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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분 없는 배신
[이재동 칼럼]
2021년 11월 30일 (화) 16:26:29 평화뉴스 이재동 칼럼니스트 pnnews@pn.or.kr

 단테의 『신곡』 ‘지옥’편의 마지막인 34곡은 신뢰를 배반한 배신자들을 다루고 있다. 단테는 지옥의 맨 밑바닥에서 지옥의 마왕인 거대하고 흉측한 루키페르는 ‘세 개의 입은 죄인 하나씩을 물고 이빨로 찢는데 마치 삼을 갈기갈기 찢어발기는 것과 같았다’고 적고 있다. 배신을 상징하는 이 역사 속의 인물 세 사람은, 예수를 팔아넘겼다는 유다와 시저를 죽인 카시우스와 브루투스다.

 이스라엘 작가로 노벨문학상까지 받은 아모스 오즈는 생의 마지막 소설로 『유다』를 썼다. 이 소설에서 오즈는 배신의 상징이자 예수를 십자가에서 죽게 한 유다를 달리 보고 있다. 유다를 예수의 신성(神性)을 확신한 최초의 기독교인이라는 것이다. 이 소설에서 유다는 스승 예수가 하느님임을 의심치 않으며 마지막 순간에 십자가에서 스스로 내려오는 기적을 행함으로서 세상을 바꿀 것이라고 확신하였고, 이런 이유로 그를 위험한 예루살렘으로 이끌었고 로마군에게 예수가 어디 있는가를 알려줬다는 것이다. 예수가 십자가에서 무력하게 죽자 실망한 나머지 스스로 목숨을 끊어 예수와 함께 죽었고 그가 없는 세상에서 더 살려하지 않았던 유다에게 배신은 충성과 헌신의 또 다른 모습이었다.
 
 양부(養父)였다고도 하며 그에게 은전과 호의를 베풀었던 로마의 영웅 시저를 모반자들 중에서 마지막으로 찌른 브루투스는 또 어떨까? 세익스피어의 희곡 『줄리어스 시저』에서는 브루투스의 행동을 로마 공화정을 지키기 위하여 강력한 독재자의 등장을 막으려는 명분을 가진 것으로 설명한다. 브루투스가 자신을 찔렀을 때 시저는 “브루투스, 너도? 그러면 시저여, 쓰러져라!”라는 유명한 말을 부르짖으면서 죽었다고 할 정도로 자신이 보호하고 총애한 브루투스가 모반에 가담했다는 사실이 뼈아팠다. 시저가 죽은 후 로마의 평민들 앞에서 벌어진 시저의 후계자 안토니우스와의 연설 대결에서 브루투스는 자신이 누구보다도 시저를 사랑했다고 말하면서 모반의 명분을 이렇게 내세웠다.

 “어찌하여 브루투스가 시저에 맞섰는가 묻는다면 시저에 대한 사랑이 덜한 것이 아니라 로마에 대한 사랑이 더했다는 것이오. 시저가 살고 여러분은 노예로 죽기를 원하오? 시저가 죽고 자신들은 자유민이 되기를 원하오?”

 우리 현대사에서 1979. 10. 26. 중앙정보부장 김재규가 박정희 대통령을 살해하는 대격변이 일어났을 때 이를 주류 언론에서는 패륜적인 배신으로 보았다. 자신을 중용하고 차지철 경호실장과 함께 권력의 축으로 삼은 대통령을 저격한 것을 신뢰를 배반한 인간으로선 해서 안 될 짓이라 했다. 당시의 한 칼럼에서는 “그는 은혜를 원수로 갚고 신뢰를 배반했을 뿐이다. 그 한 가지로서 그는 인간 이하로 떨어진 것이며 개만도 못한 인간이 된 것이다.”
 
   
▲ 사진 출처. SBS <뉴스토리> '김재규, 반역인가 혁명인가'(2020.6.27) 방송 캡처

 그러나 김재규는 재판과정에서 자신의 행위의 명분을 ‘민주회복 국민혁명’을 기도한 것으로 내세우며, ‘소신과 신념과 확신을 가지고 한 혁명’이므로 변호인은 필요 없다고까지 하였다. 그는 박정희가 시위대에 대해 발포하겠다거나 차지철이 캄보디아에서는 킬링필드에서 200만~300만을 죽이고도 까딱없으니 우리도 100만쯤 죽여도 문제없다는 등의 말을 한 것을 듣고 거사를 시도하였다고 변명하였다.

 옛날에 보았던 재미있는 한국영화 『범죄와의 전쟁』에서, 조폭인 하정우는 할아버지뻘인 일족(一族) 최민식이 어떤 호텔 나이트를 확보하기 위해 같은 과거 동료였던 조폭 조진웅을 쳐달라고 부탁하자 이렇게 말한다. “명분이 없어요. 명분이...” 그러자 최민식은 일부러 조진웅을 자극해 얻어맞고, 하정우는 집안 할아버지를 때렸다는 명분을 내세우며 친구였던 조진웅의 조직을 친다.

 사람은 살아가면서 어쩔 수 없이 크고 작은 신뢰를 저버리는 행동을 하기도 한다. 사람들은 그럴 때마다 그 신뢰의 가치를 넘는 명분을 내세운다. 그 명분은 타당성이 없는 자기 합리화에 불과한 경우도 많지만 앞의 이야기들처럼 후세의 역사의 흐름에 의해 설득력을 가지기도 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하자마자 단행한 인사 중에 나에게 가장 충격적이었던 것은 윤석열 당시 대전고검 검사를 ‘검찰의 꽃’이라는 서울지검장에 임명한 것이었다. 검사장 승진에서 탈락한 평검사를 고검장급으로 분류되던 서울중앙지검장에 임명하기 위하여 서울중앙지검장의 급을 일반 지방검사장급으로 조정하기까지 했다. 기수를 중시하던 검찰문화에서 대단히 파격적인 중용이었다. 또 2년 후에는 많은 반대에도 불구하고 검찰의 수장인 검찰총장으로 임명하기까지 하였다.
 
   
▲ 사진 출처. KBS 뉴스 <윤석열 검찰총장 후보자 인사청문회…"수사 지휘권 유지">(2019.7.8) 방송 캡처

 그러나 윤석열은 검찰총장으로 재직하면서 대통령과 대립하고 이를 통하여 야당의 지지를 얻는 자신의 정치를 하였다. 가장 직접적인 계기는 자신의 상관인 법무부장관에 자신이 반대하는 조국을 임명하였다는 것이며, 이를 무산시키기 위하여 자신에게 허용된 모든 권한을 행사하였다. 그가 검찰총장에서 물러나기 전날에 보수의 성지라는 대구를 방문하여 출정식과 비슷한 행사를 벌이고, 현 정권을 신랄하게 비난하면서 지지자들을 규합하여 퇴진한 지 몇 달 만에 자신의 검찰총장 임명을 극렬히 반대하며 인사청문회보고서 작성도 거부했던 야당에 입당하여 대통령 후보를 거머쥔 것은 우리 현대사에서도 유례를 찾기 힘든 일이다.    
 
 그가 후보 경선과정에서 자신이 대통령으로 당선되는 것이 문재인 정부에 가장 뼈아픈 일이 될 것이라고 말한 것은 참 이해하기 힘든 배신행위다. 그가 자신을 과분하게 평가하여 중용하고 큰 권력을 갖게 하고 정치적으로 클 수 있는 배경을 마련하여 준 대통령을 배신하는 명분은 무엇인지 아무리 곰곰이 생각해도 잘 안 떠오른다.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한다는 말을 하지만 우리나라가 권위주의적 독재국가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며 자유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했다는 사람도 거의 없을 것이다.

 영국 이코노미스트에서 올해 2월에 발표한 2020년 세계민주주의 지수에서 우리나라는 ‘완전한 민주주의(full democracy) 국가’로 분류되었으며, 이는 우리가 민주주의의 전형이라 부르는 프랑스나 미국보다 앞선 것이다. 민주주의의 척도인 언론의 자유에서도 우리는 그 자유가 지나친 것을 걱정할 정도이며, 사법권의 독립에서도 대통령에게 신발을 던진 행위를 무죄로 판결할 정도로 권력에 독립해 있다. 검찰권의 독립은 그 자신이 직접 몸으로 시전해 보였으니 두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그는 대통령에 의하여 임명된 고위 공무원으로 얻은 정치적 자산을 대통령을 비난하고 그 정부를 무너뜨리는 데에 쓰고 있다. 그의 이런 배신행위는 그저 자신의 권력욕을 채우는 것과 나아가 검찰조직을 개혁으로부터 보호하겠다는 것 이외에는 아무런 명분을 찾을 수가 없다. 그가 꼭 대통령이 되고 싶었다면 대통령의 호의에 의하여 받은 정치적 자산으로부터 좀 간격을 둔 차차기에 출마하는 것이 옳았을 것이다. 이러한 명분 없는 배신행위가 용인되고 큰 호응을 받는 것을 지켜보는 일은 아무래도 좀 씁쓸하다.

 
   
 






[이재동 칼럼 21]
이재동 /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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