을 상담한 뒤 이를 공론화시킨 것도 이 곳이다. 또 최근 대구여성회는 성폭력 피해 사실을 공개적으로 알리는 '#미투(Me Too.나도 고발한다)' 운동에 적극적으로 동참하고 있다.

대구 중구 동인동1가 대구여성회 사무실 모습(2018.3.30)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대구 중구 동인동1가 대구여성회 사무실 모습(2018.3.30)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고용평등상담실소장을 맡고 있는 신미영 사무처장은 8년째 대구여성회에서 일하고 있다. 그는 "이미 맡은 사건과 관련 소송도 많은데 미투 후에는 20~30% 상담 건이 늘어 더 정신이 없다"며 "상담을 하다보니 피해자에게 심정적으로 밀착하고 소송에 동행하는 경우가 많아 정신적 소진이 크다"고 했다. 하지만 "용기를 내는 피해자가 늘어나 그들과 함께 한다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했다. 

20년째 대구여성회에서 활동을 벌이고 있는 이은영 공동대표는 "대구여성회는 여성운동뿐 아니라 시사, 정치 흐름도 놓치지 않고 같은 선상에서 시민운동을 전개해 왔다"면서 "앞으로도 여성들이 존재하는 한, 그리고 이 땅에 차별과 폭력이 존재하는 한 그런 시민운동은 계속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최윤희견 대구위기청소년교육센터 팀장은 "나와 끊어질 수 없는, 그리고 떨어질 수 없는 곳이 대구여성회"라며 "회원이든, 활동가든 아마 대구여성회에서 계속 활동을 할 것"이라고 30년 소감을 말했다. 퇴사자인 김예민씨는 "상담일은 극한직업이다. 에너지 소진이 엄청나다. 그래서 잠시 쉬고 있다"며 "나의 피해, 상처난 내면도 대면하는 경우가 많아 조금 멈춰서 돌아보고 있다"고 말했다. 

여성단체에서 '청일점'으로 3년째 일하고 있는 김재환 활동가는 주로 웹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때문에 이날도 엄청 바쁜 모습이었다. 그는 "남자라서 힘든 점은 특별히 없다. 그냥 일이 바쁘다"면서 "게다가 정직원으로 채용되자마자 30주년 행사에, 미투까지 터져서 아무 생각 없이 일만 하고 있다"는 웃음 섞인 말을 했다. 곽희원 인턴 활동가는 "이런 단체가 있었구나 신기해하다가 막상 와서 보니 장난이 아닌 것 같아 많이 배우고 있다"며 "각 시대 여성 이슈를 이끌어 온 단체가 있어 좋다"고 했다.

한편, 대구여성회는 30일 오후 6시 30분 경북대학교 글로벌플라자에서 창립 30주년 기념식을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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