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획된 식민의식의 해방을 위한 나와 우리의 성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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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병학 / 『검은 피부, 하얀 가면』
(프란츠 파농 지음 | 이석호 옮김 | 아프리카 펴냄 | 2016)

 
신채호와 닮은 꼴 인생 파농

프란츠 파농(1925~1961)은 1925년 카브리해 연안에 있는 앙띨레스 제도의 섬 중 하나인 마르티니크에서 태어났다. 그가 태어난 카브리해의 여러 섬들은 제국주의의 명명행위에 의해  서인도 제도로 불린다.(서인도 제도라는 이름은 1492년 콜럼버스가 산살바도르 섬에 상륙했을 때 이곳을 인도의 서쪽으로 오인한 것에서 유래했다.)
 
서인도 제도로 명명된 것처럼 이 지역은 제국주의의 침탈에 의해 식민지로 전락한 지역이다. 파농이 태어나서 자란 마르티니크는 프랑스의 식민지였다. 프랑스는 섬의 원주민들에 대해 적극적인 동화정책을 시행해 경제적 지배 뿐 아니라 문화적으로도 철저히 식민화 했다.
 
얼마나 피부색이 백인에 더 가까운가(혹은 피부색이 덜 검은가)? 얼마나 프랑스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가? 얼마나 가정 형편이 여유로운가? 이 세가지가 사람의 지위를 평가하는 마르티니크가 파농의 역사적, 지역적 배경으로 성장했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프랑스군으로 지원해 파시점 세력과의 전투에 참여했다. 전후에는 프랑스의 리옹 대학에서 정신의학을 전공하고 프랑스의 식민지인 알제리에서 정신의학자로 생활하게 된다. 이곳에서 마주한 알제리 민족해방전선활동에 투신해 1961년 알제리 독립을 1년 앞둔 시점에 사망했다.
 
일본제국주의의 침탈에 맞서 언론인, 교육자, 역사학자로의 삶에 머무르지 않고 아나키스트로 활동하다 옥중에서 생을 마감한 신채호의 삶과 겹쳐져 보였다.

앙띨레스 흑인들의 “검은 피부, 하얀 가면”

1952년 발간된 파농의 대표적 저서 “검은 피부, 하얀 가면”은 앙틸레스 흑인 신경증 환자들에 대한 임상의학적 관찰과 해석을 통해 문제의 원인이 사회역사적으로 구성된 것임을 분명히 했다.

앙띨레스에 사는 흑인학생들은 항시 “우리의 조상은 골인(골족)”이라는 문장을 암송해야만 한다. 이를 통해 자신을 개척자이자, 문명 교화의 책임을 진 식민주의자, 그리고 야만인들에게 진리를 배달하는 백인, 즉 백합처럼 하얀 진리의 담지자와 동일시하게 된다. 이러한 동일화 과정이 의미하는 것은 명약관하하다. 흑인 아이들은 백인들의 태도를 종속적으로 수용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 그것은 성인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결국 백인의 방식으로 생각하고 사물을 바라보는 태도가 앙띨레스의 청소년들에게 서서히 내면화되어 간다. … 앙띨레스 인은 스스로를 흑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앙띨레스인이라고 생각한다. 흑인은 아프리카에 산다고 믿기 때문이다. 따라서 앙띨레스인은 주관적으로도 지적으로도 백인처럼 행동한다.(186쪽, 6장 흑인과 정신병리)
 
 
 
앙띨레스 인들은 서구제국의 아메리카 대륙에 대한 식민침탈과정에서 강제로 아프리카에서 포획되어 아메리카로 이식된 블랙디아스포라의 역사적 산물이다. 자신들이 태어나 자란 지역과 사회적 정체성을 도둑맞았다. 오히려 백인종 지배하에 노예로 전락한 이들의 자손들이다. 그런데 자신들의 조상들을 지배한 서구 제국주의 지배자들에게 몸만 지배당하는 것을 넘어 문화와 의식도 폭획 당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좀 더 자라면 나는 백인의 책을 읽게 된다. 그로 인해 유럽으로부터 건너온 백인의 편견, 신화 그리고 민담 등을 내 것인 양 받아들이게 된다. … 앙띨레스인은 바로 이러한 문화적 사기의 노예이다. 백인의 노예가 된 이후로 그 흑인은 스스로를 노예화한다. 흑인은 그런 의미에서 백인 문명의 희생자다.(230쪽, 6장 흑인과 정신병리)

“나는 역사의 포로가 아니다” 파농이 찾은 해답?
 
백인의 의식으로 포획된 앙띨레스 인들은 백인에 의해 착취당하는 역사, 사회적 경험을 직시하지 않고 백인의 시선으로 세계를 인식하며 고유한 자신들의 정체성을 잃고 있다는 분석을 했다. 그리고 파농은 앙띨레스 흑인사회에 대한 집단적 심리분석의 결과에 따른 해결방안을 간결하지만 힘있게 제시했다.

결국 답은 하나이다. 엉터리 연극을 끝장내는 것이다.(237쪽, 6장 흑인과 정신병리)
나는 역사의 포로가 아니다.… 나는 내 조상들을 비인간화했던 노예제도의 노예가 아니다.(280쪽, 8장 결론에 대신하여)

백인의 가면을 벗어 던지라는 것. 더 이상 백인의 시선으로 제국주의 침략자의 시선으로 스스로의 의식을 포획당하지 말라는 것. 백인이 되길 희망하지만 백인이 될 수 없는 검은 피부, 유색인임을 확인하게 되는 현실 속에서 문화적 생체적 열등 콤플렉스에 휩싸인 노예의식에서 스스로를 해방하라는 것. 이것으로 결론을 대신했다.
세상에서 가장 먼 길이 가슴에서 발까지의 길이라고 했다. 그런데 파농은 백인의 가면을 벗어던지고 노예적 의식을 해방시키기 위해 혁명가로의 삶으로 실천하는 가장 먼 길을 기꺼이 걸어갔다.

식민의식에 포획된 한국사회

 완벽한 지배를 위해 필요했던 못난 역사, 못난 민족
 자신의 힘으로는 아무것도 못하고
 단결보다 분열을
 독립보다 지배받는 것을 좋아하는 열등한 민족

 이와 같은 조선인들은
 모두 똑같이 제국의 신민이 되고
 천황의 은혜를 받게 되었다
 이로부터 세상은 평온하게 되었으며
 산업은 개발되고 무역은 발전하고 있었다.
 - 일제 강점기 ‘초등 국사’ 교과서 내용 中

* 출처 : 지식채널e, ’다시 돌아올 것이다 1부 침략자가 쓴 역사‘, EBS., 2014.7.2.일자 방영(재인용)

일본 제국주의는 “우리는 그들에게 총과 대포보다 무서운 것을 심어 놓았다.”고 영상이 시작된다. ‘총과 대포보다 무서운 것’은 ‘집단적 기억으로의 역사’를 남겼다.
 
일제의 식민지배를 위한 의식을 포획하려는 시도는 한국인들에 대해 자발적인 복종을 이끌어 내겠다는 것이었다. 물리적 폭력을 동원한 지배방식에 비해 개인과 집단의 의식을 통제함으로 권력에 대한 자발적 복종과 충성을 끌어내는 방식은 가장 세련된 지배 방식이 될 것이다. 
 
그런데 1945년 우리는 일제의 식민 상태에서 물리적으로는 해방되었다.
하지만 의식의 식민 상태는 과연 해방되었을까?

우리사회의 외국인에 대한 차별의식 현주소
 
2016년 법무부발표에 따르면 국내 체류 외국인 수가 200만명을 넘겼다. 2021년에는 300만명이 넘어서 전체 인구의 5.82%가 될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나라별 인종차별 지수에서 한국은 최하위권이라는 보고가 꾸준히 나오고 있다.
 
우리는 일제의 식민지로 나라를 잃고 중국과 러시아, 미주지역 등으로 새로운 삶의 기회를 찾아 떠난 난민이었던 역사적 경험을 갖고 있다. 하지만 최근 예멘 출신 난민들의 유입에 대한 논란은 제노포비아(외국인 혐오증)에 대한 우리사회의 민낯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그럼에도 UN난민기구(UNHCR) 친선대사로 활동하고 있는 배우 정우성은 우리 사회의 부끄러운 현실에 맞서 난민들의 인권 옹호와 우리 사회의 포용성 강조하고 있음에 주목해야 하지 않을까?
 
나도 식민의식에 포획된 내 의식을 성찰하며, 우리 자신의 사회 역사적 정체성을 바로 세우며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인류애로 연대할 수 있는 실천을 위해 노력해 보고자 한다.

 
 
 
 
 
 
 
 
 
[책 속의 길] 150
안병학 / 송현여고 역사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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