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의 성지, 안동과 함께하는 기억과 성찰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안병학 / "석주 이상룡 선생의 선택...우리는, 우리 아이들은 그 길을 선택할 수 있을까?"


독립운동의 성지(聖地) 안동

특정한 공간에 대해 우리의 기억과 경험이 함께하지 않으면 눈에 보여지는 인상만으로 느끼고 단편적으로 평가하게 된다. 역사적 지역과 공간에 대한 체험활동을 통한 성찰하는 기억과 경험을 나누기 위해 방학을 즈음하여 역사체험 캠프를 기획하고 학생들과 함께 진행했다.

임시정부수립 100주년을 맞이하여 필자가 재직하고 있는 학교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2019. 지역사회에 대한 기억과 성찰 체험캠프’를 기획했었다. 일본 제국주의의 식민침탈에 맞서 해방 독립을 위해 많은 이들이 노력했다. 그 중 안동은 전국 시ㆍ군 중 가장 많은 독립운동가를 배출한 지역이다. 그래서 안동을 ‘독립운동의 성지’라 부르고 있다. 그래서 선정된 지역은 시간과 여건, 기획의도에 부합되는 안동으로 선정했다. 안동을 대표하는 많은 독립운동가들이 있지만 임청각의 주인공 석주 이상룡의 삶을 살펴보았다.

석주 이상룡 선생(안동 임청각 전시공간)  / 사진. 안병학
석주 이상룡 선생(안동 임청각 전시공간)  / 사진. 안병학

역사적 현실에 직면한 석주 이상룡의 삶과 선택들

"희망을 양식으로 삼으면 음식을 배불리 먹을 것이며, 곤란을 초석으로 삼으면 마침내 집을 건축할 것이다" - 경학사취지서 중 -

"원컨대 제군들은 외세 때문에 스스로 기운을 잃지 말고 더욱 면려하여 이 늙은이 죽을 때의 소망을 저버리지 말게. 우리가 귀중하게 여길 것은 성실성 뿐이네. 진실로 참다운 성실이 있으면 목적을 달성하지 못함을 근심할 필요가 있겠는가.” - 이상룡의 유언 중 -

이상룡은 안동의 99칸 대저택 임청각에서 세도정치의 말기인 1858년에 태어났다. 여느 양반집 자제가 그러하듯 과거공부에 몰두하여 1886년에 과거시험에 응시했다가 낙방했다. 시험부정이 난무하는 현실에 더 이상 과거시험에 대해 미련을 버리고 고향으로 내려왔다.

첫 번째 선택. 일본의 한반도에 대한 집요한 식민화 전략에 맞서 1895년 을미년과 1905년 을사년 의병활동을 진행했다. 을미의병 실패 경험을 바탕으로 을사의병활동은 1904년 충의사에 가담해서 1905년엔 가야산에 의병기지를 건설했다. 그해 12월 가야산에 입산해서 인원을 모집하고 무기를 구입해서 훈련에 매진했으나 기밀이 새어나가 일본군에 습격당함으로 막을 내렸다.

두 번째 선택. 의병장 신돌석의 죽음을 계기로 의병항쟁의 한계를 인식하고 교육활동을 중심으로 애국계몽운동으로 전환했다. 전통 유림에서 혁신 유림으로의 변화한 것이다. 안동지역에서 내앞마을에 위치한 협동학교 설립에 참여한 것이다. 이때 신민회 계열 협동학교 교사로 내려온 사람들과 관계를 맺었다.

석주 이상룡 선생의 독립운동(안동 임청각 전시공간) / 사진. 안병학
석주 이상룡 선생의 독립운동(안동 임청각 전시공간) / 사진. 안병학

세 번째 선택. 1910년 경술국치의 역사적 현실에 직면하여 신민회가 결정한 독립을 위한 최선의 방략인 독립전쟁을 선택하고 독립운동 기지 건설에 동참하여 자신의 가족들을 이끌고 서간도로 집단 이주를 선택했다. 그리고 독립전쟁을 최선의 방략으로 일관된 독립운동 활동을 진행하다 1932년 만주에서 생을 마감했다.

이상룡의 선택들은 역사적 현실에 마주하여 개인적 안위를 위한 선택이 아니라 우리 공동체를 위한 이타적 선택이자 자신의 가치와 신념에 따른 선택들이었다. 그리고 마지막 간도로의 집단이주에서는 자신의 선택에 대해 가족들의 동의를 얻어 일가족이 함께 움직인 것이다.

이상룡 일가는 이회영 일가와 더불어 자신의 전 재산과 삶을 온전히 일본 제국주의의 식민침탈에 맞서 평화와 인권을 실현하고자 노력한 노블레스 오블리주(상류층의 도덕적 의무)의 표상이 되는 선택들을 해왔던 것이다. 서간도에서의 삶의 족적도 그 일관성을 유지해온 아름다운 모습으로 충분했다.

일제에 맞서다 토막난 99칸 저택, 임청각

역사적 기억과 함께하는 임청각 체험활동을 위해 학생들과 함께 ‘서간도 독립군의 개척자 이상룡의 독립정신’(채영국, 역사공간) 책을 읽고 독서나눔토론을 진행했었다. 함께한 친구들이 가장 인상깊은 장면으로 꼽았던 책 내용은 간도로 망명할 때 읊은 거국시(去國詩) 였다.

대지(大地)에 그물 펼친 것 이미 보았거니/ 어찌타 영웅남자가 해골을 아끼랴/
고향 동산에 좋이 머물고 슬퍼하지 말게나/ 태평성세 훗날 다시 돌아와 머무르리
- 이상룡, 거국시(去國詩) 중 일부 -


일제의 식민지배와 침탈의 그물이 펼쳐진 현실에 대응해서 자신의 몸과 재산을 아끼지 않겠다는 결의와 독립과 해방의 순간 꼭 돌아오리라는 다짐을 가족들과 함께하며 그는 가산을 처분해서 99칸 저택을 떠났다.(이상룡 일가가 처분한 자산이 현재 시가로 400억원이 넘는다고 한다.) 평안한 일생을 보장받을 수 있는 이 땅과 재산을 두고서 험난한 망명의 길을 선택했던 것이다. 그가 처분한 재산을 종자돈으로 경학사와 신흥학교가 설립되고 무장독립전쟁의 기초를 다질 수 있었다.

지난해(2018년) 광복절 문재인 대통령은 임청각을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상징하는 공간’으로 칭했다. 그 후속 작업으로 일제에 의해 철로로 토막난 99칸 저택(현재 50여칸만 남음)을 복원사업이 진행 중에 있다. 복원이 완료되면 어떤 모습일까? 철길 너머 강과 연결된 앞마당이 펼쳐진 99칸의 대저택의 위용을 되찾게 될 것이다.

석주 이상룡 선생 생가 / 사진. 안병학
석주 이상룡 선생 생가 / 사진. 안병학

하지만 지금의 토막난 저택, 기차가 지날 때 마다 덜컹거리며 가옥을 흔들어 대는 임청각의 모습 속에서 우리의 생채기난 역사를 기억해 보는 것도 충분히 의미가 있을 것이다. 임청각의 사랑방 군자정에서 임청각의 역사를 제대로 살펴 볼 기회가 있었다. 학생들과 함께 체험학습을 진행한 덕분에 이곳 문화 해설사님이 군자정을 특별히 개방해 주었다.

임청각의 주인 이상룡 일가는 2019년 3월까지 총 11분이 독립운동유공자로 선정되었다. 그리고 시원한 군자정 마루바닥에서 벽면을 장식하는 훈장증들을 살펴 볼 수 있었다. 한 가족 중 11분이나 ... 얼마나 어렵고 힘든 선택과 일관된 삶을 살아 내셨을까? 그리고 낯선 타국의 망명지에서 국외인으로의 설움과 어려움은 또 어떠했을까?

안동 임청각. '2019. 지역사회에 대한 기억과 성찰 체험캠프'(2019년 7월 22일) / 사진. 안병학
안동 임청각. '2019. 지역사회에 대한 기억과 성찰 체험캠프'(2019년 7월 22일) / 사진. 안병학

많은 생각들이 시원한 마룻바닥에 놓여지 내 몸, 내 머릿속을 뜨겁게 만들었다.
일제에 대한 저항의 대가를 물리적으로 보여주려 했던 토막난 저택, 하지만 온 몸이 토막 나더라도 꿋꿋이 저항을 멈추지 않았던 우리의 역사를 대변하는 자랑찬 역사적 기억의 공간임을 확인 할 수 있었다.

안동 독립운동의 산실, 내앞 마을

의성 김씨 집성촌인 내앞마을은 백하 김대락을 비롯 독립유공자를 25명이나 배출한 마을이다. 그래서 경상북도독립운동기념관(안동독립운동기념관)도 내앞마을에 세워졌다. 지난 7월 22일 학생들과 임청각에 이어 다음 행선지로 내앞 마을에 들렀다. 원래 계획은 내앞마을의 독립운동기념관 방문이 목적이었다. 하지만 월요일에 진행된 현장체험인 관계로 독립운동기념관 휴관일과 겹쳐 내앞마을을 둘러보는 것으로 대체했다.

내앞마을을 대표하는 인물 김대락도 이상룡 일가처럼 경술국치를 맞아 자신의 가솔들과 마을사람 150여명을 이끌고 독립운동을 위한 집단 망명을 선택했다. 안동독립운동기념관을 방문할 경우 바로 뒤편 김대락의 삶과 협동학교의 흔적을 살펴 볼 수 있는 내앞마을의 배하구려에 꼭 들러 보실 것을 권한다.

송현여자고등학교 '2019. 지역사회에 대한 기억과 성찰 체험캠프'
송현여자고등학교 '2019. 지역사회에 대한 기억과 성찰 체험캠프'
사진. 안병학
사진. 안병학

식민침탈의 위협에 맞서 안동이 선택한 교육적 실천은 협동학교의 탄생과 함께였다. 이곳 협동학교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동삼은 이상룡 등과 함께 무장독립투쟁의 선봉에서 역할을 했다. 특히 서로군정서의 참모장으로 독립군을 지휘한 만주벌 호랑이로 불렸다. 국내에 남은 협동학교 인물들은 3.1운동과 사회운동으로 일제에 저항을 이어갔다. 이를 기념해서 안동교육지원청 주관으로 금년 7월 10일~12일(2박3일) 경상북도독립운동기념관에서 ‘안동 협동학교 캠프’도 운영했다고 한다.

공간에 대한 기억과 성찰, 다시 우리의 삶으로

역사적 맥락 속에서 그 공간은 우리의 기억을 새롭게 하는 역사적 경험의 공간, 성찰의 기억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제국주의의 식민지배와 침탈 속에서 온전한 평화와 인권은 그 자체로 존재할 수 없었다. 경쟁적 교육시스템에서 선두경쟁에만 몰두한 아이들이라면 이상룡과 김동삼, 그리고 협동학교 출신이 선택한 그 길을 선택할 수 있을까?

우리의 삶의 기초가 위협당하는 현실이 만만치 않다. 평화와 인권 민주주의의 기초를 되찾고 지켜내고자 노력한 이들의 삶이 새로이 기억되고 성찰되어 각자의 삶에 뿌리내려지길 기대하며 독립운동의 성지(聖地) 안동과 함께하는 기억과 성찰을 마무리 해 보았다.

 
 






[기고]
안병학 / 송현여고 역사교사

저작권자 © 평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당신이 좋아할 만한 기사
지금 주목 받고 있어요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